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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성가족 성당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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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안에 공사가 끝날 거라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운 가족’이라는 뜻이야. 줄여서 성가족 성당. 이 성당엔 ‘탄생’, ‘수난’, ‘영광’이라고 이름 붙은 총 3개의 파사드, 쉽게 말해 문이 있어.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돌아가셨고 어떻게 승천했는지에 대한 인생 풀 스토리, 한마디로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예수편인 거지. 지금까지 지어진 건 동쪽의 탄생과 서쪽의 수난 둘뿐이고, 남쪽의 영광 파사드는 아직 건축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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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하게 솟은 거대 죽순탑은 모두 18개야. 8개밖에 못 본 것 같다고? 그럴 수밖에. 아직 다 못 지었거든. 12사도와 4복음서 저자(마태, 마가, 누가, 요한), 성모 마리아, 그리고 중앙의 예수탑까지 다 세우고 나면 정말 엄청날 거야. 완공될 예수탑의 높이가 170m인 건 알지? 171m인 서쪽의 몬주익 언덕보다 딱 1m 낮게 설계한 거라잖아. “인간의 창조물이 신의 창조물보다 높을 순 없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가우디의 굳은 의지였다고.


아참, 그러고 보니 가우디 얘기를 제대로 안 했네? 뭐,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대충은 알잖아.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년에 태어나서 1926년에 죽었고. 구엘 공원부터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여행객 십중팔구는 이 사람 때문에 바르셀로나를 찾는다는. 중요한 건, 이분이 엄청난 자연주의자라는 점이야. 쭉쭉 뻗은 나무들, 가지마다 매달린 벌집, 빨갛게 탐스러운 산딸기, 빙글빙글 소라 모양 나선 계단까지 성당 안은 무슨 밀림 속 같아. 도처에 나비랑 새가 날아다니고, 기둥 밑엔 거북이가 깔려 있질 않나, 어떤 건 살 잘 발라먹은 멧돼지 등뼈처럼 보이는 게 <정글의 법칙>을 찍어도 되겠더라고.

 

“창조는 신이 하고 인간은 오직 발견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던 가우디는 진짜 자연을 사랑했나 봐.


건축 비용은 순전히 기부금만으로 충당해 왔대. 그래서 오래 걸린 거겠지? 너무 더딘 거 아니냔 질문에 가우디는 또 이렇게 말했대. “내 고객은 급하지 않으세요.” 이 아저씨, 멘트가 좋은 게 예능감 있는 분인데?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 같지만 정부에선 2026년에 완공하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어. 가우디가 죽은 지 딱 100년째 되는 해거든. 앞으로 채 10년도 안 남은 건데 과연 가능할까? 요샌 입장료 수입도 건축에 투입된다고 하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만큼 더 빨리 지어질지도 모르지.


모두 다 가우디 작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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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빈치코드>를 보면 로버트 랭던 교수가 푸는 크립텍스란 암호가 나오지. A부터 Z까지 알파벳 다섯 글자로 만든 비밀 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도 이런 추리소설 같은 퍼즐이 숨어 있어.


기둥에 묶여 채찍질을 당하는 그리스도의 조각이 있는 수난 파사드에 가면 빙고게임처럼 숫자가 가득한 네모난 표를 발견하게 될 거야. 루빅스 큐브 같기도 하고 마방진처럼도 생겼지. 무작위로 적힌 숫자들 같지만 설마 그렇겠어?


가로 첫줄의 숫자들을 한번 더해볼까?

1 14 14 4=33


이번엔 세로로 첫줄을 더해볼까?
1 11 8 13=33


그렇다면 대각선은?
1 7 10 15=33

 

어떻게 숫자 4개를 더해도 그 합은 항상 33이 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의 나이를 뜻하지.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쳐. 근데 미치는 건 이렇게 33을 만드는 조합이 무려 스물여섯 가지가 나온단 거야! 말만 들어도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그렇담 하나 더.


숫자들을 자세히 보면 유독 10과 14만 두 번씩 나와. 왜일까? 크리스천이라면 알 텐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조롱하는 의미로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뜻의 라틴어 ‘INRI’라는 팻말을 같이 달았어. 이 I. N. R. I라는 네 철자의 알파벳 순서를 더하면 48이 나오거든? 근데 마방진 안에서 두 번씩 반복되는 숫자 10 10 14 14을 더해도 똑같이 48이 나오게 만든 거야. 즉, 동시에 두 가지 다른 상징을 한 틀 안에 숨겨놓은 거지. 정말 대단하지 않아? 나만 재밌는 거야?


중요한 건 이걸 만든 사람이 가우디가 아니라 조셉 마리아 수비락스(Josep Maria Subirachs)라는 이 동네 출신의 다른 조각가라는 거야(인터넷엔 다들 ‘수비라치’라고 하던데 까딸루냐 현지 친구들한테 물어봤더니 저렇게 발음하더라고). 이름에도 어쩜 예수님 아빠랑 엄마가 다 들어가 있는 게 왠지 수상하지?

 

이 사람, 작품 세계도 아주 독특해. 수난 파사드 옆에 수의에 찍힌 그리스도의 얼굴을 오목거울처럼 조각한 부조가 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시선이 180도로 따라다녀. 이 아저씨의 독특한 작품은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있어.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 가면 <하늘 기둥>이라는 거대한 돌덩이가 있거든?

 

88올림픽 때 이 아저씨가 갖다 놓은 작품이야.


그럼 왜 가우디가 아니라 수비락스가 맡게 됐을까? 사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꾸준히 만들어져온 게 아니야. 스페인 내전 때처럼 공사가 중단된 시기도 있었고, 심지어 계속 짓지 말자는 의견도 많았어. 철근 콘크리트를 쓰면서까지 가우디의 오리지널 디자인과 다른 성당을 꼭 완성시킬 필요가 있냐는 거였지.

 

2000년 전 밀로의 비너스가 두 팔이 떨어진 채 발굴됐다고 해서 마네킹 팔을 갖다 붙이는 거랑 같은 얘기라며 찬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던 끝에 1987년 재시공의 책임을 맡게 된 사람이 수비락스였던 거야. 백년 세월의 때가 묻은 가우디의 탄생 파사드와 직선이 강조된 수비락스의 수난 파사드가 느낌이 영 다른 건 당연한 거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우리는 하고 싶은 여행을 하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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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왜 카오산 로드로 향했을까?

 

남녀,-여행사정-31-01@방콕.jpg

 
카오산 로드를 벗어날 수 있나요?

 

“누가 태국에 가자고 했는지 모르겠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왔던 <비치, The Beach>란 영화를 보고 그 배경지인 피피섬에 가보고 싶었는데…… 왜 카오산 로드Khaosan Road로 향했을까?”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던 그 여자는 15년 전, 처음 떠났던 해외여행을 추억하며 말했다. 주변에 방콕을 다녀온 이들은 모두 카오산 로드가 ‘여행자의 성지’인 것처럼 떠받들었고 그녀도 다를 바 없었다.

 

“아무튼 그때만 해도 태국 여행의 시작은 방콕이었다고. 여행자라면 무조건 카오산 로드에 가야 했어. 우리도 다른 여행자들처럼 배낭을 메고 그 길 위에서 숙소를 잡았는데…. 좋았어.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거리, 카오산 로드에 우리가 찾던 태국을 모두 만날 수 있었거든. 숙소 앞에만 나와도 태국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바로 옆 건물에 들어가면 천천히 돌아가는 실링팬 아래에서 저렴한 가격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해외여행이 처음인 우리를 들뜨게 했거든. 낯선 태국어를 몰라도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고, 그 길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친절했어. 여행자에게 이만한 곳이 없단 생각이 들더라. 나중에서야 그게 다 우리 지갑을 노린 친절이란 것을 알았지만 뭐, 안전하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으니 돈 좀 더 내면 어때? 다음 여행도 당연한 듯 여행자 거리에 숙소를 잡게 되더라고.”

 

그 여자는 잠깐 말을 멈추고 긴 한숨을 쉬었다. 마치 15년 전 카오산 로드에서 숙소를 찾던 자신과 그곳과 한참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해 머무는 자신 사이에 무엇이 변했는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잠시 말을 멈춘 사이, 오래전 자신이 미련하게 붙잡고 있던 욕심이 무엇인지 생각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는 여행자 거리에 가야 여행이라고 생각했어. 현지인 틈에 머무는 여행을 왜 몰랐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매번 카오산 로드로 향했을까? 내 맘 한 켠에는 그 길을 벗어나 현지인들이 사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싶었는데 매번 그게 쉽지 않더라. 누군가 나에게 ‘방콕은 어땠어요?’라고 물을 때 아는 척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카오산 로드가 마치 방콕의 모든 것 같아서 그 거리에 가지 않으면 형편없는 여행을 하고 왔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까 두려웠거든. 또 한편으로는 ‘거기 안 갔는데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어.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방콕의 이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나도 그곳에 다녀온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을까? 한국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 해외여행을 떠났던 건데 그곳에서 마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나 봐.”

 

큰돈 써서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갔는데 남들이 찾아다니는 것 나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아닐까? 그러나 또 한 편에서는 자신의 여행이 남들과 조금은 다른 특별한 여행이길 바라는 것도 솔직한 심정일 게다. 여행자 거리에 머문다고 현지의 삶을 살피지 못하는 여행도 아니고, 현지인 동네에서 집을 구했다고 해도 그들과 친밀해지는 경험을 하고 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는 하고 싶은 여행을 하면 되는데….


관광지를 안 가도 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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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은 일상인가요? 관광지 인가요?

 

며칠 전, 블로그에 어떤 글 하나를 올렸다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포털과 SNS를 중심으로 일파만파 퍼지더니 삼 일 만에 40만 명을 찍었다. 쓸 때만 해도 논란이 될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 덧글에는 ‘여행 초보나 할 법한 생각이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있다’ 등의 내용이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공감한다는 의견이 나머지 반이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는 글이었고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었음을 반성한다. 그렇다고 일 년에 절반을 여행하며 사는 사람에게 ‘여행 초보’라는 단어를 붙인 건 쪼끔 자존심이 상한다. 

 

독일 말밖에 들리지 않는 스페인 마요르카섬에서 그들은 정작 어떤 기분일는지, 우리처럼 외국에서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을 만나기 싫을까가 <한국인이 많은 여행지는 싫어요>라는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시간과 돈을 들여 낯선 풍경과 언어로 여행의 감각을 깨우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빈번할 정도로 말끝마다 ‘한국인이 없어서 좋았던 여행지’ 임을 강조한다. 타인의 행동, 생김새, 인적 사항 등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은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해외에 나가는 이때뿐이라도 자국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길 갈망한다.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에선 ‘거기까지 가서 그걸 안 봤다고?’ 혹은 ‘00을 안 먹어 봤다고?’하면서 자신의 여행은 특별하다는 식으로 타인의 여행을 훈수하고 평가한다. 한국인들이 없는 곳에 가 봤다는 경험이 스스로 우쭐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 경험이 많은 이들일수록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에 가기 어렵고, 한국인의 발길이 적은 장소를 말한다.

 

한 달씩 살아보는 여행을 하기 전, 방콕을 일곱 차례나 방문했다. 일곱 번 모두를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 로드’에 숙소를 잡고 여행 책자에 소개된 관광명소를 따라 여행을 했다. 나는 여행에서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 귀한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쪼개가며 관광지와 맛집을 찾아다녔다. 한 번은 방콕의 유명한 해산물 레스토랑에 갔는데 손님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었다. 다른 한국인을 신경 쓰느라 편하게 음식을 먹지 못했다. 마치 서울의 그럴싸하게 차려진 태국 레스토랑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현지인이 북적거리는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최고의 한 끼를 맛보며 영혼까지 탈탈 털렸던 아찔한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리라. 여행 책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국의 블로그를 뒤지지 않고, 모험심을 풀가동시켜 들어갔던 로컬 100%의 현지 식당 말이다. 쭈뼛거리며 들어섰던 식당에서 인생 최고의 태국 요리를 맛보았다.

 

모험하지 않고서는 여행의 만족도는 고만고만하다. 카오산 로드의 길거리 음식, 밤거리, 싸고 허름한 숙소에서 만난 경험이 방콕의 전부가 된다. 여행을 처음 떠났던 5년 전과 달리, 이제는 ‘한 달 살기’, ‘살아보는 여행’이 열풍이다. 낯설었던 여행법이 유행이 되고 각자가 자신들만의 여행 방식을 고안해 낸다. 바쁘게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물며 현지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여행이 되었다.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만 바꿔도 전혀 다른 매력이 찾아오는 걸 나는 일곱 번의 ‘카오산 로드’라는 안온한 장소를 택한 후에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맥주가 맛있는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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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맥주를 찾아 여행을 즐기는 맥주덕후들이 내 주변에도 은근히 많다. 중국의 칭다오, 필리핀의 산미겔, 아일랜드의 기네스, 체코의 필스너, 벨기에의 호가든? 오죽하면 맥주만 마시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가 세계 3대 축제가 됐을까? 그런 사람들한테 희소식. 이젠 맥주여행 리스트에 바르셀로나를 추가해도 좋을 것 같다.


바르셀로나의 술, 하면 대뜸 상그리아나 카바와인부터 떠오르지만 더운 여름날엔 시원한 생맥주 한 잔만큼 반가운 게 없다. 어느 레스토랑을 가든 “우나 까냐, 뽀르파보르(Una ca?a, por favor)”를 기억하자. 스페인어로 맥주는 세르베사(cerveza)이지만 우리가 ‘500 한 잔 주세요’ 하듯이 주문할 때 쓰는 표현이다.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맥주 브랜드는 1876년에 설립된 에스뜨레야담(Estrella Damm)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라거 맥주로 청량감이 좋다. 흑맥주를 선호하는 사람은 같은 회사의 볼담(Voll Damm)을 마시면 된다. 도수는 7.2?로 조금 올라가지만 묵직한 맛이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달랑 별(★) 한 개가 그려져 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이네딧담(Inedit Damm)이라는, 한국에서 더 유명한 맥주도 있다. 14년 연속 미슐랭 3스타를 받은 분자요리의 대가 페란 아드리아와 콜라보해서 만든 다이닝용 비어다. 엄청난 고급 맥주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그냥 가볍게 식사에 곁들여 마시는 반주다. 바르셀로나에선 마트에서 3.65유로(약 5000원)면 살 수 있는데 한국에선 2만 원 정도 한다니 이름값 한번 엄청나다. 톡 쏘는 청량감보다는 카푸치노 같은 거품과 은은한 과일향이 가볍고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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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감 하면 모리츠(Moritz) 맥주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 출신의루이스 모리츠 트라우트만이라는 이민자가 설립한 가족 브랜드로 부드러운 목 넘김이 일품인 페일 라거다. 바르셀로나 시내 산안토니(Sant Antoni)에 아예 본사 공장이 있는데 음식도 맛있고 재미있는 기념품도 많아서 줄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특히 여자들이 좋아하는 건 끌라라(Clara)다. 레몬 맥주라고 해야 할까? ‘깨끗한 맥주’라는 뜻인데, 청량한 과일향에 도수도 높지 않아 타파스를 먹으며 음료처럼 마시기에 좋았다.

