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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 아! 비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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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홋카이도에서 자동차 여행은 처음이다. 도시의 경계를 넘지도 않았는데, 사방은 이미 텅 비었다. 내륙의 아사히카와(旭川)까지는 고속도로였지만, 목적지인 카미카와군(上川郡)의 비에이(美瑛)까지는 국도를 타야 했다. 지난밤 일부러 <겨울 왕국>을 보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아렌델’로 들어가는 것처럼 강을 건너고 산을 넘었다. 도로는 어느새 2차선으로 줄었다. 겨울철 통행금지 표지판도 몇 개 지나쳤다. 좁은 도로를 빼고는 계절의 정령이 세상을, 자연을 지배하고 있었다. 모든 게 얼어붙었고 겹겹이 쌓인 눈은 완고했다. 잎사귀 없이 단단한 활엽수와 극도로 거칠어진 침엽수가 각자의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아주 오래되고 안정적인 진영이었다.

「Let it go」 를 흥얼거리며 창 밖을 두리번거렸다. 얼음에 갇힌 엘사를 구하러 가는 안나에 극도로 감정이입을 한 채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입술을 샐룩거리기도 했다. 얼굴에 경련이라도 난 것처럼 우스꽝스러웠을 게다. 다시 생각하니 좀 창피하다. 여행 시작부터 너무 감상에 빠졌다.




언덕 마을의 역사

홋카이도(北海道)에는 일본의 내지인 혼슈(本州)와는 다른 느낌의 지명이 많다. 원래 이곳에 살던 ‘아이누 족’의 흔적이다.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이곳을 개척(?)한 후 일본식 한자를 끼워 맞추었다. 원래의 이름인 ‘피예(Piye)’는 아이누 말이다. ‘기름지고 탁한 강’이란 뜻이다. 예전에는 수원지에서 흘러나온 유황 성분 때문에 이곳 강물이 실제로 그러했다고 한다. 비에이(美瑛)를 적은 한자의 뜻은 ‘아름다운 옥빛’이고, 우리 식으로 읽으면 ‘미영’이다. 왠지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하긴, 여기에 미영이가 산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비에이는 소박한 농촌 마을이다. 그렇지만 면적은 677.16㎢로 서울특별시와 비슷한 크기다. 전체의 70%는 삼림, 15%는 농경지이다. 이곳은 1970년대에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가 발표한 작품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사계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구릉과 자연의 비경으로 영화나 광고의 단골 촬영지가 됐다. 언덕의 대부분은 감자, 양파, 밀, 옥수수를 경작하는 밭이다.


풍경화, 참 쉽죠?

꿀꺽, 침을 삼켰다. 고도가 높아졌는지 귀가 먹먹해졌다. 북부 고원지에서만 자라는 자작나무 숲이 966번 도로를 감쌌다. 정면으론 거대한 대설산(大雪山: 다이세츠야마)이 점점 다가왔다. 열 개의 봉우리 중 하나인 활화산 토카치다케(十勝岳)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흰수염폭포(시로히게타키)’로 이어진다.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수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수의 거대한 심지는 상상하기 힘든 원리로 얼어 있었다. 쏴쏴, 물줄기를 뿜어댔을 소리도 멈추었다. 참으로 겨울은 만물이 숨을 고르는 계절이다.

떨어지던 폭포수도 얼어붙은 고요한 풍경 속에 서 있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묘한 푸른 빛을 띤 물이 김을 뿜으며 흐르고 있었다. ‘방제 둑을 만들다 온천수에 포함된 알루미늄 성분이 강물과 섞였다. 그렇게 생긴 콜로이드 형태의 입자가 햇빛을 산란시켜 코발트블루 빛으로 반사되는 것으로 추측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가설만 존재할 뿐, 파란 빛깔을 내는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신비하게 느껴졌다.


밥 로스(Bob Ross)의 <그림을 그립시다(The Joy of Painting)>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기가 막히는 풍경화를 30분 만에 뚝딱 그리던 곱슬머리 밥 아저씨 말이다.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참 쉽죠? 누구나 이렇게 그릴 수 있어요.’를 연발해서 매번 기가 찼다.
쓱쓱. (붓을 문지른다.)

“자, 이렇게…… 나이프를 가볍게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눈이 쌓인 산을 그려주세요. 이렇게요.”
“여기선, 코발트 블루를… 이렇게, 섞어서 칠해주고요.”
커다란 붓으로 여기저기 문지른 하늘, 나이프로 가볍게 터치한 구름, 마구 눈이 쌓인 웅장한 산맥, 코발트 블루가 섞인 강물과 폭포수……한 폭의 겨울 풍경화가 뚝딱 완성됐다.
“어때요, 참 쉽죠?”



발자국

비에이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얻었다. 패치워크, 파노라마 등 여러 개의 코스가 있었다. TV 광고에 등장했던 켄과 메리의 나무, 세븐 스타, 철학자의 나무같이 유명한 장소도 표시되어 있었다. 어디부터 어떤 순서로 돌까 잠시 고심하다가, 가장 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시속 2~30km의 속도로 천천히 길을 따라 언덕을 넘기로.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나면 차를 세워 밖으로 나가 보기로.

겨울 비에이의 언덕은 하얀 도화지가 넘실대는 듯했다. 어떤 구름은 언덕보다 컸다. 모든 구릉의 꼭대기는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햇빛을 받은 고운 눈 입자는 억만 개의 빛을 발했다. 앞으로 눈에 담을 수 있는 건 하얀 색뿐일 것 같았다. 나무 몇 그루와 고립된 빨간 지붕 집은 뜬금없게 느껴졌다. 여백이 너무 컸다.


“으하하… 구름을 타고 놀면 이런 기분일 거야.
 이거 봐, 푹푹 빠진다, 빠져. 으하하…
 신 난다, 이런 여행 처음이야. 너무 좋다. 으하하하……”
실성한 듯 웃어 젖히던 친구는 차에서 내리면 일단 눈밭으로 뛰어들어 갔다. 허리까지 눈 속에 잠기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갔다. 그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던 도화지에 발자국을 새겼다. 구렁에 빠져 엎어져도 ‘으하하’ 웃었고,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도 마냥 ‘좋다’는 말만 했다. 영락없이 봉두난발의 아저씨였다. 이제 막 주름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그의 눈가가 푹 패였다. 거짓이나 예의, 책무 같은 건 없었다. 아무것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순수한 눈빛과 웃음이었다.




둥글게, 더 둥글게

완만한 경사에 약간 기울어진 미루나무가 있는 언덕 앞에 멈췄을 때였다. 갸우뚱하게 생각하는 모습 같다고 하여 ‘철학자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다리가 가는 짐승이 외롭게 새기고 간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이런 곳에선 시를 써야 한다는 집착이 왜 올라왔을까. 머리 근육에 어찌나 힘을 잔뜩 주었던지 옅은 졸음이 몰려왔다.

‘가방 할 때 가, 나비 할 때 나…아기가 으앙으앙 할 때 으……’
 처음으로 세상의 글을 배웠을 때 부르던 노래가,

‘방앗간에서 갓 쪄낸 백설기, 모닥불에 구운 마시멜로, 카페모카의 휘핑크림……’
 언젠가 깊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첫 하얀색의 것들이,

옅은 잠기운 속에서 뜬금없이 떠올랐다. 글의 강렬함, 방앗간의 푸근함, 마시멜로의 쫄깃함, 그리고 크림의 달콤함 같은 걸 처음 알았을 때의 기억이었다. 별다른 의미도 없을 것 같았던 순간들이 하얀 언덕 앞에 무작정 그려졌다.

이내 머리가 텅 비었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마음에 여백을 두면 순수와 맞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도 친구가 뛰어들어간 눈밭에 따라 들어갔다. 가방 할 때 가, 나비 할 때 나, 아기가 으앙으앙 할 때 으…… 처음 말을 배우던 때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하얀 도화지 속에서 순수를 탐했다. 둥근 구릉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위로만 뻗어내는 게 정도는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언덕의 굽은 선을 보며 둥글게 사는 게 옳다고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어쩌면 세상의 공기를 입으로 들이마시기 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자궁이 그러했다. 비에이는 둥그런 엄마 뱃속을 닮았다.


* 비에이 관광 안내

겨울철 비에이는 트윙클 버스, 택시, 렌터카 등을 이용하여 둘러보는 게 좋다. 춥고 눈이 많이 오는 날씨기에 자전거나 도보 여행은 불가능하다. JR 비에이역 바깥에 관광 안내소가 있으며, 한국어 팜플렛도 구비하고 있다. 당일치기 여행인 경우 기차와 버스 시간표를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비에이 관광협회 : http://www.biei-hokkaid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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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의 심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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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에서 온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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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rsenal Season Review 2009-10] 


2010년 2월 27일, 악명 높은 스토크 시티 원정. 점수는 1:1, 승리가 절실한 아스날로서 매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후반전 20여분이 흘렀을까. 스토크의 라이언 쇼크로스는 아스날의 공격을 차단했지만, 공이 흘러나왔고 그것을 태클로 막아내기 위해 아론 람지가 뛰어들었다. 공을 걷어내려고 했던 쇼크로스의 킥은 그대로 공이 아닌 다리를 향했다. 고통을 호소하며 피치 위에 쓰러지는 람지.

그동안 축구를 보면서 선수들이 부상당하는 장면을 참 많이 목격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심판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다급한 얼굴로 의료진을 향해 빨리 오라며 손짓을 하고 소리를 지른다. 머리를 감싸쥐며 주저앉은 베르마엘렌. 흥분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세스크. 스토크 선수들을 향해 격하게 화를 내는 캠벨... 카메라는 쓰러져있는 람지를 비췄고 그의 오른쪽 다리는 상상할 수 없는 각도로 꺾여 있었다...


[출처: BBC Sport]

2008년 여름, 웨일스 카디프 시티의 17살 미드필더를 두고 아스날과 맨유의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의 이름은 아론 람지(Aaron Ramsey). 나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잘생겼다.” 어차피 유망주는 유망주일 뿐이라며 가볍게 흘려넘길 수도 있었지만 맨유도 그를 영입하고 싶어한다니 왠지 꼭 아스날이 영입했으면 했다. 원래 사소한 것조차도 라이벌한테는 지고 싶지 않은 법이다. 또한 ‘벵거(아스날 감독)와 퍼거슨(맨유 감독)이 동시에 찍은 선수는 무조건 성공한다’는 축구계의 속설도 내심 마음에 걸렸다. 
혹시 간발의 차이로 맨유에게 빼앗긴 유망주가 나중에 슈퍼스타가 되면 땅을 치며 후회할 테니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고? 리오넬 메시와 함께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딱 그러했다. 2003년, 호날두는 거의 아스날로 올 뻔했다. 심지어 9번의 번호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아스날 셔츠도 받았지만, 결국 그는 맨유를 택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쉽다. 아! 


그리고 5년 후, 역사는 되풀이되는 듯 했다. 이번에도 맨유 공식 홈페이지에 카디프 구단과 아론 람지의 이적에 합의했고, 개인 협상과 메디컬 테스트만 남았다는 뉴스가 벌써 올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좌절했다. 또다시 이렇게 맨유에게 당하는 것인가. 하지만, 웬걸 정확하게 10일 뒤, 아론 람지는 아스날과 사인했다. 동시에 맨유 공식 홈페이지의 이 설레발은 두고두고 축구팬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출처: 맨유,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캡쳐] 


이후 밝혀진 람지 이적에 대한 뒷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보자면, 카디프는 맨유, 아스날, 에버튼 세 곳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맨유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공개적으로 뉴스를 띄우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마치 계약이 성사된 것처럼 보이려고 했다. 더불어, 카디프도 아스날이나 에버튼보다는 맨유로 이적시키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맨유는 람지를 카디프로 재임대하여, 1년 더 그곳에서 머물 수 있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람지와 그의 부모, 그리고 에이전트는 대화를 위해 맨유로 향했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휴가중으로 자리에 없었다. 아스날의 감독 아르센 벵거 역시 유로 2008 관람차 스위스에 체류하면서 클럽에는 부재중이었는데, 이때 벵거는 람지 가족을 개인 제트기로 자신이 있는 스위스로 모셔와 점심 식사에 초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벵거는 이 자리에서 람지를 설득했다.

아론 람지 “내가 아스날에 입단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르센 벵거와 만나 나를 위한 그의 계획들을 듣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그는 수많은 어린 선수들을 데려와 기회를 주고 훌륭한 선수들로 길러냈다. 아스날은 나에게 비행기를 보내 벵거와 만날 수 있도록 해줬다. 감동받았다. 나는 고작 17살이었는데 세계 최고의 감독이 나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한다니. 아스날로의 이적은 내 나이에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나는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스날로부터 나를 더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를 위한 계획도 더 낫다고 생각했다.”
(2013. 11. 8. 텔레그라프)

[출처: Arsenal Season Review 2009-10]


2008-09 시즌, 이렇게 아론 람지는 아스날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아스날이 직접 길러낸 어린 선수들 중 가장 촉망받는 재능의 16살 잭 윌셔와 함께 1군 스쿼드에 올랐다. 이 두 선수를 바라보는 내 눈은 당연히 하트가 되었다. 아직은 어리고 부족한 탓에 팀에 큰 보탬은 되지 않겠지만 점차 성장해서 아스날의 미래를 책임질 ‘브리티시 코어’들이었으니까. (아스날의 1군 스쿼드는 항상 외국인 선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잉글랜드 클럽이면서 잉글랜드 선수가 없다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그래서 아스날은 잉글랜드 혹은 영연방 선수들을 팀의 핵심으로 삼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들을 ‘브리티시 코어’라고 불렀다)

이미 팀의 에이스가 된 세스크와 함께 높은 잠재력을 지닌 람지와 윌셔가 함께 피치 위에 서는 날에는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아스날의 물 흐르듯 부드러운 패스워크에 브리티시의 투쟁심이 더해진 미드필드. 막연히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그 누가 알았을까. 고작 1년 반만에 아론 람지에게 대형사고가 날 줄은.

[출처: BBC Sport]

2010년의 그 날은 새벽이었고, 경기는 말할 수 없이 답답했고, 조금은 잠에 취해 자꾸 눈꺼풀이 감기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론 람지의 다리가 부러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불운? 불행? 사고? 악몽? 카메라가 스쳐지나가며 비춰진 람지의 꺾인 다리를 보고 온몸이 떨려왔다. 마치 내 다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람지의 표정과 패닉에 빠진 선수들. 경기를 전해야하는 캐스터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나의 등 뒤에는 서늘한 소름이 돋았고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산소 마스크가 씌워진 그를 보며 흘러내리는 안타까움의 눈물. 아스날의 미래가 무너진 느낌. 아니, 축구가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창창한 미래가 펼쳐져야할 소년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기다니. 다시 걸을 수는 있을까.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있어서는 안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손이 덜덜덜 떨렸다.

의료진은 바쁘게 그를 들것에 실어서 피치 밖으로 옮겼고 대기중이던 앰뷸런스에 즉시 태워 보냈다. 충격적인 사고의 여파로 모두가 망연자실하고 있었지만, 아직 끝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피치 위의 선수들은 다시 경기를 속행해야 했다.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정신이 얼얼한데 람지를 위해서라도 일단 이 경기는 이겨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이 광경을 함께 지켜본 모든 팬들과 아스날 선수들의 마음은 똑같지 않았을까. 벤트너가 얻어낸 페널티 킥을 세스크는 침착하게 골로 만들었고 람지의 다리를 의미하는 세레머니를 했다. 이어진 베르마엘렌의 추가골. 선수들은 관중석 근처까지 달려가 포효했다. 내 가슴도 울컥했다.
아론 람지 “나는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그 태클이 들어간 이후 내 다리가 부러져서 다른 각도로 매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 충돌 이후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다시 봤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으니 여기에 너무 매달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 순간,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이번 시즌 나는 잘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부상은 정말 좌절스럽다. 하지만 나는 어리고 미래가 있다. 지난 주에 수술을 받았고 내 다리가 회복되기 위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나는 이 부상을 극복하기 위해 단단히 마음을 먹었고 예전보다 더 튼튼하고 강해지길 바란다. 수많은 아스날팬들과 심지어 다른 클럽들의 팬들로부터도 굉장한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고 이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아스날 선수임이 자랑스럽다.”
(2010. 3. 5. 아스날 오피셜)

[출처: Arsenal Player]

스토크전에서의 사고로 아론 람지의 오른쪽 다리는 무릎과 발목 사이 앞뒤에 위치한 정강이뼈와 종아리뼈가 동시에 부러졌다. 손가락 같은 작은 뼈도 아니고 다리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난 끔찍한 부상. 축구 선수로서의 복귀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오래 걸려도 좋으니 부디 다시 뛸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내 우려와 바람들이 조금은 무색하게도 그는 한 달만에 목발 없이 걷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8개월 만에 훈련에 복귀했고 1달여 만에 2군 경기까지 뛰게 되었다. 실로 놀라운 회복력이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불어, 부상당한 오른쪽 다리가 아닌 반대편인 그의 왼쪽 다리에 타투가 새겨졌는데, 자신의 고향과 가족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아마도 항상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모든 것을 예전처럼 짠 하고 되돌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건강히 돌아오긴 했으나 부상의 후유증은 확실히 존재했다. 그의 플레이는 예전같지 않았다. 노팅엄 포레스트와 카디프로 임대를 다니며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고, 마침내 5월 1일 맨유를 상대로 짜릿한 복귀골도 넣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이었을 뿐, 람지의 부진은 계속되었다. 정신적인 트라우마 때문일까, 몸의 감각을 잃은 것일까, 판단력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람지에게는 큰 부상이 있었고 1년 가까이 쉬었으니까’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점점 여의치 않는 팀 사정... 당장 승리가 필요한데, 피치 위에서의 한숨 나오는 플레이를 보이면 어느새 그를 기다리며 기원했던 마음들은 다 잊고 비판이 먼저 나왔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공격을 망치고 있다니. 좋지 않은 패스와 흐름을 끊는 플레이, 예전과 같은 많은 활동량을 보여줬지만 쓸데없는 움직임으로 인해 되려 팀의 밸런스가 파괴되었다. 어디로 움직여야하는지 모르는듯 헤매는 모습. 이런 부진이 1년이 넘어가니 슬슬 ‘람지를 팔아야 한다’는 여론마저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던 이가 불의의 사고를 겪으면서 그동안 내가 알던 것과 다른 모습이 되었다면, 그 사람을 예전과 같이 변함없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말로는 어렵지 않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긴 인내의 시간을 견딘다고 하더라도, 그 끝에서 내가 그리고 있던 풍경이 펼쳐진다는 보장도 없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랑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의 연(緣)도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힘이 드는데, 직접 손에 닿지 않는 축구와의 연애는 오죽할까. 더군다나 궁극적으로 나의 사랑은 아스날을 향해있다는 것.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물론 아끼고 사랑하지만, 클럽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어울리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생각해야만 한다. 람지에게 일어난 사고는 안타깝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부진을 언제까지 감싸줘야하는 걸까. 기다리고 기다리면 언젠간 내가 기대하던 아론 람지로 과연 돌아올 수 있기는 한 걸까?

[출처: Arsenal Player]

바야흐로 2013년, 이 강제된 인고의 시간은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아르테타가 부상을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람지가 이 자리에서 뛰게 되었는데, 슬슬 괜찮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애초에 활동량이 많은 선수라서 많은 공간을 커버할 수 있었고, 럭비 선수 출신이기에 피지컬도 좋으니 중앙에서 몸싸움도 잘했다. 그렇게 람지는 꽤 괜찮은 활약으로 조금씩 팬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시작했고 대망의 이번 2013-14 시즌, 아론 람지는 확실히 돌아왔고 한 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는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서 공격과 수비에서의 빼어난 활약과 함께 왠만한 스트라이커를 뛰어넘는 골 행진까지 이어갔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듯, 9월에는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고, 구단에서 선정한 ‘아스날 이달의 선수’로는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람지는 어느새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라는 찬사를 들으며 아스날을 리그 1위로 이끌고 있었다.
아르센 벵거 “1년 전에는 사람들이 ‘그(람지)는 아스날에서 뛰기에 부족하다’고 말했던 것을 잊지 말자. 하지만 이렇게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본인의 노력 덕이다.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능력이 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명해냈다. 알다시피 그를 보며 참을 수 없어하던 시선들이 있었다. 감독으로서 이런 시기에 직면하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를 더욱 밀어붙여서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할까? 아니면 휴식을 주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할까?’ 이러한 문제는 항상 판단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선수의 정신적인 상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떨어져있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아론은 늘 자신감 있는 소년이었다. 우리는 그가 좋은 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는 또다른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숨지 않는 것이다. 그는 실수를 할 때에도 숨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능력이다.”
(2013. 11. 16. 스카이스포츠)

[출처: UEFA Champions League Magazine]

바로 1년 전까지만 해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미래에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를 듣던 선수가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상황을 역전시키고, 리그 최고의 선수로 떠오르다니 축구판은 정말 모르는 법이다. 이런 그가 지금은 다른 부상으로 두 달째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또 뜻밖의 전개. 이 연애는 도저히 지루할 틈이 없다. 그의 부재와 맞물려 아스날은 차츰 추락했고, 이제는 4위. 람지는 팀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가 다시 부상에서 돌아와 위기의 아스날을 구해낼 수 있을까?

