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채널예스 : 여행/취미
Viewing all 2148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툭하면 코피가 나는 아이

$
0
0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어린이들이 코피를 흘리는 것은 아주 흔한 일


“엄마, 아빠, 빨리 와 보세요. 큰일 났어요!”


“아니, 얘가?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뛰어 오고 그래?”


“현우가 코피 나요! 놀이터에서 놀다가 갑자기요.”

 

숨이 턱에 닿은 큰 애를 따라 급히 달려 나갑니다. 머릿속에서 걸음만큼 빠른 속도로 몇 가지 생각이 줄달음질칩니다. 다섯 살 난 둘째는 요즘 부쩍 코피를 자주 흘립니다. 지난 겨울 감기에 걸렸을 때 코 푸는 법을 배워 재미를 붙였는지 자꾸 코를 풀었습니다. 하루는 큰 소리로 세게 코를 풀더니 갑자기 코피가 난다고 달려왔습니다. 그 뒤로 툭하면 코피가 납니다. 코를 풀거나 후벼서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저절로 흐르거나 심지어 자다가 이불이 엉망이 된 적도 있습니다.

 

지난 주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낮잠을 자던 아이가 어딘지 불편한 듯 끙끙거리며 일어나더니 피를 한 사발이나 토했습니다. 놀라서 들쳐 업고 한달음에 동네 소아과로 뛰었지요. 선생님은 별로 놀라지 않고 바로 코피가 났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코피가 나서 휴지로 코를 막고 눕혀 놓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웃으며 코피가 목 뒤로 넘어가 위에 고여있다가 토한 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다음에는 눕히거나 고개를 뒤로 젖히지 말고, 코를 휴지로 막지도 말고, 아주 약간만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코를 10분간 손가락으로 꼭 잡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라면 지켜보면서 검사도 해봐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죽 봐왔던 현우는 건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아무 일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또 코피가 나다니… 이번엔 정말 검사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린이들이 코피를 흘리는 것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누구나 어려서 한두 번은 코피를 흘려보았을 겁니다. 신생아는 코피가 나는 일이 거의 없지만,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략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별스런 일도 아니지요. 유난히 코피가 자주 나는 아이도 있는데, 아빠나 엄마가 어렸을 때 그랬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안 내력이지요. 하지만 아무런 검사나 치료를 하지 않아도 사춘기에 접어들면 저절로 코피 흘리는 일이 드물어집니다. 그러니 우선 안심하세요.

 

 

2.png

 

 

병원균을 걸러내는 코

 

그런데 왜 어린이들은 코피가 잘 나지요? 아니, 그보다 왜 “코”에서 피가 잘 날까요? 눈이나 귀나 입에서 피가 나는 일은 거의 없는데 말이죠. 코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합니다. 첫째는 냄새를 맡는 거고, 둘째는 숨쉴 때 공기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코에서 냄새를 맡는 부분은 가장 깊고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뇌의 바로 아래쪽이지요. 어찌나 뇌와 가까운지 이 부분을 통해 뇌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코의 후각세포는 사실상 뇌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 부분은 잦은 코피와 별 상관이 없으니 일단 제쳐둡시다.

 

그럼 숨쉬는 기능이 남네요. 우리 몸은 오랜 진화를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엄청난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코가 너무 낮다고, 예쁘지 않다고 불만이라면 이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세요. 우선 코는 공기를 “숨쉬기 좋게” 만들어 기관지와 폐에 전달합니다. 숨쉬기 좋은 공기는 어떤 공기일까요? 따뜻하고, 습도가 적당하고, 깨끗한 공기입니다. 시베리아 벌판처럼 차갑고 건조한 날씨 속에서도 코로 들이마신 공기는 기관지로 들어가기 전에 체온과 1도 내외로 데워집니다. 습도도 숨쉬기 좋게 맞춰지지요. 그뿐인가요? 먼지가 많은 곳에서 숨을 쉬더라도 코에서 대부분의 이물질을 걸러내기 때문에 폐에는 (비교적) 깨끗한 공기가 전달됩니다. 그러니 코는 에어컨 히터 가습기 공기청정기 역할을 한꺼번에 하는 셈입니다.

 

그보다 더 대단한 건 병원균을 걸러낸다는 겁니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숨을 쉬나요? 예전에도 썼지만 어린이는 분당 20-30번, 하루에 4만 번, 1년이면 1,500만 번 숨을 쉽니다. 그때마다 공기 중에 있던 바이러스나 세균이 들락날락합니다. 숨쉴 때마다 이놈들이 기관지를 거쳐 폐로 들어가면 일년 내내 기관지염이나 폐렴에 시달리겠지만, 우리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아요. 콧속은 피부가 아니라 점막이라는 조직으로 되어있습니다. “점액을 분비하는 막”이란 뜻이지요. 그래서 항상 끈끈한 점액이 코팅되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콧속에는 “섬모”라고 헤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가느다란 털이 나있습니다. 이놈들은 점액을 한쪽 방향으로, 즉 콧구멍 쪽으로 조금씩 이동시킵니다. 숨을 들이쉴 때 공기 중에 있는 바이러스, 세균, 미세먼지가 들어오더라도 콧속 어디엔가 부딪치는 순간 점액에 달라붙어 버립니다. 콧속 깊숙이 있는 점액은 섬모에 의해 콧구멍 쪽으로 이동합니다. 이런 식으로 병원체나 오염물질이 기관지나 폐로 들어가는 걸 막게 되어 있지요. 이 점액이 말라붙은 게 바로 유명한 코딱지입니다.

 

공기를 데우고, 습도를 높이고, 점액을 많이 생산하고, 섬모가 힘차게 운동할 수 있도록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혈액공급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코에는 혈관이 많습니다. 문제는 혈관이 점막 바로 아래 있다는 겁니다. 점막은 아주 얇기 때문에 바로 아래 있는 혈관은 다치기 쉽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콧속에 염증이 생겨 점막과 혈관이 더 상처받기 쉽지요. 어린이들의 점막과 혈관은 당연히 더 약하겠지요? 게다가 아이들은 코감기에도 잘 걸리고, 코를 후비거나, 심지어 콧속에 뭘 집어 넣기도 합니다. 그러니 코피가 잘 날 수 밖에 없지요.

 

침착하게 아이를 어디 앉히세요.

 

코피가 나면 이렇게 하세요. 우선 침착해야 합니다. 피를 보면 겁이 나지요. 자녀의 피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불안해 하면 아이는 몇 배 불안합니다. 침착하게 아이를 어디 앉히세요. 앉을 곳이 없다면 서 있어도 괜찮습니다. 아주 약간 고개를 숙이게 하고 엄지와 검지로 코의 말랑말랑한 부분을 꼭 잡아 누르세요. 세게 누를 필요는 없지만 10분은 눌러야 합니다. 멎었는지 자꾸 들여다 보지 말고 10분을 진득하게 누르세요. 손을 떼보고 멎지 않았다면 다시 한번 10분을 누릅니다. 차가운 걸 코에 대주면 좋지만 없어도 됩니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 피가 멎습니다.

 

코피는 당황스럽긴 해도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아이가 창백해 보이거나, 땀을 많이 흘리거나, 의식이 좋지 않을 때, 양쪽 콧구멍에서 동시에 피가 날 때, 부모가 보기에 출혈이 너무 많은 것 같을 때, 머리나 얼굴에 큰 충격이 가해졌을 때, 그리고 10분간 누르기를 두 번 시도해도 피가 멎지 않을 때는 의사를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혈액응고에 문제가 되는 병을 앓고 있을 때도 병원에 가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이미 부모와 아이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몸이 허약하다는 둥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마세요. 대부분의 코피는 코를 후비는 습관이나, 지나치게 건조한 집안 환경 때문에 생깁니다. 보약이나 영양제를 먹이는 것보다 손톱을 짧게 깎아주고, 실내습도를 유지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그 문화 이야기 - 독일 편

$
0
0

 01.jpg

냉전의 상징이었던 찰리 검문소가 남아있는 베를린 거리. 동쪽으로는 과거 동독군 사진이, 서쪽으로는 연합군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Shutterstock

 

 

‘통일 독일에서 미리 만나는 ‘차이의 문화’

 

독일 역사는 숨 막힐 듯한 급상승과 급강하, 과격한 회전과 방향 전환, 정신 없이 빠른 변동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타기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나라도 희망과 두려움, 꿈, 충성과 극단적 경향, 운명과 열정을 근대 독일처럼 강렬하게 경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이자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은 정치적 인기가 무척 높다. 통일 독일에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사람들은 연합정부가 조금씩 풀어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옛 동독 출신의 정치가가 키를 잡고 있는 한 동서독의 분열을 빠르게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동서의 차이점