 

요즘은 한국도 크래프트비어 열풍인데, 획일화된 기성 맥주에 물렸다면 멋진 수제 맥줏집을 하나 소개한다. 모리츠 공장 근처 Carrer de Muntaner 7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비어 컴퍼니>. IPA를 포함해 다양한 에일과 필스너 메뉴들이 ‘하늘을 나는 돼지’, ‘늑대 선생’ 같은 재미있는 이름을 달고 손님을 맞는다. 어떤 걸 마셔야 할지 헷갈린다면 고민하지 말고 단돈 6유로에 믹스 메뉴를 시키자. 4가지 서로 다른 수제 맥주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이지원 피디의 누구나 한번쯤 스페인이지원 저 | 중앙북스(books)
일반 관광객이 아닌 학생이자 생활자의 신분으로 낯설고 매력적인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포함해 인근 나라의 도시들을 날카로운 피디의 눈과 낭만적 가슴으로 때론 담백하게, 때론 치열하게 탐험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모친 기억 실종 사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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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투데이

 

“서울에는 저녁에 여는 개인 병원도 있는갑다.”

 

어머니는 김 부장에게 속삭이듯 말하고는 신기한 듯 의원 내부를 둘러보았다. 김 부장은 그를 알아보고 웃으며 눈인사를 건네는 조무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늘은 제가 아니라 어머니 진료 때문에 왔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가 일어서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에 피로해 보이는 얼굴. 몇 번째 보지만 늘상 같은 모습이다.

 

“잘 지내셨어요? 요즘 피로는 좀 나아지셨나요?”


“네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선생님 덕분이죠. 담배도 끊었잖습니까?”


“스스로 하신 거죠. 저는 그저 조금 도와드렸을 뿐이고요.”

 

김 부장과 어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그가 엷은 미소를 거두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어머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김 부장은 3개월 전, 그리고 어제오늘 이틀간 있었던 일을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갑작스레 생긴 어머니의 증상과 종합병원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았지만 특별한 문제를 찾지 못한 것에 관해. 김 부장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의사는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하듯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아닌 어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드님이 방금 이야기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실 텐데, 서울에 올라온 날의 일을 기억나는 부분까지만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글쎄요. 오전엔 교회에서 모임이 있었어요. 성가대를 하고 있거든요. 모임이 끝나고 교회 사람들하고 점심을 먹었지요. 집에 들렀다가 짐을 챙겨 나오기 전에 콜택시를 불렀는데 택시가 늦게 와서 좀 걱정이 되었어요. 예매해둔 버스 시간을 놓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터미널에 내려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가…, 요즘은 소변이 자주 마려워서 고속버스를 탈 때는 꼭 미리 들러야 해서요. 다행히 제시간에 버스를 타고 마음이 놓여 잠이 든 것 같은데, 그 다음엔 기억이 안 나네요.”

 

그녀는 앞에 앉은 의사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는지 잠시 머뭇거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입가의 주름이 유난히 깊어 보였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이 나이가 되면 몸이 성치 않으니 나들이를 갈 때 준비해야 할 게 많지요. 평소 먹는 약만 해도 한 보따리인데 자주 탈이 나니 상비약도 챙겨야 하고 요즘은 버스 탈 때 어지럼증도 심해져서 멀미약도 붙여야 해요.”


“최근 평소 드시는 약에 변화가 있었나요?”


“혈압약은 먹은 지 오래되었고, 작년부터 당뇨기가 생겼다고 해서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또 뭐가 있나. 방광이 안 좋아서 먹는 비뇨기과 약이랑 관절약에다가…. 잠이 안 와서 가끔 수면제를 먹고 있어요. 하지만 다 이전부터 먹던 약들인데요.”


“서울 오기 전날에도 수면제를 드셨나요?”


“그랬지요. 잠을 설치면 다음 날 정신을 못 차려요. 집에서야 괜찮지만 서울까지 와서 골골거리면 안 되잖우.”

 

김 부장은 어머니가 먹는 약의 종류와 그 양에 새삼 놀랐다. 혈압약 한두 가지 정도일 줄 알았는데, 그동안 어머니 건강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자책하고 있었다.
 
“서울에 올 때 멀미약은 항상 준비하시나 봐요.”


“예전엔 그래도 참을 만 했는데. 올봄에 성가대 교우들과 부산 여행을 갔었는데 멀미로 첫날 하루 종일 누워 있었어요. 같이 간 사람들한테도 폐가 되잖아요. 서울에 올라와서 아들 집에 드러누우면 안되니까, 이번엔 미리 챙겼지요.”

 

김 부장은 어머니가 평소 먹던 약이 정신 상태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왜 의사가 기억력에 대해 묻거나 검사를 하지 않고 다른 질문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 어머니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어머님에겐 문제가 없어요.”


“문제가 없다니요?”  김 부장은 당황스런 말투로 되물었다.


“적어도 걱정하시는 치매는 아닐 겁니다. 증상이 갑작스럽게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 특정 상황에서만 생기는 것도 치매와는 달라요. 어머님의 문제는 치매보다는 일시적인 섬망 증상에 가깝습니다.”

 

김 부장은 일단 마음이 놓이기도 했지만, 섬망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섬망이 생기면 장소나 시간에 대한 개념에 혼동을 일으키고 불안과 초조 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밤낮이 바뀌는 것도 흔하구요. 어머님이 보였던 증상과 비슷해요. 심하면 환각이나 환청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알코올 중독의 금단 증상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차분했던 말투가 순간 거칠어졌다. 의사는 잠시 말을 끊고 한숨을 내쉰 뒤 설명을 이어갔다.

 

“특별한 문제가 없던 사람도 큰 수술을 마치고 입원 중에 생기는 경우가 있고, 약 부작용으로도 생길 수 있어요. 특히 어르신들은 체내에서 약을 분해하는 기능이 떨어져서 부작용이 잘 생기는 데다가 여러 가지 약을 함께 먹는 경우 약들이 서로 영향을 줘서 부작용이 더 쉽게 생깁니다.”


“그럼 어머님은 무슨 약 때문에?”


“다음에 서울 오실 때는 멀미약을 붙이지 마세요.”

 

예상치 못했던 말에 김 부장과 어머니는 눈만 끔벅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멀미약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안전한 약이지만 드물게는 어머님 경우와 같은 문제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확실치 않지만 전날 드신 수면제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겠어요. 수면제의 효과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부작용이 더 생길 수 있거든요.”

 

낚시를 좋아하는 김 부장도 배를 타기 전에는 항상 멀미약을 붙였다. 해외 출장을 갈 때는 시차 때문에 비행 전 습관처럼 수면제를 먹곤 했다. 흔히 사용하는 약이 이런 공포스러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니. 자신에게도 생길 수 있는 문제였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다.

 

“다음에 서울 오시면 아드님과 병원에 한 번 더 들르세요. 멀미약을 꼭 써야 한다면 용량이 낮은 소아용을 쓰시는 게 좋겠어요. 전날 수면제는 드시지 마시구요.”


“아뇨. 이제 절대 안 붙일래요. 그냥 기차 타면 되지요.”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목소리를 높여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만 진료실 안의 사람들 모두가 웃고 말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김 부장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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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투데이
 


2012년 한국소비자보호원에서 발표한 ‘붙이는 멀미약’의 부작용 사례에는 기억장애나 이상행동 증상이 포함되었다. 지금도 이 약의 부작용을 검색하면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멀미약의 주 성분인 스코폴라민은 부교감신경 작용을 억제해 시야장애, 입 마름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드물게는 일시적인 기억장애와 착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고려해 식약처는 해당 약제의 복약지도를 강화할 것을 요청했으며, 2013년부터 소아용 제품을 전문의약품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멀미약으로 인한 위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 사례는 드문 일이지만, 약물로 인한 부작용은 매우 흔한 문제다. 약물 부작용은 특히 노인에서 더 흔한데, 약물 관련 문제로 입원한 사례가 일반 성인의 세 배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인들에게 약물 부작용이 흔한 이유는 일단 약물에 대한 대사와 배설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이지만, 여러 가지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동시에 두 가지 약물을 복용하게 되면 약물 부작용의 위험도가 13퍼센트 증가하고 네 가지 약물을 복용하면 38퍼센트, 일곱 가지 약물을 복용하면 82퍼센트까지 높아진다. 만성 질환이 많은 노인은 여러 약제를 함께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환자 표본자료(2010-2011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외래 환자 열 명 중 여덟 명 이상이 6개 이상의 약을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약제 복용과 그로 인한 부작용 문제는 일차 의원부터 대학병원까지 쉽게 병원을 옮겨다닐 수 있는 의료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여러 병원을 이용하는 경우 문제가 되는 약을 함께 복용할 위험이 필연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환자의 건강 문제나 복용 중인 약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의사에게 일차적인 진료를 받는다면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 환자일수록 지속적인 진료를 담당하는 주치의가 필요한 이유다. 한림의대 윤종률 교수는 ‘노인의료 관련 정책수립에서 고려해야 할 노인의료의 특성’ 기고문에서 우리나라 노인들의 다약제 복용은 노인의학 전문의나 주치의가 부재한 현실과 개별 질병중심의 전문의료만을 강조하는 의료체계로 인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 윤종률. <노인의료 관련 정책 수립에서 고려해야 할 노인 의료의 특성>, HIRA 정책동향 제10권 3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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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우디, 사람과 살아주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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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컹 쾅쾅쾅 덜컹덜컹’ 다람쥐의 아침 인사는 조금 과격한 편이다. 이미 오래 전 사람의 공간마저 자신의 영역으로 인식한 탓이다. 이 철창 케이지에서 얼른 나가 숨겨둔 식량을 확인하고 안심해야 한다. 한편 사람은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다람쥐가 밖에 나와 일단 입에 넣고 볼 것들 중에는 위험한 게 너무 많다. 다른 두 종(種)의 하루가 시작된다.

 

다람쥐는 케이지에서 그냥 나오는 법이 없다. 사람이 항상 손 위에서 충분히 쓰다듬어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예전에야 발버둥 쳤지만 익숙해진 다람쥐는 이제 그러려니 하며 조금 기다린다. 인내는 쓰고 자유는 달다. 자유의 몸이 된 다람쥐는 먼저 행거 위의 옷을 살핀다. 사람이 잘 보지 못해서 마음 놓고 맛있는 것을 숨겨둘 수 있다. 사실 사람은 그곳이 다람쥐가 애정하는 식량 창고임을 모를 리 없다. 그 아래로 떨어지는 수많은 간식 껍질들 때문에라도 버릇을 고쳐놓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지만 한판의 실랑이를 상상하곤 그만두었다. 다람쥐는 여전히 바쁘다. 다음으로 살펴볼 곳은 냉장고 위, 옷 서랍장, 침대 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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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람쥐가 중요 일과를 마칠 동안 외출 준비를 시작한다. 다람쥐는 사람이 거울 앞에 앉아 분주하게 움직이면 자신도 머지않아 케이지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다람쥐는 여기저기 물건을 떨어뜨려 주의도 분산시킨다. 그러나 통한 적은 없다. 조금 늦어질지언정 그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갑자기 목소리가 친절해지면 그때가 온 것이다. 다람쥐는 이내 포기하고 케이지에 들어간다.

 

다람쥐는 케이지 안에서 할 게 별로 없다. 쳇바퀴를 돌리는 것도 잠깐, 들어가서 낮잠을 자는 것이 최선이다. 문에서 기계 소리가 나면 다시 자유를 꿈꿀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집에 돌아온 사람은 마중 나온 다람쥐가 기특하다. 가끔 낮잠이 깊어 나오지 않은 날이라도, 이름을 부르면 금방 나오기 마련이다. 그 모습이 예쁜 사람은 케이지 문을 열고 또 다시 한껏 손 위에서 예뻐해 준다. 다시 한번, ‘인내는 쓰고 자유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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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치는 손도,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손도, 일단 움직이는 손이면 다람쥐에겐 다 놀잇감이다. 노는 게 싫증이 나면 여기저기 달려도 좋다. 사람의 공간이 너무 작아서 요즘 다람쥐의 관심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주방 찬장에 가 있다. 분명히 사람이 저기에서 해바라기 씨와 멜론 씨를 꺼낸 것을 다람쥐는 보았다. 다람쥐는 도움의 눈길을 보내지만 통하지 않는다.

 

솔직히 다람쥐는 사람이 좀 귀찮다. 먹을 것을 순순히 주지도 않고, 정정당당하게 간식이 담긴 봉투를 스스로 뜯어 쟁취한 간식마저도 뺏어간다. 다람쥐가 억울해서 손을 조금이라도 세게 무는 날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항상 시끄럽고, 나눠 먹을 줄도 모르고, 혼자만 맛있는 것을 먹고, 귀찮게 불러대고, 좀 놀아주러 가면 밀어내고, 정말 바쁠 때 갑자기 놀자면서 귀찮게 한다. 다람쥐는 사실 왜 그렇게 사람이 먹을 것을 주면서 부르고, 쓰다듬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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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다람쥐가 사랑스럽다. 자기 딴에는 중요한 일과랍시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도, 더 많은 식량을 쟁취하기 위해 들쑤시는 것도, 장난스럽게 물 때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함이 느껴지는 힘 조절도 모두 예쁘다. 좋은 날에는 어깨 위에 올려놓고 함께 춤을 추고, 힘든 날에는 이름을 부르며 울기도 한다. 가끔 사람이 크게 진동하며 눈물을 떨어뜨릴 때면 다람쥐는 가만히 사람의 몸 위에서 지켜볼 때도 있다. 사람은 크게 위로를 받지만, 다람쥐는 그 사실을 모른다.

 

가끔 창문 밖에서 낯선 계절의 향기가 날 때면 다람쥐는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다람쥐는 사람의 시선을 느낀다. 한편 사람은 심란해진다. 이 작은 공간이 다람쥐의 전부이다. 사람은 애써 모른척하며 죄책감을 다른 것으로 덮어씌운다. 더 맛있는 것들을 먹여주리라 결심한다. 다람쥐는 사람의 얄팍한 양심을 모른척한다. 동거는 그렇게 유지된다. 다람쥐는 오늘도 사람과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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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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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_ 박범신, 『은교』중에서

 

김희정 씨는 책을 덮었다. 소설에서 70대의 시인은 늙는다는 것의 추함을 서러워하며 항변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육체의 싱그러움은 사라지지만 내적으로는 지혜로워지는 것, 너그러워지는 것, 삶에 달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건 그저 틀에 박힌 선입견일 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인이 된다고 해도 욕망까지 박제되는 것은 아니었고, 그런 사실을 으레 무시했던 것은 무관심의 결과일 뿐이었다.