웨일스에서 날아온 17살 소년에 웃고, 울고, 화내고, 그러다 다시 웃고, 이제는 그리워하는, 이 예측할 수 없는 연애소설의 다음 페이지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다사다난했던 시작에 가슴을 졸이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그 아픔도 다 잊혀져간다. 이제는 기쁨에 환호하는 순간들로 우리의 하루가 채워지길. 이제 조금 더 단단해진 믿음으로 나는 내일을 향해 새로운 희망을 건다.

[출처: Guardian 홈페이지 캡쳐]

이렇게 이번 주의 ‘아스날과 연애중’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이틀만에 새 소식이 들려온다. 아스날이 아론 람지와 5년 재계약에 사인할 예정이고, 그는 벌써 부상에서 돌아와 이미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주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 뛸 수도 있다는 희소식과 함께. 아무래도 내가 건 희망은 곧 오늘의 설렘이 되려나 보다. ‘웨일스에서 온 그대’와 나의 연애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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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개인적인 생존의 이야기 <노예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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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위로의 테크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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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가을, 초등학교 6학년. 공식적인 취미 생활은 우표 수집. 비공식적으로는 전자오락. 엄마가 일하던 제과점 카운터에서 매일 50원짜리 동전을 슬쩍해서 전자오락실로 달려갔다. 열어둔 문 밖으로 늘 낯선 전자음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공으로 부숴야만 하는 총천연색 벽 옆에서 미녀를 납치한 킹콩이 술통을 굴리고 너구리가 벌레를 피해 압정을 뛰어넘는 세계가 나왔다. 오락이라는 게, 그것도 전자오락이라는게 얼마나 좋았던지, 한번 오락실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싫었다.

그런 내 귀에 외갓집에서 컴퓨터를 샀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 컴퓨터는, 아니, 당시 용어로 ‘개인용 컴퓨터’의 준말인 ‘퍼스컴’은 안 그래도 비싼데 내가 살던 소도시에서는 아무짝에도 소용없어 더욱 더 비싸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외갓집을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모니터와 키보드, 저장 장치인 카세트테이프 레코더로 구성된 그 컴퓨터의 이름은 탐스럽게도 애플II였다. 컴퓨터 잡지에 예시된 대로 프로그램 어를 입력하면 모니터에 간단한 그래픽이나 요일 계산기 같은 게 나타나는, 말하자면 장난감. 그때 사용한 컴퓨터 언어는 베이직이었다. 이 언어는 ‘PRINT’ 같은 간단한 영어 명령어를 사용했는데, 그중에서도 나를 매혹시킨 건 ‘IF’와 ‘THEN GO TO’로 된 구문이었다. 이 원인과 결과의 세계는 얼마나 논리 정연하던지. 조건에 부합하기만 하면, 애플II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결과를 토해냈다. 컴퓨터 잡지를 보면서 영어로 명령어를 입력하다 보면 에러가 나기 일쑤였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수정을 거듭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그때부터 생겨났다. 살다 보니 이 세상은 베이직보다 엉성한 언어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믿음만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세계에서 보자면, 1시간 가까이 지직거리며 카세트테이프에 저장된 프로그램을 힘겹게 인식하던 1982년의 애플II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물건이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세계에서 보자면 내게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좋은 친구 같은 것이다. 이 친구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할 뿐, 선택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애플II가 등장한 뒤 20여 년 정도이 지나 아이팟이 나왔다. 거기에는 달린 거리와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달리기 앱이 내장돼 있었다. 그건 말하자면, “달려볼래?”라고 묻는 목소리와 같았다. 그 목소리를 듣고 달리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한다. 하지만 아이팟을 만든 이는 아마도 사람들이 달릴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인간의 선의에 대한 이 믿음이란 정말 대단하다.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일정이나 비행기 탑승 시간 등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 혼자만 현지에 남는 경우가 생긴다. 이미 오랜 외유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터라 귀국한다는 마음으로 들뜬 사람을 혼자 배웅하는 기분은 썩 좋을 리 없다. 혹시 현지인에게 박대라도 받는다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다 찢어질 때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울 마음이 가득한, 그런. 그러니까 주인을 잃고 나 혼자 이 세상 어느 구석엔가 처박힌 낡은 곰돌이가 된 듯한 기분이다. 2008년 마드리드 시청의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호스텔의 좁은 방에 누워 있을 때 기분이 딱 그랬다. 스페인에 머문 지는 어느덧 2달이 지났고, 여럿이 여행하다가 어쩌다 보니 나 혼자 남게 됐다. 내가 다시 호스텔로 돌아오자, 직원이 “넌 왜 안 갔니?” 라고 묻는 듯 쳐다봤다. 그때부터 다음 날 다시 공항으로 가기 위해 호스텔을 나서기까지 24시간 남짓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인터넷을 한 시간이었다. 호스텔의 와이파이에 접속한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이트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글을 읽었다. 기사도 읽고 개인 블로거의 글도 읽고 댓글도 읽고 댓글의 댓글도 읽었다. 마드리드에서 못 가본 곳을 구경하면서 마지막 날을 뜻깊게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더 이상 움직일 에너지가 없었다. 아마도 외롭다는 생각 때문인 듯했다. 인터넷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것 역시 컴퓨터를 끄면 찾아올 혼자라는 생각이 싫었던 것이리라.

그러다가 새벽이 되어 마침내 더 이상 컴퓨터 화면을 바라볼 수 없는 상태가 찾아왔다. 그 순간, 목표라는 게 있다면 불을 끈 뒤 뒤돌아보지도 않고 잠드는 일. 나는 불을 끄고 얼른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그러나 잠이 라면 이미 낮에 충분히 잤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은 더욱더 말똥말똥해졌다. 너무나 순수한, 비유하자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외로움이 찾아왔다. 바로 그때였다.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방 안 한구석에서 뭔가가 숨을 쉬고 있었다. 일어나 보니 그건 조금 전에 내가 끈 노트북이었다. 충전등이 어둠 속에서 마치 숨을 쉬는 듯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본 불빛이었지만, 새삼스러웠다. 그건 마치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선택은 너의 몫이야” 라고도 한 것 같았다. 여기서 외로울 건지, 끝까지 여행할 건지. 숨 쉬는 듯한 느낌으로 그 불빛을 설계한 사람은 이 세상에는 컴퓨터만이 유일한 위안이 되는 외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건 정말 대단한 테크놀로지가 아닐 수 없었다.

김연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며 쉬지 않고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는 부지런한 소설가다.
그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를 통해 꼭꼭 숨겨두었던 특별한 여행의 추억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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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planet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 3월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일정이나 비행기 탑승 시간 등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 혼자만 현지에 남는 경우가 생긴다. 이미 오랜 외유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터라 귀국한다는 마음으로 들뜬 사람을 혼자 배웅하는 기분은 썩 좋을 리 없다. 혹시 현지인에게 박대라도 받는다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다 찢어질 때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울 마음이 가득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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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과 초콜릿

네 마리 토끼를 쫓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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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연애는 특별하다.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든 상관없다. 나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나의 사랑은 올곧고 정직하며 진실하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축구팀이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게는 아직 사랑하는 이가 없는 덕택에,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스날이 온전히 내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중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있지만 이 축구팀 덕분에 나는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그래서 내게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조금 걱정이다.

누군가와의 연애와 다르게 축구팀과의 연애는 도전적이고 목표지향적이다. 매년 8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우리에게는 네 가지 지상 과제가 주어진다.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스 리그’, ‘FA컵’, ‘리그컵’. 우리의 사랑이 한결같이 뜨겁지 않고, 늘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들 때문이다. 나와 사랑에 빠진 클럽이 우승과는 거리가 먼 중하위권 팀이라면 적당한 성적에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스날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유럽 최고의 축구 클럽을 꿈꾼다. 그러므로 모든 대회에서 우승이 목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우리의 문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 매우.

출처: Setanta 1, UEFA Champions League Magazine, itv Sport, Direkte

소위 ‘빅클럽’이라고 불리는 클럽들은 몇 년에 한 두 개씩 작은 트로피라도 들어올리는데, 아스날은 8년째 손가락만 빨고 있다.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참담하니 불만만 계속 쌓여간다. 올해는 다를거야. 아니, 내년은 다를거야. 도대체 언제쯤 좀 다를까. 기세좋게 새 시즌을 시작하지만 딱 그때뿐이다. 차차 힘이 빠져서 시즌이 끝날 쯤에는 모든 대회에서 탈락하고 리그 4위 언저리에서 방황하다가 간신히 턱걸이로 마무리. 결론은 무관(無冠).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스 리그’, ‘FA컵’, ‘리그컵’ 네 마리의 토끼를 쫓다가 결국 다 놓치는 격이다. 그것이 지난 8년간 반복된 우리의 이야기. 2006년 4위를 시작으로 2007년 4위, 2008년 3위, 2009년 4위, 2010년 3위, 2011년 4위, 2012년 3위, 2013년 4위. 이 추세로 볼 때 아마 올해의 프리미어 리그는 3위로 마치게 되는 것일까. 이제는 이 지겨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래로 말고 위로.

올해의 네 마리 ‘토끼 사냥’은 얼마나 잘하고 있나. 일단, ‘리그컵’ 토끼는 벌써 놓쳤다. 작년 10월에 첼시를 만나 일찌감치 탈락. 괜찮다. 가장 작은 토끼고 사냥에 성공해도 그리 인정받지 못하니까. 우리의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무엇보다도 아직 토끼가 세 마리나 남아있잖아? 그런데 가장 덩치가 큰 ‘챔피언스 리그’ 토끼도 놓치기 직전이다. 16강 1차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2-0으로 패했고, 아직 2차전이 남아있지만 냉정하게 우승은커녕 뮌헨을 넘는 것조차 어려워보인다. 그럼 현실적으로 두 마리 토끼가 남는다.

출처: BBC Match of the Day

가장 중요한 ‘프리미어 리그’ 토끼. 최상위 네 개팀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중이다. 첼시, 리버풀, 아스날이 28경기를 치렀고, 맨체스터 시티는 26경기 밖에 아직 하지 않아서 절대 비교는 조금 어렵지만, 일단 첼시가 1위.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를 볼 때 아마도 밀린 두 경기를 이긴다고 가정하면,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가 1위 경쟁, 아스날과 리버풀이 그 뒤를 추격하는 형세이다. 일반적으로 프리미어 리그를 우승하기 위해서는 강팀과의 경기보다 약팀과의 경기에서 차곡차곡 승점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번 시즌은 다같이 잘하고 있으니 결국 강팀간의 맞대결에서 결판이 날 느낌이다. 그런데 아스날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이번 시즌을 4위 안으로 마치고 다음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획득하는 것이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닐까. 우승은 솔직히 어려울 것 같다.

그럼, 마지막 남은 ‘FA컵’ 토끼. 프리미어 리그만큼은 아니지만 잉글랜드의 모든 축구 클럽들이 참가해서 우승 팀을 가리는 권위있는 대회다. 그리고 아스날이 마지막으로 들어올린 트로피도 바로 2005년의 FA컵. 올해, 아스날의 FA컵 대진운은 유난히 안좋았다. 5라운드에서 만난 3부 리그의 코벤트리를 제외하고, 차례로 토튼햄, 리버풀, 그리고 8강에서 에버튼을 만났으니,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상위권 팀들만 상대했다. 그런데 그것이 전화위복이었을까. 예전에는 쉬운 상대를 만만하게 보다가 된통 당해서 탈락하곤 했는데, 올해는 어려운 상대를 만났지만 차례로 이기고 어느새 8강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

출처: BBC Sport

FA컵 에버튼전, 3일 후에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 리그 2차전, 이어서 주말에는 북런던 라이벌인 토튼햄 원정. 그 다음 주에는 프리미어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첼시와의 결전이 기다리고 있다. 어려운 경기들만 골라서 몰려있는 숨막히는 일정. 선수들도 사람인지라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고, 팀으로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비록, 뮌헨에게 1차전에서 패했으나 유럽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챔피언스 리그를 미리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상의 전력으로 싸워야할 경기. 주말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도 물론 중요하다. 1위 첼시를 따라잡기 위해 승점을 쌓아야할 때이고, 토튼햄이 5위로 바짝 쫓아오고 있기에 더더욱 이겨야 하는 상대. 무엇보다도 아스날의 가장 직접적인 지역 라이벌이기에 자존심까지 걸려있다. 그렇다면, 다음 두 경기를 위해 이번 FA컵에서는 주전 선수들을 빼고 휴식을 주어야할까. 그런데 아스날의 8년 무관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회가 현시점에서 FA컵이란 점이다. 8강까지 올라왔으니 세 경기만 더 이기면 우리가 그렇게 갈망하던 트로피. 아,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아르센 벵거 “난 그저 팀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할 것이고 그 뿐이다. FA컵은 우선 순위중 하나이다. 최우선 순위는 늘 프리미어 리그에서 잘하는 것이다. FA컵은 다음 경기이고, 우리는 스토크전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으므로 강하게 반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FA컵은 완전히 우리의 우선 순위이다. 왜냐하면 다음 경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하고 승리해서 4강에 오르길 바란다. 그것이 다른 경기들을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출처: itv Sport

벵거 감독은 보란 듯이 주전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켜 에버튼에 4-1의 대승을 거뒀다. 이제는 FA컵 우승까지 두 경기만 이기면 된다.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맨체스터 시티가 탈락하면서 아스날의 준결승 상대는 2부 리그의 위건. 정말로 트로피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졌다.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음 경기를 생각하면 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FA컵에서 힘을 많이 썼으니, 주말의 리그 경기를 위해 가능성이 희박한 챔피언스 리그를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래도 챔피언스 리그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가. 이쪽도 저쪽도 포기할 수 없으니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믿고 전부 승리하기를 기대해야 하는가. 세 마리의 토끼를 눈앞에 둔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어차피 아스날의 감독은 따로 있는데 홀로 아스날의 모든 근심을 어깨에 짊어진 듯 걱정하고 분석하는 어느 흔한 축구팬의 하루.

우리의 연애가 정말로 특별한 이유는 함께 꿈꾸던 것들을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년 목표로 세우는 네 개의 트로피는커녕 당장 다가오는 경기에도 불안해하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은채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며 내일의 희망을 찾는다. 불완전하고 불리한 조건 속에서 번번이 좌절하곤 하지만, 그것으로는 이 사랑을 꺼트릴 수 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나의 마음이 선수들에게 전해져 그 누구보다도 승리를 위해 땀흘릴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애는 특권이다. 영광의 순간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기에, 우리에게는 더 행복할 날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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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달링 하버의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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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바다

돌이켜보니, 나는 무언가로부터 압도당하는 순간들을 사랑했다. 그 순간들은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거나, 혹은 여행과도 같은 시간을 보낼 때였다. 나를 압도하여 몰입의, 몰아(沒我)의 상태로 밀어 넣는 것은 대부분 죽어있으면서도 살아있는 것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천장을 올려볼 때가 그랬고, 램브란트의 그림들을 볼 때가 그랬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바다였다. 어디까지 밀려왔는지 헤아리기 힘든 밤바다가 특히나 그랬다. 파도는 밀려오는 걸까, 밀려나가는 걸까.

밤바다에 대해선,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할 말이 조금 있다. 기억은 두서없이 떠오른다. 2008년 여름, 옛 친구와 통영의 바다를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절반이 어설픈 욕인, 나머지 절반은 문학이나 사랑이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니, 모든 게 노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부산의 영도에 살고 있었다. 영도 해안도로 방파제는 술상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방파제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넘어질 뻔 했다. 단 한 번도 넘어진 적은 없었다. 모든 게 춤이었다. 서귀포 항 어귀에 앉아서 밤새도록 들국화의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모든 게 청춘이었다. 나는 사이렌의 노래에 홀린 사람처럼 밤바다 앞에만 서면 무식하게 술을 들이켰다. 그쯤 되면, 마시고 있는 게 술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정도가 된다. 내 몸을 돌고 있는 피가 짜더라도 할 말이 없다. 모든 게 바다였으니까.

가장 최근에 다녀온 밤바다 하나를 기억에 끼워 넣으려 한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달링 하버가 있다. 1980년대 이후 재개발된 달링 하버에는 아쿠아리움과 아이맥스 영화관과 쇼핑몰 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부산의 영도다리처럼 개폐식 다리인, 피어몬트 프리지도 있다. 재개발 덕분에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이곳으로 간 이유는 밤바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바다는 어디론가 끝없이 흐르고 있었고, 모든 걸 비춰내고 있었다. 도시의 건물이, 불빛이, 사람들이 모두 흘렀다. 흘러가고 있었다. 흐르길 멈추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아름다움 앞에서는 죽음을 목도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경외와도 같은 감정일 것이다. 그러니, 달링 하버도 내가 사랑하는 것의 목록에 써 넣어야 한다. 달링 하버의 밤바다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글을 써나가야 할까. 고심 끝에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려 한다.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유치한 비유다. 그저 그런 연필에 관한 단상이다.




연필에 관한 단상

누구나 태어나면 연필을 한 자루씩 받게 된다. 육각의 나무연필은 길고 날렵하다. 가운데에는 검은 흑심이 박혀 있다. 연필심을 꺼내기 위해서는 칼을 쥐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연필은 어떻게 깎는지, 또 연필은 어떻게 쥐는 것인지, 연필심을 왜 꺼내는지, 도대체 이걸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나간다. 연필에게 질문을 건네도 묵묵부답일 테니,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연필을 깎는 동안, 연필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견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연필을 편안하게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몇몇은 뾰족하게 심을 다듬는 방법도 깨우쳤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연필 끝으로 사랑의 밀어를 적어나고 있다. 또 누군가는 꿈을 향해 전진하는 중이다. 낙서를 즐기는 이도 있다. 반면에 쓰길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단 한글자도 쓰기 전에 심이 부러져버리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이 연필을 누가 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다시 뺏길 지도 알 수가 없다.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최초의 뾰족한 연필심은 사용할수록 점점 무뎌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연필을 깎는 방법을 배웠다. 빠르고 섬세하게 뾰족한 심을 깎을 수가 있다. 이쯤 되면, 뾰족하지 않은 심을 원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각자 원하는 형태로 연필을 깎아나간다. 그리고 또 다시 무언가 써내려가고, 또 다시 연필을 깎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연필 깎기는 이제 어떤 배움이나, 노동이나, 희열도 아니게 된다. 그저 연필은 하나의 연필이 된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연필을 잠시 내려놓고 싶다면(불가능 할 테지만! 그런 기분이나마 느끼고자 한다면) 시집을 읽거나 여행을 떠나야 할 것이다. 어쩌면 사랑을 하는 게 그 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옥타비오 빠스의 시집을 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

199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 멕시코 시인의 시를 한 편 옮겨본다. 시드니의 달콤한 항구를 한 컷 옮겨본다.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그대의 곁에 있다고 믿는다.
휴식
                                                  옥타비오 빠스
새 몇 마리가
찾아온다.
그리고 검은 생각 하나.
나무들이 수런댄다.
기차소리, 자동차소리.
이순간은 오는 걸까 가는 걸까?

태양의 침묵은
웃음과 신음소리를 지나
돌들 사이 돌이 돌의 절규를 터뜨릴 때까지
깊이 창을 꽂는다.
태양심장, 맥박이 뛰는 돌,
과일로 익어가는 피가 도는 돌:
상처는 터지지만 아프지는 않다,
나의 삶이 삶의 참모습으로 흐를 때.
연필이 닳아서 몽땅 연필이 되었을 때는 어떤 기분일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벤자민처럼 이 연필이 거꾸로 자라나길 바랄 것인가. 아니면 버킷리스트를 만들어서, 앞으로 꼭 써야 할 목록을 꾸릴 것인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여태껏 연필로 써내려간 나의 흔적을, 그 증거들을 살피지 않을까. 그러니 나는 나의 증거가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날 것이다. 사랑을 할 것이다. 그 흔적을 쓸 것이다. 어쩌면 나는 너의 증거가 될 것이다. 아니다. 비로소 연필 쓰기를 중단하는 순간까지 나는 우리의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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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괌, 일본 교토로 지금 떠나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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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bart, Australia 호주 호바트

뮤지엄에서 보내는 하룻밤?

지금 가야 할까?