지역별 다양성이 뚜렷한 연합국가인 독일에서 가장 큰 차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옛 동독과 서독, 즉 동독인과 서독인 사이에서 발견된다. 40년 동안(그것도 역사상 가장 급속한 변화가 일어났던 40년!) 완전히 다른 정부와 경제체제 아래서 살아온 두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형성되지 않았으리라고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동서로 분리된 40년의 격차는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 뷔어 진트 아인 폴크)”라고 거리에서 숱하게 외쳤던 수많은 독일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 독일을 두 나라로 나누었던 물리적 장벽을 의기양양하게 허문 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이 ‘머릿속의 장벽’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베시스(wessis. 동독인이 서독인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 ‘서쪽 놈들’ 같은 뜻)와 오시스(ossis. 서독인이 맞받아서 동독인을 가리키는 말) 사이의 주요한 차이에는 그들이 살아온 체제가 반영되어 있다. 동독인은 서독인이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고 피상적이며 자기 눈앞의 좁은 사회에만 관심을 갖고 오만하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서독인은 동독인이 너무 게으르고 단순하며 원하는 것을 급하게 얻으려 하면서도 진취적이지 못하고 불안정하다고 맞받아친다.

 

두 지역의 격차는 사람들의 정신뿐 아니라 산업 경관과 주택 공급에도 존재한다. 옛 동독 지역의 많은 공장과 시설은 가망이 없을 정도로 낡고 비효율적이어서 몇몇 공장은 설비를 교체했지만 대다수 시설은 사용이 불가능해 폐쇄되었다. 오늘날 최신식 공장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는데, 정부나 경제계의 낙관주의자들은 서독의 설비 시설보다 한참 앞선다고 떠들어대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관측이 한낱 낭만적인 환상에 불과하다고 저평가한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옛 동독 지역의 위험한 환경오염 상태였다. 옛 동독의 공산주의자들은 산업 공해가 자본주의의 착취적인 생산 방식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해 안심이라도 했던지 각종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을 별 제제도 없이 잔뜩 지어놓았다. 거기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오염물질을 신속히 제거하지 않고 공장 및 발전소를 폐쇄하지 않은 탓에 1990년대에 동독 내 많은 지역의 공기와 물이 오염되었다.

 

한편, 통일 직후 몇 년 동안 옛 동독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부딪힌 문제는 가는 곳마다 크게 차이가 나는 도로사정과 그로 인한 엄청난 불편함이었다. 옛 동독 지역은 심지어 주요 도로와 아우토반(고속도로)의 일부 구간이 잘 정비되지 않거나 2차선이어서 속도가 나지 않고 불편했다. 기차 여행도 서독 지역만큼 쾌적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이런 모든 상황들이 크게 개선되었다. 독일 연방정부와 도이치반(독일 국영 철도회사)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한 결과, 동서 간 도로 격차는 거의 제거되었고 환경적으로 위험 지역이었던 동독 도시들의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02.jpg

한때 분단의 상징이었지만 멋진 갤러리로 탈바꿈한 베를린 장벽. 베를린을 사랑한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 참여로 완성되었다. ⓒShutterstock

 

 

동서가 만나는 베를린


베를린은 독일의 험난한 재통합 과정이 가장 빠르고 의미심장하게 진행되었던 곳이다. 이전에 동독에 속했던 구역들은 오늘날 서독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가장 부유하고 호화로운 마을들은 여전히 서 베를린에 있지만 동 베를린 지역도 수준을 상당히 끌어올렸다. 물론 동 베를린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독의 전시 도시였던 데다 옛 독일 제국과 나치 독일의 정부가 자리 잡았던 곳이기에 이전에도 웅장하고 화려하기는 했다.

 

베를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단되면서 동 베를린과 서 베를린으로 나뉘었다가 1989년 통일이 되면서 다시 하나의 도시로 합쳐진 역사를 갖고 있다. 1948년부터 1989년까지 매우 독특한 상황과 지위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지역적 특성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통일 전 서 베를린은 개방적이고 자극적인 유흥 문화로 수많은 젊은이를 끌어 모았는데, 당시 청년들이 십대를 베를린에서 보내면 군 징집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이곳은 전반적인 개방성과 관용,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의 집결지가 되었고, 시의회에서 제공하는 넉넉한 보조금과 도시의 매혹적인 분위기로 많은 예술가를 유혹했다. 이런 강점들 덕분에 베를린은 ‘자유분방함과 기행의 도시’라는 오늘의 평판을 얻었다. 이는 진실에 가깝고, 다른 지역에 사는 독일인들도 베를리너를 감탄 섞인 갈망과 관용의 눈길로 바라보는 편이다.

 

그러나 통일 이후 베를린에는 심리적으로 심한 분열 현상이 존재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표면상 하나가 된 지 20년이 지난 된 베를린에서 많은 젊은이가 자신을 동독 또는 서독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는 보도를 했다. 동 베를린에 사는 젊은이들은 도심지에 베시(Wessi)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화려한 클럽과 커피숍, 미술관, 디스코텍들이 들어서느라 자신들은 더 이상 돌아다닐 데가 없다고 불평했다. 그들은 서 베를린의 젊은이들이 가는 모임 장소나 서구화된 동독 지역 어디에서도 불편함을 느끼며 결국 고향의 더욱 외진 구역을 찾아 들어간다(많은 상을 받았던 영화 <굿바이 레닌>은 이런 혼란스런 감정을 어두우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잘 보여주었다). 한편 베시스들은 동 베를린 중심가와 고풍스런 프렌츨라우어베르크의 몇몇 ‘인기 있는’ 장소를 즐겨 찾지만 그들의 안락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동독 외곽 지역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독일 내에서 가장 개방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베를린에서도 이처럼 견고한 ‘머릿속의 벽’이 남아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 벌어지는 현상 중에 특기할 만한 것으로 오스탈기(ostalgie. 동독에 대한 향수)가 있다. 이는 동쪽과 향수를 뜻하는 독일어를 합성한 말로, 가능하면 옛 동독의 생활방식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을 가리킨다. 물론 독재나 비밀경찰, 정치 선전 등의 부정적인 역사는 예외로 하고 말이다. 이런 목적에서 론도 커피(Rondo Melange), 슈프레발트 오이피클(Spreewaldg?rken) 등 동독 시대의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한 애호식품들이 1990년대 초반 독일 시장에 재등장해 사랑을 받았다. 베를린의 유명한 알렉산더 광장에는 과거 계획경제의 장점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99퍼센트 동독 제품’이라는 이름을 내건 상점들이 들어섰다. 이런 오스탈기 흐름이 영화 <굿바이 레닌>의 상업적 성공을 이끄는 데 한몫 했음은 분명하다.

 

 

03.jpg

 베를린 프렌츨라우어베르크의 인상적인 건물 벽화. 예술가들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Shutterstock

 

 

께 살아가기


어쨌거나 오늘날 서독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옛 동독 지역 출신이다. 통일 후 동독인의 약 7분의 1이 서쪽으로 이주했다. 동독 지역 5개 주의 인구는 통일 후 10여 년 만에 18퍼센트나 줄었다. 고향을 떠나 서쪽으로 향하는 인구가 젊은 층, 여성, 특히 고급 인력이 대다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인구 변화는 심각했다.

 

동독 출신의 재능 있고 진취적인 젊은이들은 고향에서는 자기 재능에 맞고 보수가 좋은 직장을 찾기 힘들어 서독 지역으로 떠난다. 그러나 이들 중 다수는 이전에 고향을 떠났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친절과 동료애, 호의가 부족한 서쪽 사람들에게 실망을 느끼며 고향을 떠나온 일을 후회한다. 확실히 옛 동독인들은 서독인보다 ‘머릿속의 벽’을 더욱 뚜렷하게 느낀다. 서독 지역의 높은 생활수준에는 만족하지만 고향에서 경험했던 인간적 관점들을 잃게 된 것을 후회한다. 그들이 보기에 베시스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일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한편 베시스가 볼 때 오시스는 여전히, 어쩌면 더욱더 ‘집단’에 집착하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수가 지금도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어쩌면 이렇듯 어쩔 수 없이 이어지는 독일 내의 이주로 인해 양 지역의 격차가 희석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머릿속의 벽들도 모두 무너지지 않겠는가.