 

앞에 들어갔던 환자의 진료가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밤 열 시가 넘으면 환자가 뜸해지고 진료 시간도 여유로워진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환자는 나이 지긋한 노신사 한 명뿐이다. 이 시간엔 근처 공단에서 3교대 저녁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동자나 편의점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아르바이트생, 갑자기 열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 술기운에 불콰해진 얼굴로 위장약 처방을 받으려는 회사원 정도가 드문드문 들를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노신사는 특이한 방문객이었다. 그는 고혈압 환자였고, 두어 달에 한 번씩 늘 비슷한 밤 늦은 시간에 반딧불 의원을 방문했다. 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깔끔한 양복 차림에 중절모를 썼다. 눈썰미가 좋은 김희정 씨는 그가 매번 다른 모자를 쓰고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꺼운 검은 테의 안경은 적당하게 다듬은 희끗희끗한 턱수염과 잘 어울렸다. 말하자면 그는 70대 가까운 나이에 흔치 않은, 날이 선 패션 감각을 갖고 있었다.

 

옷차림만 반듯한 것은 아니었다. 대기실에서 등을 꼿꼿하게 편 채 책을 읽는 모습에도 품격과 여유가 배어 있었다. 그는 김희정 씨에게 늘 부드러운 태도로 말을 건넸고, 아이를 데려온 엄마에게 진료 차례를 양보하기도 했다.

 

“어르신, 오늘도 멋지신 데요.”
“허허. 고맙소. 김 간호사님을 보면 항상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항상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게 불편하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늘상 입는 옷이라 습관이 되어서. 언젠가 아들 녀석이 그러더군요. 아버지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도 양복을 챙겨 입는 분이라고.”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든 양복 차림의 모습이 떠올라 김희정 씨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유쾌하게 농담을 던지고 진료실로 들어가는 그를 보며, 저분처럼 나이 든다면 늙어가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닐 것 같다고 김희정 씨는 생각했다.

 

평소와 같이 진료가 끝나갈 무렵 처방을 입력하던 의사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향수를 바꾸셨나 봅니다. 향기가 좋은데요.”
“허허. 이 선생 후각이 예민하시네. 맞아요.”
“제가 냄새에 좀 민감한 편이라서요. 그나저나 지난번 백내장 수술은 잘 되셨어요?”
“이전보다는 훨씬 밝아졌어요.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안경을 바꿔가며 쓰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거지요. 내가 주민등록 상으로는 50년 생이지만 실제로는 두 살이 많아요.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때는 이 나이 되면 몸이 정상인 게 비정상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해요.”

 

잠시 말을 끊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 선생님, 오늘은 내가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되겠어요?”
“네. 말씀하시지요.”
“요즘 소변 보는 게 영 시원치 않아요. 젊어서 같이 시원시원하게 나오지 않은 거야 오래된 일이지요. 한참을 기다려야 나오고 소변 줄기도 약해지구요. 이런 것들이야 나이 먹어 그러려니 하고 넘겨왔는데, 밤에 화장실에 가느라 자주 깨서 잠을 푹 못 자는 게 힘드네요.”
“이전에 진료는 받아보셨어요?”
“병원에 가 보지는 않았지요. 친구들이 전립선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들 해서 거기에 좋다는 건강보조제를 사 먹고 있는 중인데 영 나아지질 않네요.”
“전립선 비대로 인한 증상이 맞을 것 같습니다. 흔히 쏘팔메토라는 성분의 보조제를 드시는데 기대한 만큼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것보다는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을 드시는 게 좋습니다. 제가 처방해 드릴 수도 있고요.”
“그런데 밤에 자주 깨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요. 소변을 보고 난 뒤에도 자주 소변이 흘러나와요. 다 나온 것 같아서 옷을 올리면 속옷을 적셔 난처해지는 일도 있구요. 소변을 보고 한참을 기다려 보기도 하는데 다 해결이 안되더군요. 이것도 좋아질까요?”
“다른 증상보다는 약의 효과가 적을 거에요. 소변을 보고 나서 손으로 요도에 남은 소변을 짜내는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자료를 찾아 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의 설명을 듣던 그가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3년 전 사별한 뒤에 아들 녀석 집에서 함께 살아요. 손녀딸이 있는데 얼마 전부터 내 방에 안 들어오려고 하더군요. 그런데 우연히 며늘아기와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할아버지한테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거야. 지린내가 나는 것 같다고. 충격을 받았지요. 손녀딸에게 가까이 가기 싫은 할애비가 되고 싶진 않거든요. 그때부터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지요. 아침저녁으로 샤워도 하는데도 노인 냄새를 완전히 없애긴 어렵다고 하더군요. 향수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요. 오늘 소변 문제를 상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이 선생.”
“네.”
“나이 든다는 거. 참 애처로운 거에요.”

 

노신사는 말을 끊고 컴컴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서글퍼 보였다. 어쩌면 소변 문제 따위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참. 근데 이 선생님이 처방한 약, 그거에도 도움이 되나요?”
“그거라뇨?”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체념한 듯 대답했다.

 

“그… 밤일 말이요. 오랫동안 그런 건 잊고 지냈는데 내가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전립선 약이 발기에 도움이 되냐는 말씀이군요. 그렇진 않습니다. 전립선 비대와 발기 문제는 둘 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지만 원인은 다르거든요. 그 문제에 대해선 일단 전립선에 대한 약 효과를 확인한 다음에 다시 상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노신사는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돌아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인 것이고, 그가 잃어버린 것이 시력이나 방광의 기능, 발기 문제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료실을 나가는 그를 보며 수현은 지금은 그에게 없지만 이전엔 가지고 있었을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잃어버리게 될 것들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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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 비대와 배뇨 장애 증상


전립선은 정액의 주성분인 전립선액을 만드는 기관이다. 전립선은 방광 아래 요도를 둘러싸고 있는데, 본래 밤톨만한 크기였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커진다. 커진 전립선이 요도를 압박해 소변 배출이 어렵게 되는 것이 전립선 비대증이다. 전립선의 크기는 직장수지검사나 초음파로 확인할 수 있는데 증상이 꼭 크기와 비례해 심해지는 것은 아니다. 전립선 비대증은 육십 대에서는 절반 이상, 칠십 대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날 만큼 흔한 문제다.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배뇨 장애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질 정도가 되면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대개 하루 한 번 약을 복용하는 정도의 치료로 쉽게 증상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이 전립선을 비대가 생기기 전 상태로 되돌려주는 것은 아니므로, 증상이 좋아졌다가도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증상이 나빠진다. 그러므로 약 복용의 목적이 증상의 개선이란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술을 받더라도 증상을 완전히 없애긴 어렵고 수술 이후 생기는 부작용 문제도 있으므로 어떤 치료를 선택할 지에 대해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는 것이 좋다. 또한 전립선은 성기능과는 무관하므로 전립선 비대에 대한 치료가 성기능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쏘팔메토는 톱야자(Saw palmetto) 열매를 가공해 추출한 성분으로. 전립선 비대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정하는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이기도 해 국내에서도 30여 업체가 관련 제품을 판매 중이다. 하지만 효과에 대한 근거는 빈약한 편이다. 최근의 여러 연구에선 전립선 비대증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므로 증상이 심해 치료를 고려할 정도라면 쏘팔메토 성분의 건강기능식품보다는 의사 처방에 따른 전문의약품을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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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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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이탈리아의 명(名)바리톤 레나토 부르손의 풍성한 저음이
오페라 리골레토의 <사랑의 묘약>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개가 낮게 그르릉거리나 싶더니
어디선가 삐걱대는 소리가 난다.


조금씩 들리던 소리가
점차 규칙적으로 나더니 점점 더 빨라진다.


성악가의 아리아는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옆방의 소리도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탄성. 나지막한 대화 소리 잠깐. 그리고 욕실로 향하는 발소리.

 

이사 온 첫날, 페루식 가정식을 대접해줬던 친절한 대붓 꽁지 에스키엘의 방에서 셔츠 한 장만 걸친 초콜릿색 여인이 나왔다. 뒤이어 반라 상태로 등장한 에스키엘. 나를 보고 놀라지도 않고 싱긋 웃으며 “헤이!” 하고선 쿨하게 여자를 따라 욕실로 직행했다. 그의 방엔 여자가 데려온 개 한 마리만이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엎드려 있었다.


에스키엘.


구릿빛 피부에 치렁치렁 흑단 같은 머리.
일어나자마자 오페라를 들으며
낭만적인 유화를 그리러 나갔다가
매일 밤 다른 여자와 들어오는
천하의 사랑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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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좋은데. 묵직한 중저음 보이스만큼 진중한 성격에 깔끔한 매너, 상대에 대한 배려까지 다 갖췄는데. 사람이 너무 좋은 나머지 매일같이 등장 인물이 바뀌는 에로무비를 찍으니 옆방 세입자로서 애로사항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천장은 높아서 공명도 잘 되는 집에 벽은 또 왜 그렇게 종잇장처럼 얇은지. 어쩌다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할 텐데 거의 밤마다 잠을 재우질 않으니 다음 날 학교를 가야 하는 내겐 웃지 못할 고문거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셰어하우스의 또 다른 매력(?)을 여실히 체험했던 집이었다.


새벽 4시, 또다시 울려 퍼지는 오페라. 어느덧 나는, 덩달아 잠 못 이루는 슬픈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 있었다….


건물 안쪽 뜰에선 드릴로 바닥을 부수는 공사가 한 달째 계속되고 있었다. 1층에 커다란 레스토랑을 개축하는 공사였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집 주인 이반은 일언반구 얘기해주지 않았었다. 지적을 하자 그제야 곧 끝날 거라고 얼버무리는데 딱 봐도 석 달은 끌 공사였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살다 보니 집 상태가 심각했다. 아틀리에처럼 쓰면서 청소를 거의 하지 않아 먼지가 수북한 데다 축축한 매트리스에선 베드버그도 들끓는 것 같았다. 다 치워 놓을 테니 걱정 말라던 약속도 공염불이었다.


바르셀로나의 한여름은 찜통처럼 뜨거운데, 공사판 먼지와 소음을 피해 창문을 닫자니 쪄서 죽을 것 같았고 창문을 열었더니 이번엔 모기가 득실득실 꼬였다.


낮엔 드릴 소리 때문에 노이로제,
밤엔 벽 너머 아리아에 트라우마.
내 사연을 듣고 데비가 깔깔대며 문자를 보내왔다.


“Out of the frying pan and into the fire.”


“프라이팬에서 뛰쳐나가더니 아예 불구덩이로 떨어졌네?ㅋㅋ”


밤낮으로 공사 중인 바르셀로나의 여름은
점점 더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지원 피디의 누구나 한번쯤 스페인이지원 저 | 중앙북스(books)
일반 관광객이 아닌 학생이자 생활자의 신분으로 낯설고 매력적인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포함해 인근 나라의 도시들을 날카로운 피디의 눈과 낭만적 가슴으로 때론 담백하게, 때론 치열하게 탐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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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염을 물리치는 절대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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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의 주 증상은 ‘복통, 구토, 설사, 발열’

 

파랗고 높은 가을 하늘을 즐기는데 산통 깨는 말일지 모르지만, 겨울이 다가옵니다. 겨울은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아픈 계절이기도 합니다. 춥고 긴 겨울을 건강하게 나려면 월동준비가 필요합니다. 뭐니뭐니해도 독감접종이 가장 중요하고도 손쉬운 준비겠지요? 독감 얘기, 감기 얘기, 감기의 가장 흔한 합병증인 중이염과 부비동염(축농증)에 관한 얘기는 모두 이 칼럼을 통해 다룬 바 있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다시 찾아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 보면 겨울에 감기도 잘 걸리지만, 장염도 많이 생깁니다. 장염이 뭐냐고요? 토하고 설사하고 배 아픈 병을 장염이라고 합니다.

 

장(腸)은 우리가 먹은 음식물이 지나가는 파이프 모양의 통로입니다. 하지만 수도관처럼 그냥 통과시키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음식물을 잘게 부수고,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고, 몸속의 노폐물을 대변에 섞어 밖으로 내보냅니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지요? 그래서 장 벽에는 음식에 들어있는 물과 영양분을 알뜰하게 체내로 흡수하기 위해 아주 가느다란 털, 즉 융모가 촘촘하게 돋아나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는 어느 구석,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장에서는 융모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병원균이 장에 침입하여 이 융모를 손상시키는 병이 바로 장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뭔가 손상되니까 배가 아프겠지요? (복통) 길이가 7m나 되는 장은 알고 보면 매우 예민한 친구입니다. 뭘 먹든 그 긴 거리를 하루 만에 통과해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건 음식물이 통과하는 부위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조절하면서 장 전체가 조화롭게 운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디 한 군데가 손상되면 바로 조화로운 운동에 장애가 생깁니다. 제대로 운동을 못하니까 음식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도로 입으로 넘어옵니다. (구토) 융모는 물과 영양분을 흡수한다고 했지요? 그러니 융모가 손상되면 물과 영양분이 흡수되지 못하고 그냥 변으로 나옵니다. 물이 많이 섞인 대변, 소화가 되지 않은 대변을 보게 되는 거죠. (설사) ‘~~염’으로 끝나는 병은 ‘염증’이란 뜻입니다. 우리 몸은 어딘가 염증이 생기면 열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열) 정리하면 복통, 구토, 설사, 발열이 장염의 주 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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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물 속에 잠겨 있는 셈이다

 

장염에서는 고열이 나는 일이 그리 많지 않고, 복통도 대개 하루 이틀이면 가라앉습니다. 문제는 구토와 설사입니다. 이게 왜 문제일까요? 바로 물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안아키의 김모씨 같은 이는 현대의학이 사람의 혈액량도 정확히 모른다고 비난합니다. 자기가 모르니까 남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코웃음이 날 지경입니다. 인체의 수분량과 그 분포는 이미 100년전쯤에 소상히 알려졌습니다. 자랑스럽게도 소아과 선생님이 밝혀냈습니다. 소아과가 대단한 과라서가 아니라 비율상 어린이의 몸은 더 많은 물로 이루어져 있고, 나가고 들어오는 비율도 높아 물이 움직이는 과정을 관찰하기가 쉬웠던 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몸은 대략 2/3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 1/3은 세포 외부에, 2/3는 세포 내부에 존재합니다. 세포 외부에 존재하는 물 중 다시 1/4은 혈액 속에, 3/4는 조직 사이에 존재합니다. 60kg 성인이라면 2/3인 40kg이 물입니다. 그중 1/3인 13kg이 세포 외부에 있고, 다시 그중 1/4인 3kg 정도가 혈액 속에 있습니다. 혈액이 물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같은 세포 성분과 알부민, 항체 같은 단백질 성분, 기타 많은 성분이 섞여 있기 때문에 실제 혈액은 약 5kg정도 됩니다. (김모씨, 제발 죄 없는 아이들 잡지 말고 공부 좀 하세요!)