광활한 호주 대륙 동남쪽 끝에서 240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 섬. 호주의 6개 주 중 하나인 태즈메이니아 주는 손꼽을 만큼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유명하다. 전체 면적의 약 40퍼센트가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을 정도. 주도는 호바트(Hobart)로 야생 탐험을 시작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도시지만 지난해 론리플래닛은 호바트의 자연보다 예술적 면모에 주목하며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했다. 호바트를 예술의 도시로 이끈 건 아트 뮤지엄 모나(MONA, Museum of Old and New Art)의 공이 크다. 모나는 호주에서 가장 큰 개인 소유의 미술관으로 괴짜 오너인 데이비드 월시(David Walsh)가 도박 시스템을 개발해 벌어들인 돈으로 수집한 15억 달러 규모의 소장품으로 가득 차 있다. 건축 자체도 독특하지만 괴기스럽거나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는 묘한 전시로도 유명해, 이곳이 문을 연 해에 호바트에 5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모나를 돌아본 후에는 예나 지금이나 늘 인기 좋은 살라망카 마켓(Salamanca Market)과 팜 게이트 마켓(Farm Gate Market)에서 태즈메이니아 미식 탐방을 즐겨보자. 1824년 문을 연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캐스캐이드 브루어리(Cascade Brewery)에서 탐방의 말미를 장식해도 좋겠다.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모나의 번쩍이는 외관, 인파로 북적이는 살라망카 마켓,
호바트의 대표 행사인 호주 나무 보트 축제, 팜 게이드 마켓의 싱싱한 꽃다발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까?

인천국제공항에서 시드니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이 매일 직항편을 운항한다(75만원부터, kr.koreanair.com). 시드니국제공항에서 호바트국제공항까지 제트스타항공이 국내선 항공편을 운항한다(188호주달러부터, jetstar.com). 모나에 가려면 호바트의 모나 브룩 스트리트 페리 터미널(MONA Brooke St. ferry terminal)에서 페리를 타야 한다.

모나에서는 4월 21일까지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를 모티프로 한 전시 〈더 레드 퀸(The Red Queen)〉을 진행한다. 입장료 20호주달러, mona.net.au.

더웬트 강(Derwent River)을 바라보는 모나의 멋진 건물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호주 출신 건축가와 예술가의 이름을 딴 파빌리온(Pavillion)은 부엌, 세탁실, 와인 냉장고는 물론 각종 엔터테인먼트와 조명, 온도 컨트롤 등이 가능한 무선 터치 패널을 갖췄다. 공용 사우나와 짐, 따뜻한 인피니티 풀도 이용 가능하다. 홈페이지에서 예약 가능. 490달러부터.

#Photographs : Tourism Tasmania & Scott Sporleder, Matador / Tourism Tasmania & Hobart City Council / Tourism Tasmania & Laki Agnonostis / Tourism Tasmania & Nick Osborne


Guam, USA 미국 괌

뛰는 것과 쉬는 것의 상관관계

왜 지금 가야 할까?

겨우내 가꾼 몸매와 비축해둔 체력을 동시에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괌에서 열리는 국제 마라톤이 그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PIC리조트에서 주최해온 단축 마라톤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경기. 2013년부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인증을 받아 괌 국제 마라톤(Guam International Marathon)으로 거듭났다. 괌 마라톤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32도를 넘지 않는 낮 기온과 21도를 내려가지 않는 밤 기온, 늘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괌의 여러 명소를 아우르는 코스가 그 인기 비결.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가족과 함께 휴가와 경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5킬로미터, 10킬로미터, 하프 코스, 풀코스의 네 가지 종목이 있어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으며, 아이와 함께 참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달성한 목표를 땀 흘려 이뤄낸 후 즐기는 휴식만큼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



괌 국제 마라톤에 참가해 결승 지점에 들어오고 있는 선수들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까?

인천국제공항에서 괌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50만원부터, kr.koreanair.com)과 제주항공(24만 9000원부터, jejuair.net이 매일 직항편을 운항한다.

2014 괌 국제 마라톤 대회는 4월 13일에 열린다. 지난해에도 2,000명 이상의 인원이 참가했으며, 남녀 부문 1위를 모두 한국인 선수가 차지했다.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참가비용 90달러, guaminternationalmarathon.com

마라톤과 여행을 패키지로 즐기는 방법도 있다. 패키지에는 왕복 항공권과 리조트 이용권, 마라톤 참가비 전액이 포함된다. 기념 티셔츠와 완주 메달도 제공한다. 79만 원부터, phr-social.com

#Photographs : Guam Visitors Bureau


Kyoto, Japan 일본 교토

벚꽃이냐 등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왜 지금 가야 할까?

교토의 봄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 1,600개에 달하는 사원과 400개 이상의 신사가 있어 거대한 야외 박물관 같은 이 고도(古都)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휘날린다. 봄이 오면 도시의 동부를 가로지르는 가모 강(鴨川)변은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 하나미(花見, 꽃놀이)를 즐기는 인파로 넘쳐난다. ‘철학의 길’로 유명한 데쓰가쿠노미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인기 하나미 코스. 벚꽃이 아직 만개하지 않았더라도 봄을 맞는 특별한 빛 축제도 기다리고 있다. 히가시야마(東山) 지역의 5킬로미터에 달하는 보행로를 따라 2,500여 개 등불을 걸어두는 히가시야마 하나토우로다. 히가시야마 역에서 내려 쇼렌인 사원과 마루야마 공원(圓山公園)을 둘러보며 등불 놀이를 즐겨보자. 야사카 신사(八坂神社)에서 열리는 마이코(舞妓, 게이샤 수련생)의 화려한 전통 춤 공연은 축제의 흥을 돋울 것이다. 하얀 돌담과 나무 사이에 은은하게 불을 밝힌 등불은 교토의 밤을 낭만으로 물들인다.



봄이 오면 교토의 수많은 공원, 신사, 거리에 벚꽃이 활짝 만개해 봄의 정취를 더한다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까?

인천국제공항에서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이 매일 직항편을 운항한다(28만 원부터, kr.koreanair.com). 간사이국제공항에서 교토 역까지 특급 하루카 열차로 75분 걸리고(편도 3,000엔, 왕복 4,000엔, westjr.co.jp), 버스로는 약 90분 걸린다(2,500엔, kate.co.jp).

올해 교토의 벚꽃 개화 예정일은 3월 27일이다(sakura.weathermap.jp). 히가시야마 하나토우로 등불 축제는 3월 14일부터 23일까지다. 히가시야마 골목에 다채로운 봄꽃을 주제로 한 꽃꽂이 전시도 열린다(hanatouro.jp).

벚꽃이는 만개하는 나카교구(中京區)에 위치한 니시야마 료칸(西山旅館)은 교토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기 좋은 곳이다. 연못이 있는 일본식 정원에 둘러싸여 있으며, 가이세키 요리와 온천을 즐길 수 있다. 교토국제만화박물관(京都國際)과 교토고쇼(京都御所) 등 주요 명소와 가까운 것도 장점. 다다미 객실 7,000엔부터(1인 기준), kyotonishiyama.com

#Photographs : Kyoto Tourism Council


Dongdaemun, Seoul 서울 동대문

동대문에 착륙한 엔터프라이즈호

왜 지금 가야 할까?

우리나라에 여행 온 이에게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우리나라에 여행 올 이에게 어디에 가장 가보고 싶은지 물으면 대부분 같은 답변이 나오곤 한다. 바로 동대문. 밤새도록 쇼핑을 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여행자에겐 얼마나 축복인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의 얼굴이 될 수도 있는 동대문 지역을 더욱 매력적인 곳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탄생한, 수년간 궁금증과 기대를 한몸에 받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앤드 파크(DDP)가 드디어 베일을 벗는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특기인 미래 지향적 설계로 완공한 DDP. 거대한 우주선 같은 이곳은 첨단 미디어 홀인 알림터, 박물관 역할을 할 배움터, 디자인 트렌드를 이끌 디자인 랩 살림터, 상상 놀이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디자인 장터 등으로 구성된다. 개관을 기념해 간송문화재단과 공동 기획한 국보급 전시〈간송문화전〉을 선보이며, 개관일인 21일에 제28회 서울패션위크 행사를 진행한다.



24시간 개방하는 디자인 장터 등이 있어, 밤이 되면 더욱 은은한 빛을 발하는 DDP 외관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까?

서울 지하철 2ㆍ4ㆍ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가 DDP와 연결된다.

2006년부터 공사를 시작한 DDP가 3월 21일에 드디어 문을 연다. 문화 콘텐츠와 숍인숍이 결합한 복합 편집형 매장인 디자인 장터는 동대문 지역의 특성에 걸맞게 24시간 개방할 예정이다.

개관을 맞아 3월에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디자인 박물관에서는 〈간송문화전〉을, 디자인 전시관에서는 〈디자인 스포츠전〉을, 알림터에서는〈자하 하디드 특별전〉을 프리 오픈한다(본 전시는 4월 4일부터). 〈엔조 마리 디자인전〉과 〈울릉조형대학전〉도 주목할만한 전시.

#Photographs : Cho Ji-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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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planet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 3월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광활한 호주 대륙 동남쪽 끝에서 240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 섬. 호주의 6개 주 중 하나인 태즈메이니아 주는 손꼽을 만큼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유명하다. 전체 면적의 약 40퍼센트가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을 정도. 주도는 호바트(Hobart)로 야생 탐험을 시작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도시지만 지난해 론리플래닛은 호바트의 자연보다 예술적 면모에 주목하며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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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라멘 한 사발 받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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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나길 바랐다

공통 관심사도 없고, 매번 같은 이야길 듣는 것도 지겨웠다. 고집도 세서 동의하지 않으면 피곤해졌다. 이 아주머니의 이름은 린이다. 일본어를 배우며 만났다. 나는 그녀를 ‘린상’이라 부른다. 성가시고 입 냄새가 심했다. 애착 없는 무미건조한 관계로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다 곱절은 더 산 사람이 친구여, 친구여 하며 다가왔다. 왠지 불편함을 느낀 나는 왜 이래, 왜 이래 하며 뒷걸음질쳤다. 린상은 나를 좋아한다. 만나자는 연락에 내 대답의 8할은 거절이었다. 싫은 내색은 곧 죽어도 못해서 가식으로 애써 웃으며 대했다. 에둘러 핑계 대는 건 눈치 못 챘나 보다.

린상이 한번 시작한 이야기는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끝날 줄 몰랐다.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했다. 세 번의 이혼, 모친에 대한 부정(否定), 그것이 낳은 우울증, 극복과 새로운 삶….... 그녀의 예순 인생이 지나온 기승전결에 대해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게다가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시도 때도 없이 소개해 거슬렸다. 주말 잘 보냈냐는 물음에 뜬금없이 ‘나는 아티스트잖아.’라며 운을 떼는 식이었다.

그녀가 게요리를 한다며 초대한 적이 있다. 몇 시간 동안 맞장구 쳐줘야 할 생각을 하니 머리부터 아파왔다. 김 봉지 몇 개를 달랑달랑 들고 가 안겼다. 기뻐하며 받아 든 그녀는 ‘아뤼가로우’라며 ‘아리가또우(감사하다는 뜻의 일본어)’를 기어이 미국 사람처럼 말했다. 게는 비쌌고, 나는 얍삽했다. 다행히 그날 린상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담포포’를 소개했다. 1986년 이타미 주조 감독의 영화였다.




라멘 장인을 찾아서

담포포는 최고의 라멘을 만드는 비법을 배우려는 집념의 라면 가게 아주머니다. 그 노력으로 후줄근했던 라멘 집을 살리는 내용의 영화였다.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방식을 따랐다. 국물이 담긴 커다란 통 나르기, 시간 내 조리하기, 조깅으로 지구력 기르기 등으로 훈련한다. 다음으론 육수와 면의 대가를 찾아 어렵게 조언을 구하고, 열과 성을 다해 연습한다. ‘끝내 이루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문전성시를 이루는 라멘의 대가가 된다. 물론 가게 이름은 ‘담포포’다. 전형적인 일본 만화 같은 전개였다.

첫 장면에선 라멘 연구만 40년을 한 노인이 등장했다.
“우선 그릇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형태를 감상하고 향기를 음미해 보십시오. 국물 위에는 기름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죽순이 빛나고, 해초가 천천히 가라앉고 양파가 표면 위를 부유하죠. 편육 세 조각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죠. 핵심 역할을 담당하지만 겸손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우선 라멘의 표면을 어루만지고 젓가락 끝으로 살짝 만져주세요.”
“왜요?”
“라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겁니다. 그리고 고기를 살짝 찔러주세요.”
“고기 먼저 먹는 겁니까?”
“아니, 만지기만 하세요. 그리고 고기를 들어내어 국물에 묻어주세요. 그릇 오른쪽으로. 여기서 중요한 점. 고기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조금 후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먹기 시작합니다. 면 먼저. 면을 먹을 때는 고기를 응시하십시오. 애정을 담아서요.”
-영화 <담포포 (Tampopo, タンポポ)> (이타미 주조, 1986) 중
노인이 무슨 말을 하든 직감할 수 있었다. 보는 내내 애먼 침만 꼴깍 삼키리라는 걸. 영화가 끝나면 아무 라멘 집에나 들어가 대충 형태를 감상하고, 표면을 어루만진 뒤 고기를 살짝 찔러 보리란 걸. 물론 린상과 나는 영화를 다 보고 라멘 집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삿포로엔 골목마다 라멘 가게가 참 많았다. 우린 오래돼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아주 친한 사이처럼 나란히 앉아 면을 불어댔다.


한적한 니쥬용켄 역 앞의 그 가게 이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간판에 새긴 사람 성씨일 듯한 한자는 인터넷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읽기 힘든 그 이름으로 살아온 주인장 부부가 가게를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둘은 쿵작쿵작 배경 음악을 깔면 딱 맞을 정도로 손발이 맞았다. 남편이 면과 국물을 만들었다. 설거지를 하거나 손님을 맞던 부인은 어느새 젓가락을 들고 주방에 서 있기도 했다. 제때 고명과 차슈(양념해 삶은 돼지 고기를 얇게 썬 것)를 얹기 위한 준비 동작이었다. 조금 전 내 앞에서 물잔을 건네고 있었는데 주방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건가 싶었다.

몇 인분을 주문 받아도 한 그릇씩 국물을 만들었다. 그의 손놀림과 순서는 수십 년 동안 한결같았음을 알 수 있었다. 칼과 젓가락을 놀리며 움직이는 각도대로 등이며 어깨가 고집스럽게 굽어 있었다. 면을 삶는 과정 또한 경이로웠다. 거품이 끓어오르면 육수를 휘젓던 손을 놓고 찬물을 부었다. 완벽히 쫄깃해진 걸 알아챈 순간 건져 올려진 면발은 어느새 사발 속으로 직행해있었다. 조리 매뉴얼을 만들면 얇은 책 한 권이 나올 법했다.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 온 파트너의 정교한 짜임새였다. 영화를 보고 기대했던 라멘 장인의 모습이었다. 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을 한 사발 즐기고 일어섰다. 그제야 부부는 막중한 임무가 끝났다는 듯이 온화하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라멘을 열렬히 사모하게 된 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라멘을 먹을 때마다

린상은 이번 주에 시애틀로 돌아간다. 마리화나를 합법적으로 기를 수 있는 마당이 딸린 집을 구했다. 결혼은 다시 하지 않고, 남은 인생은 연금으로 ‘예술’이란 걸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녀의 다짐대로 90kg이 넘던 체중을 60kg대로 줄일 것이다. 언젠가는 홀로 방에 남겨져 죽은 지 일주일 정도 뒤에 발견될지도 모른다. 뼛속 깊이 간직해 온 히피의 영혼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때로는 누군가에게 너무 많은 말을 토하거나, 고집을 부려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가식적인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돼서 후련한가?’하고 내게 묻는다. 그녀가 나누어 준 수채화나 스팀다리미라든가, 한밤중 두 시간 동안 눈으로 만든 개 조각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떠오를 때마다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린상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열과 성을 다해 표현했던 걸지도 모른다. 유난히 내 얘기에 서투른 나를 위해 너무도 열심히. 린상은 나와 헤어질 때면 항상 치즈 반 통은 집어삼킨 듯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얘길 다 들어줘서 고마워. 다음엔 네 얘기도 들려줘. 아뤼가로우.”

어떡한담. 앞으로 라멘 사발을 앞에 둘 때마다 생각이 날 텐데. 육수에 떠 있는 고명을 바라보다 문득 그녀가 멈출 줄 몰랐던 이야기가 떠오르면 어쩌나. 귀찮게 느껴졌던 히피 예술가의 부재를 미리 실감해 본다. 나도 내 이야기를 열과 성을 다해 들려줄걸. 고기를 탈탈 털어 입에 넣은 뒤, 면을 후후 불다가 생각하겠지. 되돌아보니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한 것 같다고. 내 눈앞의 사람을 가장 소중한 사람처럼 여기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구나. 후회하며 그녀를 회피한 대가를 치르겠지. 담포포처럼, 린상처럼, 라멘 장인처럼, 열과 성을 다해 살아본 적 있던가. 어쨌든 잘 가요, 예술가 아주머니. ‘아뤼가로우’!


* 홋카이도 지역별 대표 라멘

일본인, 특히 삿포로 사람들의 라멘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미소 라멘의 원조 도시이기도 하다. 한 그릇 가격은 7백~1천엔 선.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다. ‘아, 짜’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간간한 육수에 기름도 잔뜩이라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그런데 다음 날이면 걸쭉하고 짭조름한 국물에 담근 쫄깃한 면발이 신기하게 다시 생각난다.

-삿포로 미소(된장)라멘
    시라바키산소우 : 삿포로역 ESTA 쇼핑몰 10층, 신치토세 공항 터미널 3층
    긴파로우(銀波露) : 신치토세 공항 터미널 3층
    寶龍 : 삿포로시 니시구 니쥬용켄 1조 4

-아사히카와 생강 쇼유(간장)라멘
    미즈노 : 아사히카와시 토키와도리 2초메 (旭川市常盤通2丁目)

-하코다테 시오(소금)라멘
    세이류우케이(星龍軒) : 하코다테시 와카마츠마치 7-3 (函館市若松町7-3)

[관련 기사]

-삿포로, 눈보다 달이 먼저 차오르는 마을
-실연했다면 홋카이도로 오라
-하코다테의 심야식당
-겨울 스포츠의 왕국, 홋카이도-비에이, 아! 비에이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책으로 떠나는 스페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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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celona는 우리에게 ‘스페인은 곧 바르셀로나’ 라는 이미지로 기억된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사람들도 이국적이고 독특한 색채를 느끼는 특이한 곳이다. 스페인 사람들조차 유럽의 다른 나라로 여행가기는 돈이 많이 드니 외국 느낌이 나는 바르셀로나로 휴가를 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마드리드에 살면서 만난 친구 중 한 명은 바르셀로나에서 대학을 다니다 끝내 적응하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고, 직장을 다니며 향수병이 생겼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유로운 깍쟁이들의 도시, 바르셀로나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스페인의 이미지는 Flamenco(플라멩코), Toros(투우), Siesta(낮잠), Pereza(게으름)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스페인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바르셀로나에서 찾기 어렵다. 이 도시 사람들은 비즈니스 계약은 물론 평소에도 약속을 철저히 지켜 세계 많은 기업들이 사업하기 좋은 곳으로 꼽는다.

또한 이들은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며 수수하다. 반면에 새로운 문화에 관심이 많아 돈을 모아 훌쩍 오지 국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유쾌한 한량들의 도시, 마드리드

그래서인지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연고지로 유명한 ‘마드리드’ 사람들은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aburrido(지루한)’, ‘tacano, agarrado(구두쇠, 깍쟁이)’라고 말한다. 마드리드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쓰고, 잘 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스페인 사람들이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유쾌하게 먹고 마시고, 멋진 옷을 입으려고 주말마다 쇼핑을 한다.


마드리드의 야경

마드리드에서 학교를 다닐 때 바르셀로나 출신 세르히오(Sergio)와 친하게 지냈다. 이 친구는 마드리드에 사는 것을 무척 힘들어 했다.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 아침까지 밤새며 마신 와인병과 맥주병이 수북한 길거리, 아침까지 놀다가 파티 차림으로 수업에 들어온 친구들에 끝까지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드리드 친구들은 매주 스페인 브랜드인 Zara(사라), Mango(망고)에서 쇼핑을 하며 트렌드에 앞서나간다며 기뻐했지만, 그는 이들의 기대(?)에 발맞추기 위해 억지 쇼핑을 해야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바르셀로나는 패션에 대해서 훨씬 자유로웠다고 한다. 입고 싶은 대로 입어도 핀잔을 주는 친구도 없고,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해주었다고.