 

이 글을 쓴 리처드 로드(Richard Lord)는 미국인으로 영국과 미국,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서만 18년을 살며 일했다. 보스턴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영화와 연극 비평 전문 프리랜서 기자로, 그리고 음식 및 정찬에 관한 월간지 『CHOMP』의 부편집장으로 일했으며, 그가 쓴 작품 한두 편이 보스턴, 런던, 독일에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저서로 『Beyond Walls: Berlin Views』, 『Succeed in Business: Germany』, 『Countries of the World: Germany』, 번역서로 『Thirty Years of German-Israeli Relations』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
0
0

 

1.jpg

        언스플래쉬

 

 

동성애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논의가 진행 중이고 수많은 문헌과 자료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두 가지만 얘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난합니다. ‘생식을 위한 성교를 쾌락 추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신의 뜻에 반한다’거나, ‘미풍양속을 해친다’거나, ‘에이즈 등의 질병을 옮긴다’는 것입니다.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동성애자가 이성을 사랑할 수도 있고 동성을 사랑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동성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동성애가 생물학적으로 정해지는 성향이라는 증거는 유전자 연구와 뇌스캔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결정적이냐 하는 점은 아직도 논란 중입니다. 다윈 이래 수많은 석학들이 진화의 증거를 제시해왔지만 아직도 미국인의 55%가 창조론을 믿는다는 허탈한 보고가 있습니다. 아마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한다고 해도 선택은 개인의 몫이라고 주장할 사람이 여전히 있을 겁니다. 그러니 복잡한 과학 얘기를 하는 것보다 동성애자들의 체험담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게 된 순간을 회상합니다. 일관되게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다고들 하지요. 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을까요? 앞에서 말했듯 성적 정체성은 아주 어린 나이에 생기지만, 성적 지향은 사춘기 들어 생깁니다. 사춘기는 성숙한 나이는 아니지만 어린이도 아니지요. 동성애를 ‘선택’한다면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나 이성애를 선택할 겁니다. 동성애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비난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눈이 작다거나 손가락 길이가 짧다고 비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긴 요즘은 ‘왜 얼굴 안 고치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둘째, 동성애는 성교 방식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동성애가 선택의 문제라고 해도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잖아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동성애의 진실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즉흥적으로 만난 상대와 폭력적인 항문성교를 하여 신체가 손상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에이즈를 옮긴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항문성교-에이즈’란 식으로 도식화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선 이 도식에서 여성 동성애가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항문성교를 하지 않고 에이즈를 옮기지 않으면 괜찮은가요?

 

몇 년 전 일입니다. 캐나다에서 초등학교 7학년,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이었던 막내가 저녁식사 중에 몹시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질성교, 항문성교, 구강성교(사실 이 부분은 영어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어려운 한국어까지는 몰랐죠.)를 다 해봤어요?”사레가 들어 캑캑거리다 물을 마시면서 보니 아내도 얼굴이 발개져 있더군요. 그런 걸 왜 묻느냐고 했더니 학교에서 성교육 시간에 사람의 정상적인 성교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배웠다며 엄마 아빠도 그렇게 하는지 궁금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양에서는 항문성교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정상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본다는 겁니다. 초등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칠 정도니까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킨제이 보고서 같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인간의 성행동은 문화에 따른 차이를 걷어내고 나면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니란 뜻입니다.

 

저는 캐나다에 삽니다. 캐나다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지요. 동성인 부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단정하게 털손질이 된 개를 끌고 둘이 손을 꼭 잡고 산책을 다니고, 같이 장도 보고, 이웃을 집으로 불러 맥주파티도 합니다. 집이 아주 깨끗하고 멋지게 꾸며져 있어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고, 역할을 분담하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상대방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이성인 부부와 똑같습니다. 인간의 성은 동물의 성과 약간 다르지요. 생식 목적 외에도 사랑을 전달하고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동성인 파트너끼리도 물론 성적인 방법으로 애정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성적인 방식 = 성기의 삽입이라는 도식에 빠져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기의 삽입을 하는 경우라면 정상적인 세 가지 방식 중에서 한 가지는 불가능하니 나머지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하겠지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성교를 하느냐는 기준으로 이성인 부부나 연인을 판단하지 않듯이, 동성인 부부나 연인도 그런 기준으로 판단할 이유는 없습니다.

 

즉흥적으로 만난 상대와 폭력적인 방법으로 성교를 해서 신체가 손상된다거나, 병이 옮는다거나 하는 문제는 본질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성 간의 성교도 즉흥적으로 만난 상대와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질 문제이자, 폭력과 범죄라는 차원에서 다룰 문제입니다. 에이즈가 초기에 난잡한 성교를 즐기는 남성 동성애자 사회를 중심으로 확산된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에이즈가 동성애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에이즈의 기원은 매우 흥미롭고 복잡하여 한두 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1900년대 초 아프리카에서 유인원으로부터 사람에게로 종간전파된 것으로 봅니다. (에이즈의 기원에 관해서는 데이비드 콰먼의 책 『인수공통』을 권합니다. 에이즈는 혈액접촉이나 수직감염에 의해 전염됩니다. 항문성교는 질성교에 비해 작은 상처가 나기 쉬우므로 혈액접촉이 자주 일어납니다. 에이즈가 남성 동성애자 사회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입니다. 현재 에이즈는 환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동성애 차원에서 논할 문제를 벗어났습니다. 동성애를 막는다고 에이즈가 줄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번 사진.jpg

        언스플래쉬

 

난잡한 성교는 동성애자에게든 이성애자에게든 모두 위험합니다. 동성애자들이 특별히 더 난잡한 성교를 한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즉흥적인 관계를 맺는 동성애자가 더 많을지 이성애자가 더 많을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성 간의 성교에 의해서도 에이즈는 물론 다른 성병이 옮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건적인 측면에서 논의하고 대처해야 할 문제입니다.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인정되어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두 가지 문제는 자연히 줄어들 겁니다.

 

작년에 아일랜드의 차기 수상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는 인도 이민자의 아들로 38세입니다. 또한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아일랜드는 다소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로 꼽히지요. 이민자의 아들, 38세,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이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봅니다. 동성애자가 행정부의 수반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도, 아카데미상 수상자 중에도, 가장 탁월한 과학자, 기업인, 예술가, 법조인, 교수, 의사 중에도 동성애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편 군에 입대할 경우 동성애자로 처벌받을 것을 피해 난민 지위로 이민을 신청한 우리나라 남성을 캐나다 이민국에서 받아들였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우리는 어떤 규범을 세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길 좋아합니다. 때로는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소수의 문제를 귀찮아하거나 무시합니다. 인류는 신체적 능력이 보잘것없는 동물이지요. 진화 과정에서 뭔가 낯선 상대를 만났을 때 싸워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를 즉시 결정해야 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고, 친구와 적을 한눈에 판별하는 기술은 생존에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리니 인간이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버릇은 진화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민족은 식민열강의 지배를 받고, 수동적으로 해방을 맞고, 동족끼리 갈라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그 잿더미에서 불과 몇 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압축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 숨가쁜 과정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무시되었습니다. 모순이 터져나오면 약자 중에서 희생자를 골라 얼토당토 않은 규범으로 단죄한 후 모순과 함께 묻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모두 이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과학은 인간과 우주의 본 모습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계속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한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수많은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 기준을 맞추어야지, 기준에 사람을 맞추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람 나고 기준 났지, 기준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닙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을 부정하면서 어떤 기준에 맞아야만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법이든, 도덕이든, 미풍양속이든, 그 밖의 어떤 좋은 이름을 뒤집어 쓰더라도 폭력에 불과합니다.

 

왜 3살도 되기 전에 스스로를 타고난 성별과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호르몬의 어떤 변화로 인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전적, 선천적인 부분이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다고 해도 무엇이 바람직한지 판단할 수는 없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이 분명 존재하고,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들도 나와 똑같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 과정이 특별히 어렵다면 따돌리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도울 게 있다면 도와주면 됩니다. 세 편의 글에서 젠더에 관한 복잡한 용어들을 설명한 것은 개념을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인정의 첫걸음이니까요.

 

우리는 이제야 인간의 젠더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개념이 혼란스럽고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모르는 것은 섣불리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냥 모른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과학이 인간에 관해 밝혀낸 것 중 가장 위대한 사실은 ‘모든 인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소수자’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소수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일은 자기 자신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과 닿아있습니다. 성소수자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생각해보면서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길을 찾기 바랍니다.