 

어쨌든 우리 몸은 물 속에 잠겨 있는 셈입니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물은 어떻게 우리 몸에 들어오고 나가나요? 마시는 물과 먹는 음식을 통해 들어오고, 소변과 대변과 땀과 호흡을 통해 나갑니다. 숨쉴 때 나가는 물과 땀의 양이 만만치 않아 소변량의 1/3에서 1/2이나 됩니다. 60kg 성인이라면 하루 소변량이 약 1.5L, 땀과 호흡을 통해 500~800cc, 대변을 통해 100cc 정도로 하루 2~2.5L의 물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8잔씩 물을 마시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겁니다. 물 한 잔을 250cc로 보고 8잔이면 2L가 되지요. 실제로는 국이나 과일 등 음식 속에 들어 있는 물이 많아 일부러 챙겨 마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대변을 통해 나가는 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설사를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대변을 통해 나가는 물이 늘어납니다. 설사할 때 기저귀를 들어보면 묵직하지요? 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겁니다. 물 두 잔 정도 설사를 한다고 칩시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요? 250cc로 보면 500cc네요. 문제는 어린이들의 몸이 작다는 겁니다. 몸무게가 10kg이라면 수분은 약 6kg이니까 거의 1/10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물론 물이 빠져나가도 그만큼 마셔주면 됩니다. 그런데 구토가 겹쳐 있다면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게다가 구토할 때 오히려 더 많은 물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설사와 구토가 겹치면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금방 탈수가 됩니다. 탈수가 되면 장염이 낫지 않을뿐더러 자칫 쇼크나 급성신부전 등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반대로 어떤 장염이든 탈수를 막고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 주기만 하면 저절로 좋아집니다. 심지어 콜레라처럼 무서운 전염병도 수분공급만 제대로 해주면 낫습니다. 그런데 물을 마셔도 토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수분공급을 할 수 있을까요?

 

약국에 가면 경구용 수분공급제라는 걸 팝니다. 가루약을 물에 타서 용액을 만드는 것도 있고, 아예 액체 상태로 나온 것도 있습니다. 이 용액을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이 용액이 보급된 이래 가난한 나라에서 설사로 죽는 아이들의 숫자가 크게 줄었으니까요(역시 소아과 선생님들이 개발했습니다, 에헴!). 용법대로만 잘 먹이면 그 효과는 정맥주사에 못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 용액을 잘 먹지 않고, 먹어도 토하는 수가 있습니다. 이때 요령은 티스푼으로 떠먹이는 겁니다. 티스푼 한 숟갈 정도는 먹여도 잘 토하지 않습니다. 티스푼으로 먹여서 언제 먹이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1분에 한 숟갈 꼴로만 먹여도 깜짝 놀랄 만큼 많이 먹일 수 있습니다. 경구용 수분공급제를 당장 구할 수 없다면 이온음료나 물이라도 이런 방식으로 먹여야 합니다.

 

일단 탈수가 돼버리면 문제가 상상 외로 커집니다. 물론 아이가 많이 아파 보이거나, 구토/설사가 아주 심하거나, 고열이 나거나, 자꾸 처진다면 빨리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장염은 바이러스가 원인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항생제를 써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모든 장염을 물리치는 절대반지는 바로 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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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또 쓰는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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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로 가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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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고 또 걷듯이, 쓰고 또 쓴다는 것의 어려움

 

지인 한 명이 부끄러운 듯 슬쩍 말을 꺼낸다.

 

“실은 저 요즘 여행 작가 수업을 듣고 있어요.”
“아니, 개성 넘치는 감수성에 글도 잘 쓰는 애가 왜?”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슷한 꿈을 가진 이들과의 친목 모임이라고 생각하며 나갈 수도 있을 만한 수업이다. 하지만 그 비용을 알고 났더니 ‘내가 다 속상 스튜핏’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기십만 원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던 지인은 나름 여행 에세이를 낸 우리가 못 미더워 손을 내밀지 않았던 걸까?

 

또 다른 지인은 석 달 동안 수료한 여행 작가 수업 사진을 SNS에 올리며 글 쓰는 게 너무 어렵다고 했다. 건실한 청춘들이 엉뚱한 데에 돈을 쓰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이건 너무 꼰대 감성인 것 같다가도, 도대체 여행 작가가 뭐길래 수십만 원을 투자해 수업까지 들어야 하는 걸까 싶어진다.

 

‘여행의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여행 작가의 일반적인 정의이지만 그들이 바라는 모습은 ‘여행을 직업으로 삼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수입으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는 사람’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여행을 수입으로 연결시킬 방법일 테고 아마 여행 작가 수업은 더 쉽고, 더 높은 확률로 그 길에 빨리 진입하는 걸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애초에 지름길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뭐든 남보다 빨리 가고 싶을 땐 반드시 그 대가가 따라붙는데 말이다.

 

3년 전 이맘때,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고도를 서서히 높이며 4,160m까지 가야 하는 랑탕 밸리 코스였는데, 트레킹 경험이 많은 일행에 비해 나는 졸보에 체력도 약한 편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먼저 중간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뒤처진 나 때문에 30분이고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면목없지만 나는 내 페이스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일행처럼 걸었다가는 완주는커녕 중도에 포기할 걸 아니까….

 

그 남자와 나는 처음부터 여행 작가라는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 글을 썼던 건 아니다. 2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와 뭐라도 하나 결과물이 손에 쥐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은 게 다이다. 더 솔직한 마음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감히 책을 낼 수 있겠어’였다. 출판사에서 원고가 채택되는 것보다는 직접 독립 출판으로 내는 게 좀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알아보기도 했다. 우리의 바람은 그저 여행이 끝난 뒤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갖고 싶었을 뿐이니까.

 

글을 쓰는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자신의 속도로 ‘완주’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속도대로 세계 여행을 완주할 수 있다면 출판은 그 이후에 생각해도 될 문제였다. 다만 ‘기록으로의 완주’가 더해져 2년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 주도 글 쓰는 걸 포기하지 말자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켜냈다. (그야말로 지!켜!냈!다!)

 

히말라야에서 자신의 속도보다 빨리 걸었던 일행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쌩쌩하던 그 남자도 트레킹 막바지에 체력을 과신하다 저체온증으로 인해 말을 타고 내려가는 수모를 겪었다. 완주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던 나에겐 다행히 고산증도 저체온증도 찾아오지 않았다. 여행 작가 수업을 찾는 이들은 어쩌면 그 방법을 잊은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기를 ‘쓰고, 또 쓰고, 지칠 때까지 써야 함’을.


자기만의 돌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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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무덤은 나중에 생각하세요. 돌 하나를 세우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자기 속도로 산을 오르는 그 여자를 따라 걸으니 천천히 풍경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계곡을 흐르는 거친 물소리와 설산 정상에서 흩날리는 눈보라 그리고 내가 밟고 지나는 길의 작은 돌멩이 모양까지 느끼면서 랑탕 계곡을 걸었다. 일행의 속도에 맞췄다면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풍경을 담기에는 그 여자의 속도가 딱 맞았다.

 

히말라야를 오르다 보면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 눈길을 끈다. 마을 입구마다 티베트 경전을 적어 매단 오색 깃발 다르촉 Tharchog이 그렇고 중요 길목에 작은 돌들을 쌓아 만든 돌무덤은 도대체 누가 저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함께 길을 오르는 셰르파족 포터(가이드)에게 돌무덤의 의미를 물으니 자신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하나하나 쌓아 올린 돌이라고 한다. 그들은 언젠가는 그 간절함만큼이나 큰 돌무덤이 되길 바라며 중간중간 쉴 때마다 돌을 모으고 있었다.

 

옆에 큰 돌무덤을 따라잡으려 하지 않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쌓아 올린 자신의 돌무덤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돌무덤은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으려는 듯이 태양 빛 아래에서 하얗게 빛이 났다. 하지만 모든 돌무덤이 빛나는 것은 아니었다. 랑탕 계곡을 오르는 길옆에는 간절함의 손길이 끊어졌는지 무너져 내린 돌들도 볼 수 있었다. 무너진 돌무덤은 왠지 색깔도 거무칙칙해 보이고, 어두운 기운마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했다.

 

그 여자와 나는 ‘반드시 여행 작가가 되겠어’라는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지 않았다. 다만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 기록들이 언젠가 한 권의 책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여행하며 2년 동안 미루지 않고 글을 쓰기로 한 약속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한 달에 한 도시가 아니라 남들처럼 일반적인 세계여행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비슷한 시기에 여행을 떠난 이의 글이 벌써 책이 되어 나오면 우리가 너무 늦게 가는 것은 아닌지,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기사를 보며 글 쓰는 것은 포기하고 영상을 찍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갈등하기도 했다. 우리의 기록은 이런 유혹과 갈등 속에서 멈추지 않고 긴 여정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만약 초심을 잃고 글 쓰는 것을 멈췄다면, 혹은 여행을 포기했더라면 우리의 돌무덤은 무너져 내리고 검은빛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꾸준한 근성만으로는 여행 작가가 될 수 없고 또한 책을 낼 수도 없다. 기록하고 글로 담아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행의 콘셉트가 독특하거나 글 안에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방법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여행 학교를 찾아갈 게 아니라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느리더라도, 부족해 보이더라도 자신의 감정선이 활짝 열리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그 여자의 걸음이 느리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히말라야를 담을 수 있는 속도가 딱 그 정도였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닦아 놓은 지름길은 따라가기 쉽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길은 자신의 길이 될 수 없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더라도 한걸음에 그곳에 다다를 수 없는데 우리는 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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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씨, 당신이 달리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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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나에서 다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피게레스는, 달리가 나고 달리가 죽은 ‘달리의 도시’다. 사실, 달리 미술관 말고는 별달리 볼 게 없는 곳. 하지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다.

 

살바도르 달리 도메네크(Salvador Dal? i Dom?nech)는 1904년 5월 11일 피게레스에서 태어나 1989년 1월 23일 피게레스에서 죽었다. 공증인 아버지 덕에집안은 부유했고 85세까지 장수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에 최고의 희열을 느낀다.”

“나의 꿈은 내가 되는 것이다.”

 

명언과 망언을 오가는 엄청난 자기애의 화신 달리에게서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가늘고 길게 붙여 올린 요상한 콧수염이다. 꿀을 발라 고정시킨 건데, 말쑥한 신사 이미지와 달리


실상은 파리가 들끓었다나? 잘 땐 늘 숟가락을 물고 잤는데 그 이유는 꿈을 꾸다 숟가락이 떨어지면 그 소리에 깨서 잊지 않고 재빨리 꿈에서 본 장면을 그리기 위함이었다고. 애완견 대신 개미핥기를 끌고 다니거나 한번은 코끼리를 타고 시가행진을 벌인 기억도 난다고 내가 묵었던 집 주인장이 이야기해줬다. 4차원이 아니라 16차원 정도 되는 진짜 원조 ‘돌아이’라면서.

 

펩시콜라가 코카콜라를 이기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로 승부를 걸었던 것처럼 미술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달리와 맞닥뜨리고 싶었다. 녹아 흐물거리는 시계를 그린 그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이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들어갔는데, 달리의 걸작은 건물 자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래 극장이었던 건물이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흉가가 된 것을 1969년에 달리가 미술관으로 변신시켰다. 친히 설계도를 그리고 공사를 지휘했는데 본인 작품뿐 아니라 좋아하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직접 선정하고 배치하는 큐레이터 역할까지 했다.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가 있다. 인형술사인 주인공이 7과 1/2층에 위치한 이상한 회사에 취직했다가 우연히 실존 배우인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달리 미술관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달리라는 괴짜의 머릿속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어떤 괴상망측한 상상들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느낌.


귀신의 집이 따로 없었다. 다행히 안목과 센스가 넘치는 귀신의 집이었다. 입구에서 약도를 나눠주지만 일부러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다녔다. 어차피 논리적인 동선이 가능한 공간이 아니었다. 발길 닿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문제의 방에 들어섰다.

 

메이 웨스트의 방


메이 웨스트(Mae West)는 20세기 초 흑백영화 시대의 섹스 심벌이었던 미국의 여배우다. 1934년 어느 날 달리는 신문을 보다 그녀의 기사에 영감을 받고 <메이 웨스트의 얼굴을 이용한 아파트>라는 그림을 하나 그렸다. 사람 얼굴을 왜 이렇게 망쳐(?)놨느냐는 질문에 달리는 “난 단지 거실을 그렸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그걸 입증하기 위해 가구를 제작해서 진짜로 거실을 만들었다.

 

구성은 간단하다. 벽에 걸린 두 점의 풍경화, 벽난로, 그리고 빨간 소파 하나. 끝. 그런데 평범한 거실로 보이던 것이 전시실 한쪽에 있는 계단에 올라 돋보기로 한눈에 조망하면 사람의 얼굴이 된다. 벽난로는 빛나는 콧구멍이 되고 빨간 소파는 섹시한 입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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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연관이 없는 이미지로부터 익숙한 요소만을 추출해 의미 있는 형상으로 인식하는 걸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이라고 한다. 설원에서 눈이 녹아 드문드문 드러난 땅을 보고 예수님의 얼굴이라고 믿거나, 보름달 속 월계수 아래 방아 찧는 토끼가 보이는 게 그런 예다. 한번 얼굴이라고 인식하니 계속 얼굴로만 보이던 거실을 아주 가까이서 거꾸로 바라보니 다가서니 다른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섹시한 입술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소파도 뒤에서 보면 사람의 엉덩이 모양이다. 코 입장에선 엉덩이 냄새를 맡고 있었던 거다.


이번엔 거실 천장을 올려다보자. 탁자랑 욕조까지 진짜 가구들은 죄다 천장에 붙어 있다. 탁자 위에 놓인 램프는 다시 거꾸로 아래를 비추는 조명 역할을 하고 있다. 아래와 위를 달리 보게 만드는 것. ‘이 세상에 과연 하나의 완벽한 진리란 존재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달리는 완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완벽하지 못한 걸 두려워하지 마. 어차피 죽을 때까지 도달하지 못할 테니까.“

 

솔직히 허세라고 생각했다. 그냥 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운 좋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테마파크 같은 달리의 머릿속을 자유이용권을 끊고 즐기다 나오니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엔터테이너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달리 미술관만큼은 놀이동산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달리가 원한 것도 그거였을지 모른다. 어차피 이해하기 불가능한 인간.