가우디의 최고 걸작 ‘성 가족 성당’

이런 도시마다 다른 성향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부터 마드리드와 그 주변 도시는 예술 역시 보수적이고 기존의 것을 지키는 문화였다. 그래서 궁중 작가로 유명한 벨라스께스, 고야, 엘 그레코가 마드리드 중심으로 활동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가장 자유롭고 파격적인 그림을 그린 빠블로 피카소,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는 자유를 중시하는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활동을 했다. 이 점만 보아도 두 지역의 큰 차이를 알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나누는 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페인에 살수록 이 특징들이 신기할 정도로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다.


스페인어가 없는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까딸루니야 지방의 주도로 Catalan(까딸란어)를 사용한다.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가게의 간판, 거리 표지판, 안내문, 지하철, 버스 문구가 아는 스페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

스페인어

까딸란어

Good morning

Buenos dias

(부에노스 디아스)

Bon dia

(본 디아)

Good afternoon

Buenas tardes

(부에나스 따르데스)

Bona tarda

(보다 따르다)

Good night

Buenas noches

(부에나스 노체스)

Bona nit

(본아 닛)

너는 이름이 뭐니?

Como te llamas?

(꼬모 떼 야마스?)

Com te dius?

(꼼 떼 디우스?)

정말 고마워.

Muchas gracias.

(무차스 그라시아스)

Moltes gracies.

(몰떼스 그라시에스)

정말 미안해.

Lo siento.

(로 씨엔또)

Em sap greu.

(암 쌉 그리우)


까딸루니야 지방의 공용어는 까딸란어와 스페인어 두 가지이지만, 까딸란 사람들은 까딸란어를 사용한다. 까딸란어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의 중간에서 프랑스어에 조금 더 가깝다.

스페인 전역이 아랍에 800년간 지배를 당하다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서 까딸루니야 지방이 회복된다. 그리고 12세기에 들어와서 스페인의 도시로 편입되지만 중앙정부와 독립된 체제를 유지하며 프랑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까딸루니야 지역 사람들은 아직도 프랑스어로 소통하는 게 문제가 없을 정도로 유창하다. 문화적으로도 까딸루니야와 스페인 본토, 프랑스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바르셀로나의 핫 플레이스, 라스 람블라스


위에서 본 라스 람블라스 거리(좌), 자유분방한 람블라스 거리(우)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거리는 바로 “Las Ramblas(라스 람블라스)”거리이다. 이 거리는 바르셀로나의 중심 광장인 까딸루니야 광장에서 바르셀로나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안이 한눈에 보이는 콜럼버스 기념탑까지 이어져 있다. 이 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 레스토랑, 커피숍, 옷 가게, 기념품 가게 그리고 수많은 노점들이 모두 모여 있다.

노점에서는 책, 공예품, 새장과 새를 팔고 거리의 예술가들은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람블라스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봄이다. 4월 장미시즌이 시작되면서 거리마다 꽃을 파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노점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적의 사람들이 이 거리에 모여들어 구경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재미있다.


배고플 때 먹기 좋은 쁠란(푸딩) (좌), 람블라스 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물건(우)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수많은 ‘라 까페떼리아 알 아이레 리브레’(la cafeteria al aire libre : 노천 카페) 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바르셀로나의 뜨거운 태양과 지중해의 상쾌한 해풍을 느끼며 야외 테라스에 앉아보자. 그리고 여유 있게 까페 꼰 레체(caffe con leche : 카페라떼)를 시켜보자. 배고플 때는 쁠란(flan : 푸딩)이나 스페인 특제 디저트 만사나 아사다(manzana asada : 구운 사과)를 곁들이면 정말 세상에 어떠한 것도 부러울 것이 없다.


라 뽄다에서 꼭 먹어야 할 빠에야
La fonda

위치 : Carrer dels Escudellers, 10 Barcelona
           +34 933 017 515

[Tip]람블라스 거리를 다니다 배고프다면 맛있으면서 가격도 저렴해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La Fonda’ 라는 식당을 찾아가자. ‘빠에야’도 1인분에 10유로가 넘지 않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며, 분위기와 맛까지 모두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다.


식당에 앉아 주문하기

람블라스 거리의 La Fonda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며 여유 있게 주문해보자.

Modelo 70

: Cual es el mejor vino de este restaurante?
       (꾸알 에스 엘 메호르 비노 데 에스떼 레스따우란떼?)
       이 식당에서 최고의 와인은 무엇인가요?

웨이터 : Este vino tinto es el mejor. Pruebe este vino!
               (에스떼 비노 띤또 에스 엘 메호르)
               이 적포도주가 최고입니다. 이 와인 한번 시음해 보세요.

: Gracias. Umm… Este vino sabe muy bien.
       (그라시아스. 음… 에스떼 비노 사베 무이 비엔)
       감사합니다. 음… 이 와인 정말 맛있네요.

웨이터 : Usted va a pedir una botella?
               (우스뗏 바 아 뻬디르 우나 보떼야?)
               한 병 주문하시겠어요?

   Modelo 59

    : Oiga! No hay servilletas. Podria traerme una servilleta?
          (오이가! 노 아이 세르비예따. 뽀드리아 뜨라에르메 우나 세르비예따?)
          여기요! 냅킨이 없네요. 냅킨 좀 가져가 주시겠어요?

   웨이터 : Si, ahora mismo. (씨, 아오라 미즈모)
                  네, 지금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 Tambien podria traer la cuenta?
          (땀비엔 뽀드리아 뜨라에르 라 꾸엔따?)
          그리고 계산서도 가져다 주시겠어요?

   웨이터 : Claro que si. (끌라로 께 씨)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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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회화 핵심패턴 233마야 허 저 | 길벗이지톡
《스페인어 회화 핵심패턴 233》은 스페인어의 기본기를 튼튼히 다져주는 기초 패턴부터 네이티브들이 뻔질나게 쓰는 꼭 필요한 패턴 233개를 엄선해서 수록하였습니다. 또한 동사를 중심으로 현지인들이 자주 쓰는 패턴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 어법 설명은 최소화하고 예문을 통한 패턴 학습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회화 트레이닝에 최적화된 맞춤 구성으로 제대로 입 트이는 경험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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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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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의 비율이 17.9%로 총 359만 세대로 추산된다고 한다. 대략 다섯가구 당 한집이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할 만큼 많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동물보호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하여 매우 낮은 수준(67.7%)라고 한다. ‘인간의 친구’라는 개념으로 도입된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유기동물 10만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앞으로 소개할 두 편의 웹툰을 통해서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그리고 그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자.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작가 : 초(정솔)
내용 : 작가가 키우는 한 살반의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고양이(순대)와 열다섯 살의 나이 많은 늙은 개(낭낙이)가 함께한 순간들을 그렸다.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감상 TIP :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을 감성적인 그림과 글로 담았다. 이외에도 유기견, 유기묘, 로드킬 등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다루어 생각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루밍 선데이』

작가 : HUN(최종훈)
내용 : 잘나가는 30대 독신남 만화가 HUN이 고양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모음이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소소한 일상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감상 TIP : 글과 그림외에 또 하나의 기쁨이 있다. 주인공인 고양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동영상이 웹툰속에 있다. 그림으로 보는 것과 또 다른 고양이들의 매력에 빠질 것이다.


나는 어쩌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된걸까. 13년 전 셀(강아지 이름)이 우리집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아들만 셋인 과묵하고 조용한 집에 뜬금없는 생명체가 온거다. 부모님은 전형적인 시골사람이라서… “안돼! 안돼! 개는 가축이야! 어떻게 집안에 두나! 배란다에 내놔!”
잠시 같이 지낸다고만 생각했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녀석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두달이 지나고, 녀석눈엔 우리만 보이게 되고… 과묵한 남자들 대신 엄마의 말벗이 되어주고, 밀쳐내고 밀쳐내도 끝없이 다가가고… 녀석은… 서로를 이어주고, 계기를 만들어준다. 적어도 우리에겐 마법같은 경험을 하게해줬다.
「그루밍 선데이-67. 인연」
반려동물은 특별하다. 사람과 나눌 수 없던 감정까지 교류하며 내가 애정을 쏟는 만큼 나를 지지해주는 정직한 친구이다. 처음에는 반려동물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사람들도,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면 그 치명적인 매력에 푹 빠지고 만다. 반려동물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마치 아기 때 내가 했던 작은 손짓에 주변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것처럼, 작은 발자국소리에도 나를 반기는 반려동물을 보며, 그때처럼 나의 존재자체만으로도 귀중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네 이름을 부르는 누구에게나 달려가 준다. 너는 누구에게나 상냥하다. 어떤 누가 손을 뻗어도 언제나 꼬리를 흔드는 것을 잊지 않는다. 너는 항상 즐겁다. 남이 던져주는 프리스비도, 내가 던져주는 프리스비도 모두 물어온다. 너는 누구나 사랑하지만, 누구보다도 나를 조금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 개-184. 누구에게나」

고양이는 종이박스를 좋아한다. 고양이계 마약이라 불리우는 캣닢을 박스안에 조금 뿌려주면… 행복해서 사경을 헤맨다. 자~ 그런데!! 내 딸은(고양이)이 완벽한 파라다이스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신발 꼬린네에 완전 환장해!
「그루밍 선데이-38. 자극을 원해」
또한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도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 순수하게 사랑하는 방법, 삶을 행복하게 즐기는 태도 등을 행동으로 가르쳐 준다. 이처럼 살아가면서 중요하지만 잊고 지내는 것들을 우리는 반려동물을 통해 새삼 깨닫곤 한다.

아마도 내 아이는 동물에 대해 배워나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신만의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할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러면 나는 ‘책임’이라는 단어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다.내 어머니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들과 우리에겐 주어진 시간이 다르다는 것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내 아버지가 그랬으니까. 차분히, 그 사랑스러운 것들의 단점부터 먼저 이야기 할 것이다. 사실은 생각보다 이기적인 녀석들이고, 네 소중한 것들을 가차 없이 망가뜨릴지도 모르고, 어쩌면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아이가 모든 것들을 인지하게 되었을 쯤 에는 아마 식구가 늘어있겠지.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 개-199. 상상」

당신의 개, 고양이가 원래 최고인건 아니에요… 녀석들이 당신의 가족이 된 이후 서서히 그렇게 된 것일뿐입니다. 태어난 곳도, 먹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든 것이 다르지만 이렇게 모여 가족이 된거에요. 잊지마세요. 녀석들은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소중한 가족입니다. 끝까지 아껴주세요.
「그루밍 선데이-79. 안녕」
하지만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데는 책임이 따른다. 그들이 인간에게 주는 유대감, 행복감, 자존감 뒤에는 우리가 동물들을 돌봐야할 의무감, 책임감, 사명감이 동시에 따른다. 반려동물이 주는 수많은 혜택만 보고 인간이 감당해야할 몫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에, 외로운 마음에서 불쑥 반려동물과 생활을 시작하면 서로에게 큰 상처만 남길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라고 파스칼은 말했다. 반려동물의 사소한 행동하나에 우리는 위로받고, 우리의 작은 돌봄하나로 그들은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이 몸짓으로 보여주는 우리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우리역시 식구라는 생각으로 지켜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인간과 반려동물의 특별한 관계를 지켜나갔으면 한다. 그렇게 진정한 가족으로 더불어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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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는 천송이가 아닌 전지현이 살린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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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드라마, 아니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이보영 분)을 꼽는다. 흔히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대다수의 여성 캐릭터와는 달리 혜성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뿐이랴. 극의 진행과 로맨스에 있어 언제나 수동적인 위치에 서는 대다수의 여주인공과 달리 혜성은 드라마의 흐름에서도, 남자 주인공과의 로맨스에서도 능동적인 자세로 극을 이끌어간다. 장르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독립적인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가 완성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물론 배우 이보영의 훌륭한 연기도 한 몫을 했지만 박혜련 작가가 창조한 장혜성이라는 캐릭터 자체의 힘도 대단했다. 아무리 이보영이 완급조절을 완벽히 해냈다고 해도 혜성의 캐릭터에 내러티브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공감과 이해를 끌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캐릭터건 그 완성도는 제작진이 만들어주는 캐릭터 자체의 구성과 배우의 연기력을 모두 필요로 한다. 어느 한 쪽만 훌륭하다면 캐릭터는 결코 빛을 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최근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전지현 분)을 보며 같은 이유로 진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영화 <도둑들>에서 이미 그 시너지를 보여준 김수현ㆍ전지현에 <내조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가 의기투합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의 기대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수차례 자신의 흥행 파워를 증명한 작가와 두 스타의 조합은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거니와, 작품은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구성으로 재미는 보장되어 있다고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뚜껑을 연 후,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아쉬운 면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서사가 부족해도, 엉성한 구조가 계속 반복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 없이 시간만 흘러도 드라마가 갖춘 여타의 미덕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점은 커져갔고 초반부 또 하나의 명품 드라마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사그라졌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드라마 대부분의 매력을 책임지고 있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에서 그 구멍이 가장 크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촘촘하게 짜인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 비해 여주인공 캐릭터는 상당히 엉성한 구조를 갖고 있다. 큰 사회적 성취에 비해 사랑에 미숙하고 남자 주인공에게 의존적인 여주인공은 로맨스 장르에서 전형적이고 가장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다. 로맨스의 장을 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부터 그러하듯이, 백마 탄 왕자에 대한 로맨틱한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창조된 이 장르에서 여성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평면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왔으니까.

이런 로맨스의 클리셰를 그대로 밟아가겠다는 데 달리 할 말은 없지만, 최근의 드라마들은 마냥 이런 빤한 캐릭터만을 재생산하는 데서 제 행보를 그치지 않는다. 히로인들은 더 이상 가련한 캔디가 아니다.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으로서 분명한 자신의 철학과 꿈을 가지고 있고 그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야만 제대로 설 수 있는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야유를 당하고 오히려 제 직업적 성취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환호를 받는다. 로맨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사랑 앞에서 움츠러드는 남자 주인공에게 넌 겁쟁이라 당당히 말하고, 사랑의 완성을 위해 그의 손을 잡아 이끌기도 한다. 지난한 과정 끝 사랑을 이루는 장르 본연의 재미는 잃지 않은 채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는 이런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생각해 보라. 만일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김선아 분)가 자신과 희진 사이에서 흔들리는 진헌(현빈 분)을 두고 움츠러들며 눈물을 흘렸다면, 혹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혜성이 기억이 돌아온 수하를 끝끝내 밀어내고 자신의 마음을 부정했다면? 그녀들이 왕자가 자신을 구제하는 것을 기다리며 멀거니 서 있는 히로인이었다면 이 드라마들은 우리가 환호했던 그 결말을 맞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남자 주인공들이 얼마나 결핍된 인간인지 스스로 일깨우고 다 자라지 못한 그들을 성장시키는 캐릭터였기에 우리는 그 매력에 감탄과 환호를 보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이 캐릭터는 지나칠 정도로 수동적이다. 드라마가 완결까지 6회만을 남겨놓은 지금, 관계의 진전이나 서사의 흐름에 여자 주인공은 전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고백을 누가 먼저 했느냐 따위의 피상적인 장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 전반에서 감정이 발생하고 흐르고 쌓이고, 주인공 양자 간의 관계를 건설하는 데 여주인공 캐릭터는 하는 바가 없다. 그녀는 그저 슈퍼 히어로처럼 묘사되는 남자 주인공에게 안겨 목숨을 구하고 위기를 뛰어넘을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운명에 고민하고 있는 남자 주인공에 비해 여주인공의 문제는 지나치게 가볍게 그려지고, 전반적인 이야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진정한 위협이 뭔지도 모르고 위험할 때마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외치는 데에 이르면 안타깝기까지 할 정도다.

게다가 여자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온갖 설정과 연출로 제대로 엮어놓은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 비해 여주인공 캐릭터는 다소 엉성하다. 어린 나이에 탑스타가 된 송이가 극성스럽지만 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엄마로부터 점차 메말라갔으며, 처음으로 자신을 탑스타도 돈 많은 사람도 아닌 그저 인간 천송이로 봐줬던 도민준에게 끌렸다고 설명했다면 캐릭터는 훨씬 더 인간미를 갖췄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하인드를 위해 단 몇 장면을 소비할 여력도 없어 보이고, 드라마는 개그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아무리 로맨스라고 해도 극 전체에서 지나치게 의존적인 캐릭터이다. 심지어 독립적인 에피소드였던 아버지와의 불화마저도 남자 주인공이 한 발을 보태야 해결된다. 15회까지 천송이 동기(動機)의 대부분이 도민준을 위한 것임에야 두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가 다름 아닌 전지현이다. <도둑들>, <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최근의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줬듯이 전지현은 입체적이고 가변적인 캐릭터를 능숙히 연기할 수 있는 배우다. 자신의 존재감을 대중에게 강렬하게 인식시킨 <엽기적인 그녀> 이후, 전지현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시도하며 꾸준히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4인용 식탁>과 같은 호러물이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같은 휴먼 드라마 <도둑들>과 같이 액션을 넘나드는 작품을 보자면 전지현이 얼마나 자신의 한계를 깨기 위해 노력해왔는지 짐작 가능하다(<도둑들> 직후 선택한 <베를린>만 봐도 대중의 고정관념에 도전하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가 보이지 않나). 약간의 서사만 주어져도 쉽게 그 이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에 비해 캐릭터는 지지부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가 매력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천송이는 매력적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하지만 문제는 그 매력이 대본이 아닌 배우 전지현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치킨과 맥주를 들고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이나, 천연덕스레 자동차에 말을 걸고 자신의 미모를 뽐내며 잘난 척을 하는 장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천송이의 매력은 전지현 개인의 연기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막무가내에 무식하며 오만하고 경우를 모르는 캐릭터로 묘사된 초반부의 캐릭터를 보자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것이 솔직하고 당당한 자세와 귀여운 허영으로 포장되기까지 수 회가 흘렀는데, 아마 배우가 아니었다면 절대 사랑을 받지 못했을 캐릭터일 테다. 섬세한 연출이나 촘촘한 각본이 만들어줘야 했을 여주인공의 개성과 매력을 배우 스스로 고군분투해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안타깝지만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장면들을 꼽아보자면 모두 전지현의 능력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끝에서 민준과 송이의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리라.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것을 바란다. 결말까지 2주, 그동안 민준의 도움을 기다리기만 했던 송이가 먼저 민준에게 손을 내밀길 바란다. 홀로 고민을 떠안고 피할 수 없는 운명에 휘청대는 남자 주인공을 송이가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길, 존재 이상의 가치를 여자 주인공이 스스로 뽐내주길 말이다. 그리고 분명 제작진은 그를 보여주리라 믿는다. 천송이도, 전지현도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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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리는 ‘꿈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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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얼마나 될까?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직업의 종류는 총 11,655개(한국직업사전, 2012년)로, 처음 조사를 시작했던 약 40년 전에 비해 3.5배정도 늘어난 셈(1969년 3,260개)이다. 그만큼 직업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꿈의 ‘직업’에 대한 고민보다는 현실의 ‘취업’을 선택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 소개할 두 편의 웹툰을 보며,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꿈과 직업에 대한 고민들을 생각해보자.


 『목욕의 신』

작가 : 하일권
내용 : 잘나가던 대학생활을 끝낸 주인공 ‘허세’가 돈을 빌린 대부업자에게 쫓겨 럭셔리 목욕탕 ‘금자탕’에 숨어들었다. 금자탕 회장님의 제안에 따라 일정기간만 목욕탕에서 일하기로 약속하고 때밀이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감상 TIP : 화려하고 웅장한 목욕탕의 세계와 그곳에 등장하는 멋진 주인공들의 그림체가 매력적이다. ‘목욕투(沐浴鬪)’와 같이 목욕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자아낸다.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

작가 : 미티(홍승표)
내용 : 7살 남기한은 공무원시험 준비생이었으나, 시험에 떨어지고 후회하다가 옛날로 돌아가면 엘리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 바람이 이루어져 11살로 돌아간 남기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감상 TIP : 언뜻 보면 코믹한 일화들이 돋보이지만 그 안에 숨은 질문이 있다. 주인공 남기한의 이름이 ‘인생의 남은 기한’에서 따온 것과 같이 이 웹툰을 보고나면 ‘나의 인생의 남은 기한을 어떻게 살면 좋을까’하는 물음을 절로 내던지게 된다.