 

 

 


 

 

#성소수자_LGBT(Q)강병철, 백조연, 이주원, 효록, 오승재 저 | 알마
그들은 여전히 소수이며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그리고 ‘소수(少數)’를 만드는 것은, 의식 속에서 소수를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내 옆에는 없는 무언가’로 규정짓는 다수일 테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다이슨 VS 밀레

$
0
0

miele-complete-c3-marin-canister-vacuum-o (1).jpg

       올드스쿨 청소기의 제왕 밀레(Miele) 유선 청소기

 

 

독립이든 비운의 1인 가구든, 신혼부부든,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됐다는 건 청소를 스스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공간을 더욱 윤택하게 가꾸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새댁들 사이에선 지난 10년간 끊이지 않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당신이 육아나 신혼과는 담을 쌓은 삶이라도 일선에 얻은 경험과 논쟁으로 쌓아 올린 이 데이터베이스는 꽤나 참고할 만하다.

 

필수 가정용품인 진공청소기를 놓고 벌어지는 다이슨(Dyson) 스틱형(무선) 청소기와 올드스쿨 청소기의 제왕 밀레(Miele) 유선 청소기 사이의 선택이 그것인데, 샐러드마스터 대 무쇠팬, 전기레인지 대 가스레인지처럼 사실상 이미 판가름 난 전투다. 낙동강 방어전선처럼 절대 함락되지 않는 사람들도 일부 있으나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가볍다는 편의성 때문에 판세는 다이슨으로 기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블랙프라이 데이'가 곧 '다이슨 데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지켜보던 다이슨은 아예 지난해 말 한국 법인을 설립했다. 국내 굴지의 가전회사에서도 최근 꽤 수준과 가격이 높은 제품을 출시해 스틱형 청소기 시장에 참전했다.

 

이미 패색 짙은 이 전투에 굳이 끼어든 이야기를 꺼내게 된 건 너무나 많은 비교와 고민, 경험담 속에 바닥청소 본연의 목적이 혼탁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기 구입은 쇼핑의 차원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는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견고한 울타리 공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이슨 무선 청소기의 장점은 경량의 기동성과 특허기술인 싸이클론 방식의 특징인 먼지봉투와 필터교체 등의 소모품 구입비용 절감이다. 수십 만원이 넘는 초기 비용이 드는 선택이다 보니 유지비용의 절감은 꽤나 매혹적이고, 육아에다 결국 청소까지 떠맡은 주부들에게 경량성은 포기할 수 없는 복지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집 안 일이 아직 서툴거나 손목 힘이 약한 새댁들의 입장에서 고려할 법한 사항이다. 자신의 공간을 가꿀 줄 아는 남자라면 어떤 청소기라도 깁슨의 플라잉브이를 연주하듯 자유자재로 후릴 줄 알아야 한다. 또, 헤파필터의 노고를 머쓱하게 만드는 먼지통 청소시 배출되는 먼지와 2~3년이면 찾아오는 배터리 교체를 소모비용으로 분류한다면 또 다른 계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량성과 소모품 문제는 청소의 근원적인 의미를 흐리게 만든다. ‘리브 노 맨 비하인드leave no man behind’.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이 말은 기념비적인 전쟁영화 <블랙호크다운>의 세계관이자 실제 미군의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여기서 단 한 단어만 바꾸면 그대로 바닥청소에도 적용된다. 손목터널 증후군이 있다거나 나사에서나 쓸법한 디자인이 딱 취향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진공청소기는 헤드가 지나간 자리 뒤에 먼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단 한 톨의 먼지도 남기지 않겠다는 청소의 본령에 가장 충실한 제품이 바로 헤드가 벽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하는 밀레다.

 

하드플로우툴이 없다면 맨들맨들한 바닥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발휘하지 못하고, 헤드가 전진할 때만 흡입을 하며, 충전시간을 고려해야 하는 까탈스러운 다이슨과 달리 밀레는 1년에 한번 헤파필터를, 3~5개월에 한번 먼지봉투만 교체하면 어제와 다름없는 힘찬 모터소리를 10년 후에도 들을 수 있다. 비비드한 색상과 범퍼를 두른 모양은 마치 유럽산 SUV 같지만 관리만 꾸준히 해주면 20년 후에도 변함없는 퍼포먼스로 응답하는 클래식 머슬카다(참고로 밀레에도 일체형 제품이 있긴 있는데 팜플렛을 보면 사람이 사람을 든 것 같다).

 

2년짜리 배터리를 가진 기괴한 우주선을 둘 것인가 20년을 함께할 레트로 디자인 머슬카와 일상을 함께 할 것인가. 물론, 두 브랜드 모두 고성능 헤파필터를 장착한 고사양 제품들이다. 다만 그 정도 비용을 지불할 정도로 청소를 중히 여긴다면 한 톨의 먼지도 남겨놓지 않겠다는 본령을 잊지 말자는 제안이다. 그러니 로봇 청소기는 아무리 스마트해진다고 한들 당신의 선택지에서 영원히 논외로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가성비 좋은 인테리어 솔루션 - 식물과 함께 생활하기

$
0
0

mademoisellepoirot.jpg

            mademoisellepoirot

 

 

바야흐로 원예의 시즌이다. 원예라니. 예전 같았으면 각박한 청춘들에게 멀고도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 그렇지 않다. 화분은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보다 힙하고 싶다면 더더욱 그렇다. 계절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시대 상황도 시즌 그 자체다. 특별할 것 없이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던 원예 산업은 식물을 인테리어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문화로 거듭났다.

 

예를 들어 ‘분재’라고 하면 떠오르는 왠지 모를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 ‘Bonsai’를 검색해보면 타투를 한 유럽 청년들과 도쿄 긴자식스의 츠타야 서점 같은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 요즘 괜찮다고 회자되는 카페나 라이프 스타일숍(심지어 무인양품, 이케아까지) 중에서 식물을 오브제로 내세우지 않는 공간을 찾기란 꽤나 어려운 실정이다. 예전에 골목길 동네 어르신들의 소일거리로 여겨지던 식물 가꾸기가 이제는 가장 세련된 문화생활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식물 선호사상이 젊은 세대에서 싹튼 것일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인도어 가드닝’이란 식물 애호 문화는 기존의 원예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저성장시대의 사회가 잉태한 이른바 불안정하고 좁은 주거 공간, 나쁜 공기 질, 점차 떨어지는 경제력 등등 젊은 세대가 마주한 여러 가지 결핍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실내 식물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는 주거 공간이 좁은 도시인들, 특히 1인 가구 세대의 삶의 질을 저렴한 가격에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완벽한 인테리어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발 상자보다 작은 화분 하나가 실내 분위기와 인상을 단숨에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게다가 식물은 자연이 선사하는 정서적 만족감을 준다. 정원을 갖거나 야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직접 기르고, 가꾸며 살아가는 자연주의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여기에 미세먼지가 창궐한 시대적 상황과 인스타라는 것이 인류 사회에 등장하면서 실내 식물은 정서적 가치 이상의 공기질 향상이란 기능과 인테리어라는 심미적 지위까지 갖게 됐다. 즉, 그 어떤 인테리어 솔루션보다 가장 싼 값으로 가장 드라마틱하게 우리 일상과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벽과 벽 사이는 더욱 가까워진 우리가 식물과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 보니, 요즘 실내 식물과 관련한 정보가 여기저기 넘쳐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식물이 어떤 멋이 있고 공기정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한 이야기나 여러 희귀식물들로 얼마나 힙하게 정글을 만들고 선반을 꾸몄는지에 대한 사진은 많지만 자연 공간과 비슷한 화원 온실에서 나고 자란 식물을 집 안으로 들이는 데 드는 노력과 제약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또한 식물이 살아가기에 척박할 수밖에 없는 주거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화분을 사서 예쁘게 꾸밀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다면 수많은 살생 경험을 통해 터득한 아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

 

 

decordemon.blogspot.png

                                      decordemon.blogspot

 

 

첫 번째, 선택의 문제. 요즘 유행하는 식물들, 포틀랜드나 북유럽 인테리어 사진에 있는 식물들은 대부분 비교적 실내에서 자라기 적합한 종이다. 다소 그늘진 공간에서도 잘 자라면서도 특이한 외형을 지닌 양치식물류나 용신목, 귀면각과 같은 선인장, 특이한 잎을 가진 열대 식물인 몬스테라, 필레아, 칼라데아, 셀렘 등이 그렇다. 공간을 훨씬 적게 차지하면서도 존재감이 뚜렷한 틸란드시아, 디시디아, 박쥐란, 갈대선인장 등의 행잉 플랜트들도 꾸준히 인기가 높다. 빛과 통풍이 중요한 허브과는 피하는 게 좋고, 정말 자신은 없지만 꼭 기르고 싶다면 여인초, 스킨답서스, 여러 가지 변형된 페페가 무난한 선택지다. 혹시 기르는 식물도 남들과 달리 특이한 것을 찾는다면, 개인적으로 마다가스카르산 파키포디움이나 나무고사리를 추천한다. 