 

미술관 지하에 있는 그의 무덤 앞에 서서 살짝 귓속말로 고백해줬다. 달리씨, 역시 소문대로 다르긴 다르시군요.

 


 


 

 

이지원 피디의 누구나 한번쯤 스페인이지원 저 | 중앙북스(books)
일반 관광객이 아닌 학생이자 생활자의 신분으로 낯설고 매력적인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포함해 인근 나라의 도시들을 날카로운 피디의 눈과 낭만적 가슴으로 때론 담백하게, 때론 치열하게 탐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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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뚜이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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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이야, 잘 지내고 있니?
회사 동료들과의 산책길에서 너를 처음 발견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났네.

 

자전거 도로 위에서 엄지손톱만큼 작은 너를 처음 발견했을 땐 놀라움 반, 걱정 반이었단다. 눈도 뜨지 못한 자그마한 생쥐가 얼마나 굶었는지, 내가 주는 새우과자를 끝까지 놓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오는 너를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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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엄마를 다시 만나길 바랬는데, 한 시간 뒤에도 그 자리에 있는 널 보고는 도저히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지. 근처에 뱀도 많은지라 내 딴에는 어떻게든 너를 살려보겠다고 집까지 데려왔는데, 너는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주변에서 왜 쥐를 주워왔냐며 병 걸린다고 워낙 말들이 많아서 너를 병원에 데려갔었어. 회사 근처 동물병원 세 군데를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너를 받아주지를 않더라. 집 근처 병원에 전화해서 자초지정을 설명하니 다행히 너를 봐주겠다고 하셨지. 생각보다 너무 작은 너의 덩치에 병원 선생님도 당황하셨고,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서 아무것도 처방해줄 수 없다고 하셨어. 다행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병균에 감염은 되지 않았을 거라 하셨고, 나는 그 말 한마디만 믿고 너를 집으로 데려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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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도 조금은 불안해서 소독약에 적신 면봉으로 널 닦았어. 냄새 때문에 좀 놀랐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싶어서 웃음이 난다.

 

우리 집에 온지 며칠 후, 네가 눈을 떴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 처음 본 세상 빛이 너무 눈부시면 어쩌나, 집안의 전등을 죄다 끄고 깜깜한 방안에서 네가 눈을 다 뜨고 적응하기를 기다렸지. 나를 처음 보고 놀라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강아지처럼 따르는 네 덕분에 하루하루가 놀라움과 기쁨의 연속이었어.

 

야근에 지쳐서 집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반겨주던 모습.
손을 내밀고 이름을 부르면 쪼르르 달려와 내 손 위로 점프하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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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몰랐겠지만, 네가 내 손으로 점프하는 영상을 보고 너를 촬영하고 싶다는 방송사 연락도 몇 번이나 받았었단다.

 

그런데 왜 방송촬영을 하지 않았냐고?


그야 연락을 받았을 당시에는 너랑 나랑 사이가 좋지 않았거든.


그렇게 날 잘 따르던 뚜이 네가, 여자친구 생겼다고 나를 피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나는 그저 팬더마우스 친구를 너에게 잠깐 소개해주고 다시 꺼내려고 한 건데, 그 친구가 내 손에 겁을 먹고 찍 울자마자 네가 총알 같은 속도로 달려온 당시에 정말… 하…


이래서 다들 아들녀석은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하는구나…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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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루이의 합사는 무사히 잘 이루어졌지만, 그 이후로 여자친구 지키겠다고 나만 보면 경계하는 널 보는데 헛웃음이 나더라. 아프게 물지도 못하는데다가 겁은 또 많아서는, 귀를 잔뜩 뒤로 눕히고 한번 공격하고선 쪼르르 도망가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마음이 좀 복잡했어.

 

번식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결국 뚜이 너 혼자 살게 되었고 다시 나를 따르기는 했지만, 예전만큼의 강한 유대관계는 느끼지를 못했어. 아마도, 너와 내가 같은 종(?)이 아니라는 것을 네가 알게 된 것이 원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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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이 넌 나에게 참으로 많은 추억과 행복을 가져다 준 친구야.


다니던 회사를 독립하고, 지금 이렇게 부부개발자로 게임을 만들며 살게 된 것도 다 네 덕이라고 생각해.

네가 밤마다 그렇게 시끄럽게(?) 쳇바퀴를 굴려댄 덕분에 우리 부부의 첫 게임인 ‘롤링마우스’도 탄생하게 되었고, 그 게임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회사에서 독립을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야.

 

팬더마우스는 태어나자마자 징그럽다는 이유로 꼬리가 잘린다는 사실, 햄스터는 무조건 한 케이지에 한마리만 키워야 한다는 점, 어린이날이 지나면 유난히도 많은 수의 햄스터가 버려진다는 사실도 너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어.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게임 속에도 담아냈었어.

 

아참, 지금은 듀크라는 햄스터를 키우고 있단다. 누군가가 햄스터 11마리를 한 박스에 담아서 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거기서 구조해 온 친구야. 이 친구도 참 사랑스럽지만, 여전히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뚜이 바로 너란다.

 

네가 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종종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들을 해.

어우 쥐새끼 징그러워.


꼬리를 자르면 햄스터처럼 귀엽겠네.


더러워. 다 밟아 죽여야 돼.

 

그들 눈에는 뚜이 네가 그저 더럽고 하찮은 존재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만큼은 이세상 최고의 친구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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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그날 내게 와줘서 고마웠고, 다음 생이 있다면 꼭 다시 인연을 맺어주길 바란다.

고마웠다. 작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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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중독과 장염은 뭐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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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투데이

                                        

구토와 설사가 겹치면 제일 무서운 건 탈수

 

지난 번 글에서 토하고 설사하고 배 아픈 병을 장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병이 또 있습니다 바로 식중독입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때때로 의사들도 헛갈립니다. 의사들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용어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들도 헛갈리는 걸 꼭 알 필요는 없겠지만 ‘알쓸신잡’ 차원에서 슬쩍 짚고 넘어가봅시다.

 

식중독은 ‘음식에 중독되었다’는 뜻이니 말 그대로 상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나는 걸 가리킵니다. ‘음식이 상했다’는 말은 대개 세균이 번식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식중독은 세균성입니다. 음식은 겨울보다 여름에 잘 상하지요? 그래서 식중독은 여름철에 많습니다. 학교 급식이나 잔치 음식 등을 통해 집단발병하는 일도 많지요. 대개 음식을 먹고 몇 시간 내에 증상이 시작되며 구토, 설사, 발열 등은 장염과 비슷하지만 복통이 훨씬 심한 수가 많습니다.

 

장염은 병원균이 장에 침입하여 융모를 손상시키는 병이라고 했지요? 이때 병원균은 대개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입니다. 구토나 설사를 할 때 바이러스가 쏟아져 나옵니다. 토사물이나 대변이 묻었던 자리, 사람의 손이나 의복, 침구 표면에 바이러스가 바글바글합니다. 이걸 깨끗하게 치우지 않거나 손을 잘 씻지 않으면 남아 있던 바이러스가 여기저기 퍼져나갑니다. 장염은 겨울철에 더 많습니다. 장염 바이러스가 낮은 온도에서 더 오래 생존하고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철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실내에서 지내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식중독과 장염이 헛갈리는 이유는 두 가지 사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증상(복통, 구토, 설사, 발열)이 같습니다. 증상으로는 구분할 수 없습니다. 식중독은 세균, 장염은 바이러스라고 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식중독은 상한 음식, 장염은 오염된 표면이나 손을 통해 전파된다지만, 오염된 음식을 통해 바이러스성 장염이 집단발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그런 골치 아픈 구분일랑 의사에게 맡기고, 지난 시간에 배운 것만 알아두세요. 구토와 설사가 겹치면 제일 무서운 건 탈수입니다. 식중독이든 장염이든 탈수를 막고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면 대부분 저절로 좋아집니다. 많이 아프거나, 구토/설사가 아주 심하거나, 고열이 나거나, 자꾸 처진다면 빨리 의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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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투데이

 

손 씻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장염은 겨울철에 더 많다고 했지요? 겨울이 다가오니 장염에 관해 좀 더 알아봅시다. 현재 장염의 가장 흔한 원인은 노로바이러스(norovirus)입니다. 이 녀석은 전염력이 아주 강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일단 생존력이 대단합니다. 영하 20℃에서도 살아남고 표면에 묻으면 수일에서 수주까지 생존하여 사람을 감염시킵니다. 60℃로 30분을 끓여도 죽지 않는다니 찜통에서 살짝 찌는 정도로는 잘 안 죽습니다.

 

찌는 방식으로 조리하는 게 뭐가 있나요? 예, 해산물이지요. 그래서 해산물 요리를 통해 발병하는 일이 많습니다. 환자의 대변으로 보통 수십억 마리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 수십 마리만 섭취해도 장염에 걸릴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린이집, 학교 등에서 한 명만 걸려도 쉽게 전염되어 집단발병이 일어납니다. 음식을 통해 집단발병하는 병이라면 정의상 식중독이지요? 그래서 노로바이러스 장염이라고도 하고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이라고도 하는 겁니다.

 

노로바이러스에 걸리면 장염에서 회복되어도 최대 2주간 대변으로 바이러스가 나옵니다. 따라서 환자는 회복된 후에도 2-3일간은 음식을 장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린이가 걸린 경우,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역시 회복 후 3일까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내서는 안 됩니다. 노로바이러스는 아직 백신이 없지요. 따라서 철저한 위생을 통해 예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상식처럼 정착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만, 손 씻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화장실에서 나올 때, 기저귀를 갈아줄 때, 식사나 음식을 만들기 전에, 환자를 돌보고 나서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합니다. 환자가 구토하거나 설사를 하면 즉시 치우고, 배설물이 묻은 곳을 완전히 닦아 내야 합니다. 노로는 일부 소독약에도 죽지 않으므로 락스를 써서 닦는 것이 좋습니다(1L에 10cc는 써야 합니다). 또한 배설물이 묻은 옷이나 침구는 즉시 빨아야 합니다. 바이러스가 공중에 흩날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취급하세요. 비닐 장갑을 끼면 좋습니다. 물론 배설물을 치우거나 빨래를 한 후 손을 잘 씻어야지요.

 

일차적으로 음식이나 물을 통해 옮는 병이니 완전히 익혀 먹는 음식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 과일이나 야채 등 익히지 않고 먹는 음식은 깨끗한 물에 잘 씻어야 합니다. 반쯤 익혀 먹는 음식, 특히 해산물은 문제입니다. 게나 새우는 익혀 먹는다지만 굴은 어떻게 할까요? 서양에서는 ‘-ber로 끝나는 달(10월, 11월, 12월)에만 생굴을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노로 때문에 굴도 완전히 익혀 먹으라고 권합니다.

 

생굴은 우리 식문화에도 깊이 들어와 있지요? 특히 김장을 담근 후나 보쌈에 곁들여 먹는 굴은 별미로 칩니다. 김치에 넣기도 하지요. 우리나라가 서양에 비해 노로바이러스 감염증이 특별히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생굴을 즐기는 문화와 노로바이러스의 발병률에 관해 뚜렷한 연구가 없기 때문에 통계가 올바른지, 정말 연관이 없는지, 연관이 없다면 어떤 이유로 우리만 특별히 병에 덜 걸리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국가나 민족만 특정한 질병에 덜 걸린다는 생각은 잘못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괜찮았더라도 지금 노로가 설치는 것이 변형된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보고가 있으므로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노로가 왕좌에 올라있습니다만, 사실 예전에 겨울철 장염의 대명사는 로타바이러스였습니다. (토르와 로키가 아니라 노로와 로타입니다) 로타바이러스 장염에 걸리면 허연 쌀뜨물 같은 물설사가 아주 심합니다. 아차하는 순간 탈수가 되어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지요. 저도 환자를 많이 봤지만 로타의 시절에는 노로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먹고 살만한 나라에서는 로타바이러스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백신 덕분입니다.

 

유아기에 입으로 먹는 백신으로 접종하며 안전합니다. 이상한 사람들의 말에 속아 백신도 맞지 않고, 설사가 심한데 병원에도 가지 않고 버틴다면 로타바이러스 장염은 정말 무서운 병입니다. 아직도 가난한 나라에서는 연간 수십만 명의 어린이가 이 병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부모님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랄 뿐입니다. 아직 백신을 맞추지 않았다면 소아청소년과 선생님과 상의하세요. 겨울이 다가옵니다. 겨울은 감기의 계절일 뿐 아니라 장염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개, 헤어드라이어 응징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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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두 달쯤 되었다는 강아지가 처음으로 집에 온 날, 식구들은 이름 짓기 회의부터 열었다. 저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름을 하나씩 말해봤지만 어느 것도 온 가족의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강아지를 안아 올리며 말씀하셨다.

 

“테-스?”
“테스? 여자 이름이잖아. 얘는 수컷이야.”
“그래? 그럼 안 되겠네.”
“아니지. 비슷한 발음으로 태수라고 하면 되지. 그래, 태수 괜찮네.”

 

그렇게 그 귀여운 강아지는 ‘테스’와 발음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많이 다른 ‘태수’가 되어 우리 가족으로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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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는 아주 얌전한 강아지였다. 한창 이가 나면서 근질거릴 때 문지방이며 방문, 의자 다리 같은 곳을 갉긴 했지만 그 정도였다. 용케도 자기한테 사준 장난감들만 가지고 놀았다. 인형을 물어뜯어서 몸통의 솜을 꺼내버리기도, 건전지로 움직이는 장난감 강아지의 숨통을 1분 만에 끊어버리기도, 들어가서 쉬라고 사준 개 전용 텐트를 박박 긁어 커다란 구멍을 내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기 소유의 물건들만 착실히 망가뜨렸다. 인간의 물건이라면 가지고 놀라고 내준 것이 아닌 이상 슬리퍼 한번 물어뜯지 않았다.

 

그런 태수가 세간을 망가뜨린 사건이 있었다. 헤어드라이어의 전선을 씹어 똑 끊어버린 일이었다. 망가진 드라이어를 들고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 옆에서 태수는 자기 짓이 아닌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만, 가전제품의 전선을 이빨로 씹어서 끊을만한 구성원은 우리 식구들(사람 셋, 개 하나) 중에서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태수가 처음으로 고장 낸 세간이 드라이어였던 게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 나는 아직도 일부러 그런 거였다고 믿고 있다. 태수도 여느 개들처럼 목욕 후에 털 말리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몸이 푹 젖은 상태에서는 체념한 듯 누워서 이리저리 드라이어 바람을 쐬다가도, 털이 거의 다 마른 것 같으면 벌떡 일어나서 ‘이제 그만해!’란 듯이 짖으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곤 했다.