허세: 그냥 때밀이잖아요? 진짜 별것도 아닌 일을 왜 그렇게 심각하게 열 올리면서 하세요?
강해: 그러는 넌 뭔가 열심히 해봤냐?뭔가를 열심히 해본 적 있냐? 남이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소중히 여길 수 없는 것 아닌가?
「목욕의 신-4. 목욕투」

허세: 사실 때밀이라는 게 상식적으로 좀 힘들고 천대받는 직업이라는 인식은 있잖아. 누가 위대한 일이라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근데 대체 왜 그렇게 이런 일에 목숨 걸고 열심히 하는 거야?
강해: 프랑스에 유명한 암벽등반가가 한명 있어… 10살 때부터 암벽등반을 시작해서 수많은 산들을 정복했는데, 1982년에 추락사고로 뇌손상을 입었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후에 다시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맨손으로 세계의 수많은 고층빌딩들을 오르기 시작한 거야. 그 사람도 분명 주변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겠지. 미친 거 아니냐고… 저걸 누가 알아준다고. 너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냐…?
「목욕의 신-21. 꿈」
‘꿈’이란 무엇일까? 꿈이 곧 ‘직업’일 수도 있지만, 그 직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내가 다다르고 싶은 ‘모습’이 좀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통해 내가 바라는 모습이 되는 것이기에 꿈은 한 가지가 아닐 수도 있다. 이처럼 불분명한 ‘꿈’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어떤 꿈이든 쉽게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본인의 의지, 노력 등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시선, 환경 역시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꿈은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는 것은 어렵다.

후우… 과거로 돌아가길 바라는 인간들의 공통적인 실수는… 바로 현재의 자신의 삶을 하찮게 여긴다는 거다.그 원래 자신의 삶이 사라진다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서 인생이 쉬어지길 바라고… 평생 자기가 못 가진 것만 부러워하며 살지. 가끔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며 버티며 쌓아온 자신의 원래 인생에…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252화 내가 갖지 못한 것」

어릴 땐 참… 그림을 잘 그리든 말든, 만드는 게 허접하든 말든 일단 부딪히고 시작하고 봤었는데… 참 웃기게도 어른이 되어서 그때보다 더 할 줄 아는 게 많아진 나는 겁만 늘었어요. 뭔가 안될 때면 내 주변상황만 탓하게 되고… 눈만 높아져서 뭔가 그럴싸한 게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더라구요. 처음부터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데…왜 이런 날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먼저 의식하게 되는지… 처음 시작이니까 어설프고 잘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262화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후회를 한다. ‘이랬으면 어땠을까’하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때로는 실수도 한다. ‘이랬어야 했는데’하며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서 지금 꿈에 도달하지 못하는 변명만 늘어만 간다. 동시에 꿈을 좇으며 준비만하기에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무언가 생산해야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렇게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처음 생각대로 열심히 뛰는 건 맞는데 어디론가 끌려가는 느낌… 그 동안의 공부와 노력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노력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고 이렇게 절실해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처음으로 용기 내어 내 꿈에 대해 물을 때가 그 즈음이었다. (중략) 넓은 집과 좋은 차가 스스로 정한 목표라면 그것을 향해 뛰어가도 좋다.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은 그런 직업을 얻기 위해 뛰어가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다. 스스로가 정한 것이라면 응원하고 격려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남기한 엘리트만들기-258화 모두 맞는 말씀~」

자네와 처음 여기서 만났을 때…. 그 표정이 기억나는구만. 무언가에 쫓기며 방황하고 있는 표정. 그런 자네 같은 젊은이에게 뭔가 가능성의 기회를 주고 싶었네. 허군… 자네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젊은이들이 다 그래.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젊은 시기에 열정 하나로 모인 친구들이지. 비록 때밀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한다면, 결국 그들이 모두… ‘목욕의 신’아니겠는가…?
「목욕의 신-28. 계약종료」
결국 꿈과 현실에서 시작한 물음은 다시 ‘나’로 돌아온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에 내 열정을 다 바칠 수 있는지, 그 질문의 답이 곧 나의 꿈이고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비록 그 길이 주변의 인정을 받거나 누구나 다 아는 길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끊임없이, 내가 꿈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이대로 계속 꿈을 향해 간다면 언젠가는 어떤 무엇인가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70대에 대학을 다닌 만학도지만, 결국 등단하여 시인의 꿈을 이룬 한 할머니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설령 지금 그 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꿈을 버리지 않고, 지금 하는 일 가운데서 내 꿈과 관련된 연결고리를 찾아보자. 꿈을 작은 테두리에 가두지 말고, 내 삶으로 가져와 넓혀 보자. 어떤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 현재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꿈을 향한 1만 시간 중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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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국치프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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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반란이라고 말해야 할까, 예상치 못한 성과라 해야 할까. 이제 주인공을 제치고 서브 남자 주인공이 시청자의 열렬한 응원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아마 그의 선전만큼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테다. 전작의 악역 이미지가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렬히 남아 있었던 데다 그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러브라인의 한 축을 이끈다는 말엔 의아함부터 들었으니까.

다행이다. 능숙한 연기력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모았고, 이제 그는 극중에서 누구보다 많은 성원을 얻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 말이냐고? tvN <응급남녀>에서 생각 외의 뜨거운 지지를 이끌어낸 캐릭터 국치프, 국천수(이필모 분) 이야기다.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이 캐릭터에 주목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을 터. tvN은 이혼한 두 남녀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라 드라마를 홍보했고, <응급남녀>라는 제목도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두 남녀, 창민(최진혁 분)과 진희(송지효 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연 지금, 시청자들은 두 남녀 주인공에 보내는 지지 못잖게 국천수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에선 진희와 천수가 사랑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과연 ‘마귀’ 국치프가 인기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이 캐릭터의 의외성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초반부, 얼핏 국천수는 흔한 메디컬 드라마의 멘토 캐릭터처럼 보였다. 늘 냉철하고 엄격한 모습으로 주인공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주어진 역할의 전부인 그런 캐릭터. 인턴들의 실수에 버럭 호통을 치고 당장 그만두라 윽박지르는 모습에선 역시 그랬구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그리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극이 진행될수록 점차 자신만의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낸다. 자신의 실수에 당황하고 절망해 사직서를 낸 진희에게 “그렇게 완벽하고 멋진 이상은 존재하지 않아. 그런 의사?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판타지일 뿐이야.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죽을힘을 다해서 살려내는 사람. 그게 의사다.”라는 따뜻한 말로 그녀를 격려하기도 하고, 진희에게 모질게 구는 성숙(박준금 분)의 앞에서 부러 그녀의 역성을 들기도 한다. 뿐이랴. 병원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당장 왕진을 와 달라는 진희의 무리한 부탁에도 응급키트를 들고 달려 나가고, 돌아오는 길에 종내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꾸벅꾸벅 조는 부분에선 그 인간적인 모습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타인에 무관심하고 냉정했던 그는 진희에 대한 호감을 깨달은 이후부터 그녀에게는 평범한 한 남자가 된다. 진희가 선물한 점퍼를 아무도 없는 방에서 몰래 입어볼 때도, 그녀의 질문에 “좀 전에 물어본 거…. 설레는 사람.”이라 머뭇머뭇 진심을 전할 때도 그렇다. 오로지 그녀에게만 자신을 허락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한편 메마르고 무뚝뚝한 그에게 진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되었는지 확인시킨다. 감정적인 면에서 미성숙하달 정도로 서툴고 요령부득인 그가 진희로 인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천수가 치프로서 그녀를 성장시키는 것 이상으로 진희가 그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진희의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을 북돋우고 사회적 책임을 갖춘 성인이 되도록 돕는 것이 천수라면 한 남자로서 천수의 이성과 감성을 일깨우는 것은 진희다. 이는 그들이 상호보완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들의 관계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도하고 성장시키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가 더 흥미로운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창민에겐 없는 어른의 도량도 천수만의 매력이다. 저돌적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창민의 매력도 물론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만, 천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한다. 창민이 현실에 버거워 흔들리고, 변하겠다는 말 외에는 진희에게 어떤 약속도 주지 못할 때 천수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진희에게 나아간다. “오진희한테 관심이라도 있으세요?” 삐딱한 창민의 말에도 “그래. 관심 있다. (…) 왜, 내가 관심 좀 있으면 안 되나?” 그에게 덤덤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창민이 진희를 좋아하지 말라 어깃장을 놓아도 “네가 포기하란다고 포기하는 그런 사람 아냐.” 웃으며 돌아설 만한 아량도 갖추고 있다. 

진희와 함께 공유한 시간은 창민에게 큰 강점이지만 한편으로 약점이 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의 짧은 결혼은 처참한 결말을 맞았고, 너무나도 다른 각자의 성격과 집안, 시어머니의 지나친 간섭 등 갈등 요소는 아직도 산재해 있다.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또다시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창민은 용감하지만 한편으로 무모하고 무책임해 보이기도 한다. 반면 천수는 어떤가. 그는 진희가 힘들지 않도록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간다. 흔들리거나 갈팡질팡하지는 않지만 자칫 자신의 마음이 부담이 될까 천천히 다가서는 모습에선 그의 배려가 느껴진다. 망설이다 [아프지 마라.] 짧게 진심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을 때도 그렇다. 그가 수없이 썼다 지웠을 메시지들을 모르더라도, 진희가 어떤 감정적 강요도 없는 깊고도 담백한 그의 마음에 흔들렸을 것을 응당 짐작할 수 있다. 하필 자신의 마음을 받아 달라는 창민의 강권에 난처해하던 때 아닌가.

“설레는 사람.” 내가 당신에게 느끼는 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백 마디의 고백보다 이 요령 없는 말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도 그래서다. 솜씨 좋게 마음을 전달할 깜냥은 없어도 그녀가 젖지 않도록 빗속에 먼저 뛰어들고, 자신의 체면보다 그녀의 감정을 먼저 신경 쓰는데 이르면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다. 얼른 말을 돌리는 진희가 무안하지 않도록 어색하게 꺼내던 대답에서 그의 사려 깊은 애정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어리기만 한 창민의 사랑보다 성숙하고 포용력 있는 천수의 사랑이 시청자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한 가지 더 짚고 싶다. 국천수가 이처럼 뜨거운 성원을 얻는 데엔 물론 배우 이필모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로맨스 장르 대부분의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판타지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현실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그리는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은 힘든 일이거니와 제작진의 능력은 물론 배우의 역량도 상당히 중요하다. 국천수를 연기하는 이필모가 아주 뛰어나거나 잘생긴 외모를 가진 배우는 아니지만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그가 그리는 서툴지만 속 깊은 사랑은 그 어떤 뛰어난 외모가 제공하는 판타지보다 환상적이다. 일에는 완벽하고 냉철하지만 한 여자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서툰 남자가 되는 매력적인 캐릭터 국천수를 배우 이필모가 탁월하게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천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는 상당 부분 거기서 기인하는 것일 테다. 차근차근 잘 쌓인 캐릭터를 훌륭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대단하다. 16년차 배우인 이필모는 국천수를 만나 자신의 역량을 시청자들 앞에 남김없이 선보이고 있고, 시청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이필모의 재발견이랄 만한 ‘국치프’에 열광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7회를 남긴 이 드라마에서 좋은 마무리를 기대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 내의 모든 캐릭터들이 나름의 행복한 결말을 맞고, 성장하고 자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배우와 캐릭터가 마지막까지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고, 이필모의 필모그래피에 국천수라는 인상적인 한 획을 남기는 것도 기대할 만한 일이다. 오래오래 두고 볼 수 있는 배우는 필시 해피엔딩보다 더 큰 기쁨을 남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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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스끼다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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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회 등장한 ‘선량한 꼬치구이 집’ 아저씨에 대해 할 말이 남았다. 그날은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만큼 주문도 꽤 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인터넷에 올린다며 사진도 찍고 명함도 주고받았단 말이다. 두세 시간 동안 아저씨는 약 열 번 정도 화로에 꼬치를 구웠다. 불을 새로 붙일 때마다 내 시선도 거기에 고정됐다. 이쯤이면 무언가를 기대해도 되겠지, 하는 알량한 손님의 마음을 담아. 애석하게도 ‘서비스’는 없었다. 선량하다는 타이틀을 붙이고선, 이제 와 딴말하는 건 아니다. 땅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고, 소상인에게 공짜를 기대하는 건 비열한 소비자니까.

하긴, 얼마 전 작은 카페에서 쿠키를 동전만 하게 잘라 ‘서비스’라며 내왔을 때는 황송할 정도였다. 점원은 이 과자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했다. 그 크기에 비해 무척이나 오랫동안. ‘잘 들었어요. 여기 있는 모든 음식과 커피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드는지 꼭 알아둘게요.’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뭐라도 더 시켜야 할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배도 부른데 롤케이크를 추가하긴 했다.) 과연 ‘가깝고도 먼 나라’의 정서다.




쉽게 진정되지 않는 일도 종종 있다

커피숍은 좋다. 음악이 있고, 천장이 높으며, 통유리로 된 창이 났다면 더더욱 사랑한다. 커피 한 잔으로 온전한 내 자리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전세 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오후 세 시가 넘으면 동네 유일한 ‘별다방’이 가장 붐비는 시간이었다. 짐은 바닥에 내려놔야 할 정도로 빈자리가 없었다. 이른 낮부터 구석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직원 한 명이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정중하게 말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학생은 짐을 싸며 나갈 채비를 했다.

“지금 기다리시는 손님이 많습니다. 적절한 시간 동안만 이용 부탁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꽤 소심한 나는 한동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접었다. 라떼 한 잔에 얼마가 적절한 시간인지를 계산하는 방정식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케이크도 시키면 30분 정도 추가가 되려나?


새로운 규칙에 쿨하게 오케이!

집에서 뭘 하려면 자꾸 늘어지기에 십상이었다. 얼마 뒤 용기를 내 다른 카페에 도전했다. 아침마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직접 커피를 볶는 곳이다. 거리에서 바라본 그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무표정. 입꼬리가 올라가거나 쳐지지 않았고, 상념에 잠기지도 않아 보였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지, 특별한 주름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얇은 은테 안경을 썼고 체구는 작으며 군살 없이 다부진 편이다. 그런 사람이 볶아 내리는 커피라면 보통 이상의 맛은 될 것 같았다. 예리한 감각으로 예민하게 맛을 냈을 테니까.

문을 열고 입장했다. 바리스타는 1층에, 좌석은 2층인 꽤 규모 있는 카페였다. 일전의 ‘별다방 혼란’을 잊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메뉴엔 이 카페에서만 선보이는 블렌드도 대여섯 가지는 됐다.


오후 1시 57분, 주문하고 노트북을 켰다. 마침 콘센트가 앞에 있어서 충전기도 꼽았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와이파이 같은 건 없다. ‘공짜 좋아하지 말자.’ 대머리가 되지 않기 위해 나를 교육했다. 오후 2시 5분, 주문한 ‘마루야마 블렌드’가 나왔다. 역시, 맛이 좋았다. 오후 2시 57분 예민한 남자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왔다.

“손님, 콘센트 사용 제한 시간은 1시간입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타 문화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배웠다. 세계시민 의식을 지닌 사람이 되기 위해 그 말만 되내었다. 표정 관리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콘센트를 뽑고 1층의 상황을 짐작해 봤다. 과연 예민한 바리스타는 정확히 한 시간을 어떻게 알아챈 걸까.

그는 1층에서 커피를 볶고, 물을 끓이고,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렸을 것이다. 콘센트에 누군가 코드를 밀어 넣으면, ‘띠딕’하고 경보가 울릴지도. 그럼 한 시간짜리 타이머를 설정할 것이다. 예민한 남자의 서랍엔 수십 개의 타이머가 일렬종대로 정리되어 있을 법하다. 어쩌면 그는 매일 그 타이머를 수건으로 닦으며 소중히 다룰 것이다.

오후 4시 57분, 남자가 다시 곁으로 왔다.

“메뉴판에 안내해 드린 대로, 테이블 이용은 세 시간입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이머를 사용하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래도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재즈 음악을 선곡한다. 혀끝에 닿은 커피 맛은 로스터를 닮아 날카롭다. 이제 ‘콘센트 한 시간, 테이블 세 시간’ 규칙도 숙지했고 동의한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 단골이 되고 싶다. 이 정도 마음 가짐이라면, 일본 생활에 쿨하게 ‘오케이’ 도장을 찍을 수 있겠다.




‘스끼다시’를 기대하지 않는 삶

횟집에 가면 주인공보다 ‘스끼다시’를 더 기대하는 게 보통의 한국인이다. 느낌대로 어원은 일본이다. 붙여 나온다는 뜻의 ‘츠키다시(突き出し)’는 주로 관서 지방에서 쓰는 말이다. 본 요리가 나오기 전에 가볍게 나오는 전채 정도가 뜻이 맞겠다. 관동 지역에서는 ‘오토오시(お通し)’라고 부른다. 단무지 한 조각 구경하기 힘든 일본 식당에선 깜짝 선물 같은 존재다. 식당마다 종류도 다르고, 매일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양배추에 간장 소스, 두부에 가츠오부시, 채소 샐러드 등이 등장한다. 성인 여자가 한 손으로 쥐면 꼭 들어올 정도의 크기다. 코스 요리를 시켰는데 ‘스키다시’를 생각하고 오토오시를 받으면 안 된다. 그 아담한 크기에 뜬금없이 고국의 횟집이 그리워질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공짜에 너무 열광하며 살아온 것 같아 후회된다.


전세 커피숍과 화려한 스끼다시가 없다고 삶이 피폐해지진 않는다. 나는 삼 개월 차 신입 이방인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왠지 모든 걸 다 안다고 오해한다. ‘치사하게 이까짓 거.’ 하면서 도망가고 싶기도, 문득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그래도 사람은, 사회는, 문화는 각자 보이지 않는 규칙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그 규칙엔 오래된 이유가 있다. 지금 느끼는 씁쓸한 첫맛도, 오래 씹다 보면 달아질 거라 믿는다.

‘생활 여행’을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요샛말로 ‘먹방’만 찍고 있다. 생각해보면 전에도 지금도 내 생활은 온통 먹는 일에 집중돼있다. 먹고 사는 일에 어찌 이리 바쁜지…… 한 해가 넘어갔고 나이 앞자리도 바뀌었다. 21세기 초부터 오랫동안 이날을 상상했다. 뭇 여성들과 함께 동경했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가 이런 말을 남겼다. ‘20대엔 즐기고, 30대엔 지혜로워지고, 40대엔 술을 사면 되는 거지!’ 십 년 전에 생각했던 지혜로운 삼십 대의 모습은커녕, 온통 먹고 사는 일로만 시야가 좁아진다. 좀 더 지혜롭게 먹고 살기 위해 고심할 때다. 그래야 술을 살 수 있을 테니.


*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

일본에선 1950년대부터 칼리타(Kalita), 하리오(Hario), 고노(Kono) 등의 회사를 중심으로 핸드드립 커피 도구를 개발했다. 카페는 물론 가정에서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즐기는 게 보편적이다. 삿포로에서 맛볼 수 있는 핸드드립 카페 두 군데를 추천한다. 여러 곳이 있지만, 필자가 직접 다녀온 곳에 한정했다.

-RITARU COFFEE : 1층은 로스팅과 바리스타 공간, 좌석은 2층에 있다. 한가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커피는 물론 음식과 디저트도 맛으로 유명하다. <주소: 北海道札幌市中央( )北3( )西26丁目3-8 / 지하철 니시28초메 역에서 도보 3분>

-MORI HIKO(森彦) : 정성을 들인 로스팅과 커피 맛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토토로가 살 것 같은 작은 목조 민가를 개조한 카페다. 오래된 소품과 나무를 주로 한 인테리어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작은 골목에 있어 지도가 꼭 필요하다. <주소: 北海道札幌市中央( )南二( )西26-2-18 / 지하철 마루야마공원 역에서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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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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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란 여인과 해남 땅끝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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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픽션일지라도

 

이안 감독의 <색, 계>는 친일파의 정보부 대장의 암살계획으로 투입된 스파이가 연기가 아닌 실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영화 같은 이야기를 한 포구에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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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일본의 장수 칸 마사가게는 먼 바다에 띄워 둔 부표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파도의 방향을 살폈다. 어두웠던 구름이 흩어지고 한 줄기 빛이 바다로 쏟아졌다. 둥글게 자리를 잡은 빛은 점점 더 영역을 넓혀나갔다. 급기야 해남만의 파도는 금빛으로 일렁였다. 마사가게는 몸 속 어디에선가부터 촉발된 전율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힘들게 진을 친 해남의 기후를 파악하기 위해서 최대한의 오차를 줄이는 통계를 만들어 내야했다. 물살이 센 지리적 요인으로 보았을 때, 날씨가 최대 변수였다. 그럼에도 이번 전쟁은 규모로 보나, 시기로 보나 모든 면에서 승전고를 울릴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술과 고기를 하사하며 출병이 다가왔음을 알렸다. 하지만 정확한 출병 날짜와 시간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마사가게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그가 체득한 유일한 전략은 바로 불신(不信)이었다.
 