 

두 번째, 물주기. 식물을 사면서 가장 궁금한 것이 물주는 주기다. 일주일에 몇 번 주느냐 그것이 늘 궁금하다. 실제로 식물을 죽이는 대부분이 경우 물주기에서 비롯된다. 특히 말려 죽이는 경우보다 과습으로 떠나 보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 이유는 기본 개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식물은 물이 아니라 햇빛을 먹고 자란다. 화분 흙에 물이 아무리 많아도,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뿌리는 물을 흡수하지 않는다. 그럼 잎은 시들해지고 말라간다. 그런 상황에 마른듯해 물을 더 주고 그러다보면 뿌리가 괴사하는 게 과습이다.

 

따라서 해가 많이 드는 곳의 화분에는 물을 자주 주고, 그렇지 않은 화분에는 적게 줘야 한다. 그런데 실내는 햇빛이 자연이나 화원보다 훨씬 적게 든다. 따라서 생각하는 것보다 물주는 주기를 다소 길게 잡는 게 보편적으로 이롭다. 너무 많은 관심은 과습의 지름길이다. 감이 안 잡힌다면 겉흙이 마르면 듬뿍 주고 이런 말은 믿지 말고 손가락으로 흙을 파서 만져보거나 이쑤시개 등을 이용해 젖어 있으면 주지 말고, 말랐으면 주면 된다. 가장 훌륭한 방법은 그 식물의 원산지를 찾고 기후적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온도가 낮아지고 해가 덜 드는 계절엔 당연히 물을 더 줄여야 한다. 그럼에도 물 주기가 너무 어렵다면 스킨답서스를 수경재배하거나 워터코인이라 하여 가운데 물이 고여 있는 정도를 눈으로 확인하고 물을 주면 되는 브로멜리아드를 강력 추천한다. 분갈이도 필요 없고 가벼운 코코피트에 심겨져 있어 초심자에게 가장 적합하다. 

 

세 번째, 장소. 식물을 인테리어 오브제로 접근한 경우가 많다 보니, 식물 생장에게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가장 어울리는 장소에 화분을 놓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에어컨과 히터가 돌아가는 습도가 낮은 카페나 가게에서도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배치하다 보니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안타까움을 종종 접한다. 화분 팻말에 반그늘, 양지, 반양지에 어울리는 식물로 구분 짓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실내 식물은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둬야 한다. 실내에서 그늘과 양지를 따질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습도를 최소한 60%이상 맞춰두면 잎이 넓은 식물들도 햇볕에 잎이 탈 경우는 거의 없고, 수분 함유 등의 항상성 유지에 도움이 된다(다만, 단열이 부족한 집에선 겨울철 결로를 방지하기 위해 습도를 50%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 오히려 습도가 부족하면 잎이 타는 것처럼 마르기도 한다. 참고로 잎이 짙은 녹색을 띄는 건 적은 햇빛으로 광합성을 하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고, 잎이 노란색이나 붉은 색을 띈다는 건 햇빛이 필요 이상으로 강해서 반사시키기 위함이니 알고 있으면 환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언급한 모든 식물들과 유행하는 식물들은 대부분의 화원이나 엑스플렌트, 심폴, 갑조네, 조인 폴리아 등에서 구할 수 있고, 조금 더 흥미가 있다면, 플랜트오드, 오버그린파크, 토분이야기(카페), 식물을 키우는 감각(블로그) 등을 통해 다양하고 멋진 실내 식물을 구할 수 있다. 끝으로, 실내에 식물을 들이면 어쩔 수 없이 날파리 같은 불청객이 따라들게 된다.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식물엔 무해하고 벌레만 죽이는 스프레이나 친환경 농약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거나 스트레스 받지 말길 바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노견과 함께 산다는 것

$
0
0

강바람을-맞는-털뭉치-제제.jpg

 


첫째가 떠난 지 4년. 지금도 매일 보고 싶은 첫째 알롱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다 할 수가 없다. 그저 남아 있는 둘째를 매일 조금 더 사랑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노견과 함께 산다는 건 나의 시간을 강아지에게 나눠주고 싶어지는 것. “제제야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주렴. 나는 아직 너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어.”  

 

오늘도 제제를 안고 헐레벌떡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요 며칠 제제가 또 밥을 먹지 않아 눈에 띄게 말라가는 게 걱정이 돼서다. 비슷한 병을 갖고 있는 다른 강아지들이 다 그렇겠지만 벌써 몇 년째 심장병을 앓고 있는 제제는 폐나 신장 등 합병증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 식단 관리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지난 3월에 종합검진을 받았을 때만 해도 큰 이상이 없어 한시름 놓았던 것도 잠시, 불과 2개월 후 신장 수치가 올라가 하루 이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상태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안 좋아지기도 하고, 조금 나아졌다가 다시 안 좋아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제제의 나이는 이제 열네 살. 1,2년 전까지만 해도 ‘노견’이라는 말은 아직 먼 얘기라고 여겼는데, 어느새 나의 작고 복슬복슬한 아이도 노견 대열에 합류한 나이가 된 것이다.

 

 

무슨-생각을-하며-창밖을-보고-있니.jpg

 

 

2004년 6월 12일, 첫째 알롱이가 세 마리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 중 유일한 남자아이에 체구가 가장 작았던 제제를 함께 키우기로 한 후 제제는 한 순간도 우리 가족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고, 2014년에 첫째 알롱이가 강아지별로 돌아가기 전까지 혼자 있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알롱이가 보고 싶은 만큼 홀로 남은 제제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지고 각별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알롱이가 떠난 후 제제는 전과 비교해 확실히 활동량도 줄고 일상생활 전반에서 눈에 띄게 활력이 사라져갔다. 알롱이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의식하지 못하던 사이 제제도 어느 덧 열 살을 넘긴 나이가 된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TV 리모콘보다 작았던 제제. 문 모서리는 물론이고, 구두굽, 두루마리 휴지, 안경까지 씹어놓는 통에 제제가 접근 가능한 위치에 있는 물건들은 남아나는 게 없을 정도로 말썽꾸러기였던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이제는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이불 위에 누워 잠을 자는 걸로 보내는 게 전부인 일상을 산다. 알롱이가 살아 있을 때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후회가 남아, 주말이면 제제와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요즘, 가끔은 한강으로, 가끔은 새로운 가게로 동네 산책을 나가지만, 최근에는 오래 걷는 것 자체가 힘에 겨운지 잘 걸으려고도 하지 않는 제제를 볼 때면 측은함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안고 걸리면서 근처 단골 카페에 가서 창밖으로 오가는 사람들 모습도 보고, 새로운 이들과 인사도 하고, 한두 시간 쉬다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제제와 나 사이에 소중한 추억 하나가 또 하나 쌓였다고 믿고 싶다.

 

 

한강-산책1.jpg

 

 

제제야, 우리는 과연 몇 번의 주말을 더 함께할 수 있을까? 꽃이 핀 길을 걷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고, 강변 운동장에서 공을 튕기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발랄하고 호기심 많은 강아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창밖을 구경하거나 세상 편한 자세로 잠을 자는 그 시간을 아직은 더 많이 함께하고 싶은데…… 매일 잠들기 전에 네게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달라고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니?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해진 삶의 길이가 없다고는 해도, 주변에 보면 열여덟, 열아홉에도 건강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볼 수 있잖아. 너는 아직 열네 살이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살아줘. 아직은 내가 너까지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그 문화 이야기 - 호주 편

$
0
0

01.jpg

영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일군 이민자의 땅, 호주는 아직도 사람이 살지 않는 미지의 영토가 많다. 사진은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끝자락에 있는 일명 ‘벙글벙글 산맥’. ⓒ Shutterstock

 

 

’이민자의 나라’ 호주에서 호주인이란?

 

호주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내가 1980년대에 호주, 그것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로 이민을 가겠다는 결심을 밝혔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니, 왜 하필이면 거기야?”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지는 반응에 따라 나는 그들이 호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호주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나라이다.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하는 구분이 흑과 백처럼 선명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지리적?정신적?문화적 뿌리에 따라 호주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품고 있다.