 

그런 태수의 눈으로 바라본 드라이어는 어떤 존재였을까? 웅- 웅- 한없이 시끄러운 데다가, 더운 입김을 뿜으며 달려드는, 있는 거라곤 입밖에 없는 괴상한 요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놈만 사라진다면 앞으로는 목욕한 후에 털을 말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니 기회를 엿봐서 혼내줘야겠다고 전부터 마음먹었겠지. 그리고는 식구들이 없는 틈을 타서 감행, 전선을 잘근잘근 씹고 또 씹어 드디어 드라이어의 숨통을 끊어낸 것이다! 그 순간 이 작은 개가 얼마나 의기양양했을까?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웃느라 태수를 혼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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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수의 응징은 보람 없었다. 인간이 절연 테이프라는 것을 이용해 드라이어를 다시 살려놓은 것이다. 그때 부질없음을 깨달았던 것일까? 태수는 이후로 다시는 어떤 세간도 망가뜨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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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별이 빛나는 마을, 아를(Ar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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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을 넘어 덕질에 가까운 열망의 대상을 누구나 한 명쯤 마음에 품고 산다. 내 심장에 생명과도 같이 아로새긴 예술가는 태양처럼 살다 혜성처럼 떠난 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다.

 

언제, 어떤 계기로 그를 품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15년 전 처음 방문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방 한 곳에서만 10시간을 눌러앉아 그림을 따라 그리다가 감히 그가 빙의되는 초현실적 체험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권총으로 스스로의 가슴을 쏘았던 파리 북쪽의 작은 마을 오베흐쉬흐와즈(Auvers-sur-Oise)에서 동생 테오와 나란히 누운 그의 무덤 앞에 해바라기를 놓고 울었던 기억도 난다. 그런 고흐의 대표작 <밤의 카페>와 <노란 방> 그리고 <론 강의 별밤>을 그린 동네가 아를이다. 남프랑스 해안을 따라 니스를 거쳐 모나코까지 다녀오는 여정 중에 아를을 찾았다. 그의 삶이 가장 빛났던 순간을 찾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심히 들떴다. 기차 창밖으로 염소목장이 나오더니 갑자기 해바라기가 만개한 들판이 펼쳐졌다.

 

사실 아를은 애초에 고흐로 승부를 거는 동네가 아니다. 기원전 8세기부터 리구르족, 켈트족, 페니키아인이 거주해온 고대도시이자, 동시에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 등 로마제국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아를이 보여주는 낡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몇백 년간 손 한 번 댄 적 없는 것 같은 골목길에선‘색 바랬다’라는 표현이 뭔지 그대로 목도하는 게 가능하다.

 

최근 아를 시는 역사적 유산을 눈에 보이는 관광 상품으로 승화시키는 데 관심이 많다. 아렐라테(Arelate)라는 로마 시절 도시의 이름을 딴 축제가 매해 8월 열리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시대 복장으로 거리에 나서고 직업 검투사들이 원형경기장에서 고증된 무기로 글래디에이터를 재현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내 목적은 오로지 고흐였다. 고흐에게 아를이란 동네는 폴 고갱과 예술 공동체를 꿈꾸며 행복했던 시간과, 스스로 귀를 자르고 미쳐버린 불행의 시간이 혼재하는 곳이다. 1888년 2월 이곳으로 건너와 1889년 5월 생레미 정신병원으로 옮길 때까지 1년 3개월간 그가 그린 그림은 대략 300여 점.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자연에 매료된 고흐의 이 시절 그림은 온통 눈부신 노랑과 군청,연보라로 물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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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에서 고흐를 찾기란 예상외로 쉽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역전 노란 집은 폭격을 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심지어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론 강변엔 표지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 사람들은 고흐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내가 만난 아를 시민들은 왜 그렇게 동양인은 고흐를 좋아하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생전의 고흐도 아를에서 환대받지 못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외지인이 동네 분위기를 흐트러뜨린다는 주민들의 청원에 쫓겨나야만 했다. 고흐는 죽어서도 여전히 외롭고 슬펐다.그 유명한 <밤의 카페>를 찾았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그도 시켰을 음식을 시켜 먹노라니 바로 앞에 앉은 고흐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행복했다.


그런데, 고흐의 그림만 기억하고 찾아온 사람에게 현장은 좀 충격적일 수도 있다. 그림 속 카페는 호젓해 보이지만 실제론 상당히 너른 광장에 엄청나게 많은 노천 테이블들이 요란하게 성업 중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아름다운 노란 카페가 그 운영만큼은 썩 아름답지 않다는 점이다. 이곳 토박이인 내가 묵었던 숙소 집주인이 충고해주길, 카페 소유주가 여기 출신도 아니고 불친절해서 차라리 그 옆 다른 레스토랑에 앉아 눈으로만 감상하는 게 낫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맛도 썩 훌륭하지 않았고 웨이터들은 노닥거리다 대놓고 팁을 요구하는 등 관광명소 티를 너무 냈다. 코르시카 밀맥주 한 병을 사들고 론 강변으로 나왔다. 바람은 차가웠고, 별빛은 희미했다. 어쩌면 같은 자리에서 종종 압생트 한 병을 비웠을 고흐를 생각하며 한참을 함께 잔을 기울였다. 그의 그림과 똑같은 앵글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최신 디지털 기기를 아무리 작동시켜도 그 색감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부터 불타는 불꽃같은 황금색 별빛이란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건지도 몰랐다. 사물이 아닌 빛을 보았던 사람. 귀를 자른 고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태양처럼 폭발해버린 자아를 거둬주기엔 이 세상은 너무도 논리적이었다. 그는 필경 몹시 외롭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을 유일한 대상은 늘 같은 자리에 뜨는 밤하늘 별들뿐이었을 것이다.


설령 지금 내 곁에 생명처럼 사랑하는 그가 온다 한들, 나는 과연 그를 알아보고 꼭 안아줄 수 있을까?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고흐의 비밀


1. 고흐의 대표작 <노란 방>은 실제 아를에서 그가 살았던 허름한 단칸방을 그린 그림이다. 고흐는 똑같은 그림을 3개 그렸는데(자세히 보면 벽에 걸린 액자나 마룻바닥의 상태가 조금씩 다르긴 하다) 각각 암스테르담과 파리 오르세,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 소장돼 있다. 그런데 2016년 2월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가 그림과 똑같이 생긴 방을 만들어 석 달간 에어비앤비로 대여를 해서 화제가 됐다. 하룻밤 숙박비는 단돈 10달러. 진짜처럼 자기소개를 하는 방주인 빈센트와 투숙객들의 후기가 흥미롭다.

 

2.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은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스스로 자기가슴에 권총을 쏜 걸로 되어 있지만 동네 소년의 우발적인 총격을 받은 거라는 타살설도 만만치 않다. 고흐의 손에 화약 흔적이 없었다는 점, 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독실한 신자였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이 근거로 거론된다.


고흐가 귀를 자른 것도 고갱과 말다툼 끝에 홧김에 그런 게 아니라, 광견병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창가에서 청소부 일을 하던 가브리엘이라는 소녀를 위한 일종의 종교적 희생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3. 인기 영국 드라마 <닥터 후>에 고흐가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전화부스를 타고 시간여행을 한다는 설정답게 생전의 고흐를 현대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데려오는데, 자신의 그림이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걸 보고 놀란 고흐가 눈물을 펑펑 흘리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온다. 나 같은 상상을 한 사람이 또 있었나 보다.

 

4. “슬픔은 영원하다(La tristesse durera toujours).”


라부 여인숙 옥탑방에서 죽기 전에 고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고흐가 사랑한 술 압생트(Absinthe)의 뜻도 고통이다. 쓴 쑥을 잘게 썰어 알코올로 증류시켜 만든 이 독주는 에메랄드빛의 오묘한 색감에 무려 70도에 육박하는 엄청난 도수로 악마의 술이라고 불린다. 19세기 예술가들의 환각을 도운 술로 유명한데 부작용이 심해 한때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다. 고흐가 즐겨 사용한 강렬한 노란색이 사실은 압생트 중독에 의한 황시증(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병)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지원 피디의 누구나 한번쯤 스페인이지원 저 | 중앙북스(books)
일반 관광객이 아닌 학생이자 생활자의 신분으로 낯설고 매력적인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포함해 인근 나라의 도시들을 날카로운 피디의 눈과 낭만적 가슴으로 때론 담백하게, 때론 치열하게 탐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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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의 기억이 좋기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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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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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도 타 보고, 치마도 입어 보고, 타나카도 발라봤지만 그들의 삶에 닿을 수 없었어요

 

우리가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은 ‘여행한 곳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인데요. ‘한 달씩 머물다 보면 정이 들지 않는 도시가 없어서 한 도시만 꼽자면 다른 도시들에게 미안해집니다’라고 대답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질문 안에 ‘당신들의 수많은 여행을 바탕으로 내가 가서 후회하지 않을 딱 한 군데를 추천해 주십시오’란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분들의 취향을 알 수 없으니 다짜고짜 내가 좋았던 도시를 추천할 수 없지요. 그러나 질문을 조금만 바꾸면 그 여자도 저도 할 이야기가 참 많아요.

 

모든 여행의 기억이 좋기만 할까요? 사실 비행기 표를 쥐여주고 다시 가라고 한다면 한숨부터 낼 쉴 도시가 몇 곳 있습니다. 미얀마 북부에 만달레이란 도시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영국 식민 시절 조지 오웰이 식민 경찰로 머물면서 쓴 『버마 시절』이란 책의 배경이기도 하고, 석가모니가 제자 아난존자(阿難尊者)와 함께 다녀간 전설을 품은 곳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는 만달레이 언덕에 올라 도시를 굽어보며 2500년 뒤에 위대한 도시가 세워질 거라는 성스러운 예언을 하기도 했죠. 요즘 유럽과 북미에서 힙한 종교로 통하는 불교의 문화를 볼 수 있는 파고다가 가득하고 도시 전체에 강렬한 오리엔탈리즘의 이미지를 품고 있기도 해서 수많은 여행자가 찾아옵니다.

 

도시 역사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문화의 향기가 궁금했습니다. 그 여자와 함께 만달레이에 머물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고, 다른 이들이 엄지손을 추켜세우는 여행지이니 우리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 줄 거라 믿었죠.

 

하지만 우리는 약속했던 일정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고 다녔지만 일정을 틀면서까지 빨리 떠나고 싶은 도시는 만달레이가 처음이었습니다. 사건 사고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십시오. 그 사건들 때문에 만달레이를 떠난 것도, 다시 가기 힘든 것도 아닙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여행 중 마주했던 고생스러운 순간들까지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각색되기 마련입니다. 그 여자와 저는 만달레이에서 머문 기억들을 떠올려 보면 아련하고 그립기도 하지만 다시 한번 그 기억을 현실에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곳에 가기 전 그렸던 모습과 현실에서 마주한 도시의 풍경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그 간극에 놀랐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들이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일까요?

 

여행을 떠나는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도시에서 낭만적인 추억 하나쯤 만들고 싶어 합니다. 고민 고민해서 선택한 도시가 최고의 여행지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간혹 자신이 기대한 것과 맞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이번 여행은 만족스럽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건 쉽지 않아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더욱 그렇죠. 그래서 별로였던 여행의 추억도 아름답게 포장하곤 합니다. 별로인 여행지는 그냥 별로라고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여행의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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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뻬인 다리의 노을 풍경. 사진 너머로 무엇이 보이나요?

 하루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구경하다 각기 다른 세 명의 경찰관에게 벌금을 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교통 체계에 당황하고 실수해서 경찰에게 딱지를 받고, 다른 경찰에게는 ‘교통 법규를 어겼으니 딱지를 떼어야 하는데 뒷돈을 좀 주면 그냥 넘어갈게’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정식으로 벌금 고지서를 발급하려면 서류 과정이 복잡해지니 현장에서 경찰관이 적정한 선에서 처리하려고 뒷돈을 요구했던 거죠. 하루에 경찰관 세 명을 만났더니 우리 주머니에는 점심 먹을 돈도, 오토바이 주유비도 남지 않았죠.

 

만달레이에 사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입담배 ‘꽁야’를 씹어요. 그 입에는 빨간 침이 시도 때도 없이 나와서 얼핏 보면 시체를 뜯어먹다 고개를 든 좀비들처럼 보이죠. 꽁야에는 각성 성분 이외도 이를 상하게 하는 성분도 들어있어서 듬성듬성 검게 삭은 이가 드러나요. 그런데도 씹는 건 강력한 각성 작용이 피로와 졸음을 막아주거든요.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서민들이 꽁야를 많이 씹는 이유이죠.

 

유명한 관광지인 우뻬인 다리 사진을 본 적 있나요? 1806개의 티크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의 길이는 1.2km나 되고 일몰 시간이 되면 호수에 비치는 다리의 풍경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운치 있는 풍경 뒤에는 썩은 오물 냄새로 코를 막아야 하고 죽은 돼지들의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죠. 엽서 속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우뻬인 다리는 감정 없는 카메라의 눈이었을 뿐이죠.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서양의 지식’이라고 간명하게 정의 내린 바 있죠. 만달레이는 서양인들이 동양에서 보고 싶어 하는 이미지들의 총체를 모아 놓은 도시입니다. 19세기 영국군에게 점령당한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수도로써 오리엔탈리즘을 매력을 한껏 볼 수 있는 곳으로 말이죠. 우리가 만달레이에 가기 전, 보고 싶어 했던 모습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금빛으로 뒤덮인 불교 유적의 평화로운 이미지,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 우뻬인 다리의 목가적인 풍경 말이죠. 겸허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마다 이루어지는 탁발 공양도 그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몫하고요.