그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점호를 끝낸 후에 어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을 막사로 불러들였다. 난로에는 다 탄 장작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인은 난로 속에 새 장작을 하나 집어넣었다. 언제나 그래왔다. 여인은 마사가게가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머릿속을 읽은 듯이 행동했다. 여인은 조용히 다가와 비어있던 그의 잔을 가득 채웠다. 그는 다시 잔을 비워냈다. 여인은 다시 잔을 따랐다. 그때 그가 여인의 여린 손목을 잡아챘다. 여인은 술병을 놓치며, 옅은 신음을 뱉었다. 마사가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여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부하를 호령하던 강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여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감춰왔던 말을 뱉어냈다. 그의 울음 섞인 고백 속에는 출병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되었다. 그는 한 여인의 품에서 불신의 신념을 스스로 깨트리고 있었다.

 

‘9월 14일. 맑다. 북풍이 크게 불었다. 벽파진 건너편에 신호 연기가 오르기에 배를 보내어 실어와 보니 바로 임준영이었다. 임준영이 육지를 정탐하고 보고하기를 적선 200여척 중 55척이 이미 어란(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앞바다에 들어왔다, 적에게 포로가 되었던 김중걸이 왜선에 결박을 당하고 있을 때 김해 사람인 어떤 사람이 왜장에게 빌어 묶인 것을 풀어주면서 조선해군을 보복하기 위해 모든 전선을 모아 조선해군을 전부 몰살하고 경강으로 올라가겠다고 왜놈들이 말하더라고 해서 전령선을 우수영으로 보내 피난민들에게 육지로 올라가라고 타이르도록 했다’ - 난중일기

 

난중일기에 나온 김해 사람이 바로 ‘어란 여인’이라는 설은 논란과 함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설화에 따르면 그녀는 스스로 간첩역할을 자처해, 이순신 장군에게 적군의 출병을 전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은 첩보를 신중히 판단해 9월 15일에 벽파진에서 우수영(右水營)으로 진을 옮긴 뒤 장병들에게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말했다. 9월 16일 왜선 133척이 어란포를 떠나 명량으로 공격해왔다. 첩보가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잠복해 있던 13척의 전선은 이순신 장군의 전략으로 적군을 막아낸다. 기적과도 같은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명량대첩이다. 이 전투의 가장 큰 공은 물론 이순신 장군이다. 어란 여인은 어디까지나 가설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어란 포구에서 어란 여인은 단순히 설화 속 주인공이 아니다. 명량대첩에서 죽음을 맞이한 마사가게의 소식을 들은 어란 여인은 벽파진의 절벽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어란 포구에는 어란 여인의 공과 혼을 기리기 위해서 석등롱이 설치되어 있다. 이것이 픽션일지라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란이라는 이름은 쉽게 잊을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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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농사짓는 어민들

 

곽재구 시인은 어란포구를 어머니의 알집으로 표현한다. 이름에서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마치 바다를 껴안은 포구와도 절묘하게 겹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해석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어란(於蘭)은 늘어진 난초를 뜻한다. 활등처럼 쑥 들어온 만(灣)의 형태를 띠어서 붙인 이름일까, 논이 한마지기도 없다는 땅 끝 마을이라서 그 기후적 특색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어란 포구에 도착했을 때는 눈이 그친 새벽이었다. 해가 뜨려면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밀려오는 졸음을 내쫓으려 차에서 내렸다. 바닥이며, 선창이며, 굴러다니는 타이어와 그물 위에도 모두 눈이 쌓여 있었다. 흰옷을 입지 않은 것은 유일하게 바다밖에 없었다. 바다 위의 색색의 부표들은 줄을 맞추어 우아하게 춤을 췄다. 끝도 없이 펼쳐진 부표를 바라보자 저절로 까치발이 올라갔다. 고작 몇 센티미터가 커진다고 이 부표를 한눈에 담을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의 뒤꿈치는 내려오지 않았다.
 

해가 산 너머로 고개를 드밀자마자 시동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포구에서 보았던 어선들과는 달리, 낮고 납작한 배들이 출항준비를 했다. 한 대의 배가 포구를 떠나자, 다른 배들도 줄을 이었다. 배들은 일정하게 거리를 두며 각자의 부표를 찾아 서서히 나아갔다. 마치 소를 이끌고 자신의 논을 찾는 농부의 모습 같았다. 선창 끝에서 불과 백 미터 정도 떨어진 부표에 도착한 배부터, 어느새 섬 뒤로 돌아가 보이지 않게 된 배들까지, 모두가 자신의 양식장을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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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란의 바다를 맛보다

 

독특한 배의 형태는 김 양식장을 관리하기에 용이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가난했던 어란을 풍족하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김 양식이었다. 자연적 요건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고향마을을 떠나지 않고, 성실히 하루하루를 견뎌낸 포구 사람들의 노동이 그들의 브랜드를 만들어 갔다. 해가 뜨기 전에는 모두 출항해야 하는데, 오늘은 눈이 와서 늦어졌다고 했다.
 

어란의 바다는 김이 자라기에 물이 깨끗하고 수온이 적당했다. 바다 아래는 갯벌이라서 영양도 풍부했다. 김은 1월이 제철이었다. 그 덕에 포구는 드나드는 배로 생기가 넘쳤다. 위판은 정오가 되기 전에 펼쳐졌다. 그러니 해가 뜨기 전부터 네댓 시간동안 배 위를 김으로 가득 채워내야 했다. 오후에는 김발을 뒤집어서 햇빛에 말려주고, 부표가 엉키지 않게 손질해야 했다. 쉴 틈이 없이 양식장을 관리해야만 맛있는 김을 선보일 수가 있었다.
 

김은 홍김과 흑김으로 나뉘었다. 나는 아무리 만져보고 맛을 보아도 어떤 김이 상태가 좋은 지 알 수가 없었다. 위판장에 모인 사람들은 물김을 만져보고 향도 보고 맛도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매일 어란의 바다를 손끝으로 혀끝으로 코끝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이방인인 나로선 어란의 김을 판단할 자격이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바다를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돌보는 어란 사람들만의 특권이었다.
 

이 물김을 그대로 끓여먹는 ‘김국’이야 말로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이었다. 어업을 마친 어민들이 노인장에 쉬고 있던 어르신을 포구 앞으로 모셔다가 김국을 대접했다. 평상을 깔고, 막걸리를 받아오고, 김국을 한 솥 끓여왔다. 분명히 오래도록 끓인 것 같은데도 김이 많이 나지 않았다. 마치 매생이 국과 흡사해 보였다. 미운 사위에게 내준다는 매생이 국의 위트 넘치는 유래를 들은 적이 있다. 식은 줄 알고 먹었다가 혀가 덴다는 것이었다. 내가 뜨거움을 못 이겨서 숟가락을 후후 불어대자, 옆에 앉은 할머니가 보란 듯이 그릇을 두 손으로 들었다. 할머니는 입술을 대더니, 후루룩 김국을 들이켰다. 나도 할머니를 따라서 김국을 들고 그대로 마셨다. 입 안으로 물김이 가득 들어왔다. 어란의 바다가 입 안을 풍성하게 채웠다. 미역국과는 달리 고소하고 쌉쌀한 맛이 일품이었다. 평상에 앉은 사람 중에 미운 사위는 없었다. 어르신들은 오래된 익숙함에 더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곽재구 시인이 먼저 들여다 본 것일까. 아무래도 ‘어란’은 늘어진 난초보다는 어머니의 알집이라는 해석이 절묘하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맴도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숟가락으로 김국을 먹고 있는 이는 나밖에 없다. 자처해서 미운 사위가 될 수는 없다. 아예 숟가락을 놓고 김국을 마신다. 그러고 보니, 1월인데도 춥지가 않다. 새하얀 눈이 오랜 시간 쌓여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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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암탉이 라자냐에 빠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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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그들은 연인이 된다. 그러나 축구팀과 사랑에 빠지면, 연인보다 조금 더 끈적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른바,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 나의 팀이 매일 승승장구하며 행복하고 평화로운 연애가 지속되면 참 좋을텐데, 뻔한 스포츠 만화처럼 현실에서도 어김없이 라이벌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긴다. 이때 내가 순순히 상대팀의 승리를 인정하고 박수쳐줄 것을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좌절하고, 분노하며 상대를 향해 매우 불편한 감정에 휩싸일 뿐이다. ‘다음에는 당한만큼 돌려주리라’ 이를 박박 갈면서 말이다. 그런데, 오늘 내가 이야기할 우리의 라이벌은 그런 라이벌이 아니다.

라이벌. 국어사전의 정의를 빌리자면,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맞수’.리그 우승을 향해 경쟁하는 강팀은 모두 아스날의 라이벌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별난 ‘라이벌 아닌 라이벌’이 하나 있다. 라이벌이 아닌 이유는, 언제나 우리가 승리하니까(사실은 가끔 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벌인 이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하는 상대니까. 클럽 앰블럼에 '닭'이 새겨져있는 그들의 이름은 ‘토튼햄 핫스퍼’. 아스날과 토튼햄.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는 이 두 팀이 부딪치는 날,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한 ‘북런던 더비’가 펼쳐진다.


[출처: Arsenal Legends - Thierry Henry, BBC Match of the Day] 

아스날과 토튼햄이 처음부터 이렇게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갈등의 시작은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아스날 홈구장은 런던 남동쪽 플럼스테드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리적인 이유때문에 관중 수입이 신통치 않았다. 결국 북런던의 하이버리로 경기장을 옮기게 되었고, 이 결정에 토튼햄은 분노했다. 왜냐하면 하이버리는 토튼햄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으로부터 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아스날과 토튼햄은 가장 근접한 이웃인 동시에 로컬 라이벌로서의 관계가 정립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북런던 더비’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경기 중 하나가 되었다.

워낙 사이가 안좋은 두 팀인지라 서로간의 선수 이적도 극히 드물었는데, 2001년에 토튼햄 팬들을 충격에 빠트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토튼햄의 주장이자 핵심 선수였던 솔 캠벨이 재계약을 미루고 있었고, 그는 “다른 곳으로 떠날 수는 있어도 아스날과는 계약하지 않을 것” 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문제는, 캠벨이 결국 아스날행을 택했다는 것. 아스날 팬들은 라이벌의 주장을 뺏어왔다며 토튼햄을 조롱했고, 이에 일부 과격한 토튼햄 팬들은 그를 ‘유다’ 라고 부르며 살해 협박까지 했다. 캠벨은 아스날로 이적 후, 토니 아담스와 함께 단단한 중앙 수비를 구축했고, 바로 그 시즌 아스날에서 프리미어 리그와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상상해보라. 우리팀의 주장이었던 선수가 라이벌 팀으로 넘어가 대활약을 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얼마나 속터지는 일인가.


[출처: Arsenal Seaon Review 2001-02] 

서로간의 깊은 감정의 앙금과는 별개로, 아스날과 토튼햄의 싸움에서 승자는 늘 아스날이었다. 1995년 이후, 현재까지도 토튼햄은 최종 리그 순위에서 아스날 위에 올라선 적이 없다. 그런데 중간에 딱 한 번, 토튼햄이 아스날을 넘을 뻔한 적이 있었다. 2005-06 시즌, 리그 한 경기를 남겨두고 토튼햄은 4위, 아스날은 5위. 토튼햄은 마지막 경기였던 웨스트햄전을 이기면 그대로 4위를 확정짓는 상황이었다. 4위는 챔피언스 리그, 5위는 한 단계 아래의 UEFA컵을 의미하므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위해 4위 자리는 아스날, 토튼햄 모두에게 절실했다.

드디어 아스날을 추월할 11년 만의 거사를 앞둔 경기 전날 밤, 토튼햄 선수단은 평소대로 저녁 7시쯤 런던 카나리 와프의 메리어트 호텔에 모였다. 호텔 측은 선수들을 위해 특별한 뷔페를 준비했고, 대다수의 선수들이 라자냐를 먹었다. 그런데 새벽 5시, 토튼햄의 주전 선수 10명이 갑작스런 구토와 설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다비즈, 타이니오, 킨, 도슨, 캐릭, 레논, 체르니, 데이븐포트, 바나드, 리. 그 중에서도 캐릭의 증세가 제일 심했고 걷는 것조차도 어려워했다. 이에 토튼햄의 회장 다니엘 레비는 프리미어 리그 측에 경기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프리미어 리그 최고 경영자였던 리차드 스쿠다모어는 클럽간 합의한 결정에 맡기되, 때에 따라서는 클럽을 처벌하거나 승점을 삭감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토튼햄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잘 서있지도 못하는 10명의 선수를 데리고 중요한 경기를 치러서 4위에 오를 기회를 날리느냐, 혹은 승점 삭감을 감수하고 경기를 연기시키느냐. 어느 쪽으로든 챔피언스 리그에서 뛸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상대팀이었던 웨스트햄은 경기를 연기하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다음 날로 미뤄지는 것은 원치 않았고, 3시 경기를 7시로 연기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었다. 토튼햄도 4시간 정도면 선수들이 회복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는 낮이었고 웨스트햄 팬들이 경기장 주변에 모여들어 있었다. 경찰은 갑작스레 경기 시간을 4시간이나 연기하면 이들을 안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고, 2시간만 연기하는 것만 허락했다. 토튼햄 입장에서 2시간을 연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예정대로 경기는 오후 3시에 시작되었다. 결국, 토튼햄은 패했고 아스날은 승리하면서, 두 팀의 순위는 토튼햄 5위, 아스날 4위로 극적으로 뒤바뀌어 운명의 여신은 또다시 아스날을 향해 웃었다.

[출처: 데일리 미러, 텔레그라프, 데일리 메일 캡쳐] 

당시 토튼햄의 감독이었던 마틴 욜은 말하길, “무슨 음모가 깔려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고, 클럽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커다란 뷔페였고, 수많은 접시와 스테이크, 치킨, 각종 음식들이 있었다. 새벽 5시쯤, 선수들이 아프기 시작했고, 아침이 되자 6, 7명이 아프게 되었다. 오후 1시, 클럽 회장과 비서는 이 일을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아팠기 때문에 환경 건강 담당관도 호텔을 방문했다. 과거에 두세명의 선수가 아팠던 적은 있으나, 같은 날에 10명이 아팠던 적은 처음이다. 어떤 방해 공작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모르는 일이다.”

잉글랜드 보건국은 호텔 음식의 샘플을 가져가 조사했지만 음식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선수들의 증상이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바이러스성 장염이라는 것만 밝혀졌다. 이후, 당시에 토튼햄 선수연던 조니 잭슨은 ‘라자냐 게이트’는 과장된 것이며, 실제로 아팠던 것은 마이클 캐릭 한 명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와서 누가 아팠고 안아팠고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결과는 변함없이 토튼햄이 드라마틱하게 또다시 아스날에게 밀렸다는 것이고, 두고두고 놀릴 수 있는 좋은 이야기거리까지 생겼다. 특히, 이 사건을 기념(?)하여 토튼햄 팬들을 조롱하는 <라자냐> 응원가도 만들어졌다. 아스날 팬들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토튼햄을 조롱할 때 광범위하게 불려진다고 한다.



Lasagne woooah! (라자냐 오오오!)
Lasagne woooah! (라자냐 오오오!)
We laughed ourselve to bits (우리는 엄청 웃었지)
When Tottenham got the s**ts (토튼햄이 X을 먹었을 때)


[출처: BT Sport] 


돌아보니 내가 아스날과 연애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인 것 같다. 한끝 차이로 아스날이 아닌 그 옆동네의 토튼햄과 눈이 맞았다면, 라이벌 팬들의 조롱까지 더해져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아스날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하다고 느껴왔는데, 역시 행복은 상대적인 것인가 보다. 아스날을 넘어보겠다는 토튼햄의 바람은 올해도 이뤄지기 어려워보인다. 우승권에서 경쟁중인 아스날은 토튼햄과 이미 차이가 벌어져 더 위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열린 2014년의 첫 ‘북런던 더비’의 승부도 토마스 로시츠키의 놀라운 골에 힘입어 아스날의 1:0 승리. 월요일 출근의 부담 때문에 이 멋진 골을 직접 보지 못하고 잠을 청한 나의 선택은 조금 아쉽지만, 어쨌든 라이벌을 꺾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다시 말하지만, 축구팀과 사랑에 빠진 그들은 팀과 운명 공동체가 된다. 아스날의 라이벌은 나의 라이벌이 된다. 라이벌의 팬들도 나의 라이벌이 된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가 읽기 싫어지고, 아델의 노래를 잘 안듣게 되고, 주드 로의 영화가 점차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도 그들 모두가 토튼햄 팬이기 때문일까. 유치해도 어쩔 수 없다. 그깟 공놀이는 당신이 우리편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질문한다.

“축구 좋아하세요? 혹시 어느 팀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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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三海珍味 삼해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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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海

강릉, 늦겨울에 맛보는 도루묵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바다의 매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동해가 아닐까.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대관령 고개를 넘는 순간 푸른 바다가 펼쳐진 동해가 시야에 들어온다. 강릉JC에서 속초 방향으로 10여 분을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주문진항. 강릉 최대의 항구 주문진항은 사시사철 분주하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는 양미리와 도루묵이 좌판마다 수북이 쌓이고, 한겨울에는 대게와 임연수어가 제철을 맞는다. 홍게잡이가 끝나는 여름이면 오징어잡이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다시 돌고 도는 것이다.


(좌) 동해안 겨울철 별미로 꼽히는 도루묵. 알을 밴 암컷은 구이로, 수컷은 세꼬시나 탕 요리로 즐겨 먹는다.
(우) 주문진항 앞 어민수산시장에서는 어민들이 직접 좌판을 늘어놓고 그날 잡은 수산물을 판다.

주문진항으로 향하기 전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제철을 맞는 도루묵을 만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던 것. “크기가 작은 도루묵은 냉동 보관하기가 쉬워 연중 내내 맛볼 수 있답니다.” 주문진 수산시장 건너편 좌판 골목에서 생선구잇집을 운영하는 윤난실 씨의 말에 안도한다. 마침 갈탄 불을 피운 석쇠 위로 도루묵을 굽는 냄새가 골목 가득 진동한다. 이곳 좌판 골목에선 2만 원 정도면 도루묵과 양미리, 가자미 등 각종 생선은 물론 오징어, 새우 등 다양한 해산물구이를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도루묵은 맛도 뛰어나지만 보는 맛도 좋은 생선이지요. 이렇게 마지막에 배를 갈라주면 먹음직스럽게 알이 톡 튀어나오니까요.” 생선구이가 가득 담긴 접시를 건네며 윤난실 씨가 말을 잇는다. 먼저 불그스레한 알을 품은 도루묵 한 토막을 집어 한입 베어 문다. 오독오독 씹히는 알은 바삭하고 맛이 담백하다. 살점이 많진 않지만 고소한 맛이 아주 좋다. 뼈째 먹는 양미리부터 내장까지 통으로 구운 오징어 통심이까지 동해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동해안의 대게는 12월부터 4월 사이 제철을 맞는다.

좌판 골목 너머로 곧장 이어지는 주문진항. 때마침 대게잡이 어선이 부두로 들어선다. 이내 어선에서 살이 꽉 차오른 커다란 대게를 쏟아낸다. 크기와 상태에 따라 3단계로 나눠 플라스틱 상자에 분류하는데, 이 중 품질이 가장 좋은 것은 곧장 영덕으로 보낸다고 한다. 남은 대게는 항구 옆 어민수산시장으로 실려 간다. 어선 주인이 직접 수산물을 파는 어민수산시장은 유통 과정이 없어 값이 저렴하다. 각 상점의 이름은 대길호, 금영호, 성산호 등 각자의 어선명을 그대로 썼다. 조금 전 들어온 어선이 유민호라는 사실도 대게를 실어나른 가게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어민수산시장은 제철 수산물을 한눈에 파악하기에도 그만이다. 임연수어부터 가자미, 도치, 대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거대한 문어까지, 주문진 앞바다에서 갓 잡아들인 싱싱한 수산물이 좌판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로컬 푸드’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MAKE IT HAPPEN

가는 방법

-강릉 주문진으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에서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북강릉IC에서 빠져나와 7번 국도를 타면 된다.

먹을 곳


-주문진 수산시장 건너편 좌판 골목에는 갈탄 불에 다양한 생선을 구워 내는 생선구이 간이식당이 모여 있다. 생선구이 1접시 2만 원부터.
어민수산시장에서는 주문진 앞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수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대게 1상자 5만 원부터.

포항, 모여서 먹는 국수

포항에서 호미곶으로 향하는 길에 자리한 구룡포항. 외지인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일출을 보거나 과메기를 맛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일본인이 이 일대에 정착하면서 경북 지방 최대 어항으로 명성을 떨쳤다. 세월과 함께 마을 주민은 점차 포항 도심으로 이주했고, 구룡포항의 영광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마을의 규모는 줄었지만 구룡포항은 여전히 활기를 띤다. 이유는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최대의 과메기 산지기 때문. 겨우내 구룡포항 주변의 바닷가에서 붉은 맨살을 드러낸 청어와 꽁치를 바닷바람에 말리는 풍경은 이곳의 일상과 같다.