 

유럽인의 오해


유럽이 고향인 사람들은 호주인이 대체로 야만적이고 입이 걸걸하며 무식하고 교양 없을뿐더러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몸집은 크지만 정신이 미숙하고 때때로 순진하며 형편없는 옷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 와인을 잘 마시지 못하고 밑도 끝도 없이 우기기에 능하며 프랑스어로 적힌 메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유럽인의 눈에 비친 호주인은 한마디로 무식한 농민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유럽인 대부분은 호주나 호주인에 대해 별다른 관심 없이 자신의 인생을 살기에 바쁘다.

 

영국인의 오해


영국 사람들은 왁자지껄한 호주 사촌들을 묘한 경계심과 두려움을 갖고 바라본다. 필요 이상으로 솔직하고 영국의 혈통다운 예의를 갖추지 못한 무식하고 음란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격식이나 교양과는 담을 쌓은 숙맥들이라고 생각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는 두려움과 감탄을 동시에 느끼며, 만나자마자 이름을 부르면서 허물없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신기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그들 기준에서 호주인의 영어 억양은 끔찍한 수준인데, 영국 빈민가에서 쓰는 억양과 많이 닮아 자연스레 가난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시아인의 오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예의를 갖추고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아시아 사람들은 직설적인 호주인을 두렵고 피하고 싶은 존재로 생각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통을 벗어 던지는 행동에 당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시아인의 눈에 비친 전형적인 호주인은 뼛속까지 인종차별주의자에 게으르고 뚜렷한 직업 없이 빈둥거리는 무능력자들이다. 열심히 일해서 목돈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삼는 아시아인과 달리 호주 사람들은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호주에 막 정착한 아시아인은 집에 갑자기 전기가 끊기고 사람들은 맨발로 거리를 활보하며 경찰과 관공서는 무능력한 데다 번거로운 형식주의를 고집하는 등, 가난한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들을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사는 호주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02.jpg

느긋하고 여유가 넘치는 호주 사람들은 바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 Shutterstock

 

 

오래된 고정관념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일명 ‘크로커다일 던디’(1980년대에 제작된 영화의 제목)의 모습은 호주인에 대한 대표적 편견이다. 사실 많은 호주인은 이런 개척자 이미지를 자랑스럽게 여겨 해외여행을 갈 때는 꼭 카우보이모자나 사파리 모자를 써서 호주 출신임을 온몸으로 알리려고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거친 자연을 질주하는 터프가이 이미지에 매력을 느낀다.

 

외부인들도 모든 호주인이 다부진 근육질 몸매에 구릿빛으로 잘 그을린 피부를 가진 마초이며 매일 만나는 혹독한 자연에도 굴복하지 않고 용감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원주민의 영향을 받아 신비한 자연의 속삭임에 민감하고 저녁식사로는 큰도마뱀을 구워먹으며 대부분 시간을 악어나 독이 있는 뱀과 씨름하거나 활활 타오르는 들불을 잡으면서 보낸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사실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실제로 90퍼센트에 달하는 호주인은 해안가 주변 대도시에 모여 살고 있으며 거친 자연에 맞서는 오지의 삶보다 도시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한다.

 

호주인에 대한 다양한 고정관념 가운데 분명 어느 정도는 사실이 섞여 있다. 하지만 하나의 단어나 표현으로 호주인의 특성을 단정 짓기에는 오늘날 호주가 너무도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국적 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해마다 호주로 건너오는 이민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아시아 이민자의 비율이 높다. 호주는 이제 백인의 나라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많고 그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최초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호주 대사 스티븐 피츠제럴드는 머지않아 호주인의 피부색은 ‘벌꿀색’이 될 거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아시아계 이민자 수가 많을뿐더러 국제결혼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03.jpg

호주의 대표적인 명물, 시드니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하버브리지를 바라본 풍경.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소다. ⓒ Shutterstock

 

 

호주인이 생각하는 호주인


그렇다면 호주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호주인을 마음속까지 이해하려면 호주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788년 호주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이들의 조상은 영국에서 강제이주를 당한 죄수들이었다. 호주는 처음부터 이들에 의해 영국 식민지로 개척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국적 이민자들이 유입되어 다양한 문화를 전파하고는 있지만, 호주인의 뿌리는 변함없이 런던 또는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노동자 출신 영국인 이주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숫자와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지만 지금도 영국을 고향이라 여기고 영국 억양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식적인 여왕의 지위 역시 아직도 영국 여왕이 맡고 있다.

 

다행히도 이들은 영국인 조상에게서 자기 존재조차 조롱거리로 삼을 줄 아는 여유를 물려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농담도 서슴없이 던진다. 하지만 대부분은 마음 깊은 곳에 자신들의 생활 방식이 옳고 최선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스스로를 평등하고 솔직하며 숨김이 없고 삶의 위기에도 굴복하지 않는 거친 파이터 같은 존재라고 여긴다. 또한 모두에게 공정하고 위험에 처한 타인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가 외부인의 눈에는 조금 거만하고 고집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그런 기질을 타고난 호주인이라는 사실에 상당한 자긍심을 느낀다. 예컨대 국경일인 ‘호주의 날’이 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호주 국기를 펄럭거린다. 이런 행동을 맹목적 애국주의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들이 국가에 대해 보여주는 아주 단순하지만 깊은 애정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이 글을 쓴 일사 샤프(Ilsa Sharp)는 호주에 관한 안내서를 쓰기에 안성맞춤인 인물이다. 그녀는 다양한 장소를 거쳐 호주에 정착했는데 영국에서 태어나 1968년부터 동남아시아, 특히 싱가포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다.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타밀계 싱가포르인인 남편과 결혼했으며, 1989년에 이들 부부는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와 그때부터 호주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툭하면 머리 아픈 아이, CT를 찍어야 할까?

$
0
0

1_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평소에는 너무 멀쩡하므로 꾀병으로 오해받기도

 

“아니, 어린 아이가 무슨 걱정이 있다고 머리가 아파?” 이렇게 얘기하면 뭘 모르는 소리가 됩니다. 두통은 복통, 이통(귀 아픈 것)과 함께 어린이의 3대 통증이라 불릴 정도로 흔합니다. 연구에 따라 다르지만 30-50%의 어린이가 두통을 경험합니다. 복통과 마찬가지로 원인이 뚜렷한 경우에는 맞게 대처합니다. 예를 들어, 머리를 다쳤다면 아픈 것이 당연하지요? 가볍다면 집에서 잘 지켜보면 되고, 심한 것 같으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날 때도 머리가 아픕니다. 푹 쉬고 해열제 등으로 열을 떨어뜨리면 두통도 사라집니다. 이렇게 원인이 명백한 두통 말고 건강한 아이가 멀쩡하게 잘 지내다 잊어버릴 만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람이는 초등 5학년입니다. 학교에서도 잘 지내고 학원도 빼먹는 일 없이 열심히 다닙니다. 그런데 오늘은 학원에 못 가겠다고 합니다.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약간 메슥거린다고도 합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께 들은 대로 거실 TV를 꺼서 조용하게 해 준 후, 아이 방에 커튼을 쳐 어둡게 하고 눕혀주었습니다. 30분쯤 뒤에 가보니 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더 아프면 먹으라고 머리맡에 둔 해열진통제와 물은 그대로입니다.