 

그 남자와 제가 만달레이와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폭이 넓은 천으로 롱 치마처럼 입는 이들의 전통 의상인 ‘론지’를 입고 불편하게 오토바이크를 타기도 했고요. 천연 선크림인 황토 빛의 ‘타나카’를 연지 곤지처럼 바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디서도 석가모니가 예견했다던 위대한 도시로서의 만달레이는 만나지 못하고 도망치듯 이곳을 떠났어요. 우리의 편견과 실재의 만달레이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를 넘을 수 없었던 거죠. 그렇게 이 도시는 여전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로 쓸쓸하게 우리 맘에 묻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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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여왕”이 된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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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초 개인 작업을 좀 더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100마리의 고양이"라는 개인 그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각자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 100마리의 고양이를 그리는 것이 목표였고, 우여곡절 끝에 책으로 엮어 출간하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100마리 고양이』다. 햇수로는 5년. 짧지 않은 기간이었기에 기억에 남는 일이 무척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고양이의 ‘고’자도 몰랐던 내가 고양이를 반려하는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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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기획할 당시에는 그림의 모델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미지를 검색해서 그릴 수도 있었지만, 저작권 등의 문제로 사진을 그대로 활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러 이미지를 참고해서 적절히 변형해야 했는데,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그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생생한 느낌을 살려서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실제로 고양이를 반려하는 반려인들에게 신청을 받기로 했다. 반려인들이 보낸 고양이 사진과 사연을 보고 그중에서 그리고 싶은 고양이를 모델로 선정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모델 고양이를 구하는 과정이었는데, 수많은 사연을 접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고양이 그림을 반년쯤 그리다 보니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고양이 집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고양이를 데려오려고 보니 걱정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14년 여름, 오랜 고민 끝에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고양이 커뮤니티 게시판을 뒤지고 뒤져서 예쁘고 건강해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를 점찍어 두고 입양 신청글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고양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6마리 고양이를 반려하고 있는 베테랑 고양이 집사 친구가 다급하게 메시지 하나를 보내왔다. 어느 유기묘의 입양 홍보글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찾고 있던 고양이는 하얀색 페르시안 고양이였는데 구조 당시부터 얼마 동안 임시 보호를 받으면서 건강이 점차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내고 보호소로 잡혀 들어와 안락사를 기다리던 고양이였는데, 운 좋게 구조되긴 했지만, 내가 점찍어 두었던 고양이와는 확연히 비교될 만큼 처참한 몰골이었다. 길고양이들과 싸웠는지 얼굴엔 상처가 가득했고, 누렇게 변한 털은 군데군데 빠져서 영 볼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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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고양이의 눈빛이 참 신기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지르면서도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살 거다, 나는 살아야겠다!"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누렇고 지저분한 고양이에게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그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그 고양이가 바로 나의 첫 번째 고양이 ‘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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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에 찬 눈빛으로 살아야겠다고 소리치던 그 고양이는 "열매"가 된 후, 더 이상 그런 눈빛을 보여주지 않는다. 언제 길에서 살았었냐는 듯이 볼록한 배를 자랑하는 뚱보 고양이가 되어 늘 반쯤 감은 눈으로 꾸벅꾸벅 졸면서 평화롭고 게으른 날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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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반려인들은 종종 ‘묘연’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쩌면 나와 나의 고양이는 반려인과 반려묘로 만나야만 했던 운명을 지닌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열매에게는 분명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를 향해 소리치던 단호한 눈빛, 그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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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을 씩씩하게 이겨내고, 죽음의 문턱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 나와 나에게로 와준 열매는 『100마리 고양이』의 100번째 고양이로, 따뜻한 겨울을 만드는 "겨울의 여왕"이 되어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인간 세계에 살고 있는 열매의 겨울도 더 이상 춥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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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클까? – 성조숙증 기초 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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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투데이

 

요즘은 남녀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발끈하는 분들이 많아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크지요? 물론 아주 키가 큰 여성도 있고, 아담 사이즈인 남성도 있습니다. 평균적인 키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뭘까요? ‘내참, 별 싱거운 사람 다 보겠네. 그렇게 타고난 거지. 그게 무슨 이유가 있나?’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잘 들여다보면 요즘 뜨거운 이슈인 성조숙증과 성장에 관해 매우 유용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춘기 얘기로 시작해볼까요? 사춘기는 思春期라고 씁니다. 생각 사(思), 봄 춘(春), 때 기(期), 즉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봄이란 꽃피는 봄을 가리키는 게 아니고 ‘생식을 위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점잖은 자리라 굳이 예를 들지는 않겠습니다만 같은 뜻으로 쓰이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즉, 사춘기란 생물학적으로 자손을 남길 준비가 갖춰지는 시기입니다.

 

모든 생물의 절대명제는 스스로 생존하는 것과 후손을 남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영원토록 이어가는 것이 생명현상의 가장 중요한 의미인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유전자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유전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진화에 의해 우리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들이 거의 갖추어진 때는 언제일까요? 인류가 살아온 내력을 문자로 기록하기보다 훨씬 전입니다. 로마시대에 인간의 평균수명이 25-35세였다니, 선사시대에는 오죽했을까요? 물론 더 길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40을 넘기는 사람은 드물었을 겁니다. 인생이 이토록 짧고 덧없으니 유전자도 마음이 급합니다. 인간의 생이 끝나기 전에 재빨리 후손을 잇게 하려고 하지요.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 매어 쓰진 못하죠? 유전자도 그 정도는 압니다. 그래서 일단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개체, 허약한 개체들이 저절로 떨어져 나갈 때까지 10년쯤 기다립니다. 10년을 살아남았다면 쓸만한 녀석들로 생각하여 후손을 이을 준비를 시킵니다. 생식기관을 자극하고, 몸의 크기를 키우고, 끊임 없이 ‘생식을 위한 행동’을 생각하도록 부채질합니다. 그래서 사춘기가 괴로운 겁니다. 모두 유전자 탓이니 야단치거나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다소 거칠게 들리겠지만 생물학적으로 남성은 씨를 뿌리는 것 외에 별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춘기도 단순 투박합니다. 한마디로 미천한 존재지요. 하지만 여성은 몸속에서 아기를 잉태하여 키우고, 목숨을 걸고 아기를 낳고, 태어난 아기를 젖을 먹여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여성의 사춘기는 훨씬 섬세하고 복잡합니다. 아기가 살아갈 공간과 태어날 때 나올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골반이 커지고, 젖을 내기 위해 유방이 발달합니다. 모든 준비가 갖춰지면 배란이 일어나고, 자궁 속은 수정이 일어날 경우 수정란이 포근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막이 두꺼워져 폭신한 솜이불을 깐 것 같은 상태가 되지요. 수정이 일어나지 않으면(아까비!) 내막은 떨어져 나와 몸 밖으로 배출되는데 이것이 바로 월경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현상들이 사춘기에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여기서 성조숙증과 성장에 관해 생각할 때 중요한 지표는 유방 발달, 키의 급속한 성장, 그리고 초경입니다.

 

잠깐! 음모는요? 좋은 질문입니다. 음모는 보통 다른 사춘기 징후들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음모가 곧 사춘기의 시작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심지어 의학적으로 성적 성숙도를 판단할 때 지표로 삼기도 합니다(태너[Tanner] 척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음모는 사춘기와 큰 관계가 없습니다. 난소에서 만들어지는 여성호르몬이나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남성호르몬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음모는 부신에서 만들어지는 부신 안드로겐이라는 호르몬 때문에 돋아납니다(겨드랑이 털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방 발달 등 사춘기 징후보다 몇 년 먼저 나타날 수도 있고, 나중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생기는 수도 있지요. 어쨌든 음모는 몇 살에 생기든, 혹은 생기지 않든 사춘기나 성조숙증과 연관하여 생각할 필요는 없고 심각한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그럼 음모는 빼고 유방 발달, 키의 급속한 성장, 초경만 생각하면 되겠지요? 세 가지 중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유방 발달입니다. 성조숙증인지 아닌지도 유방 발달을 보고 판단합니다. 구체적으로 만 8세 이전에 유방이 발달하면 성조숙증이라고 합니다. 유방이 발달하기 시작한 후 보통 1년 정도 지나면 키가 급속히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유방이 발달하기 시작한 후 2년 반에서 3년이 지나면 초경이 시작됩니다. 초경은 크게 축하할 일이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급속성장이 거의 끝났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개인차가 많지만 초경 후에는 키가 2.5-10cm 정도 더 크고 나서 성장이 중단됩니다. 정리해볼까요? 예컨대 10세 경에 가슴이 나오면 사춘기 시작, 11세 경부터 키가 부쩍 크기 시작하여 12.5-13세에 초경이 시작될 때까지 쑥쑥 자란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럼 남자는요?

 

남자아이들은 유방이 나오지 않지요? 그래서 고환을 봅니다(앗, 창피!). 사춘기 전 고환의 크기는 가장 긴 직경 기준 2.5cm 이하입니다. 이 크기가 3cm 이상으로 증가한다면 사춘기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난소도 비슷하겠지만 난소는 초음파 검사를 해봐야만 크기를 측정할 수 있으므로 유방을 보는 겁니다. 남자는 사춘기가 늦지요? 고환의 성장은 대개 10-13세 사이에 시작됩니다. 따라서 남자에서는 9세 이전에 사춘기가 시작되면 성조숙증이라고 합니다.

 

꼭 알아둘 것이 있습니다. 남자아이의 성조숙증은 치료를 요하는 심각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철저히 검사해야 합니다. 다만 남자아이의 성조숙증이 별로 많지 않고, 최근 들어 늘어나지도 않기 때문에 큰 논란이 되지 않는 겁니다. 최근 들어 성조숙증이 크게 늘어났다는 말은 여자아이들을 가리키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성조숙증이 엄청난 문제이고, 당장 치료해야 할 것처럼 떠들어대는 일부의 주장은 장삿속인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복잡한 검사를 할 필요는 더욱 없으며, 몇 년씩 호르몬 주사를 맞을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럼 문제의 답을 알아봐야지요? 왜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클까요? 그 비밀은 남자는 사춘기가 늦게 시작된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 저는 약간 꺼벙해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선명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초등 5학년 교실을 찾아갔는데 꼬맹이 때부터 알던 여자아이들이 죄다 이모들처럼 보여 몹시 당황했지요. 그 애들 중 하나가 제 이름을 부르기에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다가 향후 몇 년간 친구들 사이에서 아주 체면을 구겼지요.

 

여자아이들은 11세경, 측 초등 5학년 때부터 급속성장이 일어납니다. 남자아이들은 평균 2년이 늦어 13-14세부터 키가 쑥쑥 자랍니다. 사춘기 자체는 여자든 남자든 3-4년 지속됩니다. 그 3-4년간 성장속도도 남녀가 거의 같습니다. 문제는 11세부터 13세까지, 즉 여자아이들이 쑥쑥 자라 이모처럼 변할 때, 꼬맹이 같은 남자아이들도 조금씩은 키가 자란다는 겁니다. 사람의 키는 사춘기 전에 연평균 5cm, 사춘기 동안에는 연평균 10cm 이상씩 자랍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인 신장이 약 12.5cm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남자가 사춘기 전에 2년간 더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면 이모처럼 생각했던 여성이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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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처럼 차곡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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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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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억 년의 시간이 내 발 아래 흐르고 있었다.

 

빙하 위를 걸었다. 태고의 신비가 숨겨져 있는 얼음 동굴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던가 얼음 안에 잠들어 있는 매머드를 찾아내어 수렵시대의 식사를 하는 굉장한 경험을 하길 내심 기대했다. 지구의 남쪽 끝자락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까지 갔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빙하를 여행한다는 것은 반나절 동안 아이젠을 끼고 거대한 얼음 평야 위를 힘들게 걷다가 밥때가 되면 준비해 간 샌드위치 조각을 먹고 걸었던 것만큼 되돌아오는 것이 전부다. 정말이지 그뿐이다. ‘빙하 탐험’이 아닌 ‘빙하 투어’인데 기대가 너무 컸던 게지.

 

투어 마지막 순간, 빙하에서 살아 돌아온 기념으로 유리잔에 위스키를 따르고 빙하 조각을 넣은 ‘온 더 락’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악플러가 되었을 거다. 그들이 투어 끝에서야 술을 주는 것은 어쩌면 영하의 추위에 종일 떨었으니 술 한잔하고 그 순간의 행복만 기억하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영악한 사람들!

 

페리노 모레노 빙하는 누구 말대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만큼 멋진 여행지이다. 나처럼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빙하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일생일대의 경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얼음 강줄기를 따라 수억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고작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수억 년을 가늠하려고 해도 이내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히고 많다. 거대하고 눈부신 빙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라고 있다. 나이테로 나무가 자란 시간을 가늠하듯 끝도 없이 펼쳐진 너른 얼음 평야를 보고 있으면 시간과 시간이 벽으로 부딪치는 영화 <인터스텔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거대한 감동도 잠깐이고 얼음 위를 반나절 동안 걸었더니 춥고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다. 빙하란 애초에 나란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자 공간인가 보다.

 

그 거대한 시간 위를 걸으면서 조심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한없이 투명한 푸른빛의 계곡, 크레바스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린 푸르름에 넋을 잃는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크레바스에 빠지면 누구도 구해줄래야 구할 수 없단다. 그야말로 ‘벽장’ 속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가이드는 투어 내내 일행에게 주의를 주며 그 단절된 틈을 앞장서서 걸으며 안전한 길을 찾는다. 가이드가 깎아서 만든 디딤판에 올라서서 들여다보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짙고 푸른 어둠의 골짜기가 보였다. 크레바스와 냇물이 만나서 생긴 웅덩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감을 풀어 만든 것 같다.

 

균열이 없는 얼음 땅이 그 너머에 보여도 함부로 뛰어넘지 못한다. 작은 크레바스처럼 보여도 큰 균열이 숨어 있을 수 있어 뛰어넘다가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성실하게 쌓아 올린 시간이 만들어낸 이 틈이야말로 우리네 삶 같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일상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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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바스에 한 번 빠지면 살아 나올 수 없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연말을 특별하게 만들 계획으로 마음이 들썩인다. 언제 한 번 만나야지 했던 인사를 해가 넘어가기 전에 지키려고 끝없는 약속들을 이어나간다. 연말이 다가오고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 주변의 일상이 모두 새롭게 시작될 것처럼 행동한다. 시간은 그저 겹겹이 쌓인 일상이 모여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간을 만들 뿐인데 말이다.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지만 우리의 인생은 지금도 자라고 있는 빙하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연속이다. 단지 특별한 하루가 아니라 또 하나의 일상.

 

새해가 찾아오지만 그 남자와 나는 그저 또 하루의 일상을 사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꽉 찬 하루를 보낸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새로운 계획과 굳은 각오가 필요 없다. 단단하게 지켜 온 지금의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그 남자와 나는 꽤 규칙적이고 엄격하게 일상을 살고 있다. 지켜낸다는 의미가 정확할 것이다. 일상이 모여 ‘그 사람은 어떠했노라’라는 일생이 만들어진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사람의 일상과 ‘뭐 하루쯤인데 어때’라는 마음을 매일같이 품어 온 사람의 일상이 어떤 일생으로 기록될지 눈을 감아도 알 수 있다. 그저 평생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인생을 한탄하듯 산 사람의 일생이 어떤 식으로 망가질는지 우리는 그 끝을 그려 볼 수 있다.

 

새해가 되면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리고 외국어 학원 수강생이 늘어나며 체육관에 회원들이 바글거린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일 뿐인데 사람들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더 나은 ‘나’를 위해 시간을, 돈을 투자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이 고달픈 우리의 ‘인내’와 ‘끈기’는 작심삼일 만에 소멸된다. 결심을 방해하는 다른 방해물들이 다가올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매해 겪는 일이라 낯설지도 않다.