(좌) 과거 청어로 만들어 먹던 과메기는 꽁치를 말린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우) 구룡포항 어민의 애환이 담겨 있는 모리국수

구룡포의 주인공이 과메기라면 숨은 조연은 구룡포항 뒷골목 어귀의 자그마한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모리국수다. “배고프던 시절 구룡포 어민끼리 함께 모여서 먹기 시작해서 모리국수라고 부르지요.” 올해로 47년째 모리국수를 만들어온 까꾸네 식당의 주인 이옥순 할머니가 모리국수의 기원을 들려준다. 원형 테이블 4개가 전부인 이 허름한 어촌 식당은 주말이면 합석은 기본, 골목 밖으로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구룡포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오로지 모리국수 하나만 준비하기에 메뉴판은 없고, 인원에 맞는 가격만 덩그러니 벽에 붙어 있다. 주인 할머니가 직접 커다란 양은 냄비를 들고 테이블 한복판에 국수를 내어준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냄비에는 뻘건 육수에 납작한 칼국수 면이 가득 들어있다. 국자로 면을 뜨면 국물 아래에 숨어 있던 아귀, 미역치, 명태, 홍합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낸다. “요즘 구룡포에서 아귀가 많이 잡히지 않아 철에 맞는 생선을 같이 넣어 끓였지요.” 매일 새벽 구룡포항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모리국수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것. 후루룩 국수를 입안에 넣고 보니 칼칼한 아귀찜과 얼큰한 매운탕이 적절하게 섞인 맛이다. 통통한 생선 살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해지는 육수의 맛도 일품.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양 또한 푸짐하다. “볼품없는 국수 때문에 여기까지들 찾아오는데, 많이 줘야지요. 내가 달리 해드릴 게 있겠어요?” 양은 냄비 하나를 두고 떠먹는 단출한 국수지만 주인 할머니의 이런 따뜻한 인심이 오랜 기간 구룡포의 터줏대감이 된 비결인 듯싶다.

MAKE IT HAPPEN

가는 방법

-구룡포항까지는 포항 시내에서 31번 국도를 탄 뒤, 나곡서원에서 929번 지방도로로 나온다.

먹을 곳

-구룡포항 인근에는 과메기 장터가 부두 외곽에 늘어서 있다. 과메기 20마리 1만 원부터.
까꾸네 식당의 모리국수는 아귀 등 다양한 해산물을 칼국수 소면과 함께 푹 끓여 만든다. 식당 인근의 구룡포 양조장에서 만드는 탁주를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모리국수 1만2,000원부터(2인분 기준), 054 276 2298.


南海

통영, 술 한잔 해산물 한 입

통영에서 단 한 번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물메기탕, 도다리쑥국, 멍게 비빔밥, 싱싱한 생굴… 해산물의 무궁무진한 보물창고 같은 통영에서 한 가지를 고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훌륭한 대안이 하나 있다. 통영만의 독특한 술집 문화라 할 수 있는 다찌집으로 향하는 것. ‘선 채로 술을 마신다’라는 뜻의 일본어 ‘다찌노미(立飮み)’에서 유래한 다찌집은 과거에 빠르게 술안주를 내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해산물이 풍부한 통영에서는 자연스레 술안주로 해산물 요리를 즐겼고, 술을 시킬 때마다 주인이 알아서 안주를 내주는 다찌집이 하나의 지역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동피랑 마을에서 내려다본 통영 강구안 항구의 풍경

통영 강구안 항구 옆 항남동의 골목 안쪽에는 현지인이 즐겨 찾는 다찌집이 몰려 있다. 항구에서 가장 가까운 벅수실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찌집의 위력을 실감한다. 쏨뱅이무침, 과메기, 죽이 나오더니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참숭어전, 굴찜, 해삼 내장, 밀치(가숭어) 회가 차례로 상 위에 차려진다. 연이어 가자미구이와 물메기탕까지, 널찍한 상이 순식간에 해산물의 격전장으로 뒤바뀐다. “이것도 한번 드셔보세요. 통영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랍니다.” 벅수실비의 주인 김순점 씨가 사과와 양파를 간장에 버무린 꽃게 회를 하나 더 내온다. 보통의 간장 게장과 달리 상큼한 맛이 색다르다. “물메기탕은 조미료가 따로 필요 없어요. 물메기만으로 시원한 맛을 내거든요.” 국자로 물메기탕을 떠 주며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숟가락으로 살짝 물메기를 건드리니 부드럽게 살점이 떨어진다. 국에서는 은은한 남해의 향이 감돌고, 물컹한 물메기 살은 입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다.


통영의 독특한 술집 문화로 남아 있는 다찌집에선 풍성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술은 적당히 인원수에 맞춰 파란 플라스틱 원통에 몇 병씩 담아서 내준다. 거나하게 술상을 벌인 옆 테이블의 현지인이 말을 붙인다. “다찌집은 늦게 올수록 손해예요. 재료가 떨어지기 전에 와야 훨씬 푸짐하게 먹을 수 있거든.” 이미 상 위에는 빈 자리가 하나도 없는데 우리 일행의 상차림에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이다. 술 1병을 통에서 집어 들고 통영의 싱싱한 해산물을 안주 삼아 1잔 기울여본다. 경남 지역 소주 ‘좋은데이’를 빈 잔에 채우니 오늘 밤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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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통영 강구안 방면으로 가려면 통영대전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통영IC에서 나오면 된다.

먹을 곳

벅수실비는 10여 년 동안 통영 현지인에게서 사랑 받아온 다찌집이다. 기본 상차림 6만 원, 055 641 4684.

장흥, 매생이탕 한 그릇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전라도에 진입하는데, 갑작스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몽글몽글하게 내리던 눈발이 점점 거세지더니,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다. 보성을 지나 장흥과 가까워지자 눈발이 서서히 가늘어지고, 남해와 맞닿은 내저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멈춰버렸다. 완도와 고흥 사이 내륙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위치한 장흥은 겨울철에도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아 매생이 양식에 알맞은 기후 조건을 갖췄다. 얼핏 파래 같기도 하고, 가는 미역 같기도 한 매생이가 남도의 별미로 자리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장흥 내저 마을 앞의 매생이 양식장에선 겨우내 수확을 한다.

내저마을은 장흥 최대의 매생이 산지.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 선창에서는 매생이 세척이 한창 진행 중이다. 선창 한복판에 벼를 터는 탈곡기처럼 생긴 세척 기계 안으로 양식장에서 막 거둬들인 매생이를 차곡차곡 집어 넣고 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이 외딴 어촌 마을에서 일하는 모습이 영 낯설다. “방학 동안 친구 아버지 댁의 일손을 돕고 있어요.” 약 50가구가 모여 사는 내저마을에서 매생이 양식업에 종사하는 곳은 40가구 정도. 이렇게 매생이를 수확하는 겨울철이면 타지로 나간 식구를 모두 동원해 매생이 수확에 집중한다. 선창에 정박한 모터보트는 매생이 양식을 위한 중요한 운송 수단. 양식장을 직접 보고 싶어 바다로 막 출발하려는 삼봉호를 얻어 탄다. 약 5분쯤 연안을 따라 돌아 들어가니 잔잔한 바다 위로 대나무를 줄줄이 세운 매생이 양식장이 보인다. 마침 양식장에서는 한 부부가 배 위에서 매생이를 거둬들이고 있다. 몸을 배에 반만 걸친 채 물속에 잠긴 매생이를 일일이 손으로 훑어내는 중이다. 고된 채취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겨울철이면 이렇게 보통 하루 4~5시간씩 배 위에서 보내야해요. 몸이 힘들지만 운동이 된다고 생각하면 또 마음이 편하답니다.” 내저마을에서 매생이 양식업에 종사한 지 20년이 넘는 장삼화 씨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한다.


칼슘과 철분이 풍부한 매생이탕

장흥에서는 정작 매생이 전문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매생이가 너무 흔해서 일반 식당에서 기본 국과 반찬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다. 수소문해 내저마을의 매생이로 요리를 내는 장흥 읍내의 식당으로 향한다. 매생이탕 국물을 한술 떠 입안에 넣어본다. 끈끈한 식감이 낯설면서도 깊은 바다 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릇을 비우는 동안 고요한 내저마을 앞 남해의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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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장흥 내저마을로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장흥IC에서 나온 뒤 23번 국도를 타고 대덕읍 방향으로 간다.

먹을 곳

-장흥토요시장 안에 있는 끄니걱정은 인근의 한우 직판장에서 사 온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삼합 전문 식당이다. 내저마을에서 수확한 매생이로 끓인 매생이탕, 매생이떡국, 매생이전을 별도로 주문해 맛볼 수 있다. 매생이탕 6,000원, 061 862 5678.


西海

영광, 굴비의 참맛

천장에 굴비를 매달아놓고 쳐다보며 식사를 했다는 자린고비의 일화가 전해지듯 예나 지금이나 굴비는 융숭한 대접을 받아온 귀한 음식이다. 특히 영광의 법성포에서 나는 굴비라면 더욱 그렇다. 법성포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변에는 규모가 큰 굴비 덕장이 늘어서 있고, 시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굴비 직판장과 식당의 간판 아래에는 굴비가 곶감을 말리듯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 많은 굴비가 모두 진짜 영광 굴비란 말인가. 나처럼 의심 많은 이를 위해 굴비를 묶은 두름마다 영광 굴비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식이 붙어 있다.


물이 빠져나간 법성포항의 풍경

과거 법성포 앞 칠산 바다에서 조기 조업이 성행했지만 최근에는 추자도나 흑산도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참조기로 굴비를 만든다. 영광에서 잡은 조기는 아니어도 여전히 이 지역의 굴비가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광 굴비를 으뜸으로 치는 까닭은 바로 천혜의 염장 조건 덕분이지요. 영광의 염전에서 나는 품질 좋은 천일염으로 참조기를 염장해 짧게는 4시간, 길게는 100일에 걸쳐 서해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말립니다.” 법성포굴비정식에서 일하는 영광 토박이 서준영 씨가 설명한다. “섶간이라고 하는 염장을 할 땐 조기의 아가미에 먼저 소금을 치지요. 이것은 아가미가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굴비를 말리는 시간이 저마다 다른 이유는 구이와 찜, 보리굴비 등 조리 용도에 따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조기를 보통 짚으로 매달아 말렸기에 자연스레 조기의 허리가 굽었고, 그래서 굴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 한다.


(좌) 참조기를 염장해 건조하는 영광 굴비
(우) 법성포의 굴비 정식에는 굴비를 주재료로 만든 다채로운 요리가 포함되어 있다.

법성포굴비정식은 굴비를 기본 재료로 다채롭게 상을 차려내는 곳이다. 구이는 물론, 요즘 흔히 보기 힘든 보리굴비, 조기젓갈, 조기맑은탕까지. 귀한 굴비를 여러가지 요리로 맛볼 수 있어 그야말로 호사다. 보리굴비는 녹차에 말아 먹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서준영 씨는 강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영광에서는 보리굴비를 그냥 먹거나 찬물에 말아 먹습니다. 굴비 본연의 맛을 느끼려면 다른 맛을 첨가해선 안 돼요.” 이어 굴비구이를 제대로 먹는 방법을 알려준다. 먼저 머리를 뚝 잘라낸 뒤, 지느러미를 떼어내고 살점을 툭툭 발라낸다. 영광 굴비의 살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어 젓가락으로 건드려도 잘 으스러지지 않는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굴비에 집중하느라 간장게장, 홍어삼합 등 다른 진귀한 요리에 도저히 한눈팔 틈이 없다. “좋은 음식이란 요리 솜씨가 아니라 좋은 재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법성포에서 말린 참조기로 만들어낸 영광 굴비를 실컷 맛보고 나서야 서준영 씨가 처음 해준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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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영광 법성포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영광IC나 함평IC로 나온 뒤 22번 국도를 타고 법성면 방면으로 가면 된다.

먹을 곳

-법성포항 앞 간척지에 3년 전 문을 연 법성포굴비정식에서는 굴비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낸다. 영광 지역에서 주로 먹는 참모시 송편과 법성포 전통 증류주 토종도 맛볼 수 있다. 7만 원(2인), 061 356 7575.

서산, 진국이란 이런 것

서산 간월호의 방조제를 지나는 순간 멀찍이 그림 같은 풍경과 마주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절 간월암 뒤로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사실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육지로 향하는 길이 열리고 닫힌다. 이곳의 황홀한 풍경 너머에는 특별한 별미가 하나 숨어 있다. 서산을 비롯해 인근의 당진, 예산 등 이 지역 갯벌의 싱싱한 굴로 담근 어리굴젓이다. 특히 간월암 인근 지역에서 채취한 굴로 만든 어리굴젓은 과거 임금에게 올릴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김장철에 담근 게국지는 솥에 푹 끓여야 더욱 깊은 맛을 낸다.

어리굴젓 외에도 서산 사람이 애지중지하는 향토 음식이 한 가지 더 있다. 이 지방에서 겨울철 김장을 할 때 함께 담그는 게국지가 바로 그 주인공. 서산 앞 갯벌에서 쉽게 잡히는 능쟁이 게와 각종 해산물, 배추를 함께 넣어 담그고, 이렇게 김치와 같이 담근 게국지는 바로 먹지 않고 찌개로 끓여서 먹는다. 서산시청 앞 골목 어귀에 있는 진국집은 20년 넘도록 게국지 백반을 내는 곳.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적한 골목과 달리 식당 안은 게국지가 나오길 기다리는 이로 왁자지껄하다. 안쪽 방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기도 전에 아주머니 한 분이 게국지부터 호박찌개, 계란찜, 된장찌개까지 뚝배기 네 가지와 반찬이 담긴 커다란 원형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한 간월암 뒤로 석양이 지고 있다.

게국지의 첫맛은 오랜 묵은지를 먹었을 때처럼 시큼한 맛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게국지도 김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숙성됩니다. 철마다 맛이 다른 셈이죠.” 진국집을 운영하는 조이순 할머니의 아들 가삼현 씨가 바로 옆 테이블에서 게국지를 비우며 말을 붙인다. “밥맛이 없을 때 이만한 게 또 없더라고요.” 정말이지 게국지를 조금씩 먹다 보면 어느새 시큼하던 첫맛이 사라지고 짭조름한 해산물 향이 듬뿍 밴 배춧잎이 입맛에 착 감긴다. 함께 나오는 호박찌개도 서산의 별미긴 마찬가지. 늙은 호박의 껍질을 발라내고 소금에 절여 새우젓으로 간을 해 푹 끓여 내는 호박찌개는 구수하면서 달달하다. 들깨를 듬뿍 넣어 끓인 된장찌개는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별미 중 하나. 이렇게 숟가락질에 쉴 틈이 없다 보니 밥 한 그릇을 금방 비우고 어느새 공기밥을 하나 더 추가하고 만다. 진국이라 하면 이렇게 밥맛을 돋우는 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식당 밖으로 나와 단층 건물의 낡은 간판에 쓰인 ‘진국집’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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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서산 간월암으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홍성IC에서 나와 서산 A지구 방조제를 건넌다.

먹을 곳

-간월도 일대에서 채취한 굴로 만든 어리굴젓은 서산 지역 최고의 특산품이며, 간월도 길을 따라 직판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500그램 1만2,000원.
-게국지 백반을 전문으로 내는 진국집은 인근 동부시장에서 해산물 등 식자재를 미리 가져다주면 원하는 요리도 만들어준다. 게국지 백반 1인분 7,000원, 041 664 4994.

고현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정수임은 세계 곳곳을 그녀만의 시선으로 포착해온 여행 사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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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planet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 3월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광활한 호주 대륙 동남쪽 끝에서 240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 섬. 호주의 6개 주 중 하나인 태즈메이니아 주는 손꼽을 만큼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유명하다. 전체 면적의 약 40퍼센트가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을 정도. 주도는 호바트(Hobart)로 야생 탐험을 시작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도시지만 지난해 론리플래닛은 호바트의 자연보다 예술적 면모에 주목하며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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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설가 박경리의 고향, 통영에서 3박4일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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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간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가겠다는 안내방송에 눈을 떴다. 창밖의 풍경은 온통 새하얗다. 고속도로는 물론 주변 산과 들판이 눈으로 뒤덮였다. 지금이 겨울이었나? 잠에서 덜 깬 상태라 잠시 판단력이 흐릿했다. 지금은 3월 중순이다. 중부지방에 비가 내릴거라는 뉴스는 봤지만, 눈이 온다는 소식은 금시초문이다. 어쨌거나 버스 창밖의 풍경은 넓은 들판과 나무 사이마다 눈이 소복히 쌓여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버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서울남부고속터미널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는 휴게소까지 두 시간을 달려왔다. 잠시 쉬고 두 시간을 더 달리자 통영에 도착했다. 평일 낮이라 도로에 차량이 없어 예정시간보다 30분 일찍 왔다. 터미널 앞 택시를 타고 통영중앙시장 부근에 내렸다. 숙소를 예약하진 않았지만 통영 관광은 이곳에서 시작하면 수월해진다. 여러 섬의 관문인 통영항 여객선터미널과 둘러볼 곳이 많은 미륵도가 멀지 않고, 두 개의 전통시장(중앙시장, 서호시장)도 걸어서 갈 수 있다. 해안 전망이 탁월한 동피랑마을과 남망산 조각공원, 이순신공원도 가까운 편이다. 저렴한 모텔과 게스트하우스도 사방에 널렸다. 굳이 비싼 호텔이나 리조트에 머물지 않아도 대부분의 객실의 바다 전망은 환상적이다.

경상남도 통영, ‘동양의 나폴리’라는 수식어는 진부하다. 통영은 통영 그 자체만으로도 빛난다. 다른 나라의 지역과 굳이 비교할 필요 따위도 없다. 서울을 두고 ‘동양의 OO’라고 부르면 서울 시민들은 과연 좋아할까? 게다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실제 바다를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짙은 회색빛의 서해나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동해와 달리 봄날에 찾은 남해는 따스하고 눈부시다. 해안 도로가 유난히 많은 통영에서 바다 위 반짝이는 윤슬이 무척 아름답다. 통영 앞바다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섬에 둘러 쌓여 있어 탁 트인 전망은 아니지만 갑갑한 느낌은 아니다. 바다 위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광경을 보기는 어렵지만 아침 저녁으로 통영 전역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에 자연의 신비를 느낀다.

TV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외지에서 온 여행객들의 통영 여행 코스는 너무 획일적이다. 동피랑 벽화마을에 오르고,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소매물도 등대 섬을 본 다음, 기념품으로 꿀빵을 산다. 여행사 단체관광이든 개별 자유여행이든 움직이는 동선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언론에 몇 차례 소개된 식당과 카페는 줄을 한참 서야 겨우 맛을 볼 수 있고, 그나마 밖에서 기다리는 다른 손님 때문에 눈치껏 빨리 나와야 한다. 최근엔 드라마 영향으로 장사도와 욕지도 등이 뜨고 있는데 통영에는 이곳 말고도 가볼만한 곳이 무궁무진하다. 음식 맛은 어찌나 좋은지! 노량진 수산시장보다 훨씬 저렴하고 싱싱하다. 겨울과 봄을 잇는 기간에는 생굴과 도다리쑥국뿐만 아니라 멍게, 도미도 같은 해산물을 만끽할 수 있다.

나부터 통영의 일반적인 여행 패턴을 벗어나고 싶었다. 의외로 방법은 간단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흔한 여행 블로그 후기 대신에 ‘통영’을 주제로 한 책을 찾아봤다. 의외로 많았다. 통영 토박이들이 들려주는 통영의 역사와 숨은 명소, 식당, 계절별 음식이 넘쳐났다. 특정 지역을 기준으로 한다면 ‘제주도’ 다음으로 통영을 소개한 책이 많지 않을까? 3년 전 서울에서 내려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의 저자 정환정과 함께 그가 추천한 장소를 찾아 다녔다. 대중교통과 두발만으로 통영 여행을 즐기는 코스를 구성해봤다. 가까운 거리는 가급적 걸었다. 통영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이 글을 참고하여 각자 여행 일정을 짜보자. 통영을 즐기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통영 주변에는 거제도와 한산도, 연대도, 비진도, 장사도, 욕지도, 사량도, 소매물도, 대매물도 등의 유명한 섬이 많지만, 섬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일단 내륙에 집중하겠다. 여행에 앞서 정환정 저자와 간략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와 통성명을 하고 보니, 필자와 동갑이었다.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것까지도 같은데, 나와 달리 그는 결혼을 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획일화된 삶을 따르기 싫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기로 마음 먹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 여겼던 여인이 나타났고 얼른 결혼했다. 부부 모두 서울 삶을 좋아하지 않았다. 개인 영역에 누군가 침범하는 게 싫었다. 부부는 서울 밖의 삶을 준비했고 처음엔 춘천과 전주를 꿈꾸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좌절하다가 아내의 직장이 통영에 분사한다는 소식을 듣고 5분 만에 이사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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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을 처음부터 좋아했나?