 

보람이가 머리 아프다고 한 지는 조금 됐습니다. 5학년 올라 오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그랬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옆집 은비 엄마가 “요즘은 뇌종양도 많다던데 한번 병원에 가보지 그래요?” 하는 바람에 더럭 겁이 나 다니던 소아과에 갔지요. 의사 선생님은 얼마나 자주 아픈지, 지끈지끈 아픈지 쿡쿡 쑤시는지, 음식과 관련은 없는지 등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진찰도 다른 때와는 좀 달랐어요. 눈만 움직여 선생님의 손가락을 쫓아가 보거나, “으”, “우”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리고 입술을 내밀거나, 일어서서 한쪽 발을 들고 눈을 감아보거나 하는 검사는 낯설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었습니다. 진찰을 마친 선생님은 아무 이상이 없다며,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많은 “편두통” 같으니 안심하고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엄마가 뇌종양 얘기를 하자 웃으면서 거의 가능성이 없으니 CT나 MRI를 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머리가 아프면 두통일기를 쓰라고 했는데! 소아과에서 받은 두통일기 인쇄물을 어디다 뒀더라…

 

의사 입장에서 어린이가 두통으로 찾아오면 가장 먼저 1차성인지, 2차성인지를 따집니다. 2차성이란 뭔가 다른 원인으로 인해 두통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원인을 찾아 해결해주면 두통도 사라집니다. 제일 흔한 원인이 감기나 감기 합병증으로 생긴 부비동염(축농증)입니다. 그 밖에 충치나 시력 문제, 수면부족 등도 원인이 될 수 있고, 갑자기 찬 것을 먹거나, 커피를 매일 마시던 청소년이 끊었을 때 두통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생긴 목과 어깨의 근육통이 머리로 뻗치거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수면부족이 두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성인에서 점점 늘어납니다. 청소년의 생활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원인들이 없을 때를 1차성 두통이라 하는데, 크게 편두통과 긴장성 두통으로 나뉩니다. 긴장성 두통이란 주로 정서적 스트레스로 인해 생깁니다. 머리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둔하게 아프며, 머리 둘레로 뭔가를 둘러 놓은 듯 꽉 조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어른처럼 돈을 벌어야 하거나 다양한 사회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연령에 따라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어 자기 몫의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합니다. 아이의 어려움을 인정해주고, 관심을 기울이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편두통은 고생스럽지만 평소에는 너무 멀쩡하므로 꾀병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증상이 특징적이라 예로부터 의사는 물론 작가들의 관심을 끌었지요. 연전에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 같은 이는 아예 책을 한 권 쓰기도 했습니다. 편두통은 1) 욱신욱신, 지끈지끈, 두근두근하는 형태로 머리 한 쪽에 치우치는 수가 많습니다. 2) 메슥거림, 구토, 복통 등 복부 증상을 동반합니다. 3) 두통이 오기 전에 눈앞에 뭔가 번쩍거린다거나, 흐릿해진다거나, 손끝, 발끝이 저리거나 따끔거리는 등 전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4) 자고 나면 좋아집니다. 5)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6) 호르몬 변화, 특정한 음식, 스트레스 등 유발인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편두통이 오면 소리나 빛에 민감해지므로 어둡고 조용한 방에서 재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심하면 진통제도 도움이 됩니다.

 

 

2_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두통을 이렇게 구분해봅시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정보보다 직관적인 이해가 더 도움이 됩니다. 두통을 이렇게 구분해봅시다. 1) 한 번 아프고 만다(급성 두통), 2) 1달에 두 번 이상 찾아 온다(재발성 두통), 3) 더 자주 아프지만 빈도와 강도가 변하지 않는다(만성 두통), 4) 더 자주 아프면서 빈도와 강도가 점점 증가한다(만성 진행성 두통). 어떤 두통이 가장 문제일까요? 참 잘 했어요! 4)번이지요.

 

대부분의 어린이 두통은 어느 정도 지속되다가 저절로 사라집니다. 시간이 약인 셈이지만 자꾸 아프다고 하면 부모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CT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다른 나라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디가 아프면 가장 흔한 상황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장 심각한 상황을 떠올립니다. 속이 쓰리면 매일 마시는 맥주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위암이 아닌가 걱정하지요. 아이들이 두통이 생기면 그러다 말겠지 하는 게 아니라 뇌종양이 아닐까 겁을 냅니다. 의사가 잘 설명을 해주고 지켜보자고 해도 옆집 사람의 말을 듣거나, 밑도 끝도 없는 언론 보도를 보면 또 마음이 흔들립니다. 의사도 사람인데 놓칠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런 통계가 있습니다. 위 4)번, 즉 만성 진행성 두통이 아니고, 의사가 꼼꼼히 진찰한 결과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 CT나 MRI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치료를 바꾸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연구에 따라 다르지만 0 - 0.2%라고 합니다. 그래도 찍어보겠다면 말릴 수는 없지만, 비용도 들고, 어린아이라면 진정제를 써야 하고, CT 검사 시에는 방사선에 노출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한번 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로서는 비싼 검사보다 두통일기를 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두통이 생기면 날짜와 시간을 쓰고, 몇 시간이나 지속되었는지, 머리 어디가 아팠는지, 얼마나 심했는지, 그 전 몇 시간 동안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지, 그 밖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는지 적어보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증상의 추세를 알 수 있으므로 영상검사를 해야 할지 판단하기도 쉽고, 편두통이라면 유발인자를 찾아내 피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건강을 지키는 데는 값비싼 첨단의학보다 세심한 관찰과 따뜻한 관심이 훨씬 좋은 방법입니다.


 

 

편두통올리버 색스 저/강창래 역 | 알마
오늘도 자신이 앓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체나 치료법을 알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며 두통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소중한 자료가 되어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그 문화 이야기 - 두바이 편

$
0
0

01.jpg

두바이 마리나의 야경. 주거, 외식, 쇼핑의 3박자를 모두 갖춘 인공 운하 도시, 두바이 마리나에서는 어디서 자고, 먹고, 쇼핑할 것인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수백 가지나 된다. ⓒ Shutterstock

 

 

‘중동의 맨해튼’ 두바이에서 체험하는 에미리트 문화

 

두바이는 어떤 곳?


두바이는 페르시아만 연안의 아랍에미리트(이하 UAE) 토후국 중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4114제곱킬로미터로 UAE 수도가 있는 아부다비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남쪽으로 아부다비와 국경을 맞대고, 북동쪽으로 샤르자와 만나며 남동쪽으로는 오만 왕국과 만난다. 오늘날 두바이의 영토는 바다를 메우고 인공 섬을 만든 덕분에 상당히 확장되었다. ‘팜’으로 시작하는 3개의 인공 섬(팜 주메이라, 팜 아일랜드, 팜 제벨알리)과 더 워터프런트, 더 월드, 더 유니버스가 모두 인공 섬이다.

 

두바이의 자연자원이라면 단연 석유를 꼽아야 하겠지만 두바이 내륙을 굽이쳐 흐르는 젖줄, 크릭을 빼놓을 수 없다. 폭이 좁고 수심은 얕지만 페르시아만 해역에서 두바이 내륙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흐르며 두바이를 둘로 가르다시피 한다. 크릭의 북쪽 줄기는 데이라(Deira)에 이르고 남쪽 줄기는 부르 두바이(Bur Dubai. 소위 ‘뜨는 동네’로 재력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지역)로 이어진다.


두바이통계청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불문하고 두바이의 지리적 경계 안에서 영구 거주하는 인구를 날마다 월마다 집계한다. 2017년 6월 기준으로 두바이의 인구는 약 279만 명이다. 이 중 현지민은 고작 15~20퍼센트이고 대부분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유럽연합 등지에서 온 외국인이다.


이곳이 살 만한 곳인가 묻는다면, 두바이에 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답할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좋다는 것은 모두 모였으며, 삶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있다. 두바이를 ‘중동의 맨해튼’이라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이곳은 환상적이다. 커다란 집, 깨끗한 거리, 소득에 대한 면세, 세계 최고의 진미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조화, 공연장 등, 생활은 안락하고 먹거리와 즐길거리가 풍족하다. 일 때문에 두바이에 살고 있는 수천 명의 외지인들은 입을 모아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얘기한다.

 

 

02.jpg

두바이 구시가지 풍경. 이곳의 전통 건축 양식은 건물 위쪽에 바람 탑을 세우는 것으로, 바람 탑이 집안으로 공기를 흐르게 해서 실내온도를 떨어뜨린다. ⓒ Shutterstock

 

 

올드 두바이와 뉴 두바이

 

두바이는 사람으로 치면 40대 남성과 비슷하다. 그의 기억 속에는 현재의 두바이와 옛 두바이가 공존한다. 올드 두바이(지금의 구시가지에 해당)에는 두바이가 거쳐 온 세월이 있다. 거대한 성과 요새가 있고, 전통적인 진주 잡이로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두바이의 모래사막에 세계적인 도시가 세워지기까지 흘러온 세월이 더께로 쌓여 있다. 오늘날까지 개발의 바람에 사라지지 않은 채 두바이 고유의 정취와 건축물, 역사, 생활상을 보여준다. 그 옛날 무역상들이 몰려들어 수입과 수출이 번성했던 이곳에서 진주를 거래하던 무역상들은 깊은 바다의 보물을 내주고 돈을 벌어들였다.

 

두바이 남부에 위치한 부르 두바이, 카라마, 사트와, 주메이라 그리고 북부의 데이라, 호르 알 안츠, 알 구사이스가 구시가지에 해당한다. 1980년대 초 외국인들이 물밀 듯 들어올 당시 구시가지 인구도 크게 늘어났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면 앞으로도 살고 싶은 곳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곳은 화려하고 세련되진 않아도 사람 냄새가 난다. 인공적인 느낌을 풍기는 것이라곤 없다. 이곳에서 뉴 두바이, 즉 신시가지까지는 두바이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셰이크 자이드 로드로 차를 타고 30분 거리다.