 

짙푸른 빙하 위에서 느끼는 영겁의 세월과 그 시간만큼 축적된 한기를 느꼈다. 발자국마다 전해지던 사각거리는 얼음의 낯선 감촉이 또렷하다. 그리고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던 갈라진 틈의 푸른 빛까지. ‘빙하 위의 함정’이라고 불리는 크레바스야말로 성실한 시간을 위협하는 균열이었다.

빙하가 녹은 물을 마셔 봤다. 심장을 도려낼 것 같은 차가움이다. 물에 손이 닿자마자 손가락 마디마디가 얼얼해졌다. 컵으로 한 잔 떠서 뜨거운 물을 식히는 것처럼 잠시 두었더니 적당히 차가워졌다. 몸 끝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연말이라고 새해라고 특별할 것 없이 그저 맑은 기분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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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애초에 잘못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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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이유경 씨가 화니프라자 3층 반딧불의원을 찾은 것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허름한 복도를 지나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기실에 앉아 있던 환자들이 이야기를 멈추고 일제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치 약속한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 들어온 사람이 낯선 여자인 것을 확인하자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느 병원이라면 자리에 앉아서 각자 조용히 휴대폰이나 잡지를 볼 텐데. 하긴 오늘 같은 휴일 저녁에 여는 병원이니 평범한 곳은 아닐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접수대의 간호조무사 김희정 씨가 살갑게 말했다.
 
“왔어? 접수하고 바로 진료 보면 되니까 잠깐 기다려.”

 

대기실에 환자들이 있어 순서를 제법 기다려야 할거라 생각했는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이미 진료를 받은 모양이었다. 유경 씨는 문득 속이 메슥거려 눈살을 찌푸렸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입덧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임신 12주 째였다. 첫째 때는 심하지 않았던 입덧이 이번엔 유독 심해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를 했다. 그나마 이번 주부터 식욕이 회복되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한 터였다. 고개를 들어 심호흡을 하던 중에 대기실 벽에 붙은 포스터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겨울, 건강을 준비할 때! 65세 이상 어르신 대상 독감예방접종 안내 - 지정 병의원과 보건소를 찾으세요.”

 

독감예방접종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틀 전이었다.
 
“임산부는 독감예방접종을 꼭 해야한다고 하던데, 나도 맞아야 하지 않을까?”

 

“임신하면 약도 조심해 먹어야 하는데. 주사 맞았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

 

“하긴 지난번 임신 때도 안 맞았는데. 독감 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되긴 해. 역시 안 맞는 게 나으려나….”

 

임신과 출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는 이유경 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임산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니는 병원에서 독감예방접종을 권해 맞았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부작용을 걱정해 안 맞았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주사를 맞은 경우에도 접종 시기는 제각각이었다. 어느 병원에선 임신 초기에 맞으면 안된다고 했고 다른 곳에선 임신 시기와는 상관없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김희정 씨가 떠오른 것은 그날 오후였다. 1년에 두어 번 동창 모임에서 만나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서 개인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휴대폰에 그녀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주사를 맞을지 말지 고민하는 유경 씨에게 그녀는 일단 병원에 와서 상의해볼 것을 권했다.

 

“입덧이 심하신가 봐요.”

 

진료실 의자에 앉은 이유경 씨는 의사가 건넨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조금 나아진 편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임신 초기란 이야기는 전해 들었는데, 얼굴이 핼쑥하고 안색이 파리해 보여서요.”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 까칠한 표정의 의사였다. 순간 ‘선생님 혈색도 썩 좋아 보이진 않네요’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라 유경 씨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독감예방접종 때문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독감주사를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병치레가 거의 없었고 감기도 안 걸리는 편이거든요. 가끔 감기 기운이 있어도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고요. 제가 약 먹는 걸 원래 안 좋아하기도 해요.”

 

“꼭 약을 먹거나 병원에 올 필요는 없지요. 감기 걸렸을 때 약을 안 먹으면 일주일 가고 약을 먹으면 7일 간다는 말도 있는걸요.”

 

의사는 가벼운 농담을 건넸지만 이유경 씨에겐 그걸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예방접종이라는 게 균을 집어넣는 거잖아요. 안 맞던 사람이 맞으면 심하게 아플 수도 있다고 해서 엄두가 안 나네요. 그리고….”

 

그녀는 말을 끊고 잠시 망설였다.

 

“중금속이나 방부제가 들어 있어서 오히려 건강에 안 좋다는 말들도 있고요. 예전에 독감주사를 맞고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어요. 그래서 임신 중에 주사를 맞는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주변에서 출산하신 분들이 독감주사는 꼭 맞으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독감은 그저 독한 감기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위험한 병이에요. 폐렴과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2,000명 이상이 독감 때문에 죽습니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숫자이지요.”

 

독감으로 죽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생각보다 큰 숫자에 놀랐다.

 

“독감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독감 자체보다는 합병증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주사를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은 경우에요. 노인의 경우 독감으로 사망할 확률이 젊은 성인보다 수십 배 높기 때문에 꼭 예방접종을 해야 하지요. 노인만큼은 아니지만 임산부도 독감에 걸리면 일반 환자보다 증세가 심하고 합병증도 더 잘 생기기 때문에 주사를 맞는 게 좋아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있어요. 지금 다니는 산부인과에선 독감예방접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거든요. 꼭 필요하다면 선생님이 말씀을 하실 것 같은데 그런 말씀을 안 하셔서요.”

 

“모든 의사가 예방접종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만약 제 아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당연히 예방주사를 맞게 할 겁니다.”

 

말투가 쓸쓸했다. 처음 보는 의사에게 진료받는 와중의 느낌으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 이유경 씨는 그렇게 느꼈다. 의사는 말을 멈추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가을 달이 호젓했다.

 

“독감에 걸리면 조산이나 유산이 될 확률이 높아지지요. 아이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예방접종을 꼭 해야 해요. 산모가 예방주사만 맞아도 태어난 아이가 독감에 걸릴 확률이 절반은 줄어듭니다. 독감예방접종은 엄마는 물론 뱃속 아이에게도 안전해요.”

 

“부작용이 심하진 않을까요.”

 

“어떤 약, 어떤 주사든 부작용은 다 있습니다. 하지만 독감예방접종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은 100만 명 중 한 명 정도에요. 의사도 접종 대상자라 저 역시 해마다 맞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사무적인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12주 째라고 하셨지요? 독감예방접종은 임신 어느 시기에나 가능해요. 오늘 주사를 맞고 가셔도 되고 아님 좀 더 생각해본 뒤 결정하셔도 좋습니다.”

 

이유경 씨가 진료실을 나왔을 때 대기실엔 아까 보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앉아 있었다. 뭐하는 사람들이길래 병원 대기실에 죽치고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리둥절한 그녀의 표정을 본 김희정 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이 건물 사람들이야. 요즘 독감예방접종 시즌이기도 하고. 한꺼번에 와서 저러고들 있네.”

 

나이 지긋한 여자 한 명과 중년 남자 둘, 그리고 젊은 남자 하나였다. 맨 오른 쪽에 엉거주춤 앉은 남자가 왼쪽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팔이 뻐근하네. 부작용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어째 몸이 으슬으슬한 것 같기도 하고.”

 

비쩍 마른 체형에 눈 밑이 어둑어둑한 게 평소에도 감기를 달고 살 것 같은 얼굴이라고 유경 씨는 생각했다.

 

“좀 그러다 말 거요. 나는 매년 맞는걸. 그나저나 최 사장님은 업종을 바꿔야 할 것 같아. 당뇨병도 있다는 사람이 편의점에서 밤낮이 바뀌어 사니 몸이 축나지 않고 배겨? 환갑이 넘은 나보다 최 사장 같은 사람이 더 조심해야지.”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아이고, 누님이야말로 연세가 있으니 건강 챙기셔야지. 게다가 우리 상가에서 제일 중요한 번영회 회장님인데 독감으로 앓아눕기라도 하면 안 될 일이죠.”

 

호들갑을 떨며 말한 것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중년 남자였다.

 

“그러는 한 원장은 나이도 아직 한창인데 주사를 왜 맞는가?”

 

“제가 워낙 천식이 있잖아요. 기원 안에 사람이 많아서 공기가 나쁜 건지 항상 기관지 상태가 안 좋아요. 임 관장님은 어때요? 운동하는 사람이라 감기는 모르고 살 것 같은데.”

 

“아, 뭐… 저는 아직 건강에 문제는 없지요. 젊은 사람들은 안 맞아도 된다고 하던데, 그래도 도장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라 그냥 맞고 있습니다.”

 

“주사를 맞긴 했는데, 이게 제대로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작년에도 맞았는데 겨울에 감기로 고생했거든요.”

 

편의점 최 사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하자 번영회 회장인 홍영자 씨가 대꾸했다.

 

“아니야. 난 독감주사를 맞으면 감기에 걸리더라도 확실히 수월하게 지나가더라고.”

 

“독감은 감기와 다른 병이에요.”

 

진료실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의사가 진료실 문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는 유경 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컸다.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종류도 다르고 치료 방법도 다르거든요. 그러니 독감주사를 맞고도 감기에 걸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사를 맞고 감기가 덜하다는 것도 기분 탓일 거에요. 애초에 서로 다른 병에 ‘독한 감기’라는 이름을 붙인 것부터 잘못된 거죠.”

 

“우리 상가 주치의인 이 원장님이 그렇다고 하면 맞는 거겠지. 안 그래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얌전히 그의 설명을 듣던 사람들이 홍영자 씨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사람이나 병이나 뭐든 이름을 잘 지어야 해. 내가 우리 기원 새로 열 때 이름 받으러 점집에까지 갔었다고 말했던가? 근데 아직도 마음에 썩 안 들어. 여기 병원처럼 멋들어진 이름으로 정했어야 했는데. 반딧불 의원이라. 얼마나 좋아?”

 

한 원장의 너스레에 의사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나저나 다들 이렇게 오래 비우셔도 되나요? 자, 이제 오늘은 그만 해산하세요.”

 

김희정 씨가 손뼉을 쳤다. 사람들이 못내 아쉬운 듯 병원을 나가자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 그냥 두면 끝이 없다니까.”

 

그녀는 이유경 씨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접수대 옆에 서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이유경 씨가 그녀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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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투데이

 


독감과 감기는 원인, 증상, 치료법이 모두 다르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데 반해, 감기는 200여 종 이상의 바이러스가 단독 또는 결합하면서 발생한다. 그래서 감기에 대한 백신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독감에 대한 백신은 만들 수 있다. 단지 바이러스가 조금씩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매년 새로 만들어진 백신을 맞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독감(毒感)이란 이름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확실히 알기는 어렵지만, 1702년 <승정원일기>에 독감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이후 여러 학자들의 문집에도 쓰였으므로 최소한 300년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독감이 현재의 인플루엔자를 지칭한 것이 맞다면 이미 그때부터 사람들은 열과 기침을 동반한 이 병이 일반적인 감기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300년 전에 ‘독감’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붙였다면, 오늘날 독감과 감기를 혼동해 생기는 예방접종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독감예방접종의 우선 대상자는 50세 이상 성인이며 기타 면역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성질환자와 임산부도 우선 접종 대상자에 포함된다. 임산 중에 독감예방접종을 하면 산모와 신생아 모두 독감에 걸리거나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줄어든다. 하지만 노인이나 만성질환자에 비해 임산부의 독감주사 접종률은 매우 낮아 5~2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연구에 따르면 독감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접종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작용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리고 태아에게 해로운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었다. *

 

* 강희선, <임산부들의 임신 중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에 대한 인식>, 여성건강간호학회지 제17권, 제3호,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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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야, 사랑을 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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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를 본 순간,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함께 살 계획은 없었다. 녀석의 곁에는 어미와 형제들이 있었다. 길 위의 삶이 버겁다고는 하나, 잘 적응하고 있다면 굳이 인간이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다른 존재를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먹을 것을 챙겨주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단비와 나는 17개월째 동거 중이다.

 

발단은 달이의 죽음이었다. 달이는 단비의 네 형제 중 하나였다. 형제들의 어미인 춘장이는 내가 사료를 챙겨주던 길고양이였는데, 첫 만남 이후 한두 달이 지나자 새끼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왔다. 산이, 들이, 별이, 달이. 아이들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달이는 그해 봄이 끝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생후 3개월 즈음이었다. 사체를 수습하며 ‘두 번은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게 식어서 뻣뻣하게 굳은 몸.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진저리를 쳤다. 한 달 정도 지난 후, 이번에는 별이가 아팠다. 눈꼽이 한가득 껴서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고, 밥도 먹지 않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별이까지 떠날까 겁이 났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구조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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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 당시

 

구조 과정은 수월했다. 녀석은 ‘**츄르’에 영혼이라도 판 것처럼 제 발로 통덫에 들어갔다. 문제는 병원에서 발생했다. 수의사는 ‘치료비가 100만원까지 나올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없다면 제 자리에 풀어줘라’라는 말로 내 지갑 사정을 에둘러 물어봤다.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통덫 안에 있던 별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너 어떻게 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에게 묻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수의사는 우리를 남겨두고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여기 소독해요’ 간호사에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별이는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온 건데, 통덫의 문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병원을 나와 거리에 쭈그려 앉았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내가 포기하면, 별이는 죽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나는, 돈이 없었다. 당장은 어떤 결정도 내릴 수가 없어서 선택을 미루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른 병원에 가보자, 한 군데만 더’. 또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별이 구조 대소동’은 싱겁게 끝났다(싱거운 결말이 반가울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두 번째로 찾아간 병원에서, 수의사는 그리 큰 병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별이는 3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이름처럼 별이 될까 봐 두려웠던 나는 단비라는 새 이름을 지어줬다. 시들어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반가운 빗물처럼, 강한 생명력을 품은 아이가 되라고. 그리고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스스로 단비 엄마를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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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는 엄청난 개냥이다. 집에 온 첫날부터 곁에서 잠을 잤고, 손길도 거부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독립적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갖고 있었던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만 하고 각자 생활하면 될 줄 알았는데, 단비는 혼자서는 놀지도 자지도 않았다. 매 순간 엄마가 자신에게만 집중하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내 심심하다며 애옹애옹 떼를 쓰고 있다. 이럴 때 관심을 주지 않으면 가슴팍으로 뛰어올라 매달리듯 몸을 파묻는다.

 

녀석이 처음으로 품에 안겨서 고롱고롱 기분 좋은 소리를 내던 때를 기억한다. 골골송에 맞춰 내 가슴도 찌르르 울렸던 느낌을 기억한다. 그때, 이상하게도 겁이 났다. 단비가 떠나면 어쩌지, 두려워졌다. 첫 만남부터 나를 펑펑 울리더니 기어이 또 눈물 맺히게 했다. 나는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다. 사랑은 두려움과 같이 시작된다는 것. 단비를 잃을까 봐 두려워했던 그 순간, 내가 이 작은 아이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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