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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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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동성애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논의가 진행 중이고 수많은 문헌과 자료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두 가지만 얘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난합니다. ‘생식을 위한 성교를 쾌락 추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신의 뜻에 반한다’거나, ‘미풍양속을 해친다’거나, ‘에이즈 등의 질병을 옮긴다’는 것입니다.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동성애자가 이성을 사랑할 수도 있고 동성을 사랑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동성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동성애가 생물학적으로 정해지는 성향이라는 증거는 유전자 연구와 뇌스캔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결정적이냐 하는 점은 아직도 논란 중입니다. 다윈 이래 수많은 석학들이 진화의 증거를 제시해왔지만 아직도 미국인의 55%가 창조론을 믿는다는 허탈한 보고가 있습니다. 아마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한다고 해도 선택은 개인의 몫이라고 주장할 사람이 여전히 있을 겁니다. 그러니 복잡한 과학 얘기를 하는 것보다 동성애자들의 체험담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게 된 순간을 회상합니다. 일관되게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다고들 하지요. 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을까요? 앞에서 말했듯 성적 정체성은 아주 어린 나이에 생기지만, 성적 지향은 사춘기 들어 생깁니다. 사춘기는 성숙한 나이는 아니지만 어린이도 아니지요. 동성애를 ‘선택’한다면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나 이성애를 선택할 겁니다. 동성애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비난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눈이 작다거나 손가락 길이가 짧다고 비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긴 요즘은 ‘왜 얼굴 안 고치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둘째, 동성애는 성교 방식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동성애가 선택의 문제라고 해도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잖아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동성애의 진실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즉흥적으로 만난 상대와 폭력적인 항문성교를 하여 신체가 손상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에이즈를 옮긴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항문성교-에이즈’란 식으로 도식화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선 이 도식에서 여성 동성애가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항문성교를 하지 않고 에이즈를 옮기지 않으면 괜찮은가요?

 

몇 년 전 일입니다. 캐나다에서 초등학교 7학년,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이었던 막내가 저녁식사 중에 몹시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질성교, 항문성교, 구강성교(사실 이 부분은 영어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어려운 한국어까지는 몰랐죠.)를 다 해봤어요?”사레가 들어 캑캑거리다 물을 마시면서 보니 아내도 얼굴이 발개져 있더군요. 그런 걸 왜 묻느냐고 했더니 학교에서 성교육 시간에 사람의 정상적인 성교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배웠다며 엄마 아빠도 그렇게 하는지 궁금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양에서는 항문성교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정상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본다는 겁니다. 초등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칠 정도니까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킨제이 보고서 같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인간의 성행동은 문화에 따른 차이를 걷어내고 나면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니란 뜻입니다.

 

저는 캐나다에 삽니다. 캐나다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지요. 동성인 부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단정하게 털손질이 된 개를 끌고 둘이 손을 꼭 잡고 산책을 다니고, 같이 장도 보고, 이웃을 집으로 불러 맥주파티도 합니다. 집이 아주 깨끗하고 멋지게 꾸며져 있어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고, 역할을 분담하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상대방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이성인 부부와 똑같습니다. 인간의 성은 동물의 성과 약간 다르지요. 생식 목적 외에도 사랑을 전달하고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동성인 파트너끼리도 물론 성적인 방법으로 애정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성적인 방식 = 성기의 삽입이라는 도식에 빠져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기의 삽입을 하는 경우라면 정상적인 세 가지 방식 중에서 한 가지는 불가능하니 나머지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하겠지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성교를 하느냐는 기준으로 이성인 부부나 연인을 판단하지 않듯이, 동성인 부부나 연인도 그런 기준으로 판단할 이유는 없습니다.

 

즉흥적으로 만난 상대와 폭력적인 방법으로 성교를 해서 신체가 손상된다거나, 병이 옮는다거나 하는 문제는 본질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성 간의 성교도 즉흥적으로 만난 상대와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질 문제이자, 폭력과 범죄라는 차원에서 다룰 문제입니다. 에이즈가 초기에 난잡한 성교를 즐기는 남성 동성애자 사회를 중심으로 확산된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에이즈가 동성애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에이즈의 기원은 매우 흥미롭고 복잡하여 한두 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1900년대 초 아프리카에서 유인원으로부터 사람에게로 종간전파된 것으로 봅니다. (에이즈의 기원에 관해서는 데이비드 콰먼의 책 『인수공통』을 권합니다. 에이즈는 혈액접촉이나 수직감염에 의해 전염됩니다. 항문성교는 질성교에 비해 작은 상처가 나기 쉬우므로 혈액접촉이 자주 일어납니다. 에이즈가 남성 동성애자 사회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입니다. 현재 에이즈는 환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동성애 차원에서 논할 문제를 벗어났습니다. 동성애를 막는다고 에이즈가 줄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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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난잡한 성교는 동성애자에게든 이성애자에게든 모두 위험합니다. 동성애자들이 특별히 더 난잡한 성교를 한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즉흥적인 관계를 맺는 동성애자가 더 많을지 이성애자가 더 많을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성 간의 성교에 의해서도 에이즈는 물론 다른 성병이 옮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건적인 측면에서 논의하고 대처해야 할 문제입니다.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두 가지 문제는 자연히 줄어들 겁니다.

 

작년에 아일랜드의 차기 수상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는 인도 이민자의 아들로 38세입니다. 또한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아일랜드는 다소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로 꼽히지요. 이민자의 아들, 38세,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이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봅니다. 동성애자가 행정부의 수반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도, 아카데미상 수상자 중에도, 가장 탁월한 과학자, 기업인, 예술가, 법조인, 교수, 의사 중에도 동성애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편 군에 입대할 경우 동성애자로 처벌받을 것을 피해 난민 지위로 이민을 신청한 우리나라 남성을 캐나다 이민국에서 받아들였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우리는 어떤 규범을 세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길 좋아합니다. 때로는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소수의 문제를 귀찮아하거나 무시합니다. 인류는 신체적 능력이 보잘것없는 동물이지요. 진화 과정에서 뭔가 낯선 상대를 만났을 때 싸워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를 즉시 결정해야 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고, 친구와 적을 한눈에 판별하는 기술은 생존에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리니 인간이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버릇은 진화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민족은 식민열강의 지배를 받고, 수동적으로 해방을 맞고, 동족끼리 갈라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그 잿더미에서 불과 몇 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압축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 숨가쁜 과정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무시되었습니다. 모순이 터져나오면 약자 중에서 희생자를 골라 얼토당토 않은 규범으로 단죄한 후 모순과 함께 묻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모두 이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과학은 인간과 우주의 본 모습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계속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한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수많은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 기준을 맞추어야지, 기준에 사람을 맞추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람 나고 기준 났지, 기준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닙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을 부정하면서 어떤 기준에 맞아야만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법이든, 도덕이든, 미풍양속이든, 그 밖의 어떤 좋은 이름을 뒤집어 쓰더라도 폭력에 불과합니다.

 

왜 3살도 되기 전에 스스로를 타고난 성별과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호르몬의 어떤 변화로 인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전적, 선천적인 부분이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다고 해도 무엇이 바람직한지 판단할 수는 없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이 분명 존재하고,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들도 나와 똑같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 과정이 특별히 어렵다면 따돌리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도울 게 있다면 도와주면 됩니다. 세 편의 글에서 젠더에 관한 복잡한 용어들을 설명한 것은 개념을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인정의 첫걸음이니까요.

 

우리는 이제야 인간의 젠더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개념이 혼란스럽고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모르는 것은 섣불리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냥 모른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과학이 인간에 관해 밝혀낸 것 중 가장 위대한 사실은 ‘모든 인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소수자’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소수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일은 자기 자신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과 닿아있습니다. 성소수자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생각해보면서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길을 찾기 바랍니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데이비드 쾀멘 저/강병철 역 | 꿈꿀자유
인수공통감염병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문제가 되고 있는지, 왜 완전히 정복할 수 없는지, 이대로 가면 어떤 파국이 기다리고 있는지, 파국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다이슨 VS 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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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스쿨 청소기의 제왕 밀레(Miele) 유선 청소기

 

 

독립이든 비운의 1인 가구든, 신혼부부든,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됐다는 건 청소를 스스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공간을 더욱 윤택하게 가꾸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새댁들 사이에선 지난 10년간 끊이지 않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당신이 육아나 신혼과는 담을 쌓은 삶이라도 일선에 얻은 경험과 논쟁으로 쌓아 올린 이 데이터베이스는 꽤나 참고할 만하다.

 

필수 가정용품인 진공청소기를 놓고 벌어지는 다이슨(Dyson) 스틱형(무선) 청소기와 올드스쿨 청소기의 제왕 밀레(Miele) 유선 청소기 사이의 선택이 그것인데, 샐러드마스터 대 무쇠팬, 전기레인지 대 가스레인지처럼 사실상 이미 판가름 난 전투다. 낙동강 방어전선처럼 절대 함락되지 않는 사람들도 일부 있으나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가볍다는 편의성 때문에 판세는 다이슨으로 기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블랙프라이 데이'가 곧 '다이슨 데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지켜보던 다이슨은 아예 지난해 말 한국 법인을 설립했다. 국내 굴지의 가전회사에서도 최근 꽤 수준과 가격이 높은 제품을 출시해 스틱형 청소기 시장에 참전했다.

 

이미 패색 짙은 이 전투에 굳이 끼어든 이야기를 꺼내게 된 건 너무나 많은 비교와 고민, 경험담 속에 바닥청소 본연의 목적이 혼탁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기 구입은 쇼핑의 차원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는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견고한 울타리 공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이슨 무선 청소기의 장점은 경량의 기동성과 특허기술인 싸이클론 방식의 특징인 먼지봉투와 필터교체 등의 소모품 구입비용 절감이다. 수십 만원이 넘는 초기 비용이 드는 선택이다 보니 유지비용의 절감은 꽤나 매혹적이고, 육아에다 결국 청소까지 떠맡은 주부들에게 경량성은 포기할 수 없는 복지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집 안 일이 아직 서툴거나 손목 힘이 약한 새댁들의 입장에서 고려할 법한 사항이다. 자신의 공간을 가꿀 줄 아는 남자라면 어떤 청소기라도 깁슨의 플라잉브이를 연주하듯 자유자재로 후릴 줄 알아야 한다. 또, 헤파필터의 노고를 머쓱하게 만드는 먼지통 청소시 배출되는 먼지와 2~3년이면 찾아오는 배터리 교체를 소모비용으로 분류한다면 또 다른 계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량성과 소모품 문제는 청소의 근원적인 의미를 흐리게 만든다. ‘리브 노 맨 비하인드leave no man behind’.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이 말은 기념비적인 전쟁영화 <블랙호크다운>의 세계관이자 실제 미군의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여기서 단 한 단어만 바꾸면 그대로 바닥청소에도 적용된다. 손목터널 증후군이 있다거나 나사에서나 쓸법한 디자인이 딱 취향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진공청소기는 헤드가 지나간 자리 뒤에 먼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단 한 톨의 먼지도 남기지 않겠다는 청소의 본령에 가장 충실한 제품이 바로 헤드가 벽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하는 밀레다.

 

하드플로우툴이 없다면 맨들맨들한 바닥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발휘하지 못하고, 헤드가 전진할 때만 흡입을 하며, 충전시간을 고려해야 하는 까탈스러운 다이슨과 달리 밀레는 1년에 한번 헤파필터를, 3~5개월에 한번 먼지봉투만 교체하면 어제와 다름없는 힘찬 모터소리를 10년 후에도 들을 수 있다. 비비드한 색상과 범퍼를 두른 모양은 마치 유럽산 SUV 같지만 관리만 꾸준히 해주면 20년 후에도 변함없는 퍼포먼스로 응답하는 클래식 머슬카다(참고로 밀레에도 일체형 제품이 있긴 있는데 팜플렛을 보면 사람이 사람을 든 것 같다).

 

2년짜리 배터리를 가진 기괴한 우주선을 둘 것인가 20년을 함께할 레트로 디자인 머슬카와 일상을 함께 할 것인가. 물론, 두 브랜드 모두 고성능 헤파필터를 장착한 고사양 제품들이다. 다만 그 정도 비용을 지불할 정도로 청소를 중히 여긴다면 한 톨의 먼지도 남겨놓지 않겠다는 본령을 잊지 말자는 제안이다. 그러니 로봇 청소기는 아무리 스마트해진다고 한들 당신의 선택지에서 영원히 논외로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공교롭게도 호텔만 갔다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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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이 좋아하는 곳은 우리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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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의 국민 소스 ‘늑맘’을 만드는 풍경

 


드디어 그런 날이 오고 말았다. 서울이 모스크바보다 더 추운 겨울 말이다. 그 여자와 나는 이번 겨울도 따듯한 남쪽 나라에 머물렀다. 보일러가 멈추거나, 세탁기가 돌지 않거나,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했다. SNS로 올라오는 역대급 추위 인증 샷을 보고 있으며 ‘나만 이리 좋은 곳에 있어도 되나’ 싶어서 내내 미안하다가도 호텔 수영장 선탠 베드에 누우면 이내 ‘역시 겨울에는 남국으로 여행 오는 게 최고군’ 하고 한국의 상황들을 잊곤 했다.


추운 날, 눈 내리는 동네를 여행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보다 몸이 향하는 곳은 따듯한 남국이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었는지 우리가 찾은 겨울 여행지에는 늘 그들이 먼저 와 있었다. 한반도에 극한의 추위가 찾아올 때마다 비교당하는 러시아 사람들 말이다.

 

베트남의 바닷가 마을인 무이네는 바구니 모양의 전통 배, 까이뭄(Chai Mum) 위에서 물고기를 잡고 그 생선으로 베트남 특유의 맛을 내는 액젓 늑맘(Nuoc mam)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해변에 맞닿아 있는 좋은 땅들은 리조트가 차지하고 있고 사막 투어, 어촌 및 농장 방문 등 여행 상품으로 외지인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다. 그 관광 산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러시아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이 작은 바닷가 마을에는 러시아어로 된 간판이 태반이고, 식당에는 영어보다 러시아어로 된 메뉴판이 우선이다. 테이블 서른 개가 넘는 식당이 러시아 사람들로만 찰 때도 있고, 가게 종업원 중 한 명은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면 무이네에서 러시아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힐까?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겨울 휴양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해변이 있는 바닷가 마을일 것, 음주를 비롯한 밤 문화의 다양성이 보장될 것, 스쿠터로 움직일 수 있는 한적한 규모의 마을일 것 그리고 물가가 아주 저렴할 것. 세계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바로, 이 네 가지 조건에 충족하면 여지없이 러시아 사람들의 겨울 휴양지가 된다. 터키의 안탈리아에서 요트를 타고 거품 파티를 즐기던 것도 그들이었고, 클럽 음악과 술을 찾아 인도 고아에 몰려들던 사람들도 러시아인이었다. 그리하여 물가도 싸고, 사람도 친절한 베트남 무이네가 그들의 겨울 휴양지로 새로 자리 잡았다.

 

이 선택에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완전히 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무이네이기 때문이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호텔과 리조트에 머물다가 로비를 나서면 시골 마을 풍경 위에 자리 잡은 식당에서 1,000원으로 맥주 한 병 시켜놓고 한적함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베트남 음식이 좀 맛있는가! 길게 펼쳐진 해변에서 놀다가 사막에서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보려면 30분만 움직이면 된다. 우리는 밤낮없이 정보를 찾아보고 나서야 무이네를 왔는데, 그들은 어떻게 알고 이 작은 마을에 오는 것일까? 아무튼 우리의 수고가 무색할 정도로 러시아 개별 여행자는 물론이고 전세기를 타고 왔을 것 같은 대규모 투어 팀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런 다양함을 지닌 무이네이지만 거기에 머무는 동안 그 여자와 나는 다른 일로 정신이 없었는데….

 


호텔방, 우리만 좋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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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풍경은 덤이다

 

 

『월간 채널예스』 2월 호에 눈길이 가는 기사가 있었다. '나에겐 너무 중요한 작업 공간' 꼭지이다. 에세이스트, 화가, 디자이너 등 5인의 작가가 작업 공간을 공개했다. 카페를 이용하는 임경선 작가를 제외하면 모두 집과 별개의 개인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집이 작업실이자, 카페이자, 식당이자, 목욕탕이자, 수면실인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럽다.

 

“언젠가 우리도 작업실을 가지게 될 거야? 그렇지? '그 남자'야?”

 

그건 그렇고,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이라면 만족도 면에서 최상위로 꼽을 만한 작업 공간이 있다. 사실 인터뷰한 작가들 중 한 명은 이 장소를 언급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매우 특별한 공간이라 주저하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 우리에게 '작업 공간으로 어디가 가장 만족스러웠나요?'라고 묻는다면 '호텔'이라고 말할 것이다. 2성급, 3성급 호텔이 아니다. 별이 많이 붙을수록,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을수록 좋다.

 

작업실도 없는 주제에 웬 허세냐고? 네. 무이네라면 우리도 가능합니다. 이곳에서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사랑한다면 왜』의 마지막 교정을 보았다. 마지막 교정, 예민해질수록 보이지 않는 오타와 띄어쓰기를 찾는 숨바꼭질은 애를 태우고 내용 면에서도 실수한 건 없는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인쇄 전까지 원고를 수정할 단 한 번의 기회, 이토록 중요한 마지막 교정을 그 남자와 나는 4성급 호텔에서 치렀다.