처음부터 통영을 좋아한 건 아니다. 첫인상은 별로였다. 2005년 한여름에 업무차 통영에 처음 와서 나시티만 입고 다녔다. 서울 올라갈 때 보니 팔에 수포가 생겼더라.

밥벌이는 어떻게 하나?

게스트하우스(뽈락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일간지나 월간지 등에 여행 칼럼도 쓴다. 계절별로 수입은 차이가 크다. 게스트하우스는 11월이 가장 비수기이다. 원래 전공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첫 직장에서 카메라에 손을 대고서 지금은 사진이 직업(프리랜서)이 되었다. 좀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게스트하우스에 사람이 북적북적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막 2세가 태어났지만, 자녀교육은 어떤가?

최근 서울에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을 때 통영은 하루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이곳의 공기는 정말 맑다. 바닷가에서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자본의 질로 서울에서 자녀 교육을 시키느니 통영의 좋은 환경에서 가르치겠다.

원래 여행을 좋아했나?

그렇다. 전세계 안다녀본 곳이 거의 없다. 돈을 벌면 여행 가서 다 쓰곤 했다. 아프리카에 몇 달 머물면서 사진으로 찍고 쓴 글로 책 『나는 아프리카에 탐닉한다』도 냈다. 내 여행의 모토는 ‘어슬렁어슬렁’, ‘두리번두리번’이다.

통영에 오는 여행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여유가 너무 없다.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통영에 왔을텐데 이곳에 와서도 좀처럼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한결 여유를 갖고 여행을 다니면 좋겠다.

겨울이 지나면서 남해의 땅과 바다는 서로 닮아가기 시작한다. 땅에서 새순이 돋는 것과 같은 시기에 바다는 검푸른 색이 조금씩 옅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고운 꽃에 앞서 울퉁불퉁한 쑥이 먼저 고개를 내밀면 그동안 ‘파랗다’고 이야기하던 바다가 마침내 짙은 녹색으로 조용히 빛난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아름다운 변화다. 어쩌면 나 혼자 몰랐을 수도 있다. -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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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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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통영과 사랑에 빠진 이유
-통영,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예술가
-통영 소매물도 가봤다면 연대도와 욕지도 어때요?
-남해의봄날 “통영에 출판사가 있다는 사실, 아직도 신기하세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정환정 저자와 둘러본 통영의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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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공원

이곳에 오면 “와, 통영 시민은 좋겠다!” 이런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이순신공원은 문을 연지 얼마 안되었지만 남해 전망이 탁월하다. 경사도 가파르지 않고 군데군데 의자와 놀이터 등 휴식공간도 충분하여 어린이부터 동네 어르신까지 수많은 통영 시민들이 온다. 여름철엔 바다에 뛰어들 수도 있다. 최근에 문을 연 이곳은 관광객은 물론 통영시민도 극찬한다. 의외로 외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아 관광객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은 왼쪽에 칼을 차고, 오른손으로 한산도 부근을 가리킨다. 그 위엄이 대단하다. 시내에서 이순신공원까지 걸어서 갈 수도 있지만, 주변 환경이 그닥 좋지 않으므로 택시를 추천한다. “공원은 참 잘 만들어놨는데, 진입로가 너무 불편하다” 정환정씨와 택시기사가 똑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일단 이순신공원에 도달하는 순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좋은 공원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입장료는 없다. 따뜻한 봄날, 도시락을 싸들고 반나절쯤 머물러 보자.




통영대교와 해저터널

통영 시내와 미륵도를 잇는 3개의 통로가 있다. 2개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충무교와 해저터널이다. 통영대교는 걸어서도 다닐 수 있는데 해질녘 이곳에서 본 석양은 통영인들만 알고 있는 명소이다. 한강대교에서 보는 일몰과는 또다른 풍경이다. 미륵도는 해저터널로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일반 지하도 같은 느낌이지만 바로 위로 바다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꽤 많은 통영 시민들이 해저터널을 이용한다. 터널 중간에 이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다. 1932년에 단기간에 완공된 해저터널은 동양 최초이기도 하다. 터널 안은 유리벽이 아니므로 헤엄치는 물고기는 안 보인다. 통행료는 없다.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 / 미륵산 트레킹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서 오히려 피하고 싶지만, 일단 가보면 왜 이곳에 매년 수십 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지 알 수 있다. 주말 오후에 가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야 한다. 15분 정도 케이블카로 이동하여 내리고 10분 정도 계단을 오르면 정상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180도 이상으로 펼쳐진 한려해상을 보고 있노라면 그대로 담아서 액자에 담고 싶다. 잔잔한 은빛 바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커다란 호수처럼 느껴진다. 주말, 케이블카에 대기줄 없이 탑승하려면 가급적 오전 9시에는 방문하자. 한 번에 8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왕복 9,000원 / 편도 5,500원)




미래사 / 편백나무 숲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 손쉽게 올라갔다면 내려올 때는 미래사쪽으로 걸어 내려오자. 초반엔 흙길이라 다소 불편하지만 곧 아늑한 숲길이 나타난다. 약 20분 정도 걸으면 숲속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미래사(사적 제339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적한 절 내를 빗질하는 스님의 풍경이 정겹다. 미래사 바로 옆에 위치한 편백나무 숲은 5월에 오면 가장 녹음이 짙다. 오전에 숲속을 거니멸 수백 그루가 넘는 편백나무에서 풍기는 향이 온몸을 감싼다. 편백나무 숲 산책로를 따라 5분만 걸으면 또다른 바다 전망을 볼 수 있다. 산책로에는 짚을 깔아놔서 발걸음이 무척 부드럽다.


산책로.JPG


해안산책로 (통영 바닷가 산책로)

산책로를 걷기 전, 일단 마리나리조트 1층에서 판매하는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곳 커피 맛이 꽤 괜찮다. 리조트 바로 뒤에서 시작되는 해안산책로는 천천히 걸어도 왕복 두 시간이면 가능한 거리다. 자전거(1인 5,000원)도 빌려주지만 가급적 두 발로 걷기를 추천한다. 천천히 거닐면서 섬과 바다를 조망하고, 때로는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보내기 좋다.




한산도 / 충무사 / 자전거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약 30분을 가면 한산도에 도착한다. 먼저 충무사에 가보자. 충무사 주변에 세워진 아름드리 나무가 웅장하다. 이곳에서 바라본 한산 앞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치열했던 한산해전이 눈 앞에 그려진다. 한산도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릴 수 있으나, 4~11월에만 대여해준다. 자전거를 타고 섬 한 바퀴를 도는데 3~4시간 소요된다. 자전거 대여는 현장접수도 가능하나 예약(055-649-9207)해서 가면 확실하다. 총 26대의 자전거와 헬맷, MP3(음성해설)가 준비되어 있다.




중앙시장과 카페

통영 시민과 관광객이 한데 뒤엉켜 있다. 평일은 통영 사람이 훨씬 많다. 아주 친절하고 (사전에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을 때에도 표정이 자연스럽다. 맛나분식은 중앙시장 내에 있는 국수집이다. 멸치와 띠뽀리로 우려낸 국물이 일품인 국수, 여름이 지나면 더 맛이 깊어지는 비빔국수, 구수한 김밥 모두 맛있다. 정화순대의 순대와 간은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도 먹어보고 모두 감탄한 순대집이다. 담백한 족발의 맛도 일품이이다. 맛나분식과 정화순대 모두 중앙시장 입구 부근에 위치한다. 주말이면 차가 많이 몰려 20분이면 올 거리를 1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중앙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식당과 겸하는 해산물을 서울보다 훨씬 싸게 먹을 수 있다. 아주 싱싱하다. 꿀빵은 어디서 구매하더라도 1개 1,000원이며 보통 6개나 10개 세트로 판매한다. 맛은 엇비슷하다. 충무김밥은 1인분에 무려 4,500원이다. 8명이 먹었는데, 다들 서울 명동의 충무김밥이 더 맛있다고 느꼈다. 카페라떼를 주문하면 욕을 써주는 걸로 유명한 카페울라봉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곳 말고도 통영에는 예쁜 인테리어 시설에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카페가 많다.




도다리쑥국을 파는 식당 두 곳

도다리는 귀한 어종이 아니었다. 오래 전에는 광어로 속여 팔기도 해서 ‘좌광우도(눈이 왼쪽에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라는 말까지 있었다. 지금은 아주 귀한 몸으로 변모했다. 일단 시기가 제한적이다. 일본에서는 가을이 제철이라지만, 통영에서는 봄 도다리를 최고로 여긴다. 이 시기에 통영 들판에는 쑥을 캐는 여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쑥은 밑반찬으로도 해먹지만 도다리와 무를 함께 넣고 국을 만들 수 있다. 국물이 아주 맑다. 과음한 다음날 아침 도다리쑥국을 먹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식당은 통영여객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분소식당(055-644-0495)이 유명하지만 워낙 사람이 많이 몰려 점심 무렵엔 30분은 예사로 기다려야 한다. 바다모텔 1층의 홍도식당(통영시 동호동 남망산 문화회관 입구, 055-645-1439)도 도다리쑥국 맛이 아주 훌륭하다. 갈치조림과 메기탕, 멍게비빔밥 등 다른 메뉴도 깔끔하며 양도 많다.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에도 반한다.




산양일주도로

미륵도 해안을 따라 완주하는 상쾌한 드라이브 코스이다. 겨울철엔 붉게 만개한 동백꽃이 지천에 널려 있다. 멋진 전망과 더불어 당포성지와 달아공원, 통영ES리조트, 미래사, 도남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 바다 위 양식장도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굴과 성게가 이곳에서 나온다. 양식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종패만 내리면 알아서 잘 자라기 때문에 사실상 자연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품질도 더 우수하다. 자연산은 잡히자마자 볼품없이 쪼그라드는 경우가 많은데, 양식으로 거둔 해산물은 계속 싱싱하다.




박경리 기념관

『토지』『김약국의 딸들』의 故 박경리 작가를 추모하는 장소이다. 미륵산 중턱에 위치한 이 기념관에는 작가의 연보와 작품, 친필 원고, 애장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작업공간도 재현했으며, 책에 등장한 마을 풍경도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기념관 내 작은 상영관에는 박경리 작가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다. 오래 전에 출간된 그녀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독서실이 마련되어 있다. 한때 통영시에서는 입장료를 받으려고 했으나 유가족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통영에 가면 꼭 한 번 방문하길 추천한다.




당포성지

일몰을 보러 흔히 달아전망대로 가지만, 한적하고 시야도 탁 트인 당포성지를 더 추천한다. 정환정 저자가 통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그의 책 앞부분에도 특별한 설명 없이 이곳 사진을 두 면에 걸쳐 보여주고 있는데, 여행 전부터 궁금하던 곳이었다. 석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자그마한 주차 공간에는 발발이 한 마리가 우리뿐인 손님을 반갑게 맞이해준다. 약 5분 정도만 오르면 가뿐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성지를 뒤덮은 새싹 밟기가 조심스럽다. 한가운데 둥그러니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바라본 성지 주변과 바다 풍경은 굳이 해질녘이 아니어도 감동이다. 당포성지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때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서 왜구를 물리친 전승지이다. 임진왜란 때에도 이순신 장군이 이 성을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뜻 깊은 곳이다. (소재지: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전혁림 미술관 / 남해의봄날

전혁림 미술관과 남해의봄날 출판사 건물은 사이 좋게 옆에 꼭 붙어 있다. 대표이사를 포함하여 4명의 직원이 만드는 남해의봄날 출판사는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_로렌스 곽, 평화를 만드는 사람』『가업을 잇는 청년들』『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와 같은 호평을 받은 책을 여러 권 만들었다. (남해의봄날 인터뷰 http://ch.yes24.com/Article/View/23344)




김춘수 유품 전시관

건물 외관 자체는 멋이 없다. 접근성도 떨어진다. 왜 이런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볼거리는 꽤 많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은 멋진 액자로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시집과 원고,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동피랑 마을

워낙 많은 관광객이 훑고 지나가서 설명이 부차한 곳이다. 정상은 10여분이면 오르지만 의외로 가파르다. 한 번 왔던 관광객도 재방문을 유도하기 위하여 2년마다 그림을 교체한다. 가장 유명한 날개 벽화는 장소를 옮겼다. 마을 곳곳에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와 기념품 가게가 유혹한다. 동피랑 정상의 전망은 사실 탁 트인 전망은 아니다. 하지만 재개발 지역이었던 이곳이 벽화마을 덕분에 관광명소로 재탄생 된 것은 다행스럽다.




통영 앞바다 섬 나들이

이왕 섬에 간다면 1박을 하는 게 좋다. 당일치기는 섬 겉핥기 여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소매물도처럼 먼 섬에서 1박을 할 경우, 다음날 기상예보를 꼭 확인하자. 파도가 높으면 배가 안 떠서 섬에 갇힌다. 2013년 가을에 한려해상국립공원 통영지구의 대표적인 섬 여섯 곳(미륵도, 한산도, 비진도, 연대도, 매물도, 소매물도)의 트레킹 코스인 총 42.1㎞의 ‘바다 백리길’이 완성되었다. 이곳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비슷한 시기에 남해의봄날에서 출간한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를 참고하자.


봄에 떠나는 통영 3박4일 추천일정

1일차

[오전] 통영으로 이동!
[오후] 숙소 체크인 / 이순신 공원 / 통영대교 석양

2일차

[오전]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 미래사, 편백나무숲
[오후] 해안산책로, 한산도, 자전거, 충무사, 중앙시장

3일차

[오전] 통영 앞바다 섬 나들이
[오후] 산양일주도로 드라이브, 박경리 기념관, 당포성지 석양

4일차

[오전] 도남관광단지 요트, 전혁림 미술관
[오후] 김춘수 유품 전시관, 북포루, 집으로!

※ 위 일정은 자가용 없이 주로 걷거나 택시로 이동하는 경로
※ 섬 여행은 기상 여건에 따라 변동 가능성이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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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하고 전망도 좋은 통영 추천 숙소

통영에서 가장 전망이 좋고 유명한 모텔은 나폴리모텔이다. 최소 2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 하지만 이 주변에도 모텔은 수없이 많으며 숙박비가 저렴하며 전망도 우수하다. 혼자 여행을 왔거나, 여자끼리 왔다면 게스트하우스 숙박을 추천한다. 피와 살이 되는 훌륭한 여행 팁을 얻을 수 있다. 조용하고 깨끗한 곳을 원하면 뽈락게스트하우스를 추천한다.가족 단위 여행객은 금호 충무 마리나리조트도 좋은 선택이다.

미륵도

* 뽈락게스트하우스 http://cafe.naver.com/bbollakhouse
* 금호충무 마리나리조트 http://www.kumhoresort.co.kr/resort/

시내 (중앙시장 부근)

* 동피랑게스트하우스 http://동피랑게스트하우스.kr
* 리게스트하우스 http://www.leeguesthouse.com
* 나폴리모텔 http://www.tynapoli.co.kr
* 바다모텔 http://seamotel.fortour.kr


   통영 여행이 두 배 즐거워지는 추천 도서


서울 부부의 남해밥상

정환정 글,사진 | 남해의봄날

통영을 비롯 남해, 순천, 진도 등 남해안 곳곳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 남도의 맛, 남도의 특산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맛집 순례자들, 전국의 싱싱한 제철 로컬푸드를 찾아서 인터넷을 찾아 헤매는 주부들, 그리고 남해안 작은 도시에 정착한 젊은 부부의 로컬라이프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로컬북스가 드디어 독자들과 만난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홍대 앞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젊은 서울 부부가 결혼 3년 후 남쪽 바닷가 도시 통영에 정착, 그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로컬푸드를 찾아 순천, 진도, 남해, 거제 등 남해안 곳곳을 돌아다닌다. 쇼윈도에 걸린 옷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던 서울과는 달리 남해안에서의 삶은 산과 바다, 그리고 시장 좌판의 풍경을 통해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음을 알게 한다.


통영, 느리게 걷기

이경원 저 | 페이퍼북

관광 명소와 맛집을 찾아가는 방법, 관광지를 더 알차게 즐길 수 있는 법이 가득한 여행 서적. 인터넷만 찾으면 수두룩하게 나열되는 여행 정보는 이제 그만! 추억을 가득 안고 통영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작가와 함께 통영 일주를 시작해 보자. 아름다운 바다와 한적한 관광지로만 보이던 통영의 장소들이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가슴 벅차게도 느껴지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20여 년 전,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을 내내 그리워만 하던 그녀. 긴 시간 몸담았던 SM엔터테인먼트를 훌쩍 떠나 고향으로 달려간 그녀의 통영 사랑은 오랜 시간 그곳을 지켜온 토박이보다 더 깊고 진하다. 말리는 사람, 미쳤다고 책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통영 땅에 뿌리내린 그녀의 좌충우돌 우왕좌왕 통영 생활기를 들여다 보자. 어렴풋이 느끼던 통영이라는 곳이 가보고 싶은 여행지에서 살아보고 싶은 동네로 서서히 변화 될 것이다.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

전윤호 저 | 남해의봄날

통영 앞바다를 수놓은 수많은 섬들. 사이 좋게 옹기종기 어깨동무한 모습은 비슷비슷해 보여도 그 속에는 섬마다 서로 다른 풍경과 매력으로 가득하다.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 한산도, 은모래해변과 몽돌해변이 나란히 자리한 천혜의 섬 비진도, 에코아일랜드로 이름을 떨치는 연대도,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매물도와 소매물도, 일출과 일몰이 모두 아름다운 미륵도. 바다백리길 여섯 섬은 저마다의 테마를 지니고 있으며, 그 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과 이야기, 독특한 분위기로 여행자들을 매혹시킨다.




통영은 맛있다

강제윤 저 | 생각을담는집

《통영은 맛있다》는 경상도지만 경상도가 아닌 통영의 특별한 맛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오디세이다. 저자는 통영이 맛에 관한 한 경상도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나라 안에서 음식이 맛있기로 첫손 꼽히는 전주와 대등하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해산물 음식에 관한 한 전주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통영 음식의 탐식기만은 아니다. 통영의 맛에서 비롯된 통영의 멋, 통영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설서이기도 하다. 통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니 통영에 대한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여행 팁 1] 뽈락게스트하우스 정환정 주인장이 추천한 계절별 음식과 맛집

* 홍도복어 : 미륵도 쪽 해저터널 입구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복어 요리 전문점인데, 복국과 깔끔한 밑반찬이 일품입니다. 기왕 드시는 거라면 밀복(현재 16,000원)을 드셔보시길 바랍니다.
* 풍화김밥 : 여러 김밥집들 중 저희 부부 입맛에는 가장 잘 맞는 곳입니다. 맛이 깔끔한 편이거든요. 여객터미널 주차장 출입구 맞은편에 있습니다.
* 뚱보네 : 육개장과 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육개장이 참 맛있습니다. 냉면은 주문과 함께 즉석에서 면을 뽑아내 식감이 좋지요. 관광지와는 좀 떨어진 무전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정원 : 전혁림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습니다. 정식과 비빔밥 모두 맛이 좋습니다. 다만 방앗잎이 들어갈 때가 있으니 이 부분을 염두에 두세요.


[여행 팁 2] 통영 교통 안내

통영은 교통편이 불편한 편이므로 자가용이 없다면 택시를 이용하자. 콜택시(1,000원 추가)도 유용하다. 대부분의 명소와 미륵도는 택시로 이동 가능하며, 택시비도 저렴한 편이다. 통영 택시기사들은 모두 관광 가이드 교육을 받았는지 알아서 무엇을 물어보더라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비단 택시기사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통영 시민들은 모두 친절하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사람은 대부분 외지인이다.

[서울-통영 고속버스 인터넷 예매 안내]

서울남부 → 통영 / 우등고속 24,600원 / https://www.busterminal.or.kr
통영 → 서울경부 / 우등고속 32,400원 / http://www.kob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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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팁 3] 통영 여행 정보 홈페이지

* 통영시티투어
* 통영 케이블카 정보
* 통영이야길
* 동양의 나폴리 통영



[관련 기사]

-소설가 박경리의 고향, 통영에서 3박4일을 걷다
-내가 통영과 사랑에 빠진 이유
-통영,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예술가
-통영 소매물도 가봤다면 연대도와 욕지도 어때요?
-남해의봄날 “통영에 출판사가 있다는 사실, 아직도 신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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