 

매일 아침, 입맛에 맞게 다양한 조식을 챙겨 먹고 교정에 몰두한다. 호텔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우리 말고도 많은지 편안한 의자와 책상이 준비돼 있다. 상쾌한 에어컨 바람이 갑갑해질 즈음이면 점심도 먹을 겸 호텔 건너편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돌아온다. 그 길에 수영장에서 선탠을 하거나 수영을 한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일주일 동안 우리가 무이네에서 했던 일의 전부다. 그것뿐인가?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의 수고로 방과 욕실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 그중 최고는 매일 바뀌는 이불 시트이다. (이불 시트 갈기는 내가 싫어하는 집안일 중 하나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말끔히 정리된 작업 공간이라니! 오로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고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작업 공간으로서 호텔 이용은 사실 무이네가 처음이 아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태국 방콕, 인도 델리에서도 큰맘(이전 여행지에서 심신이 탈 나 몸을 추슬러야 하거나 기가 막힌 운으로 저렴하게 예약한 경우) 먹고 입실한, 별이 치렁치렁한 호텔에서 원고 교정을 보았다. 그러니까 '호텔을 예약해야겠어. 왜냐하면 일을 해야 하니까'가 먼저가 아니라 호텔에 들어갔더니 편집자로부터 메일이 날아오는 식이었다. 공교롭게도 호텔만 갔다 하면 어떻게들 알고 일거리를 보내준다. 무이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편집자들에겐 공간을 초월하는 눈이라도 달린 것인가!

 

나는 요즘도 개인 작업실도 카페도 아닌 호텔방을 꿈꾼다. 한 달 정도 호텔방에 틀어박힌다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작품 하나는 쓸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그럴 일 없음이 얼마 전 드러났다. 일주일이나 호텔방에서 들여다본 새 책에 띄어쓰기 오류와 비문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털썩, 중요한 건 공간이 아니었어. 인공 지능이 손봐주는 교정, 교열 기능이 시급해.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성적으로 활발한 세상의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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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김희정 씨는 대기실 의자에 앉은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화니프라자 오 층에 검도관이 생긴 지는 일 년 남짓 되었지만 관장이 반딧불의원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호리호리하고 탄탄한 체구와는 달리 하얀 피부에 쌍꺼풀이 없는 기다란 눈이 3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소년 같은 느낌을 풍겼다. 언뜻 요즘 대세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들리는 말로는 초등학생 회원이 늘면서 검도관 운영도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병원이든 식당이든 학원이든 잘 되려면 입소문이 중요한 법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은 무엇보다 엄마들의 평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김희정 씨도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의 호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관장의 외모와 예의 바른 태도는 검도관의 안정적인 영업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김희정 씨는 지난 주에 보았던 잡지의 지면을 떠올렸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지역 잡지로 근처의 맛집이나 가게 홍보, 동네의 소소한 소식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치과 의원 소개 기사를 보고 반딧불의원도 잡지에 내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뒤적이던 참에 이달의 기획 기사가 눈에 띄었다. ‘우리 동네의 훈남을 소개합니다’ 라는 제목의 세 면짜리 기사로 동물 병원 원장, 아파트 상가 은행의 대리, 피트니스 클럽 트레이너, 커피숍 아르바이트 직원 - 이 커피숍은 김희정 씨도 종종 가는 곳이었다 - 등 이 동네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종의 젊은 남성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대부분 어색한 미소와 포즈의 사진이었지만 제법 모델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유독 튀는 사진의 주인공이 한국검도관 최민우 관장이었다. 모든 사진 옆에는 간단한 프로필과 몇 가지 공통 질문이 짧게 적혀 있었다. 키와 몸무게, 생일과 별자리 - 별자리라니, 하이틴 잡지도 아니고 -, 혈액형, 취미, 읽고 있는 책 같은 것이었고 검도관 관장이 읽고 있다고 답한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었다. 김희정 씨는 사진 속 선한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을 보며 만약 자신에게도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있다면 그가 운영하는 검도관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온 이유를 묻는 그녀의 질문에 그는 예의 선한 미소를 지으며 짧게 답했다. “원장님께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환자라면 대개 자신의 불편함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원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위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병원 문턱을 들어서면 상대가 의사이든 간호조무사이든 병원 바깥에서보다 자신의 문제를 쉽게 꺼내놓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선뜻 말하지 못한다면 감추고 싶거나 민감한 문제인 경우가 많았다.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우울증이나 강박증 같은 문제가 그와 어울릴 것 같진 않았지만. 그녀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최민우 씨를 보며 병원을 찾은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했다. 적어도 감기에 걸렸다거나 잠이 안 온다거나 두통이 있다거나 혈압이 높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었다.

 

“최 관장님이 병원에 오신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소변 검사를 하고 싶어서요.”

 

의사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증상보다 구체적인 검사를 먼저 이야기하는 환자가 더 까다롭다. 하나의 질병은 대개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고 그중 일부는 다른 질병의 증상과 비슷할 수 있다. 요즘처럼 건강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잘못된 정보에 휘둘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두 가지 비슷한 증상으로 방송이나 책에서 본 위중한 질병에 대한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는 경우도 이런 예이다. 이 경우 의사 입장에서는 증상의 원인을 찾는 것 외에도 환자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까지 해야 한다. 때로는 의사가 환자의 선입견에 휘둘려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진료실에선 특정 질병에 대한 검사를 요구하기보다 먼저 자신이 가진 증상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 자신에게도 더 도움이 된다.

 

“검사를 원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냥 좀… 소변보는 게 이전처럼 개운치가 않아서요.”


“소변볼 때 통증이 있거나, 자주 마렵거나 참기가 어렵다거나 하는 문제는 없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최근에 몸살 기운이 있긴 했지만.”


“증상이 좀 애매하군요.”


“저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그래서 일단 검사를 해보면 뭔가 이상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개중엔 표현하기 어려운 증상도 있지만, 애매한 증상 뒤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숨어 있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의사는 환자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는 의사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다.

 

“말씀대로 소변 검사를 해보기로 하지요.”


“그런데 소변 검사를 하면 성병이라거나 뭐 그런 것도 알 수 있는 거겠지요?”

 

메인 메뉴에 딸린 에피타이저를 확인하는 것처럼 자연스런 말투였다. 함께 서비스된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는 듯한. 하지만 성병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병원을 찾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의사는 그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자판을 치듯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침묵이 길어지자 최민우 씨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소변 검사로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염증이 심한 경우엔 소변에 섞여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의사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증상에 맞는 검사를 해야 치료도 제대로 할 수 있지요. 구체적인 증상을 알면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최민우 씨의 얼굴이 순간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가벼운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이틀 전부터 성기랑 사타구니 주변에 빨갛게 물집이 여러 개 잡혔어요. 많이 아프진 않지만 약간 아린 느낌도 있고요.”


“그쪽에 문제가 생긴다고 다 성병은 아니에요.”


“사실 열흘쯤 전에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와 성관계를 했어요. 그때 옮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지금까지 이런 문제는 한 번도 없었는데 재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콘돔은 썼나요?”


“아, 아니요.”

 

예상하지 못했던 의사의 질문에 그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의사는 바지를 내리게 하고 그의 사타구니 주변을 살펴보았다.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으로 보이네요.”


“헤르페스요?”


“피곤하면 입술 주변에 물집이 잡히는 경우가 있지요? 그건 1형 헤르페스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비슷한 증상이 성기 주변에 생기는 건 2형 헤르페스 때문이에요. 물론 성관계로 전염됩니다. 말씀대로 열흘 전에 감염되었을 거에요.”


“그럼… 어떻게 치료하나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지만 항바이러스제를 먹는게 좋습니다. 증상이 빨리 좋아지고 전염력도 낮출 수 있거든요. 약을 먹으면 앞으로의 재발도 줄일 수 있지만 재발을 완전히 예방하진 못해요. 바이러스가 몸 안에 숨어 있다가 과로를 했다거나 체력이 떨어졌을 때 다시 증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최민우 씨는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병원을 찾아오면서 치료가 필요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완전히 치료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시킬 수도 있나요?”


“그렇죠. 특히 지금처럼 증상이 있을 때는 전염이 잘 됩니다.”

 

그는 이제 거의 울상을 짓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여자친구와 관계를 했는데요.”


“여자 친구도 감염이 되었을 수 있겠네요. 임신 중이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만.”


“아뇨! 그럴 리가. 임신 중은 아니에요.”

 

황급히 큰 소리로 대답한 그가 머쓱함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진료실 문은 닫힌 상태였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증상이 좋아질 때까지는 여자친구와 관계하지 마세요. 만약 여자친구도 증상이 생기면 바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앞으로 관계할 때는 콘돔을 쓰세요. 그리고 물집이 재발하게 되면 증상이 있는 동안엔 성관계를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완전히 예방하는 방법은 없나요?”


“헤르페스 감염을 막는 완벽한 방법이라면, 성관계를 안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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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씨는 순간 자신이 목사의 설교를 듣는 신도가 된 기분이 들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의사의 표정과 말투가 진지해서 농담이란 걸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목사도 섹스를 할 수 있는 것 아니었던가? 초등학교 교사인 여자친구와는 올해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그녀에게 감출 수 있을지, 이야기를 한다면 어디까지 해야할지, 그녀가 감염이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 속이 복잡했다.

 

“차선책으론 당연히 콘돔입니다. 하지만 콘돔이 백 퍼센트 예방해주는 건 아니에요.”


“완전히 나을 수 없다면 불치병이란 거네요. 게다가 예방도 어렵고. 한 번의 실수로 겪어야 할 일로는 너무 가혹한데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번의 실수는 아닌 것 같은데요.”

 

침울한 표정이었던 그의 얼굴이 의사의 담담한 말투에 다시 한 번 달아올랐다. 하얀 피부 때문에 붉어진 얼굴이 더 도드라져 온몸의 피가 얼굴로 몰렸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의사는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헤르페스는 성관계로 생기는 질환 중에 가장 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미국에선 성인 다섯 명 중 한두 명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어요. 성적으로 활발한 성인이라면 살면서 언젠가 감기에 걸리듯 헤르페스 증상을 겪을 수 있는 거지요. 그리고 다른 합병증이 있다거나 치명적인 병은 아니에요. 몸살 기운이나 물집이 잡히는 증상이 며칠 동안 있지만 그 뿐입니다.”

 

다섯 명 중 한두 명이라니. 그동안 클럽에서 만났던 여자들 중에 몇 명이나 이 이상한 이름의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었을까. 그는 머리 속으로 숫자를 헤아려보았다. 어쩌면 그동안 증상이 없었던 게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성병이란 말보다 성매개감염이란 용어를 써요. 헤르페스처럼 감염이 되었다고 다 증상이 생기는 건 아니고 증상 없이 바이러스를 가지고만 있는 경우도 많거든요. 확진을 위해 검사는 해두어야 하니 물집에서 검체를 채취할 거에요. 그리고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해드릴 테니 약을 먹고 이 주 뒤에 오세요. 그때 검사 결과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성병에 대한 검사도 필요한데, 그건 이 주 뒤에 다시 상의하지요.”

 

최민우 씨의 표정에 다시 불안감이 떠올랐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 동안 죽도를 휘두르는 것보다 진료실에 앉아 있는 겨우 몇 분 동안 더 녹초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여자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의사로서 답을 주길 원하는 거라면, 당연히 여자친구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 여자친구에게 증상이 생기지 않는다 해도 검사를 받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앞으로도 본인뿐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 걸 계속 숨기긴 힘들겠지요. 감기에 걸렸을 때 그걸 감추는 게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최민우 씨는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처방을 입력하던 의사가 돌아서려는 그에게 다시 덧붙여 말했다.

 

“누구나 성병에 걸릴 수 있고, 성병에 걸리는 게 모두 문란한 성생활을 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하지만 파트너가 많아질수록 감염될 확률도 높아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앞으로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한 일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건 의사로서 말하는 충고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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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하우  

 

 

성관계로 전염될 수 있는 질환을 흔히 성병이라 한다. 매독, 임질과 같은 오래된 병명부터 클라미디아 감염, 트리코모나스 질염, 헤르페스 감염과 같은 다소 생소한 이름까지, 그리고 옴이나 사면발니(사면발이)증 같은 사소하지만 지저분하게 들리는 병부터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 감염과 같은 공포의 대상까지 매우 다양한 병이 이 질환군에 속한다. 과거에는 증상이 나타난 질병 치료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감염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감염이 된 후 본인은 증상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원인 균을 전파하는 경우가 흔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에는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TD; 성매개질환) 이라 불렀던 질병 이름을 현재는 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s (STI; 성매개감염)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성기단순포진(genital herpes)은 대표적인 성매개감염으로 단순포진(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감염이 된 후 일주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성기 주변에 여러 개의 작은 물집이 생겼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전형적인 증상이다. 매독, 임질, 클라미디아 감염과 같이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이들 질병이 쉽게 완치가 가능한 반면 헤르페스는 한 번 감염이 되면 평생 잠복 감염 형태로 지속되면서 재발이 반복된다.

 

헤르페스는 질병 자체의 증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재발로 심각한 질환 못지 않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항바이러스제로 치료를 하면 증상 호전에 도움이 되고 전염력과 재발을 낮출 수 있으므로 완치가 불가능하다 해도 증상이 생겼을 때는 치료받는 것이 좋다. 특히 임산부가 헤르페스에 감염된 경우에는 태아나 신생아의 감염 위험도 높아지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재발이 지나치게 잦은 경우에는 항바이러스제를 수 개월 이상 꾸준히 복용하는 예방 요법이 도움이 되지만 이 경우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파트너에 대한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성매개감염의 경우 파트너에게 이를 알려야 하는데, 성매개감염을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 걸리는 질병으로만 보는 시각은 환자로 하여금 질병을 감추거나 파트너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함으로써 예방과 치료에 걸림돌이 된다. 섹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매개감염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에서는 헤르페스와 같은 성매개감염을 지칭해 ‘성적으로 활발한 세상의 감기(common cold in sexually active world)’라는 은유적 표현을 하기도 한다. 우리도 이러한 질환에 대해 열린 태도로 이야기하고 의료진과 상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2016년 개정된 질병관리본부 지침에서는 성매개감염 예방과 합병증을 줄이기 위해 성관계를 하는 25세 이하 모든 여성, 그리고 25세 이상의 고위험 여성(새로운 파트너, 2명 이상의 파트너, 다른 파트너가 있는 남성의 파트너)에게 매년 임질균, 클라미디아 등에 대한 성매개감염 검진을 받도록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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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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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빈이라는 토끼와 함께 살고 있다. 토끼와 같이 살기 시작한 지는 1년 반이 조금 넘었다. 로빈은 호기심이 많고 겁도 많은, 기분파에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공과 푹신푹신한 이불 사이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과일 중에는 바나나를, 채소 중에서는 코마츠나(小松菜) 이파리를 가장 즐겨 먹는 사랑스러운 토끼다. 로빈은 정말 작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털이 많이 빠진다.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토끼들은 약 2개월 주기로 털갈이를 한다.) 방 안을 산책할 때는 벽에 아낌없이 영역표시를 하고, 동글동글한 배변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다. 그뿐만 아니라 타고난 건치로 온갖 것을 갉아, 잘 감추어둔 전선과 이어폰을 용케 찾아 동강내기도 한다. 나는 의도치 않게 전보다 부지런해져야 했다. 사흘 이상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옷 여기저기에 털과 건초 부스러기가 엉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사실 생활 습관뿐만 아니라, 내 관심사와 가치관 역시 달라졌다. 이를테면, 이런 점이었다. 토끼가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채소 위주로 장을 보게 된 것. 서점에 들를 때면 토끼 관련 서적을 찾아 기웃거리게 된 것. 또, 이전에는 즐겨 찾았던 동물 카페를 멀리하게 된 것과 공장식 축산을 다시 인식하고 간헐적이나마 채식을 시작한 것도 변화의 예로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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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직접적 계기는 SNS 계정 개설이었다. 첫 의도는 단순히 토끼에 대해 공부한 내용과 로빈이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갈무리해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하루가 멀게 온갖 동물 학대와 유기, 안락사, 살해, 폐사와 같은 사건사고가 터지니, 자연히 동물 권리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로 로빈을 위한 행위인가?’라는 의문을 처음 가진 것도 이때였다. 왜 같은 동물인데 어떤 동물은 버려지고, 어떤 동물은 먹히고, 어떤 동물은 전시되어야 할까? 왜 동물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분류되어 삶의 방식이 정해져야 할까? SNS에 올릴 ‘힐링 사진’을 찍기 위해 굳이 불편한 소품으로 동물을 치장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애초에 인간의 ‘힐링’ 목적으로 동물을 대상화하는 건 정당한가……. 내가 불편함을 느낀 지점이 무엇이었는지, 인간이 일방적으로 동물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경계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느낀 점을 기록으로 남겼다. 동물 계정이 부적절한 게시물(고양이를 깜짝 놀라게 하고 그 반응을 보며 폭소하는 것 등)을 올리면 ‘인간이 즐거워지자는 이유로 동물을 이용하지 말자’고 목소리를 냈다. 그 과정에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선비질이 지나치다’고 욕을 먹었다. 언쟁 자체는 피곤했지만 나는 도저히 이전 가치관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니, 돌아가기는 싫었다. 모든 동물에 로빈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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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적극적으로 동물을 위하는 동시에 동물을 위하는 사람들을 위하고 싶어졌다. 조금 더 현실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나하나 실천하기로 했다. 가끔은 로빈의 간식을 이웃 토끼에게 나누었으며, 가끔은 동물보호법 개정 청원 운동에 서명했다. 간헐적으로나마 채식을 했고, 시간을 쪼개 유기동물 보호소에 봉사 활동을 갔다.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인식이 나 한 사람 만큼이라도 바뀐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로빈을 위하는 일이 될 것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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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방법을 고민합니다.’ SNS 프로필에 적어놓은 문장은 내 선언이자 다짐이다.
로빈과 지내는 일상 속에서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을 배웠다. 이것이 내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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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배가 아프다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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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릴 만하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경우


복통, 즉 배가 아픈 것은 어린이에게 아주 흔한 증상입니다. 원인이 뚜렷하고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병은 치료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토하고 설사를 한다면 장염이지요? 장염에서 배가 아픈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장염에는 절대반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충분한 수분 공급입니다. 그러니 수분을 섭취하도록 하고, 푹 쉬고, 배를 따뜻하게 해주면 장염이 나으면서 복통도 사라집니다. 흔히 맹장염이라고 하는 충수돌기염도 배가 아픈 병입니다. 염증이 생긴 충수돌기를 수술로 떼어 내면 복통도 사라집니다. 아이들은 감기나 중이염 등 흔한 병으로 열이 나거나 어디엔가 염증이 생기면 배도 같이 아픈 수가 많습니다. 역시 원인 질환을 치료해주면 해결됩니다. 여기서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멀쩡하게 잘 지내다가 잊어버릴 만하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경우입니다.

 

초등 2학년짜리가 학교에서 돌아와 잘 노는가 했더니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얼굴이 핼쑥해 보이는 것이 많이 아픈 모양입니다. 열도 없고, 점심도 잘 먹었고, 대변도 잘 봤고, 며칠 새 어디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활발하게 잘 놀고, 키나 몸무게도 또래와 비슷합니다. 어쨌거나 고통스러워 하니 눕히고, 배에 따뜻한 것을 올려주니 스르르 잠이 듭니다.

 

배 아프다고 한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가끔 그랬는데 조금 지나면 가라앉곤 했지요. 학원에 다녀오거나, 옆집 아이와 놀 때는 너무 멀쩡해서 꾀병이 아닐까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2, 3주 전에도 배가 아프다고 병원에 다녀왔네요. 의사 선생님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며,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많은 “반복성 복통”이니 안심하고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어르신들도 아이들이 클 때는 다 그런다고 걱정 말라고 하시지만 이웃 부모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보고 들은 것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건강해 보여도 속으로 기가 허약한 것이니 보약을 먹여야 한다는 둥, 그건 장삿속이고 유산균제를 먹여야 한다는 둥, 우유가 사실은 독이라는 둥, 두유는 더 나쁘다는 둥, 환경호르몬이나 납 때문이라는 둥, 수많은 둥둥둥이 북소리처럼 시끄럽게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그때, 아이가 방에서 나옵니다. 볼에 발그레하게 혈색이 도는 것이 다른 아이 같습니다.

 

 

대부분의 반복성 복통은 복부 중앙, 배꼽 부위가 아프다

 

“왜 더 누워 있지 않고?” “이제 안 아파요. 옆집 슬기랑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어요!” 전형적인 스토리입니다. 이렇게 다른 문제 없이 건강하고 활발한 아이가 때때로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경우를 “반복성 복통”이라고 합니다. 의학적으로는 3개월간 3번 이상, 일상 활동을 못 할 정도로 배가 아픈 일이 반복되는 경우라고 정의합니다. 대개 1시간 이내로 가라앉고, 가라앉으면 멀쩡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비슷한 일이 자꾸 반복되면 부모 입장에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반복성 복통은 아주 흔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의 10-20%에서 관찰된다고 합니다. 한 반에 서너 명은 겪는다는 뜻입니다. 배가 아프다는 아이들은 많은데, 검사를 아무리 해봐도 별 이상이 없고, 몇 년간 전혀 치료하지 않고 지켜봐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자라더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70년 전쯤입니다. 의사들은 멋지게 들리지는 않지만 “반복성 복통”이란 병명을 붙였습니다. 치료 원칙은 ‘부모와 어린이를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었던 시절에는 의사가 설명해주면 부모들도 별 의심 없이 믿고 따랐습니다. 물론 절대 다수의 어린이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자랐지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온갖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별의별 이상한 소문들이 떠돌아다닙니다.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이라거나, “의사들은 모르는” 이란 수식어를 달면 더 잘 퍼집니다. 세상에 의심만큼 무서운 건 없지요. 의사의 설명을 듣고 일단 안심했던 사람도 이런 소리를 자꾸 들으면 서서히 의심이 생겨납니다. 다시 의사를 찾아 갔더니 역시 아무런 치료도 해주지 않고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답답하죠. 화도 납니다. ‘아니 약이라도 좀 주면서 기다리라고 할 것이지!’ 분노한 마음 속에 다시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의사들은 모르는” 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역시 그랬군!’ 애석하게도 이렇게 되면 속아 넘어가는 겁니다.

 

물론 이 병이 처음 알려졌던 70년 전에 비하면 의학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간 몰랐던 병들, 알았지만 검사하기 까다로웠던 병들도 간단히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에게도 헬리코박터 감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글루텐 불내성이나 호산구성 위장관염 등도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반복성 복통은 대부분 원인을 모르며,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의사들이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자고 하지는 않습니다. 큰 병을 놓치면 안 되므로 진찰할 때 몇 가지를 눈 여겨 봅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반복성 복통은 복부 중앙, 배꼽 부위가 아픕니다. 배꼽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뭔가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요. 아이가 창백해 보이거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체중이 줄거나, 열이 동반되거나, 밤에 자다 깰 정도로 복통이 심한 경우에도 다른 원인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전신을 진찰하여 배 속에 장기가 커져있거나,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지, 항문 주위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관절이 붓거나 아파하지는 않는지, 기타 다른 병의 징후가 없는지도 유심히 살핍니다.

 

그래도 부모가 걱정이 가라앉지 않거나, 진찰상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피검사, 소변검사, X-선 검사, 초음파 등을 시행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처음부터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검사를 해서 미심쩍은 부분이 없도록 하는 겁니다. 피검사, 소변검사를 조금 해봤는데 이상이 없어서 좀더 지켜보니 아이가 또 아프다고 합니다. 그래서 X-선을 찍어보니 이상이 없고, 또 몇 주 뒤에 아프다고 해서 이번에는 초음파를 봅니다. 이런 식으로 찔끔찔끔 검사를 하면 부모는 점점 더 의심이 커집니다. 의심만큼 무서운 건 없다고 했지요? 아예 의심이 생기지 않도록 시원하게 검사하고 “이제 이만큼 했으니 안심하고 지켜봅시다!”하는 편이 낫다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심각한 이상이 없고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복통이 꾀병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는 진짜로 배가 아픕니다. 따뜻한 관심과 친절한 설명은 의사가 환자를 볼 때뿐만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도 가장 좋은 치료약입니다.


 

 

서민과 닥터 강이 똑똑한 처방전을 드립니다서민, 강병철 저 | 알마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흔하게 맞닥뜨리는 고민 중 열네 가지를 뽑아 정답에 가장 가까운 해답과 함께, 잘못된 건강 염려증을 유발시킨 사회를 향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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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패딩과 양말과 유행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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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societysocks

 

 

유행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김남주 스타일’ 이런 품목을 따라 사는 건 아니니 관대하다는 편이 더 맞으려나. 유행하는 것이 있다면 그 이유와 현상을 눈여겨보길 즐긴다. 취향이나 아티스트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거나 힙스터라 불리는 멋쟁이들은 유행과 최대한 떨어지거나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살다보니 이들도 더 큰손이 만든 유행을 조금 일찍 혹은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임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지난해까지 1~2년간 일요일 아침이면 스콘을 먹는 루틴이 있었다. 이를 나만의 고유한 취향이라 믿었는데, 실은 당시 제과 트렌드가 스콘이었다는 식이다. 요즘은 주변에서 크루아상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부쩍 늘지 않았나? 1970년대 요세미티에서 오늘날 포틀랜드까지 괜히 돈 버는 히피와 힙스터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유행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건 자각 여부와 수용하는 안목을 갖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지난겨울 최고 유행 아이템은 단연 롱패딩이었다. 유래 없는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교내 급식실, 평창 올림픽, 홍대앞까지 일명 ‘김밥 패션’이 한반도에 물결을 이뤘다. 롱패딩의 원래 명칭은 벤치워머 혹은 스타디움자켓이다. 추운 겨울 벤치에 앉아있는 이들을 위해 고안된 기능성 옷이다. 당연히 미적 가치나 개성보다는 보온기능과 실용성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유행’하는 고프코어(Gorpcore) 패션과도 맥락이 통한다. 정장을 갖춰 입고도 그 위에 아노락 같은 기능성 의류를 막 걸치는 ‘어글리 프리티(못생긴 게 패션이 됐다는 뜻)’ 콘셉트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하이패션 세계와도 나름 보조를 맞춘 셈이다.

 

그런데 이 유행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젊은이들이 검정 유니폼이 아니라 그 아래의 양말이었다. 지하철, 동네 골목길, 번화가의 대로 어디서든 온몸을 꽁꽁 싸맨 패딩 아래 발목을 훤히 드러낸, 위로는 유행을 따르면서 아래는 계절조차 따르지 않는 옷차림을 자주 만났다. 롱패딩은 ‘따수움’이란 깃발 아래 착장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한 옷이다. 그런데 그 아래 발목양말과 페이크삭스를 신었다는 건 유시민 작가가 와도 해석하지 못할 현상이다. 보이는 것만 신경쓰다보니 유행을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사례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아님 발에 열이 유독 많거나.

 

양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척도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 많은 걸 설명하기 때문이다. 깔끔하며 계절에 맞는 양말을 신는 것은 패션 센스보다도 일상을 꾸려가는 성실함과 능숙한 매너 차원에서 중요하다. 물론, 부모의 둥지를 벗어나 자신의 물건을 스스로 마련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양말에 돈을 들이거나 관리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미성숙함이 지속되다보니 롱패딩에 발목양말처럼 유행과 어설픔이 만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러니 갓 독립해서 옷이나 이런저런 세간을 마련할 때, 양말을 사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구색 갖추기 연습이다. 우선 개념부터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양말은 피부에 직접 닿고 착용할 때마다 땀에 오염되는 속옷이자 소모품이다. 잦은 세탁과 수고로운 관리가 필요하단 뜻이다. 분리세탁은 기본이고, 흰 양말의 경우 애벌빨래나 산소계표백제와 구연산 등을 희석한 물에 불렸다 빠는 과정이 필수다. 이 과정이 그다지 자신 없다면 보다 자주 새것을 사야 한다.

 

또한 계절을 타는 아이템이다. 한 번 사면 주구장창 구멍 날 때까지 신는 알뜰함도 훌륭한 덕목이지만 추위를 무릅쓸 정도까지는 아니다. 특히 겨울은 양말의 계절이다. 산타할아버지를 찾을 것도 없다. 첫째는 보온을 위해서, 두 번째는 도톰한 순면부터 기능성 울까지 흰 양말부터 각종 문양의 다양한 패턴의 양말을 부츠 안에 조합해서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페이크삭스와 발목 양말이 힙한 발견으로 인정받은 이래 발목을 내놓는 것이 여전히 쿨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사계절 다 그렇게 신으라는 뜻은 아니다. 한겨울에 형광끼 잃은 여름 양말이라니, 그건 그냥 추운 거다. 반바지에 스포티하게 발목양말을 신거나 크롭팬츠와 페이크삭스로 시원하게 발목을 드러내는 건 여름 한정이다. 게다가 요즘엔 샌들에다가도 양말을 신는 마당이니 무조건적인 발목양말 애호는 그다지 힙하지도 않다. 그러니 내년 겨울엔 부디 어떤 유행을 마주하더라도 발목도 빼놓지 않고 따뜻하게 감쌌으면 좋겠다.

 

끝으로,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하는 ‘양말의 도’가 있다. 패션과 관련한 규칙은 늘 타파하라고 있는 게 맞지만, 개중에 신성불가침의 영역도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발목과 관련된 것으로, 절대로 바짓단과 양말 사이에 속살이 드러나선 안 된다는 거다. 당연히, 앉은 자세에서 하는 말이고, 청바지를 입어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 작은 면적에 세 가지 색이 층을 이루고 있어도 되는 건 다채롭게 잼을 바른 식빵 외에 없다. 같은 이유로 부츠나 하이넥 운동화를 신었을 때 그 높이보다 낮은 양말을 신는 건 지양하는 편이 좋다. 속살이 노출되며, 피부로부터의 오염과 마찰을 막을 수 없고, 무엇보다 안쪽으로 레이어드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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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지방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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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랐네요.”

 

모니터의 숫자를 살펴보던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3개월 전의 LDL콜레스테롤(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는 152였다. 이번 검사에선 171, 이전보다 20 가까이 올랐다.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의사의 말을 기다리던 최민구 씨는 결과를 확인하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분명 더 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요.”


“지난 번에 오셨을 때 운동을 시작했다고 하셨지요. 술자리도 줄이지 않으셨던가요?”


“운동은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말 연초에 술자리가 늘긴 했지만 최대한 피했구요. 이전만큼 마시지는 않은 건 확실합니다.”


“체중은 지난번 방문 때와 비슷하네요.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연말이 지나면 체중이 늘어 오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노력을 많이 하신 것 같군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던 최민구 씨의 표정이 의사의 칭찬에 조금은 밝아졌다.

 

“그래도 선생님이 알아주시니 다행입니다. 송년회다 신년회다 술자리는 많은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도망 다니느라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허허.”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다시 오를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실은… 제가 한 달 전에 식단을 바꿨습니다.”

 

최민구 씨가 K건설 과장이 된 것은 3년 전이었다. 입사 이래 줄곧 영업 관련 부서에서 일하며 잔뼈가 굵어진 그였지만 최근에는 종종 업무가 버겁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건설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건설 업계의 사정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음에도 명예퇴직과 인력 감축으로 최민구 씨를 비롯한 과장급의 업무량은 이전보다 늘어났다. 잔업과 야근 외에 영업 업무의 특성상 잦았던 회식과 술자리도 그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체력은 타고났다 생각했고 감기에도 잘 안 걸리는 편이었지만 최근엔 건강에도 자신이 없어진 상태였다.

 

작년 가을 건강검진에서 받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충격적이었다. LDL콜레스테롤 180. 정상은 130 미만이라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이상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니 최소한 50 이상은 오른 것이다. 건강검진 결과지에 반듯하게 프린트된 ‘고지혈증’이란 단어를 보고 최민구 씨는 어느 건강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심장 혈관에 기름때가 끼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힘차게 박동하던 심장은 혈관 안쪽을 채운 노란 색깔의 기름때가 두꺼워지면서 혈색을 잃고 불규칙하게 헐떡거렸다. 겁이 덜컥 났다.

 

그는 5년 전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입원했던 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등산을 워낙 좋아해 지리산 종주를 밥 먹듯이 하던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 새벽 4시에 중부고속도로를 한달음에 달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버지가 이미 중환자실로 이송된 뒤였다. 링거 줄을 주렁주렁 달고 갈비뼈를 드러낸 채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몸은 그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왜소했다. 대학병원의 의사는 그의 심장 기능이 이전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전과 같은 생활은 어려울 거라 했다. 아버지가 고지혈증 약을 먹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한 달간의 입원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십 년쯤 늙어 보였다. 이후 아버지가 무수히 올랐던 지리산 정상의 공기를 다시 마시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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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아버지의 심장에서 벌어졌던 일이 이미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잠을 설치며 고민하던 그에게 상사인 김 부장이 권해준 곳이 반딧불의원이었다. 저녁에 여는 의원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마침 멀지 않은 곳이라 퇴근길에 들르기에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원장이 좀 까칠한 편이지만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이야.” 반딧불의원에 대해 김 부장이 해준 말이었다. 허름한 종합 상가 3층에 있는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4개월 전이었다. 마른 얼굴에 반백의 의사는 들었던 바와 같이 무덤덤하고 딱딱한 태도였다. 건강검진 결과를 검토한 뒤 의사가 내린 처방은 다음과 같았다. 술자리를 줄이고 최대 주 2회를 넘지 않도록 할 것(그의 술자리 횟수는 주당 네 번 정도였다), 술을 마시더라도 안주를 먹지 말 것, 어떤 종류든 좋으니 규칙적으로 운동을 시작할 것, 그리고 한 달간 2킬로그램을 줄일 것.

 

최민구 씨가 피트니스 센터 회원권을 끊은 것은 의사를 만난 다음 날이었다. 본래 결심한 것은 바로 실천에 옮기는 성격이었다. 그는 집 근처에 있는 몇 개의 체육관 중에 아파트 단지 상가에 새로 생긴 센터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집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한 번이라도 더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내친 김에 1년치 비용을 선불로 결제한 그에게 탄탄한 몸매의 트레이너가 친절한 말투로 운동기구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체육관 한쪽에선 쉴새 없이 움직이는 일곱 대의 러닝 머신 벨트 위에서 회원들이 땀에 젖은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최민구 씨는 탈의실 거울 안에서 본 퀭한 눈과 붓기가 가득한 얼굴의 자신을 떠올리며 부끄러움이나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첫날 운동을 마치고 그는 몇 년 새 튀어나온 배와 도드라진 옆구리 살을 만지며 지금이라도 건강검진 결과가 경종을 울려준 것을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달 동안 그는 의사의 처방을 착실히 이행했다. 술자리는 최대한 피하고 안주를 먹지 말 것. 규칙적인 운동을 할 것. 그리고 2킬로그램 감량. 그는 머릿속에서 밑줄을 그어가며 반복해 중얼거렸다. 반딧불 의원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30 정도 낮아져 있었다. 의사는 그의 노력을 칭찬했고 체중을 꾸준히 줄인다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까지도 떨어질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영상 속에서 혈색 좋게 박동하던 심장의 움직임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의사의 전망은 적어도 날씨 예보나 주식시장 전망 보다는 정확할 것이었고,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12월과 1월은 체중을 줄이기 어려운 시기였다. 회식과 술자리가 늘어난 만큼 운동 횟수는 줄어들었다. 줄어가던 체중계의 숫자는 한동안 제자리에 머물렀다가 다시 슬금슬금 불어나고 있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급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체중 감량에 좋다는 방법을 찾던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이 있었다. 어느 블로그에 올라온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 관련 방송 내용이었다.

 

그는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방송의 내용은 놀라웠다. 건강에 나쁘다고 알려진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오히려 체중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방송에 출연한 출연자들은 이 식단으로 수십 킬로그램까지도 줄였다고 했다. 마법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버터로 범벅이 된 고기를 먹고, 삼겹살도 모자라 흘러나온 기름을 마시고, 추어탕에 치즈를 넣어 먹는, 기행에 가까운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교회를 나가본 적 없는 그였지만 영적 체험에 대한 간증을 보는 것이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일반인만이 아니었다. 방송에 출연한 여러 전문가들이 이 식단의 장점과 과학적 근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이 직접 그 효과를 체험하고 환자들에게 권하고 있다는 의사도 여럿이었다. 최민구 씨가 당장 이 식단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은 그의 성격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었다.

 

방송에 나온 대로 따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탄수화물을 피하는 것이었다. 고기와 생선, 우유와 치즈, 채소 등의 음식으로만 식단을 짜야 했다. 요리할 때는 방송에서 강조했던 버터를 아낌없이 넣었고 기름은 올리브유만 사용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을 때 메뉴를 고르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제였다. 순수하게 탄수화물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는 일단 메뉴에 딸린 공기밥을 안 먹는 방법을 선택했다. 두 번째 문제는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번거로워진 것이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가 같은 음식을 먹긴 어려워서 식사를 따로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정된 식재료로 질리지 않도록 식단을 짜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세 번째 문제는 이전보다 훨씬 늘어난 식비였다.

 

식단을 시작하고 일주일 뒤 체중은 1.5킬로그램이 줄어 있었다. 안 먹던 버터와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속이 느글거렸지만 그래서인지 식욕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체중을 줄이는 데 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꾹 참고 식단을 유지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고 오늘 다시 병원을 방문한 것이었다.

 

“연말에 늘었던 걸 고려하면 한 달 만에 3킬로그램을 뺀 거네요.”


“네. 콜레스테롤 수치도 더 좋아졌을 거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오늘 결과를 보고 사실 실망했습니다.”

 

최민구 씨의 침울한 말투에 의사는 미소를 지었다.

 

“방송에서는 지방을 강조했겠지만 사실 그 식단의 핵심은 탄수화물, 그중에서도 설탕이나 밀가루같은 정제된 탄수화물을 피하는 겁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지방이든 탄수화물이든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 거에요. 지방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학생을 가르치듯 훈계하는 말투였지만 이전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태도였다. 그동안 틈틈이 정보를 찾아왔기에 아주 생소하지는 않은 내용임에도 의사의 설명에 최민구 씨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잠시 뜸을 들이던 의사가 약간은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사실 지방은 죄가 없는 게 맞아요. 그걸 과하게 먹는 게 문제지.”


“하지만 방송에선 천연 지방이라면 전혀 해가 안 된다고 하던데요.”


“방송은 과장을 하기 마련이지요. 무조건 좋기만 한 음식은 없어요. 천연 지방이라는 버터나 삼겹살 기름도 과하게 먹으면 오늘 검사 결과처럼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줄이고, 그만큼을 현미밥이나 고구마 같은 좋은 탄수화물로 채워봅시다.”

 

설탕이나 밀가루보다는 현미밥이나 고구마. 머릿속에서 다시 한 줄을 추가해 밑줄을 긋던 그는 이어지는 의사의 말에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참. 그리고 적어도 최민구 씨에겐 지방이나 탄수화물보다 알코올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건 확실합니다.”

 

 

2016년 제작된 <지방의 누명>이란 다큐멘터리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를 다룬 내용으로 방송 이후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평균적인 한국인 식단은 탄수화물 60-70%, 지방 20% 전후의 비율로 섭취 열량을 구성하며, 이는 서양인 입장에선 저지방(Low Fat) 식단에 해당한다. 반면에 탄수화물을 20퍼센트 미만으로 줄인 것이 저탄수화물(Low Carbohydrate) 식단이다. 그중에서도 탄수화물을 5~10퍼센트까지 극단적으로 줄이고 대신 지방을 60~70퍼센트로 늘려 먹는 식단을 저탄수화물 고지방(Low Carbohydrate High Fat, LCHF) 식단이라 부른다.

 

저지방 식단과 저탄수화물 식단 중 어떤 것이 더 좋은가 하는 질문은 학계에서 해묵은 논쟁이다. 이와 관련해 수많은 연구가 있었으며 현재까지 정리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존에 비만 치료의 표준 식단으로 알려진 저지방 식단과 비교했을 때 저탄수화물 식단이 단기적으로 체중 감량에 더 효과적일 수 있으며, 1~2년까지 지켜보았을 때도 최소 비슷한 정도의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다룬 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님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동안 학계에서 지속되어온 논쟁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실험, 전문가 인터뷰 등으로 설득력 있는 내용을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식단이 단기적으로 이득이 있다 해도 포화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하기 쉬우며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안전성에 대한 근거가 좀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극단적인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에 대한 2년 이상의 추적 관찰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우리나라에서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식단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방송 이후 한국영양학회, 대한내분비학회, 대한가정의학회 등 전문가 단체가 방송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지방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 식단의 핵심은 지방을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 것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저탄수화물 식단에서는 필연적으로 지방 섭취가 늘게 되므로 고지방 식단은 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버터나 삼겹살 등의 특정 고지방 음식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체중 감량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칼로리를 줄이는 것이므로 탄수화물이든 지방이든 과다한 섭취는 해가 될 수 있다. 탄수화물만 줄이면 어떠한 고지방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가 충실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 이 대목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그 사람이 망나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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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보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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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로도 듣고, 눈으로도 보게 될 줄 몰랐다. 한국어

 

 

극지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바람이 있다. 머리카락을 죄 뽑아버릴 것 같고, 내 몸을 흔들어 관절을 꺾을 것 같은, 그 바람을 맞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땅끝에 와 있구나'가 절로 느껴지는 바람. 타이완 섬의 최남단 컨딩으로 가는 길, 이 바람을 만났으니 누구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닌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와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가 하면 사람 좀 피해보고 싶어서였다. 가오슝과 한국을 오가는 직항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유난히 추웠던 그 겨울을 피하려고 했는지 도심 곳곳에서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래서야 외국에 있는 기분이 들지 않잖아.' 그런 이유로 100km를 달려 컨딩으로 향했다. 하지만 웬걸. 해남 땅끝마을만큼 멀고 해변 옆에 원자력 발전소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이 시골 마을에도 한국어가 들린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우리는 컨딩에서 2박 3일을 머물렀다. 한 달씩 머무르는 여느 도시와 달리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여행자 거리에, 밤에는 야시장으로 변하는 그곳에 숙소를 찾고 짐을 풀었다. '시간이 없어.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봐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국적인 풍경을 원하면서도 결국 한국인이 많이 몰릴 수밖에 없는 동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힘들게 낯선 풍경을 찾아왔지만 주위에 같은 나라 사람뿐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예를 들어 힘들게 타히티 섬까지 왔는데 앞뒤 좌우를 다 둘러봐도 한국인밖에 없다면 말이다.


어떤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그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면 “거긴 한국인이 없어서 정말 좋았어요.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었거든요”라면서 맞장구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최고 여행지는 한국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던 그 어디라고 이야기한다. 또 여행 경험 중 나빴던 여행지의 이유로 “한국인이 너무 많아요”가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외국에서 자국민 만나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사실 우리도 다를 바 없다. 가능하면 우리의 존재를 숨긴 채 조용히 여행하고 싶어 하니까.


<윤식당 2>가 종영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한국인 여행객들은 그 먼 곳까지 찾아왔다. 여행객은 방송임을 알고 식당에 앉았으니 암묵적으로 신상이 노출되는 걸 허락했을 터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프로그램 자체에서 그들의 대화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비춰주지 않는다. 제작진도 여느 여행객과 비슷한 갈등을 품고 있었으리라.


여행의 환상을 채워줄 낯설고도 멋진 풍경을 어렵게 찾았고, 그중에서도 가급적 한국인이 없는 여행지를 선택했는데 익숙한 표정과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면 시청자들이 자연스레 채널을 돌리게 될 상황을 방지하고 싶었을 게다. 방송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한국인이 보기 싫어하는 건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망나니라서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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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바다의 주인은 바다거북

 

 

컨딩을 대체할 만한 여행지가 필요했다. 그 섬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여기서 배를 타면 어디로 가나요? 그리고 거북이 사진은 왜 이리 많은 거죠?"

 

어쩐 일인지 페리 터미널 주변이 죄다 '바다거북'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쾌속선을 타고 30분을 가면 작은 섬 '류추향(琉球?)'이 나온다. 일본 오키나와를 ‘류쿠’라고 부르는 타이완 사람들은 이 섬을 가리켜 작은 오키나와, 즉 ‘소류쿠’라고 부르는데 그보다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섬 주변에 사는 바다거북이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바다거북 섬'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섬 안의 섬을 누가 찾아갈까 싶었는데 이곳은 대만 사람들의 여름 휴양지란다. 반면 대만 남부를 찾는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여행지이다. 물은 맑고, 거북이는 인간 세상과 가까이 있다. 전동 스쿠터를 타고 섬을 일주하는 동안 마주친 이도 몇 없었다. 왠지 이 섬 안에 한국 사람이라고는 그 여자와 나, 단둘뿐인 것 같다.

 

타인의 행동, 생김새, 인적 사항 등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는 이 순간만이라도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이 많든 적든 자기 여행을 즐기는 이들은 한국에서도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일 게다.

 

그 반대의 사람들은 누가 내 여행을 평가할까 두렵고 내 옷차림, 여행지에서 내가 보고 먹고 느끼는 것들을 평가받기 싫어 한국인들이 없는 여행지를 찾아 나선다. 특히나 내가 한 말들을 알아듣는 게 기분이 나쁘다. 잘 못하는 영어, 여행지에서 어리바리한 내 모습을 들킬까 싶어 두려운 건 아닐까.

 

오래전에 미국인 친구와 스페인의 한 섬을 여행하며 자국민을 여행지에서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뭐, 우리도 비슷한 거 같아.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고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할까? 미국은 자치권을 가진 여러 개의 주가 모여 이루어진 나라야. 거기다 땅도 넓고 각 주마다 법도 다르니 동부에 있다가 서부로 가면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 또 한 가지, 나라가 넓고 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다양하니까 평생 외국 한 번 나가보지 않고 미국만이 자기 세상의 전부인 사람도 많아.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거지. 너희가 여행하다가 만난 미국인들은 대체로 미국 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일 거야. 내가 살던 세상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문화에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사람들 말이야.”

 

낯선 곳에서 비슷한 문화 코드를 지닌 사람을 만나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답답한 외국어를 벗어나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달랠 수 있으니까. 거기에 더해 그곳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웃의 룰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여행도 하고 싶어질 게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망나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기 동네에서도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하고 다니거나, 안하무인처럼 행동하며 다니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그들과 같은 나라 사람이라 해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고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어쩌면 우리가 같은 한국인이라서 싫었던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다른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무법자처럼 행동하는 자국민의 모습이 부끄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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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는 왜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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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은 변비에도 큰 도움이 된다

 

행복과 건강을 얘기할 때 흔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를 강조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린 첫 번째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닐까요? 뭘 먹으면 키가 크고, 면역이 강해지고, 심지어 머리가 좋아지는지는 누구나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잠을 충분히 자야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워지고, 공부도 잘 할 수 있다는 건 과학적으로 분명히 규명되었는데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요. 똥을 잘 누는 건요? 그건 더 관심이 없습니다. 유아기 때나 대소변 가리기 훈련을 할 때만 반짝 관심을 보일 뿐,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변을 잘 보는지 신경을 쓰는 부모는 매우 드뭅니다. 소비와 욕망 충족에는 그악스럽지만, 쓰레기 처리나 환경보존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도 비슷합니다. 먹는 것, 소비, 욕망 충족 등이 훨씬 큰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일에 신경을 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욕망을 부추겨 돈을 벌려는 사람들에게 속아 그들이 강조하는 일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잠을 잘 자고, 똥을 시원하게 누는 것은 뭘 먹는지 못지 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변비에 대해 알아봅시다.

 

살기 위해 먹든, 먹기 위해 살든, 누구나 음식을 먹습니다.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어서 꿀꺽 삼키면 식도를 거쳐 위로 가지요. 좀 덜 씹어 삼키거나, 조금 지저분한 것을 먹어도 대개 별 탈이 나지 않습니다. 위에서 강력한 산을 분비하여 병원체를 죽여 버린 후, 힘차게 주물러서 음식물을 죽처럼 만들기 때문이지요. 죽처럼 부드러워진 음식물은 소장을 거치면서 영양분이 흡수됩니다. 소장은 우리 키의 두세 배에 이를 정도로 아주 깁니다. 그렇게 긴 통로를 서서히 통과하면서 영양분이 알뜰하게 흡수되기 때문에 소장 끝에 이른 음식물에는 거의 영양소가 남아있지 않지요. 식이섬유와 기타 소화가 되지 않는 물질만 남아 대장으로 넘어갑니다. 대장 속에는 미생물이 엄청나게 많이 삽니다. 이 미생물들이 소화흡수가 거의 끝난 물질들을 발효시키면 대변이 만들어집니다. 대변의 90%는 미생물, 주로 세균입니다. 대변 자체가 세균덩어리인 셈이지요. 반면에 소변은 정상적으로 무균 상태입니다. 의학적으로 보자면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면 손을 꼭 씻어야 하지만, 작은 일을 본 후에는 손을 씻지 않아도 된다는 우스개도 있지요.

 

요즘은 대장에 왜 이렇게 미생물이 많은지, 그것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속속 밝혀지면서 장내 미생물이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얘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으니 일단 패스! 소화라는 측면에서 대장의 주기능은 물을 흡수하는 겁니다. 물이 많이 흡수되면 대장 속에는 물이 적게 남을 테니 대변이 딱딱해지지요. 반대로 적게 흡수되면 무른 변이 나옵니다. 이때 물이 얼마나 흡수되는지는 (많은 요소가 작용하지만) 우리 몸의 수분 섭취 상태와 대장 속의 식이섬유가 결정합니다. 즉, 우리 몸에 물이 부족한 상태라면 대장에서 많은 물이 흡수됩니다.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은 건강에 두루 좋지만 변비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한편 식이섬유는 물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합니다. 식이섬유를 많이 먹으면 대장 속에 물을 붙잡아 두어 부드럽게 변을 볼 수 있는 거지요. 식이섬유는 어디에 많나요? 예, 과일과 야채에 많지요. 마지막으로 변을 잘 본다는 건 장 속의 내용물을 장이 원활하게 밀어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장의 움직임이 활발해야 하는데, 이건 신체의 전반적인 움직임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활동적일수록 장도 활발히 움직입니다. 결론은 뭔가요. 변을 잘 보려면 1) 물을 충분히 마시고, 2)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고, 3) 활발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기초지식을 응용해서 변비가 왜 생기는지 알아봅시다.

 

 

신선한 물을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신생아나 유아도 보고, 취학 전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어린이도 보며, 중고생으로 대표되는 청소년도 진료합니다. 각 시기별로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지요. 따라서 변비의 원인도 시기별로 각각 다릅니다. 신생아나 유아는 모유나 분유를 먹지요? 이때는 변이 딱딱해지고 횟수가 뜸해지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뭔가 먹는 것이 바뀔 때, 즉 고형식을 시작했다거나, 분유를 바꿨다거나, 생우유를 먹기 시작했을 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는 소아과 선생님과 상의해서 원인을 찾고, 원인에 맞게 대처해야 합니다. 몇 가지 원칙을 말한다면 우선 분유는 바꾸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더 좋은 분유가 있다고 알려주더라도 지금 먹는 분유에 문제가 없다면 종류나 제조사를 바꾸지 마세요. 이유식을 시작할 때는 한 번에 한 가지씩 새로운 음식을 추가합니다. 3-4일간 반응을 보아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 음식을 일단 중단하고 몇 주 후에 다시 시도해봅니다. 생우유는 하루에 작은 우유팩으로 2-3개 이상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변을 드물게 보거나, 변을 볼 때 아주 고통스러워하거나(얼굴이 빨개지면서 용을 쓰는 건 정상입니다), 변에 피가 섞이거나, 배가 불러오는 것 같다면 빨리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조금 큰 아이들에게서 변비가 생기는 중요한 원인은 위에서 썼듯이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고,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지 않고,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계속 이어지는 생활과 디지털 기기의 사용 때문에 요즘 아이들이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제 글에도 여러 번 썼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므로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물은 왜 안 마실까요? 학교에 다니면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 수업을 듣는 중간에 아이들은 물을 챙겨 마시는 데 별로 관심이 없지요. 수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유나 주스로 섭취해도 되지만, 살이 찌지요. 신선한 물을 마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마음에 드는 물병을 사주고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도록 하면 생각보다 효과적입니다.

 

마지막으로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건 결국 식이섬유를 섭취하라는 뜻입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은 보통 수분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채류의 85-90퍼센트는 수분이지만, 감자칩의 수분은 2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비타민을 알약으로 먹는 건 좋지 않고 식품을 통해 섭취하라고 했지요? 식이섬유 역시 화이버 음료 등을 통해 섭취하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섭취하면 오히려 칼슘 흡수를 저해하여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어린이들이 과일이나 야채를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선 어려서부터 소위 ‘서구식 식단’에 맛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닭튀김, 흰 빵으로 만든 햄버거, 치즈를 듬뿍 뿌린 피자, 감자튀김, 단 것, 인스턴트 식품, 주스나 청량음료에 길들여진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습관 때문에 어린이 비만도 늘지만 사실 체중이 늘어나기 전에 변비가 먼저 생깁니다.

 

어떻게 해야 어린이에게 야채나 과일을 좀 더 먹일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 야뇨증과 변비 거뜬히 이겨내기』라는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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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야채를 먹이는 방법>


1.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 때 잘게 자른 야채를 섞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2. 작게 더 작게! 어린이들은 작은 것을 좋아하므로 미니 파프리카, 미니 오이, 어린 당근, 알감자를 줘 본다.
3. 잘게 자른 오이, 파프리카, 당근 등을 넣어 참치 샐러드를 만들어 준다.
4. 감자 대신 고구마 튀김을 만들어 준다.
5. 빵이나 머핀, 스크램블드 에그에 당근이나 단호박을 넣는다.
6. 아이를 야채 코너에 데리고 가서 좋아하는 야채를 2가지 담아 보라고 한다. 집에 돌아와 조리법을 인터넷  에서 찾아 본 후 아이와 함께 음식을 만든다.
7. 셀러리나 당근을 연필 모양으로 길고 가늘게 잘라 컵에 꽂아 놓고 땅콩버터나 샐러드 드레싱에 찍어 먹도록 한다.
8. 피망의 속을 긁어낸 후 오목한 부분을 작게 잘라 음식을 담아 준다.
9. 집에서 피자를 만든다. 치즈 아래 얇게 저민 야채를 깔거나 아이가 직접 고른 야채로 토핑을 얹는다.

 

<자연스럽게 과일을 먹이는 방법>


1. 시리얼에 얇게 자른 바나나 또는 딸기(신선 또는 냉동)를 섞어 먹인다.
2. 아침 또는 간식으로 과일 스무디를 만들어 준다. 설탕이 들어 있는 요구르트보다 저지방 우유나 두유를 사용한다.
3. 막 익기 시작한 바나나를 얇게 잘라 냉동실에 얼려 두면 달콤하고 부드러워 아이들이 좋아한다.
4. 과일을 잘라 요구르트를 부어 주거나 액상 초콜릿에 찍어 먹게 한다. 과일과 요구르트를 넣어 파르페를 만들어 주어도 좋다.
5. 팬케이크, 머핀, 쿠키, 빵 등을 만들 때 잘게 자른 과일이나 말린 과일, 얇게 저민 사과 등을 넣는다.
6. 과일을 작은 공 모양으로 도려내는 칼을 사용한다. 과일을 꺼리는 아이도 동그랗게 잘라 주면 잘 먹는 경우가 많다.
7. 케이크나 쿠키 대신 사과나 배를 구워 줘 본다.
8. 말린 과일과 견과류를 섞어 간식으로 싸 준다.
9.샌드위치에 얇게 썬 사과나 바나나를 넣는다.
10. 차에 과일을 놓아 두면 방과 후 또는 운동이나 기타 활동을 마친 후 쉽게 손이 간다.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목마르고 배고프면 먹는다.
11. 아이와 함께 ‘과일 피자’를 만들어 보자. 바삭바삭한 과자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설탕을 약간 뿌린 후 신선한 과일을 얹는다.
12. 접시에 얼굴 모양으로 과일을 담아 준다. 블루베리나 포도로 눈을 만들고 키위를 잘라 귀를, 딸기로는 코를, 사과나 배를 잘라 입을 만드는 식이다.


 

 

우리 아이 야뇨증과 변비 거뜬히 이겨내기스티브 호지스, 수잔 슐로스버그 공저 / 서울아동병원 의학연구소 역 | 꿈꿀자유
변비가 야뇨증은 물론 다양한 소변관련 증상을 일으키는 근본원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문제를 해결할 쉽고 빠른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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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버전 수면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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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이든 어디든 홀로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 독립했다. 당신이 요즘 사람이라면 식물도 한 가지 들이고, 수도권에 산다면 이케아에 가서 미트볼도 먹어보고 무슨무슨 ‘고리닷컴’들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마련할 거다. 셀프인테리어 열풍 이후 꽤 많이 달라진 풍경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 속에서도 유독 침대 매트리스에 대한 인식은 보수적인 듯하다.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세간임에도 너무나 박하게 예산을 책정하고, 선택은 꽤나 조심스럽지 않게 내린다. 가끔 걸치는 가방이나 며칠 안에 소진하는 여행경비로는 기꺼이 100만 원 가량 투자하면서 매일 사용하는 매트리스에겐 한없이 인색하게 군다. 그 절반 가격에도 난색을 표한다.

 

가격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대한 몸집 때문인지 괜한 심적 부담감에 구매나 교체 등의 선택에 주저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물건이다 보니 소중함을 종종 잊기도 한다. 심지어는 도대체 언제 하게 될지도 모를 결혼을 빌미 삼아 제대로 된 침대 마련을 미루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혼자 살 때는 매트리스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결혼할 때는 잘 모르니까 백화점 입점 브랜드 위주로 찾는다. 한번 사면 버리기도 마땅찮으니 수명이 다 되어도 잘 바꾸지 않는다. 그렇게 우린 수십 년을 살아왔다. 그 사이 이득을 본 건 과점이 더욱 공고화된 우리 침대 시장과 불순한 저가 업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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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침대를 골라야 할까. 우선 침대 구성에서 핵심은 매트리스다. 프레임은 저렴하고 가벼운 걸로 고르자. 너무 없어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 가구점에서 원목으로 된 좋은 침대를 사고 남는 예산으로 매트리스를 고르는 게 최악이다. 그리고 직사각 스프링 매트리스는 앞으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우리나라야 스프링 매트리스 회사가 휘어잡고 있어서 그렇지 세계적으로는 폼 매트리스로 패러다임이 이미 넘어갔다. 유럽의 경우 폼 매트리스 사용인구가 60퍼센트 이상이고, 미국도 전체 시장의 10퍼센트를 지난 3~4년 사이 창업한 폼 매트리스 업체들이 점유했다. 물론 동남아 관광지 등에서 사는 천연라텍스도 제외한다. 천연이란 단어가 왠지 순수하게 느껴지지만 천연과 라텍스가 만나면 대체로 맹독성이란 뜻이다.

 

폼 매트리스의 시대가 열린 건 무엇보다 진일보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스프링 매트리스는 아무리 촘촘하게 만들어도 어쩔 수 없이 빈 공간이 생기기 마련인데, 속이 꽉 찬 폼 매트리스는 신체의 모든 곡면을 완벽하게 받쳐준다. 탁월한 온도 유지 기능, 무게 분산을 통한 편안한 움직임, 진드기 방지 등에서도 탁월하다. 초기 단점으로 지적된 통기성이나 가라앉는 듯한 현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브랜드 제품이라면 많은 부분 해소됐다.

무엇보다 가격이 현실화됐다. 지난 2014년 뉴욕에서 캐스퍼(Casper)라는 작은 회사가 인터넷으로 매트리스를 팔기 시작했다. 침대나 매트리스는 대리점, 가구점에서 판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온라인을 통해 직접 판매하는 비즈니스모델을 통해 고가의 폼 매트리스 가격을 대폭 낮췄다. 이 스타트업 기업은 단순히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게 아니라 매트리스를 택배로 받는 새로운 경험까지 제공했다. 매트리스의 부피를 기능 손상 없이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 캐스퍼는 매트리스를 둘둘 말아서 1미터 크기의 종이박스에 담아 배송한다(맨해튼 내에서는 자전거로 배송해준다). 포장지를 뜯고 펼치면 얼마 뒤 매트리스가 원래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다. 나름 신기한 경험이다. 게다가 흰색 바탕에 파란 글씨가 써진 박스부터 일단 예쁘다. 그래서 배송된 박스에 걸터앉아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는 자기들만의 유희를 만들어냈다. 출시 당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기존 대형 업체들은 스타트업 기업의 재밌는 아이디어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 내 대부분의 매트리스 업체가 박스 배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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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퍼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매트리스를 박스에 넣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고객 친화적인 마케팅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침대를 잠을 자기 위한 물건에서 더 나은 삶, 더 완벽한 라이프스타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을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인스타에 올라와 있는 캐스퍼 관련 사진들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기업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마치 떠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드는 질 좋은 매트리스를 기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편하게 사고 받아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거다.

 

현재 미국에만 관련 유사업체가 200개 이상이 되고, 우리나라도 <효리네 민박>에 나온 일룸의 슬로우나 삼분의일과 같은 폼 메트리스 업체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특히 삼분의일은 한국판 캐스퍼라 할 수 있을 만큼 고객친화적인 서비스 제공, 온라인 판매라는 단순화한 유통구조에서 나오는 가격 경쟁력, 소셜미디어 중심의 소통과 감성이라는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이외에도 비슷한 업체가 여럿 된다. 다시 말해 미제 직구가 아니더라도 선택지가 벌써 꽤 다양하게 있다는 뜻이다.

 

이제 매트리스 사거나 이사할 때 부피를 걱정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하면 옛날 사람이 되는 시대다. 이를테면 폴더 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시기랄까. 원룸에 월세 살면서 무슨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매트리스를 어떻게 사냐고도 반문하지 말자.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치 투자다. 수면 건강과 이후의 생산성까지 생각한다면 수면은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까다롭게 받들고 다뤄야 하는 일상이다. 그러니 세간을 마련하는 중이라면 그 어떤 가전보다 제대로 된 ‘요즘’ 매트리스에 전력 투자하길 고언한다. 결제할 때 살이 떨린다면 카탈로그나 홈페이지나 관련 SNS계정을 계속 반복해 읽어보자. 요즘은 소비자가 마음껏 쇼핑할 수 있도록 소비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가치를 판매자가 마련해 제공하는 걸 비즈니스라고 한다. 마음을 열면 지갑도 열린다. 오히려 뿌듯해진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일부 사람들은 침대에서 잠만 자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안다. 관련 엑티비티 수행과 관계된 리뷰를 정리해본 바, 활동에 제약이 없고 오히려 소음과 쓸림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더욱 높게 평가됐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너는 정말로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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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으면 했어.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집까지 따라와 집사가 된다든가, 날개를 다친 새가 현관 앞에서 푸드덕대고 있어 치료를 해준다든가 하는. 우리의 첫 만남도 조금은 특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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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녹이 슨 철창 밖으로 앞발을 내밀고 있던 네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해. 사진은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는 처음 본, 프레리독이라는 동물. 가까이 다가가자 빨리 만져달라는 듯이 철창 사이로 코를 내밀었고, 조그마한 문을 열자 이내 내 손에 얼굴을 부볐어. 우리는 고작 1분 전에 만난 사이인데. 너는 정말로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싶었지. 사장님에게 두 세가지 질문을 하고, 인터넷에서 몇 가지를 더 찾아본 뒤 너를 데려오기로 결정하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어. 너로 인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실제로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 때는 정말로 그런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어.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고 부천으로 가서 필요한 용품들을 구입하고, 네가 놀랄까봐 과속방지턱 하나하나 조심히 넘어 집에 도착했지. 밤새 웅크리고 있는 너를 보면서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발을 동동 굴렀어. 네가 걱정되어 다음 날 출근해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칼퇴근을 하고 돌아온 날 저녁, 하루만에 새 집에 적응한 건지 몸을 뒤집어 배를 보이고 잠이 든 너를 보면서 마음을 쓸어내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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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정말 작았어.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털이 다 까져버린 코를 볼 때마다 안쓰러웠어. 수많은 이름 후보들 중 며칠을 고민하다가 여자친구는 강순이라는 이름을 너에게 붙여주었지. 강하고 순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강순이. 나는 그 이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어. 흔하지도 않았고, 정말로 네가 그렇게 컸으면 좋겠어서.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해서.

 

얼마 전엔 너를 보며 눈물을 펑펑 흘린 친구가 있었어. 어쩌면 그렇게도, 아무런 의심 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받을 줄 아는 건지, 그게 너무 슬프다며 너를 쓰다듬으면서 울더라. 나는 네가 앞으로도 계속 그랬으면 좋겠어. 나를 포함해 모두의 사랑을 받는 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모든 종류의 애정들을 담뿍 받으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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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감출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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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씨, 얼굴색이 안 좋아 보여. 어디 많이 아픈 거 아니에요?”

 

대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마르타 수녀가 다가와 걱정스런 얼굴로 조심스레 소곤거렸다.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모니터를 보며 처방전을 출력하던 김희정씨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쓰는 푸른색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괜찮아요 수녀님. 그냥 오늘 기침을 좀 더해서 그런가 봐요.”

 

마스크 위의 눈이 가늘게 웃고 있었다. 잔기침을 몇 차례 한 뒤 대기실을 훑어본 그녀가 난처한 말투로 수녀에게 말했다.

 

“오늘따라 늦게까지 환자가 많네요.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수녀님.”

 

마르타 수녀는 괜한 소리를 한다는 듯 손을 홰홰 저으며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마르타 수녀 옆자리에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엄마와 함께 동화책을 보고 있었고, 반대편 소파에는 꽉 막힌 코를 킁킁대는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축농증에 걸린 것이 틀림없었다.)와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해 있는 남자 고등학생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남자의 축농증과 고등학생의 설사, 그리고 여자 아이의 중이염과 엄마의 발톱 무좀에 대한 처방이 차례로 전달되는 동안 김희정씨는 데스크와 진료실을 부지런히 왕복했다. 처방전을 출력해 건네고 진료비 수납을 하는 손길은 평소와 같이 물 흐르듯 부드러웠지만 중간중간 기침이 나올 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찌푸려졌다. 기침 소리가 들릴 때면 마르타 수녀는 걱정스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녀님, 성경 필사는 잘 진행하고 계신가요?”

 

진료실 의자에 앉는 마르타 수녀에게 의사가 물었다. 그녀는 질문의 의미를 깨닫고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습관처럼 성호를 그었다.

 

“이 선생님 덕분이에요. 손 떨림이 나아졌으니 한동안 덮어두었던 노트를 아침마다 펼치고 있지요. 말씀을 그냥 읽으면 되지 굳이 쓸 필요까지 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한 줄씩 천천히 쓰다 보면 그냥 지나쳤던 대목도 새로워서 다시 한 번 묵상을 하게 된답니다.”


“제 덕분일 리가 있나요. 다 위에 계신 분 뜻이죠.”

 

의사는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지나치게 공손한 말투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은 모르는 사람이라면 빈정거리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수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매일 말씀의 씨를 뿌린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린 문제예요. 모두가 그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여 영적인 충만함을 느낀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아요. 공동체에는 언제나 반드시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나고 있게 마련이지요.”

 

멍한 표정으로 수녀의 말을 듣던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수녀님께는 못 당하겠네요.”


“마태복음이에요. 이 선생님도 이제 다시 미사에 나오시는 게 어때요?”

 

유쾌하게 웃고 있던 그의 얼굴에 순간 어두운 표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진료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희정 씨, 가라지와 쭉정이의 구세주가 오셨군요.”

 

연극배우 같은 말투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던 김희정 씨는 준비 없이 갑작스레 무대로 떠밀려 나온 단역배우처럼 영문을 몰라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마르타 수녀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웬일로 원장님 웃음 소리가 진료실 바깥까지 들리길래 궁금해서요. 이제 대기 환자도 다 정리되었고… 그나저나 이 문은 정말 손을 좀 봐야겠어요. 조용히 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네요.”

 

“이 선생님, 안나 씨한테 늘상 말로만 그럴 듯 하게 대접해주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이 병원은 제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겠지만 희정씨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요. 저에게 욕을 퍼붓고 진료실을 나간 환자도 희정 씨를 거치면 금새 나긋나긋해지는 걸요.”

 

“그렇게 직원 고마운 줄 아는 원장이라면 직원 건강도 좀 챙겨야죠. 안나 씨가 한 달 넘게 기침하는 거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마르타 수녀의 퉁명스런 말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감기 후에 기침이 좀 오래 가는구나 생각은 했는데, 벌써 한 달이나 된 줄은…”


“이거 봐요. 의사가 바로 곁에 있으면 뭐하나. 매일같이 얼굴을 보면서도 무심하기 짝이 없다니까.”


“수녀님도 참. 많이 나아졌어요. 저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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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더 말하려던 김희정 씨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급하게 말을 이으려던 게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한번 터진 기침은 멈추질 않았다. 발개진 얼굴로 기침을 참아보려 애쓰는 그녀를 마르타 수녀가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지만 말고 제대로 진찰 좀 해봐요. 그렇잖아도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사람이 기침을 하느라 안색까지 안 좋으니 쓰러질까 걱정이네요.”


“희정 씨, 기침 말고 다른 증상은 없나요?”

 

가까스로 기침을 멈춘 그녀가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심호흡을 몇 번 했다.

 

“처음 시작할 땐 콧물하고 가래도 있었는데 지금은 나아졌고 기침만 해요. 목이 계속 간질간질한데 기침 때문인 것 같아요. 감기 때문이려니 생각했는데 낫질 않고 오래 가니 저도 좀 걱정이 되네요. 사실 한 달 반쯤 되었거든요.”


“감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기침을 하진 않아요. 감기 이후에 기관지가 예민해져서 기침이 오래 가는 경우야 있긴 하지만… 여기 잠깐 앉아보겠어요?”

 

머뭇거리는 김희정 씨의 손을 마르타 수녀가 잡아 끌었다. 의사는 펜라이트로 그녀의 인후부를 살핀 뒤 청진기를 들어 그녀의 가슴에 조심스럽게 밀착시켰다. 그의 청진기는 오래 전 레지던트 수련을 시작할 때 구입한 것이라 했다. 당시에도 꽤 높은 가격의 고급 제품이었음을 증명하는 두툼한 연결 튜브는 손때가 묻어 반들거리는 윤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김희정 씨는 간호 실습을 시작할 때 샀던 오천 원짜리 청진기를 떠올렸다. 환자의 혈압을 재는 법을 배우던 때, 처음에는 상완 동맥에서 들어야 할 박동을 놓치기 일쑤였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김희정 씨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고, 뒤늦게 시작한 만큼 뒤쳐지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따로 연습을 하려고 구입한 청진기였다. 혈압을 측정하는데 익숙해진 다음에는 함께 실습을 도는 학생들끼리 서로 숨소리를 듣기도 했다. 청진기를 갖다 대자마자 간지럽다고 몸을 움츠리며 깔깔대는 통해 제대로 듣기까지는 항상 시간이 걸렸지만. 청진기 너머에서 전해지는 어린 그녀들의 숨소리는 새털처럼 가벼웠다.

 

청진을 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숨소리가 그에게 어떻게 들릴까에 대해 생각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가 평소보다 커진 박동 소리를 알아챌지도 몰랐다. 목이 간질간질 해지는 것이 다시 기침이 터져나올 듯한 기분이 들어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왔다. 

 

“숨소리는 괜찮아요.”

 

진찰하는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마르타 수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는 수녀를 힐끗 쳐다본 뒤 말을 이었다.

 

“희정 씨도 알겠지만 위산 역류도 기침을 일으킬 수 있어요.”


“신물이 올라오거나 가슴이 쓰리지도 않고 소화도 잘 되는 편인데, 위산 역류 때문일 수도 있을까요?”


“그런 증상이 없다고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요. 다른 증상 없이 기침만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평소에 알레르기는 없었던가요?”


“환절기에 비염이 있긴 해요. 요즘은 예전만큼 심하진 않지만.”


“비염이나 축농증이 있는 경우에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서 자극을 하는 것도 오랜 기침의 흔한 이유지요. 후비루라고 하는데, 희정 씨 기침의 원인일 가능성이 많겠네요. 부비동 촬영은 해보는 게 좋겠어요.”


“그럼 결핵이나 암 같은 건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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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수녀의 질문에 김희정씨는 참았던 기침을 몇 차례 내뱉었다. 마치 기침으로 나쁜 기운을 몰아내려는 듯이. 의사는 수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통화를 할 때도 내내 기침을 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환자가 없는 대기실은 조용했다. 자신의 처방전을 받은 마르타 수녀가 소파 아래에 놓아두었던 종이 가방을 김희정씨에게 건넸다.

 

“도라지하고 배를 달인 물이에요. 기침 감기가 오래갈 때 마시면 좋더라구요. 내가 직접 만든 거니까 꼭 챙겨 마셔요.”


“수녀님….”

 

종이 가방을 받아 든 김희정 씨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 발개졌다.

 

“가라지인 저한테 주실 선물은 없나요? 좀 서운한데요, 수녀님.”


“우리 주치의 선생님껜 그분의 사랑을 드리지요.”

 

수녀의 대답에 다시 멍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김희정 씨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젖은 눈꼬리를 닦아내며 수녀를 따라나섰다. 마침 기다리는 환자도 없고 해서, 수녀가 극구 말렸는데도 일 층까지는 배웅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계단을 내려와 건물 입구에 멈춰 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차갑기만 했던 밤공기는 이제 겨우 서늘한 정도였다. 마르타 수녀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들어봤어요? 사람에겐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기침, 가난, 그리고 사랑이래요.”


어디선가 들어본 말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김희정 씨는 수녀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었다.

 

“가라지를 통해서 밀이 튼튼해지는 법이랍니다. 가라지가 없다면 어떻게 사랑을 연습할 수 있을까요. 사랑을 쏟아야 할 사람이 없다면 말이죠.”

 

수녀는 김희정 씨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다시 목구멍 안쪽이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꼈다.

 

 

 

기침은 지속 기간에 따라 3주 미만의 급성(acute), 3~8주 정도의 아급성(subacute), 8주 이상의 만성(chronic) 기침으로 구분할 수 있다. 3주 미만의 급성 기침은 감기와 같은 상기도 감염이나 기관지염 등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반면에 8주 미만의 아급성 기침 중 가장 흔한 것은 감염 이후에 기도가 예민해져서 생기는 감염 후 기침(post infectious cough)이다. 이 경우 감기나 기관지염이 호전된 후 다른 증상 없이 기침이 지속되는 것이 전형적이며, 증상에 대한 치료를 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아질 수 있다.

 

오랫동안 기침을 하게 되면 기침 자체만으로도 가슴 통증이 생기거나 밤에 깊은 잠을 못 자게 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 8주 이상 지속되는 만성 기침의 가장 흔한 원인 세 가지는 후비루(posterior nasal drip) 증후군, 위식도역류, 그리고 천식이다. 후비루 증후군은 코 안쪽의 분비물이 목 뒤로 넘어가면서 기도를 자극해 기침이 생기는 것으로, 주로 알레르기 비염이나 부비동염(축농증) 등으로 분비물이 많아질 때 생긴다. 필요한 경우 부비동 방사선 촬영이나 비강 내시경 검사 등으로 점막의 염증을 확인하는 것이 진단에 도움이 된다.

 

후비루 증후군 다음으로 흔한 만성 기침의 원인은 기관지 천식과 위식도역류이다. 천식의 전형적인 증상은 쌕쌕거리는 소리나 호흡 곤란이지만, 이러한 증상 없이 기침만 있는 경우를 기침형 천식이라 부른다. 위식도역류는 서구화된 식습관과 비만 인구의 증가로 인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며 그만큼 위식도역류로 인한 만성 기침도 흔히 볼 수 있다. 속쓰림이나 위산 역류 증상은 위식도역류가 기침의 원인임을 시사하며 위내시경을 통해 식도 점막의 염증을 확인하는 것이 확실한 진단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나 식도 염증이 없는 경우도 많아 진단이 쉽지 않다.

 

만성 기침의 원인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흔한 원인 질환들 모두가 다른 증상이나 소견 없이 기침 증상만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개별 질환에 대한 치료를 먼저 해본 뒤 그 반응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단을 할 수도 있다. 천식에 대한 흡입제나 위식도역류에 대한 위산 억제제를 처방하고 반응에 따라 다른 검사나 치료로 넘어갈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환자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기침을 하는 것도 괴로운데 속시원한 진단이 바로 나오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다른 병원을 찾아가는 것은 오히려 손해일 수 있다. 그간의 진단을 위한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오승원의 반딧불의원’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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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변을 부르는 단 한 가지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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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에 <오줌을 참으면 방광이 커질까?(http://ch.yes24.com/Article/View/34318)>라는 글을 썼습니다. 결론은 방광이 오히려 작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방광은 대부분 ‘배뇨근’이라는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억지로 오줌을 참으면 배뇨근은 오줌을 밀어내기 위해 더 강하게 수축하지요. 아령을 열심히 하면 이두박근이 발달하듯, 근육은 수축을 반복하면 커지고 힘이 세집니다. 배뇨근이 커지면 방광 내부 공간은 줄어들고, 힘이 너무 세지면 강한 수축을 일으키기 때문에 오줌을 참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심하면 요실금이 생깁니다. 요즘은 너도나도 커피를 즐기는 시대지요? 커피는 이뇨작용이 있는데다 방광 수축을 일으킵니다. 화장실에 자주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화장실에 자주 가기가 불편해서, 또는 방광을 ‘길들이기 위해’ 소변을 참으면 오히려 점점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고, 소변을 참기가 힘들어지며, 심하면 소변을 지리게 됩니다. 그런데도 일반인을 물론 드물지만 의사들까지도 소변을 참으면 방광이 커진다고 믿는 분들이 아직도 있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소변이 마려우면 바로 화장실에 가고, 되도록 규칙적으로 소변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비슷한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대변을 참으면 직장이 늘어날까요?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이 소화관은 입-식도-위-소장-대장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정상적으로는 섭취한 음식이 대변으로 나오는 데 약 24-48시간이 걸리지만, 변비가 심한 어린이는 100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대변의 형태와 크기는 대장 안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장의 주기능은 물을 흡수하는 것이므로 대장에서 오래 머무를수록 대변은 점점 마르고 딱딱해집니다. 대장의 끝부분을 직장(곧은창자)라고 하는데, 직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대변이 직장에 도달하여 밖으로 배출될 준비가 되었다고 알리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직장은 저장기관이 아니라 감각기관에 가깝습니다.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눈이나, 멋진 음악을 듣는 귀나, 꽃의 향기를 맡는 코처럼 ‘응가가 여기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직장도 나름 예민한 감각기관입니다. 눈을 빛을, 귀는 소리를, 코는 특정한 분자들을 감지하듯, 직장은 ‘늘어남’을 감지합니다. 대변이 안에 들어와 어느 정도 이상 늘어나면 직장은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뇌와 척수로 보냅니다. 뇌와 척수에서 지금 성문을, 아니 항문을 열어도 좋다는 결제가 나면 항문 괄약근과 골반 아래쪽의 다양한 근육들이 이완되어 항문을 활짝 열고 대변을 몸 밖으로 밀어냅니다. (아, 시원해!)


동물들은 직장에 대변이 도달하자마자 거침 없이 쏟아냅니다. 하늘을 나는 조류는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날면서도 대변을 보지요. 소나 말, 염소도 비슷합니다. 개나 고양이 등 사회화된 동물들은 어느 정도 조절하지만 역시 오래 참지는 못하고 대개 매일 식후에 대변을 봅니다. 인간은 어떤가요? 우리는 까다롭지요. 신호를 지긋이 억누르면서 편안하고 쾌적한 곳에서,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충분한 시간 동안 느긋하게 일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기회를 기다립니다. 때로는 스마트폰이나 잡지도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 직장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겁니다. 직장은 ‘늘어남’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인데, 어지간히 늘어난 상태가 되어도 느끼지 못하거나 무시해 버립니다. 물론 직장도 대변을 밀어내야 하기 때문에 근육이 있지만 방광처럼 괄약근에 저항하여 힘을 키우고 큰일(?)을 도모하기에는 애초에 세력이 너무 빈약합니다.  만성적으로 늘어난 상태에 저항할 힘이 없으니 순응해 버립니다. 장벽에 긴장도가 떨어지면서 힘이 없어지지요. 이렇게 되면 직장 안에 가득 찬 대변을 한번에 밀어내지 못하고 찔끔찔끔 보게 됩니다. 변비가 심한데 화장실을 자주 가니 스스로 변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이런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린이들입니다. 왜 그런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모유나 분유를 먹던 아이들이 생우유와 고형식을 하게 되면 변이 굳어집니다. 게다가 이유기에는 자칫하면 야채나 과일을 적게 먹이게 되지요. 평생(?) 별로 힘을 쓰지 않고 부드러운 대변을 보던 녀석이 너무 굵고 딱딱한 변을 보느라 진땀을 흘리고, 용을 쓰고, 고통에 못 이겨 울음을 터뜨리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고비를 잘 넘기는 아이들도 있지만 일부 아이들은 대변을 참는 습관이 듭니다. 단순한 고통-회피 반응이지요. 하지만 이게 버릇이 되면 변은 더욱 딱딱해지고 굵어집니다. 아이는 놀이에 집중하여 직장의 절박한 SOS 신호를 무시하거나, 식탁 밑, 소파 뒤 등에 숨어 얼굴이 빨개진 채 다리를 꼬고 항문을 조이며 변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직장이 점점 늘어나면 아랫배가 거북하고, 소화도 잘 안 되고, 입맛이 떨어집니다. 만성적인 복통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크게 늘어난 직장이 바로 앞에 있는 방광을 누르면 수시로 오줌이 마렵고, 소변을 봐도 개운치 않으며(임신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야뇨증이나 요로감염이 생기는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만큼 심한 경우는 많지 않지만 아랫배가 거북하고, 입맛이 없는 등의 증상은 낯설지 않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성적으로 직장이 늘어난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1) 몇 차례 관장을 해서 직장에 가득 찬 변을 빼주고, 2) 완하제를 저용량으로 먹여 변을 보기 쉽게 해주며, 3) 규칙적으로 변을 보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는 변을 참는지 어쩐지 알기 어려우므로 보통 아침 저녁 식후에 5분 정도 변기에 앉히는 방법을 씁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지난 번 글에 썼듯 물을 충분히 마시고,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고, 활발히 몸을 움직이는 생활습관을 들여야지요. 간혹 완하제를 쓰면 습관성이 생길까 봐, 또는 ‘자연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감을 느끼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지시에 따라 사용하는 완화제는 습관성이 생기지 않으며, 안전합니다. 어린 시절 내내 대장에 변이 가득 찬 상태로 지내는 것 또한 ‘자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오히려 자연적 운운하며 판매하는 유산균, 보조제, 생약 등이 훨씬 해로울 수 있습니다.


어른은 어떻게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생활습관을 바꿔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변이 마려우면 오래 참지 말고 바로 보도록 해야 합니다. 화장실이 조금 쾌적하지 않아도, 상황이 조금 여의치 않아도 배변을 미루지 마세요. 스마트폰이나 신문은 잊어버리고요. 변기에 앉아 뭘 보면 오래 앉아있게 되어 치질이 생기기도 쉽습니다. 변비가 심하면 의사를 찾으세요. 생각보다 삶의 질이 크게 좋아집니다. 서양에서는 학생들이 변을 참지 않도록 쾌적한 학교 화장실을 만들자는 운동을 펼치는 곳이 많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기억하세요. 직장은 저장기관이 아니라 감각기관입니다. 감각기관은 예민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니 쾌변을 부르는 단 한 가지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변을 참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 야뇨증과 변비 거뜬히 이겨내기스티브 호지스, 수잔 슐로스버그 공저 / 서울아동병원 의학연구소 역 | 꿈꿀자유
많은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변비가 야뇨증은 물론 다양한 소변관련 증상을 일으키는 근본원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문제를 해결할 쉽고 빠른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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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맛의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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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뮤다

 

 

무슨 일이든 새롭게 시작하면 루키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살림을 처음 마련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과도기적 현상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조잡하고 잡다한 것들을 하나둘 사 모으는 거다(물론, 애벌래가 변태한 것처럼 입었던 옷을 허물처럼 그대로 바닥에 벗어둔다거나, 개수대에 설거지 거리를 두 끼 치 이상 쌓아두고 사는 사람들은 해당 사항이 없을 수도 있겠다). 형편이 여유로운 사람이야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되는 물건을 사니 취향의 문제 정도만 남겠지만 대부분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미세플라스틱과 같은 환경 문제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된다.

 

특히 신혼부부들은 금액 대비 심리적 만족이 커서 그런지 소형 가전이나 주방 가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마련한 제품들은 대부분 처음 몇 번만 사용하고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거나 수납공간만 차지하고 들어앉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런 소비의 퇴적이 미니멀리즘이 유행할 수 있던 토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중에서도 토스트기는 살면서 딱히 필요를 못 느꼈지만 사두면 괜히 많이 쓸 것만 같은 대표적인 가전이다. 주변에 살림이나 쇼핑과 관련한 조언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토스트기 구매부터 말렸다. 언제 먹을지 모를 식빵 한 쪽 굽겠다고 고안된 전열기구가 얼마나 불용한 존재인지에 대해 나는 꽤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근안이 물어도, 지나 해스펠이 물어도 내 대답에는 변함이 없을 만큼 확고했다. 발뮤다 ‘더 토스터’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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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뮤다

 

 

더 토스터는 일본에서 토스터로 빵을 굽는 행위의 폭을 확장하면서 발뮤다의 운명을 바꿨을 뿐 아니라 토스트기에 대해 강경했던 내 신념 또한 재정립했다. 죽은 빵도 살려주는 토스터라는 문구로 유명한 더 토스터는 토스트기의 기존 개념에서 벗어난 오븐식 토스터다. 사실 대단한 기술은 아니다. 미니 오븐에 스팀 기능을 추가한 것인데, 미니오븐을 토스터기라고 우기는 인식의 전환이 핵심이다. 기존 토스터기가 열선으로 빵을 바짝 굽는 게 전부였다면(그래서 빵이 건조하고 거칠어졌다면) 발뮤다는 겉은 바싹하면서도 속은 촉촉하고도 쫄깃한 식감을 선사하는 새로운 도구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엔 탄생 설화가 있다. 테라오 겐 대표는 젊은 시절 뮤지션으로 생활하며 해외 생활과 여행을 많이 다닌 일종의 히피였다. 바야흐로 17살, 지치고 외롭고 주린 여정 중에 스페인 남부 론다 지방의 어느 동네 빵집에 이끌리듯 들어섰고,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빵을 맛봤다. 따뜻하고 촉촉한 빵을 베어 물자 외로움과 고단함이 단박에 날아갔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 그는 회사를 설립하고 토스터 개발에 착수했지만 번번이 난관에 빠졌다. 사내 바비큐 파티에서까지 그 원인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그러나 추억의 빵맛을 찾기 위한 추적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추적추적 비가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빵맛에 습도가 끼치는 영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집요하게 파고든 추억 여행 끝에 테라오 겐은 그토록 그리던 빵맛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더 토스터로 빵을 구울 때는 함께 제공되는 앙증맞은 개량 컵으로 5cc 가량의 물을 붓는다. 토스트, 치즈토스트, 바게트, 크루아상 등의 매뉴얼대로 작동시키면 각 빵 종류에 가장 적합한 얇은 수분막이 형성되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빵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스팀 기능을 쓰지 않아도 치즈를 녹이는 등의 간단한 오븐 요리가 가능하다. 해보진 않았지만 쿠키나 머핀 정도는 구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2017년 버전부터는 모드조절레버로 조작할 수 있는 최저 온도를 160도에서 쿠키를 굽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170도로 아예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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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뮤다

 

 

시니컬한 일군의 비평가들은 예쁘기만 한 비싼 제품이라고 평을 하기도 한다. 둘 다 틀린 말이다. 우선 세상의 기준이 달라졌다. 예쁜 것만으로도 값어치를 하는 세상이다. 프리미엄 시장이 확대되면서 가격보다 소비자 만족도가 중요해졌고, 가전도 인테리어 오브제로써의 가치가 중요해졌다. 제주도의 이효리 집이나 후암동의 아베크엘, 신사동의 식부관, 88브레드 같은 힙한 카페나 빵집에서 더 토스터를 괜히 심심치 않게 만나는 게 아니다. 그래서일까. 이마트몰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더 토스터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다섯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맛. 불행히도 식빵만으로 차이를 못 느끼지 못했다면 요즘 많이들 먹는 크루아상과 같이 버터가 공기를 품고 있는 페이스트리 제품이나 딱딱해진 크로크 무슈처럼 치즈가 들어간 빵을 소생시켜보길 권한다. 그럼에도 모르겠다면 굳이 빵을 따뜻하게 해서 먹을 필요가 없다. 나의 경우 계절식품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겨울철이면 집에 가져오는 길에 풀이 죽어버린 잉어빵을 되살리는 데 주로 사용한다.  

 

바로 이 지점이다. 발뮤다의 브랜드 특성이기도 한데, 성능을 자랑하기보다 어떻게 즐거운 삶의 체험을 하도록 돕는 ‘도구’인지 보여주는 데 관심이 많다. 제품 패키지에 레시피북을 동봉해서 더 맛있는 빵을 즐기는 생활을 제안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최고의 빵맛을 즐길 수 있다는 체험의 가치를 제시한다. 스스로도 가전 회사라 부르지 않고, 실제로 이들을 밀어준 t-사이트나 츠타야 가전, 무인양품 모두 라이프 스타일 매장이다.   

 

발뮤다는 일본 가전업계의 애플이란 별명을 갖고 있지만 본사 직원이 100명도 안 되는 중소기업이다. 우리나라와 대만을 제외하곤 제대로 된 해외 시장도 없다. 시장조사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거의 구매 경험을 토대로 미래 수요를 예측하는 시장 조사를 신뢰하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다. 세상의 불편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며 내가 만들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제대로 만든다는 테라오 켄 대표의 ‘스웩’ 넘치는 경영철학은 오늘날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더 나은 경험을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관통했다.

 

최첨단 가전이라고 꼭 냉장고랑 대화해야 하는 건 아니다. 더 토스터는 오히려 작동 단계를 더 늘렸다. 그러나 잘 구워진 빵이 아닌, 맛있는 빵을 맛볼 수 있다는 데 이정도 편의는 얼마든 양보할 수 있다.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빵의 세계를 체험하길 바란다. 5만원 주고 사서 안 쓰느니, 30만원 내고 두고두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참고로 누설하자면 더 토스터는 발뮤다의 세계로 들어서는 열쇠다. 그 이후 벌어질 연쇄 소비 욕구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발뮤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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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대변의 모양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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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늘 그렇듯 아침을 먹고 나서 15분이 지나면 나는 귀 뒤에 자스민 꽃을 찬찬히 꽂는다. 그리고 볼일을 보러 나선다... 오늘 아침의 배변은 정말 색다른 것이었다. 코뿔소 뿔 모양을 하고 나온 깔끔한 두 덩어리. 난 무엇보다 그 양의 변변치 않음에 신경이 쓰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중 한 사람인 달리(Salvador Dali)의 일기 중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그 왜 축 늘어진 시계나 해골, 십자가 같은 걸 즐겨 그렸던 사람 있잖아요. 천재와 광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처음 그의 일기에서 이 구절들을 읽고는 살짝 이상한 쪽에 속하는 사람이 아닐까 했지요. 하지만 나중에 어떻게 하면 절 찾아오는 환자들을 똥 잘 누는 어린이로 만들 수 있을지 공부하다가 달리가 의외로 현명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브리스틀 대변 척도(Bristol Stool Scale)

 

어린이들은 똥이나 방귀 얘기만 나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지요. 우리가 왜 더러운 것, 무서운 것, 끔찍한 것에 관심을 갖는지에 관해서는 생각보다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결론은 그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란 겁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대소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자리에서 주고받기에 유쾌한 얘기는 아니니 그렇지만 문제는 자신의 대소변에조차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관찰은커녕 엉덩이를 들기도 전에 변기의 물을 내려 보낸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녀는 더 하지요. 신생아 때는 기저귀를 갈 때마다 비상한 관심을 보입니다. 변이 조금만 묽어지거나, 푸른색 변을 보거나, 실 같은 피가 섞이거나, 알갱이 같은 것이 나오면 즉시 소아과로 달려갑니다. 대소변 가리기를 할 때는 온 집안의 비상한 관심사가 되기도 하지요. 저도 처음 혼자서 똥을 누고는 자랑스럽게 달려왔던 딸 아이의 표정과, 어린이용 변기에 살포시 놓아둔 듯한 ‘깔끔한 두 덩어리’를 보고 아내는 물론 부모님까지 만면에 웃음을 짓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하지만 대변의 전성기는 이로써 막을 내리고 맙니다.

 

하지만 달리처럼 천재(광인?)이 아니더라도 대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인들입니다. 1990년 브리스틀 대학교 연구팀은 온갖 대변의 모양을 수집하여 분류한 후 7단계의 척도로 만들었습니다. 친절하게 그림까지 첨부했습니다. 이걸 브리스틀 대변 척도(Bristol Stool Scale)라고 합니다. 참 할 일 없는 족속들이라는 둥, 영국의 끔찍한 날씨와 더 끔찍한 음식을 생각한다면 그런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둥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사실 이 척도는 매우 재미있을뿐더러 유용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의외로 어린이의 변비를 알아차리기가 어렵고 둘째, 정상적인 대변 모양을 아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변비의 11가지 증상


변비를 알아차리기가 어렵다니? 물론 3-4일에 한 번 정도 크고 딱딱한 대변을 본다든지, 대변을 볼 때마다 아파한다든지 하는 증상은 의심할 여지 없이 변비입니다. 하지만 하루에 3번 이상 매우 묽은 대변을 보는 아이도 변비일 수 있습니다. 엥,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지난 번 글을 읽어보세요. 변비가 생기면 직장에 변이 쌓이면서 직장이 서서히 늘어납니다. 직장에서도 수분이 계속 흡수되기 때문에 대변이 오래 머무르면 점점 커지고 점점 딱딱해집니다. 결국 크고 딱딱한 덩어리가 출구를 막아 버리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굶지는 않지요? 음식을 계속 먹으니 장에서는 변이 만들어져 끊임 없이 내려옵니다. 일부는 직장을 막고 있는 큰 덩어리에 합쳐지지만 묽은 부분은 덩어리의 틈새를 통과하거나 주변을 돌아 항문으로 빠져 나옵니다. 변비가 심한데 아이는 하루 서너 번 묽은 변을 보니 부모는 변을 잘 본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설사를 한다고 걱정합니다. 어려운 말로 ‘역설적 설사(paradoxical diarrhea)’라고 하지요. 심하면 변을 지려 속옷이 더러워지기도 합니다. 어린이 변비의 증상이 애매하기 때문에 다음 11가지 증상 중 한 가지라도 있다면 소아과 의사를 찾아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1. 커다란 대변 - 대변이 어린아이치고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2. 딱딱한 대변 - 브리스틀 대변 척도를 참고하세요.
3. 뜸한 배변 - 이틀에 한 번도 대변을 보지 않는다면 참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대변을 지린다 - 보통 늘어날 대로 늘어난 직장 밖으로 대변이 넘쳐 나오는 겁니다.
5. 속옷에 묻는다 - 직장이 많이 늘어나면 대변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고 대변이 깨끗하게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항문을 깨끗하게 닦기 어렵습니다.
6. 매우 묽은 대변 - 설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변비일 수 있습니다(역설적 설사).
7. 뚜렷한 원인이 없는 가볍고 간헐적인 복통
8. 하루 3번 이상 변을 본다 - 직장이 너무 늘어나면 긴장도가 떨어져 한번에 밀어내지 못합니다.
9. 대소변 가리기 훈련이 너무 힘들다.
10. 대변이 마려우면 숨는다.
11. 항문이 가렵거나 아프거나 치질이 생기거나 대변 볼 때 피가 난다.

 

브리스틀 대변 척도를 봅시다. 4번과 5번이 정상적인 대변입니다. 3번과 6번이면 조금 신경을 써야 하고, 1, 2, 7번은 곤란합니다. 매번 아이의 변을 확인하기 어려우면 인터넷에 많이 나오니 컬러 복사해서 화장실에 붙여 놓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이 척도는 어른에게도 유용합니다. 우리는 무슨 원칙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요. 오죽하면 냉면 먹는 법도 제대로 모른다며 타박을 하곤 합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황금똥을 누는 아이’ 운운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브리스틀 대변 척도는 과학적인 기준입니다만 너무 강박적으로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3번 정도 되는 변이 나왔다면 아이에게 과일을 좀 더 먹이고, 하루 10-20분이라도 함께 산책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건강에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면 족합니다. 대변의 모양은 건강에 관해 의외로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달리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감상할 것까진 없지만 평소에 잘 관찰했다가 의사에게 알려주면 진단에 큰 도움이 됩니다. 뭐 어때요? 자기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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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설적 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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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야뇨증과 변비 거뜬히 이겨내기스티브 호지스, 수잔 슐로스버그 공저 / 서울아동병원 의학연구소 역 | 꿈꿀자유
많은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변비가 야뇨증은 물론 다양한 소변관련 증상을 일으키는 근본원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문제를 해결할 쉽고 빠른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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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귀족의 여유로운 일상을 집 안에 들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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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lingcampee

 

1인 가구에게 가구는 늘 마음의 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경제적인 이유인데, 집은 어쩔 수 없이 좁고, 언제 그곳을 뜰지 모르며, 한번 사면 바꾸기 어렵다. 그렇다고 오픈마켓 최저가를 검색하며 저렴이를 들이자니 공간 심리 차원에서 마뜩치 않고, 이케아에 전적으로 의존하자니 글로벌 자본주의에 포섭되는 것 같아 마음이 내심 불편하다. 값을 차치하더라도 디자이너의 원목 가구가 늘 정답도 아니다. 언제 거처를 옮길지 모를 도시 유목민 입장에서 경량성, 기동성, 그리고 잠시 쓰다가 버려도 아깝지 않을 패스트패션의 가치 또한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구를 살 때 다음과 같은 사안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원룸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도 최소한의 시야 공간 확보가 가능한지 여부와 최소한의 예산으로도 최소한의 품위는 지킬 것. 이 기준을 갖고 살다보니 절대로 노지에서 잠을 청하지 않음에도, 하나 둘 집 안에 캠핑 용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나만의 의자를 갖고 싶었다. 컴퓨터 의자나 식탁 의자가 아니라 차 한 잔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나만의 안락한 요새. <아파르타멘토> 같은 잡지에 나오는 예술가들이 책으로 뒤덮인 책장 모서리나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한구석에 작은 스탠드를 옆에 두고 앉아 신문과 책을 읽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깊은 동경이 있었다. 합리적 소비와는 무관한 일종의 코스프레 욕구였지만 이런 정서적 사치야 말로 독립 의지를 고취시키는 대표적인 로망이었다.

 

그러다가 라이프 스타일 산업이 유행하면서 휘게니 라곰이니 하며 북유럽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쪽 동네에선 첫 월급을 타면 자기만의 제대로 된 의자부터 사는 풍습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얼핏 봤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지탱에 관해서 의자가 가진 의미를 풀어내는 이야기였는데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미루고 밀리던 의자를 마련할 이유는 보다 확실해졌다.

 

하나, 우리 모두 임스나 핀율의 의자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을지로에서 저렴한 복제품을 사는 건 역시나 개운치 않다. 1인용 쇼파는 가격과 공간 두 가지 면에서 부담스럽다. 그런 이때 훌륭한 대안이 되어준 것이 캠핑용 릴렉스 체어였다. 너무나 자랑스런 중소기업 헬리녹스가 첨단 경량 제품으로 세계무대에서 선전하곤 있다만, 정작 도움을 준 것은 헬리녹스의 초경량과는 정반대의 매력과 가치를 좇는 일본에서부터 다시 불기 시작한 ‘헤비듀티’ 혹은 ‘감성 캠핑’의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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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nometsa

 

 

고성능의 기능성 경량 원단 대신 플란넬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무겁고 또 무거운 두꺼운 캔버스 텐트와 나무로 된(캠핑에 ‘감성’이란 단어가 붙으면 무조건 나무가 어딘 가라도 붙어 있어야 한다) 용품을 갖고 자연을 즐긴다는 캠핑 사조가 뜨면서 인도어와 아웃도어 가구의 경계는 오히려 모호해졌다. 이쪽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캠핑 용품들은 대부분 나무와 캔버스(혹은 가죽, 린넨)와 같은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까닭에 하이테크 캠핑 장비에 비해 무겁고 내구성은 떨어지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 매력이다. 그런데 실내로 들고 들어오면 느낌은 그대로이면서 무겁다는 단점만 대폭 반감된다. 덕분에 자기만의 쉼터를 적당한 가격에 꾸릴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캠핑 가구는 일단 비교적 값이 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 좁은 공간에서도 답답함을 줄여준다. 그리고 식탁 의자로 쓰지만 않으면 매우 안락하다. 사용하지 않을 땐 접어놓을 수 있어 공간 활용에도 유리하고, 혹시 모를 손님을 대비해 여러 개 구비하기도 적합하다. 아직 생각은 안 해봤지만 요즘 같은 계절엔 유사시 갖고 나갈 수도 있다.

 

물론 캠핑용품을 살림으로 활용하는 건 나만의 반짝이는 생활의 팁이 아니다. 애초에 가구의 분류 자체가 ‘무버블 퍼니쳐(Movable Furniture)’라 하여 유목민의 삶에서 유래한 것과 아닌 것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미 100여 년 전에도 아웃도어 가구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집 안으로 들어온 바 있다. 그 당시 유행한 것이 갖고 다니기 쉽게 만들어진 이동용 가구를 뜻하는 캠페인 가구(일명 캠프Camp 가구)다. 원래는 야전생활을 위한 군용 물품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전 세계로 진군한 대영제국군과 그 뒤를 따른 식민지 거주민들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일반화 되었다. 이후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거치며 더욱 깊게 일상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바로 그 시절 탄생한 전설적인 의자가 바로 마리포사 체어, 일명 버터플라이 의자다mariposa가 스페인어로 나비다). 슬링, B.K.F라고도 불리는 이 의자는 나름의 유서 깊은 여러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아르도이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출신 건축 디자이너들이(‘B.K.’F는 이 셋의 이니셜이다) 탄생시킨 대표적인 모던 디자인 의자다. 원래는 자신들이 만든 건물의 모델하우스에서 쓸려고 만든 캠페인 의자였는데 건물보다 더 인기를 끌게 되고, 그러다 뉴욕 모마의 어느 큐레이터 눈에 들어가면서 ‘빵 터진’ 뭐 그런 전설을 품고 있다. 그런데 인기가 많은 만큼 복제품도 워낙 많은데다 가격도 웬만하지 않아 딱히 추천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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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claim

 

 

가장 추천하는 제품군은 로버 체어(Rover Chair)라 통칭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야전 의자다. 군용 랜드로버의 장비로 사용하면서 유명세를 탔는데, 프레임은 알루미늄을 쓰지만 두툼한 캔버스나 린넨으로 등받이를 만들고 팔걸이에 나무를 얹은 클래식한 조합 덕분에 집 안에 있어도 낯설지가 않다. 서로 다른 색상으로 짝을 지우는 재미도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칠링캠피스나 발리스틱스의 제품들도 훌륭하고, 교토를 베이스로 한 복각 브랜드 ‘YMCL KY’에서 내놓은 로버 체어도 합리적이다. 국내에도 마헨, 휴 아웃도어와 같은 브랜드가 성업 중인데, 가격이 부담이 될 경우 콜맨의 컴팩트 폴딩체어나 컴포트 마스터 시리즈가 훌륭한 대안이다.  

 

사촌지간이라 할 수 있는 다이렉터 체어도 좋은 선택지다. 영국의 테니스장에서 가장 먼저 쓰이기 시작한 까닭에 테니스 체어라고도 불리는데, 영화 촬영장에서 감독용 의자로 많이 쓰이며 더욱 유명해졌다. 로버 체어보다 비교적 안락한 편이라 독서용 의자라는 본질 면에서 더 적합하다. 그 유명한 모겐스 코흐의 폴딩체어(마찬가지로 2차 대전 중 영국군이 사용하면서 사파리 의자라고도 불린다)부터 여러 캠핑용품사의 제품들까지 선택의 폭이 매우 다양하다.

 

공간이 좀 여유가 있다면 아예 감성을 바꿔서 데크 체어(Deck Chair)를 들이는 방법도 추천한다. 긴 나무 작대기에 해먹처럼 천을 단 형태의 의자인데 스트라이프 데크 체어는 영국 휴양 문화의 심볼이라 할 수 있다. 제품의 묵직함만큼이나 캠핑의 바이브보다 휴양의 편안함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빈약해 보이는 겉보기와 달리 온몸을 감싸는 안락함이 일품이며, 공간은 꽤 많이 차지하지만 뼈대가 얇고 몸체가 천이라 그런지 답답함은 의외로 느껴지지 않는다. 접으면 프레임 두께의 직사각형이 되어서, 안 쓸 땐 벽에 세워 둬도 무리가 없다. 데크 체어는 캠핑용품점에서도 간혹 만날 수 있고, 핌리코 쇼핑몰에 가면 정통 영국 데크 체어를 구매할 수 있다. 우리 집의 경우 침실에 데크 체어를 넣어두고, 반상회를 할 때는 거실 공간에 수납해둔 로버체어를 꺼내 쓴다. 모두가 똑같은 의자에 앉는 덕분에 안 그래도 예민한 반상회 자리에서 어떤 의심이나 의혹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원탁의 회의가 가능하다.   

 

이쯤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대부분의 감성 캠핑 의자들이 영국 혹은 영국군의 전성기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집 안에 캠핑용 의자를 들이는 게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기에 충분한 발견이다. 우린 캠핑용품을 놓고 사는 게 아니다. 안락한 독서용 쇼파를 놓고 살던 과거 유럽 귀족의 라이프 스타일 및 감성을 시대에 맞춰 하이브리드하게 소화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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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클라이맥스, 랜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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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보다 고기가 더 많았던 우리 동네 쌀국수

 

 

어떤 이들은 여행을 '일상의 되돌아봄'으로 성찰하기도 한다. 한국에 두고 온 직업, 집, 가족의 소중함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끼는 건 여행을 떠나고 나서부터라고 말한다. 내게도 여행을 떠나는 그럴싸한 이유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여행에 특별한 의미를 두려는 태도를 살짝 경계하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여행 그 자체가 주는 설렘 때문에 지금도 떠난다.

 

내 여행의 시작은 비행기 티켓을 사는 것부터가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이른데, 여행을 마치고 '귀국 편 비행기'에서 이전 여행과 미래의 여행이 갈린다. '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떠날 준비를 해볼까? 다음 여행지로는 어디가 좋을까? 몬트리올? 오클랜드? 그도 아니면 운남?' 가고 싶은 도시 후보를 끝도 없이 나열하면서 이다음 여행이 시작된다.

 

끝남과 동시에 시작이라니! 그러니까 나는 한시도 여행의 설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도시들의 언어, 음식, 물가, 항공권 등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보고 인터넷을 통해 검증의 시간을 갖는다. 우여곡절 끝에 한 달 살이를 할 만한 도시가 선정되면 항공권을 산다. 이후부터 짐 싸기, 출국하기, 비행기 타기, 숙소 찾아가기, 맛있는 식당 발견하기, 용케 이웃을 찾아내기, 쇼핑하기 그리고 귀국까지 여행의 많은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여행의 클라이맥스로 '랜선 여행'을 꼽을 것이다.

이번 겨울엔 호찌민을 다녀왔다. 그 남자도 나도 베트남은 처음인지라 어수룩하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그 남자보다 내가 호찌민이 친숙했던 건 이미 '랜선 여행'을 마쳤기 때문이리라. 랜선 여행이 무엇인고 하니, 위대한 구글 맵이 축적해놓은 위성 지도 위에 전 세계 사람들의 한 줄 평이 결합된 정보의 집약을 말한다. 우리는 실제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숙소의 외관과 골목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슈퍼와 맞은편의 쿨한 카페를 방문할 수 있다. 구글 맵을 휘젓고 다니노라면 '여러분,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습니다'라는 말을 외치고 싶어진다.

 

남들 다 가는 쌀국수 가게 말고 나만의 호찌민 맛집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지도를 이용하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계치에 응용력은 제로인 나 같은 사람도 자유자재로 활용이 가능하니 여러분도 할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첫째, 숙소의 위치를 파악한다. 자고로 단골이란 외출 전후로 아무 때나 들락거릴 수 있어야 하니 무조건 숙소 근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여야 한다. 둘째, 숙소 근처 쌀국수 가게를 하나하나 방문한다. 물론 구글 맵을 통해서다. 랜선 여행의 핵심은 얼마만큼 숙련되게 구글 맵을 활용하느냐이다. 다리품을 팔며 일일이 맛을 보고 다니지 않아도 10분만 투자하면 대략 다섯 군데 식당의 견적이 나온다. 셋째, 방문객들의 평점은 5점 만점에 3.8점 이상으로 하되 리뷰 수 50개를 넘긴 곳을 찾는다. 넷째, 가능하면 현지어로 작성된 리뷰를 번역기로 돌려보고 영어나 한국어가 많으면 그 식당은 과감히 패스한다. 외국 언어가 많다는 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일 경우가 많다. 다섯째,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 쌀국수 가게에 별 마크를 붙여준다.

 

우연한 발걸음이 이끈 환상의 맛집? 이런 헛된 기대를 품느니 랜선 여행으로 검증된 맛집을 찾아 나서는 편이 낫다. 간혹 아무도 찾지 않는 식당을 홀로 전세 내는 데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면 말이다.

 

 

이 별에 데려다줘


 

남녀, 여행사정 41-02@호치민.jpg

          누군가는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아무튼 그 여자의 안목은 인정해야 한다. 분명 낯선 도시였을 텐데 숙소며, 식당하며 하다못해 ‘요상한’ 관광지까지 어찌 그리도 잘 찾아놓았는지. 나 몰래 왔다가 점찍어두었던 곳에 다시 데려오는 건 아닌지 싶을 정도이다. 그럴 때마다 그 여자는 구글 맵 하나면 가보지 않아도 가볼 수 있다고 했다. 내 스마트폰에도 같은 지도가 들어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안목이 없다. 어쩌면 가보지 않은 곳을 살피고 자신의 취향을 찾아내는 것은 안목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아닐까?

 

“나… 이 별에 좀 데려다줘.”

 

그 여자가 찾은 숙소는 우리 말고 다른 여행자가 과연 찾아올까 싶은 현지인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 옆방과 윗방에 머무는 이들은 같은 시간에 나갔다가 같은 시간에 들어왔고, 주말에는 끼니때마다 방 앞에 쌀국수 그릇이 나와 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이 하루 10달러에 머물 수 있었던 이 숙소는 호찌민으로 일하러 온 이들이 장기 임대해서 머무는 곳이었다. 가이드북에는 소개되지 않는 그런 동네였음에도 그 여자는 별을 발견했다.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동네 쌀국수 맛집이며, 저녁 시간에 잠깐 문을 열기 때문에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껌 땀 식당에 별 표시를 해두었다. 정작 지도를 볼 줄 모른다 하여도 아무튼 그 여자의 안목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1월이라도 호찌민의 날씨는 무더웠다. 지도 위의 별을 찾아 다니고 돌아오면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야 했다. 대리석이 깔린 방바닥과 비슷한 탄력을 가지고 있는 침대였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태양의 기운이 몸에서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동안 다른 침대를 생각했다. 물컹한 침대보다 딱딱한 탄력이 좋다. 그보다 딱딱하면서도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그 느낌이 소중하다. 그 여자와 내가 돌아갈 곳에는 그런 탄력이 기다리고 있다. 등에 와 닿는 감각의 변화가 떠나온 곳을 그립게 한다.

 

그 여자가 미지의 공간을 기대하는 것으로 여행의 작은 행복을 찾는다면,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확신을 통해 여행의 행복이 극대화된다. 여행의 역설이라고 할까.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공간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지면 여행지의 하나하나가 소중해진다. 지금 맡고 있는 낯선 도시의 냄새를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서 맡게 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당연히 누리고 있던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익숙한 것이 멀어지니 소중해지고, 두고 떠나야 할 것이 그리워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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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 달린 천사는 책상을 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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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와 포스터라는 이름의 두 개와 함께 살게 된 지는 각기 4년이 조금 안 되었고, 1년이 조금 넘었다. 이 두 개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왜 이름이 조디와 포스터인지를 먼저 이야기하려고 한다.


동물을 원체 좋아하는 나는 4년 전쯤 반려견을 들이고 싶어 거의 병이 날 지경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나의 반려견과 산책하는 시늉을 하면서 길을 걸을 정도였다. 하지만 생업 때문에 하루에 몇 시간은 집을 비워야 하고, 예전에 반려견과 살았으나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기억도 있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차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망원동에 있는, 웰시코기가 많은 한 카페에 갔는데 거기서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를 만났다. 보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한 마리 들여야 한다는 것을.


네이버의 한 대형 카페에 들어가 파양견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금세 리트리버 한 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지금 나와 살고 있는 포스터이다. 4개월, 18kg 정도였을 때 나에게 왔다. 그 당시 나는 마이클 포스터Michael Forster라는 철학자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 개의 이름이 포스터Forster이다.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뿐더러 중간에 ‘r’ 발음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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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와 만난 일은 조금 더 드라마틱하다. 문래동에서 술 마시고 집에 가는데 개 한 마리가 사거리에서 걷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행인의 개인 줄 알고 물었더니 그 분은 이 개를 처음 본다고 하여 조심스레 개에게 가까이 갔다. 다행히도 그 개는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편이어서 그 자리에서 안아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안고 가는 동안 내 옷에는 털이 많이 묻었다. 이 사실로 이 개가 시바견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없어 별수 없이 집으로 데려왔다. 이게 작년 설 연휴의 일인데 때가 참 좋았다. 영등포구청이 연휴로 쉬던 기간이라서 이틀 정도 집에서 그 개를 기르면서 포스터와 잘 지내는지, 짖음이나 물기는 어떤지, 배변 습관은 어떤지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연휴가 끝난 뒤 영등포구청에 인계하였고 시간이 지나도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기에 정식 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하였다. 그 개가 조디이다.


조디의 이름은 포스터와는 상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개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니까 트위터의 어떤 분께서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성을 포스터에게 주고, 이름을 이 개에게 주는 것이 어떠냐고 하셔서 재밌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개의 이름은 조디이다. 물론 포스터가 그 포스터가 아니니, 이 조디도 그 조디는 아니다. 아무튼 이래서 조디와 포스터이다.


이름의 연유를 말했으니 이제 두 마리의 개와 지내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을 두 개 정도 말해보려고 한다. (물론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개를 들이면서 잃은 것도 많지만 그건 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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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기르면서 나는 다른 개나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히 바뀌었다. 입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포스터가 집의 나무 책상을 씹기 시작했는데, 나는 어느 순간 포기하고 씹을 테면 씹으라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러자 포스터가 책상을 씹기는커녕 나를 보며 왜 자신을 쳐다보지 않느냐면서 크게 짖었다. 개가 겉으로 행하는 것과 속으로 원하는 것 사이에 이렇게 차이가 있고, 그걸 읽어내야만 개와 성공적으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일에도 큰 도움이 된 사례이다.


다른 하나는 개든 사람이든 소극적으로 뭘 못 하게 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뭘 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포스터는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뛰어올라서 내 팔을 물었다. 이게 장난으로 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살이 뜯어지게 무는 것이었다. 당시 30kg 정도 되던 대형견(현재 38kg)이 팔을 물면 진짜 아팠다. 아무튼 그때 소극적으로 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앉아 있게 시켰더니 포스터의 행동이 금세 교정되었다. 견주들께서는 ‘A는 안 돼’보다는 ‘B를 해’라는 방식이 효과적임을 고려해주셨으면 한다. 이를테면 식탁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바닥에 앉아 있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말씀이다. 개에게든 사람에게든 부정적/소극적인 지적보다는 긍정적/적극적인 제안이 늘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디 포스터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이 개들과 같이 살면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를 짧게 적어보았다. 나는 개를 두고 농담 삼아 ‘네 발 달린 천사’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개들이 하품하고, 이불을 뜯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산책하는 모든 것이 좋다. 개, 아니, 네 발 달린 천사와 사람이라는 다른 종이 서로 의사를 소통하면서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내는 이 상황이 가능한 한 오래 지속될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당분간 내 개인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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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문화 이야기 - 일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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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철에 공원에서 하나미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이 시즌에는 명당 자리를 잡기 위해 밤새 공원 앞에서 줄을 서기도 하고, 아침부터 술을 마셔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Shutterstock

 

 

‘일본 사람들은 속을 모르겠어’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

 

일본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은 공항에 있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다. 그들은 미소도 짓지 않고 말없이 효율적이며 일본어 외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오래지 않아 수속을 마치고 수하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일본인 직원들은 정말 과묵하다. 잡담을 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한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일하기에 매우 적합하고 시간낭비가 없는 방식이다.

 

내집단과 외집단


어떤 이는 일본의 사무실 직원들이 마치 인간 드론 같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상자 밖 세상을 생각할 여유도 의지도 없이 임무 완수를 위해 정해진 절차만을 따르는 드론 말이다.


한번은 일본이 변화를 빠르게 실행할 잠재력을 가졌지만 단지 없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 결정을 내릴 의지가 있는 한 명의 지도자뿐이라고 말하는 친구를 보았다. 일단 변화의 윤곽을 그리는 절차가 결정되면 일본이 그 과정을 채택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변화에 반대하거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시위를 벌이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대부분의 노동자는 그저 결정을 받아들이고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말없는 소수로 남아 언제나처럼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경향이 있다. 내집단(內集團)에 남으려면 다른 의견을 표현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 일본 문화에서는 ‘우리 대 세상’이라는 개념이 매우 강하다. 가끔은 모범생 대 괴짜라는 학창시절의 구도가 연상된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일본 인구 전체가 모범생으로 내집단에 적응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환경에서 외국인은 외부인으로서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 외국인을 뜻하는 ‘가이코쿠진’(外?人)은 ‘가이’(밖)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내집단과 외집단의 개념은 비단 현지인과 외국인의 구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개념은 견고하지만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누구냐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아닌 ‘그들’은 회사의 고객일 수도, 가족의 손님일 수도, 다른 또래집단에 속한 아이일 수도 있다. ‘우리’와 ‘그들’의 구분은 또한 행동 방식과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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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근교의 역사 도시, 가와고에 거리. 어린 아이를 자전거 앞뒤에 태우고 지나다니는 젊은 엄마들의 모습은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 풍경이다. ⓒ Shutterstock

 

 

그렇다고 외국인이 아무리 갈망해도 내집단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진입로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며 결단력과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순응을 뜻하는데, 이는 일본인은 능하지만 대부분의 외국인은 꺼리는 태도다. 내집단에서는 개인인 당신이 어떻게 집단에 기여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당신이 집단에 어떻게 섞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이유로 일본인이 외국의 내집단에 동화되는 것 또한 어려울 수 있다.

 

뭉쳐야 산다는 식의 이러한 문화에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대다수가 너무 튈까 두려워 침묵을 지키는 사회의 모습이 외국인 눈에는 좀 이상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특히 2011년 도호쿠 지진 이후 원자력 반대 시위의 횟수로 판단해보건데, 확실히 사람들이 전보다는 솔직해지고 소신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세 도시 이야기


어느 나라에나 대도시들 간에는 약간의 경쟁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번은 어떤 사람이 내게 누구나 멜버른과 시드니를 똑같이 좋아할 수는 없으며 어느 한 쪽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내 경우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어떤 때는 멜버른이 더 좋고 어떤 날은 시드니가 더 좋다. 그러나 굳이 골라야 한다면 호바트를 선택할 것 같다).

 

도쿄, 오사카, 교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쿄 사람들은 조금 쌀쌀맞은 반면 오사카 사람들은 따뜻하고 친절하다고들 말한다. 도쿄 시민들은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는 반면 오사카 시민들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오사카 사람들은 직설적이고, 도쿄 사람들은 에둘러 말하는 편이다. 많은 면에서 이 도시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가 사람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오사카는 상인이 많은 상업지구여서 사람들이 다소 느긋하고 상대를 즐겁게 하는 방법을 안다. 반면에 도쿄는 오랫동안 수도이자 경제 중심지여서 궁중의 격식과 행동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언어에 대해 말하자면 오사카 방언은 있지만 도쿄 방언은 곧 일본 표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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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시마의 인기 있는 아와오도리 축제에서 아와오도리(바보춤) 공연을 준비하는 여성들. 일본은 지역별로 계절마다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Shutterstock

 

 

예술과 우아함의 중심지인 교토는 오사카나 도쿄와는 사뭇 다르게 발전해왔다. 교토의 방언은 무척 복잡한 언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도쿄 시민들은 에둘러 말하기는 해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잡을 수 있는 반면, 교토에서는 화자의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당신을 칭찬하고 있다고 오해하기에 딱 좋다. 말 속에 빈정거림이 숨어 있어도 파악하기 힘들다. 이는 교토어의 고급스럽고 간접적인 구조 때문인데, 정확한 의미를 해독하려면 약간의 두뇌 회전이 필요해 보인다. 교토 사람들은 오사카 사람들처럼 투박하지 않으며 항상 격조와 품위를 지키는 편이다.

 

이 세 도시 사람들에 대해 굳이 과장된 묘사를 해보자면 오사카 사람은 다소 투박하지만 즐기는 법을 아는 반면, 도쿄 사람은 조금 비싸도 새로 나온 제품과 서비스를 좋아하는 약간은 샌님 같은 이미지고, 교토 사람은 점잖고 지나치게 정중하며 고상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세 도시의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각 도시 출신자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개인의 성격과 배경에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대체로 오사카 사람들과는 빠르게 친해지는 반면, 도쿄 사람들은 마음을 열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이 글을 쓴 라이나 옹(Raina Ong)은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이주해 거의 10년 동안 살고 있다. 그녀는 외국인 지도 교사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여행작가로 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 내 47개 도ㆍ도ㆍ부ㆍ현을 모두 답파한 그녀의 다음 목적지는 일본의 작은 섬과 반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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