 

두바이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외국인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신시가지다. 두바이 신시가지는 곳곳에 인기 관광 명소들이 즐비하고 의류에서부터 레저, 오락, 숙박까지 웬만한 유명 브랜드 숍은 모두 진출해 있다. 세계 일류 도시에 대한 두바이 국왕의 남다른 비전 덕분에 건축물과 거대 건설 프로젝트는 평범함을 거부한다. 일례로 야자수 잎 17개를 본떠 디자인된 인공 섬 팜 주메이라는 하늘에서 보면 커다란 야자수 형태를 띤다. 두바이국제금융센터(DIFC), 두바이 마리나, 주메이라 레이크 타워스(JLT), 그린스, 메도우스, 스프링스, 주메이라 비치 레지던스(JBR), 두바이 실리콘 오아시스, 모토 시티, 아라비안 랜치스는 모두 외국인들이 주로 사는 주거단지다. 캐나다의 폴스 크릭(False Creek)을 따라 개발된 콩코드 퍼시픽 플레이스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는 두바이 마리나는 두바이에 처음 온 외국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지역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46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땅에 전방으로는 3.5킬로미터 길이의 운하가 잔잔하게 흐르는 풍경이 지중해 해안의 리비에라를 연상시킨다. 이 휴양지다운 풍광이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03.jpg

두바이 크릭에 정박된 전통 목선 아브라. 두바이를 둘로 가르는 폭 200미터의 수로를 따라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 Shutterstock

 

 

에미라티의 생활


두바이 현지 주민을 ‘에미라티’라고 부른다. 두바이 문화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이슬람은 이들 에미라티는 물론이고 외국인 거주민의 생활까지도 지배하는 삶의 규범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라마단이다. 이슬람의 성월(聖月)인 라마단 기간이 되면 에미라티와 외국인 할 것 없이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달 동안 해가 떠서 지기 전까지 금식을 실천해야 한다. 이슬람은 그들이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만큼 타지에서 온 거주민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존중하길 원한다.

 

에미라티 남자들은 인사를 나눌 때 서로 코를 맞대고 부빈다. 이 낯선 광경을 보고 웃는다거나 야유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 곤란하다. 이 나라에서 남자들끼리의 전통 인사법일 뿐이니 괜한 수선을 떨지 마라. 대개는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악수를 한다. 그러나 여성과는 악수를 하지 않는다. 에미리트 문화에서 말하는 ‘사적인 거리’는 유럽 문화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다. 이곳에서는 주로 이성 간의 사적 거리를 중시하며 지킨다. 사실 이슬람에서는 여자를 매우 존귀하게 여긴다. 그런 만큼 여자는 늘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슬람 여성과 사진을 찍을 때는 먼저 허락을 구해야 뒤탈이 없다. 허락 없이 찍었다간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여성의 신체에 접촉하는 행위도 몰상식에 속한다. 관심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미소를 짓거나 말로 하는 것이 좋다.

 

 

04.jpg

사막 사파리 캠프에 가면 아라비아 전통 춤도 관람할 수 있다. 모래사막에 아라비아 전통 다실인 마즐리스를 꾸며놓고 남자들이 추는 민속춤 아이얄라(Ayyala)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 Shutterstock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이슬람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 서구 문화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 이곳에서는 종종 용납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여자들의 옷차림이 그렇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입든 개인의 자유이며, 몸매든 옷이든 뽐낼 게 있다면 뽐내는 것이 미덕이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에서는 점잖고 조신하게 입는 것이 미덕이다. 한여름에도 머리를 가리고 긴 팔 옷을 입는 이슬람 여성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복합쇼핑센터나 관공서에 가면 입구에 팔과 다리를 가리는 옷을 입었는지 상기시키는 안내판이 있다. 다만 호텔, 술집, 호텔 안의 수영장에서는 복장 규정이 엄격하지 않은 편이다. 예상하다시피 누드 비치는 없다.

 

한편, 이런 종교적 엄격함과는 대조적으로 두바이는 중동에서 유흥의 천국으로 꼽힌다. 카발리, 아르마니, 네오스, 360 등 세계적 브랜드의 카페와 레스토랑, 주점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물론 음주는 허가 받은 특정 영업점에서만 비이슬람인에 한해 허용되며,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

 

이 글을 쓴 리나 아셔(Leena Asher)는 두바이에 사는 3세대 인도인으로, 그녀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 두바이로 이주해 왔다. 리나의 할아버지는 당시 인도의 일부였던 카라치(현재는 파키스탄의 영토)에서 ‘진수(進水)’라는 뜻의 ‘론치(launch)’호를 타고 1158킬로미터 바닷길을 항해해 두바이 해변에 도착했고, 그 후 리나의 아버지 나라인다스 아셔는 두바이에서 일가를 이루고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데이라의 번화한 바니야스 시장에서 성업 중이다. 대학원까지 전 교육 과정을 두바이에서 마친 리나는 두바이 학교들의 교육의 질을 높이 평가하며, 두바이에서 활동하는 명망 높은 사업가이자 그녀의 일을 든든히 지지해주는 남편 사나울라 칸과 함께 세계 각지를 두루 경험했지만 두바이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울이 아니면 어디든 괜찮다고 여겼다

$
0
0

남녀, 여행사정 42-01@가오슝.jpg

         ‘형제상호’ 간판에 쓰인 글자처럼 잃어버린 너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민을 생각했다

 
한때 그 여자와 나는 진지하게 대만 정착을 고민했다.

 

흐릿했던 그 생각은 한 달, 두 달을 살아보는 동안 뚜렷이 다가왔다. 중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듯한 그들의 문화와 환경이 적당히 신선했다. 외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 지어 올린 건물들은 실용과 실리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대륙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에 세심하고 고풍스럽게 꾸며놓은 집 내부를 보면 디테일에 목숨 거는 섬나라의 그것 같아 보였다.

 

먹는 것이 낯설면 마음 주기가 쉽지 않은데 대만 음식은 육식을 좋아하는 우리의 취향까지 들어 맞았다. 고기를 함빡 넣어 국물을 우려낸 우육면은 얼큰한 사골국 같았고, 만두피 안에 육즙을 담뿍 품고 있는 샤오롱빠오는 흡사 탕 속에서 막 건져낸 유부주머니를 닮았다. 여기 사람들이 먹는 중화 요리는 그동안 한국에서 배달로 시켜 먹던 그런 맛이 아니었다.

 

대만인들은 한국 사람과 우리 문화에 우호적이다. 티브이를 틀면 한국 드라마가 나오고, 길거리를 거닐면 여지없이 K-POP이 들렸다. 지나치게 이국적인 곳이라면 버티기 버거울 텐데 대만은 유년을 함께 보내다 헤어진 형제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혹시라도 한국을 떠나야 한다면 낯설지 않은 이 땅에 새롭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문화와 기술이 모여 있는 타이베이에서도, 대만의 전통을 간직하고 사는 타이난에서도, 일찍이 공업지대에서 문화예술특구로 변화해 가는 가오슝에서도 한 달씩 머무르며 살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하지만 그 의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고개를 꺾어야만 했다.

 

가오슝에 한 달을 머무는 동안 14층 아파트의 가장 높은 층에 머물렀다. 주변에 고층 건물 이라고는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도심 한가운데 빌딩뿐이다. 그때만 해도 탁 트인 시야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끈 순간 지진이 찾아왔다. 아파트는 좌우 앞뒤로 흔들거렸다. 철골 구조가 움직이며 내는 불쾌한 삐 끄덕 소리가 멈추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 우리는 누군가의 장난감 상자 안에 든, 흔들면 흔드는 대로 던지면 던지는 대로 그에게 운명을 내맡겨야 할 만큼 초라하고 작은 존재였다.

 

타이베이, 타이난, 가오슝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마다 우리는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대서특필할 만한 큰 지진 가운데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자연의 힘 앞에서 어쩌지 못하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목숨을 잃어야 했다. 평생 땅이 흔들리는 위험을 모르고 살았던 우리였기에 더욱 큰 공포로 다가왔다. 내 땅을 벗어남에 있어 새로운 장벽이 세워진 것이다.

 


이민을 접었다

 

 

남녀, 여행사정 42-02@가오슝.jpg

           높은 건물이 많이 없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네

 

 

한 때는 서울이 아니면 어디든 괜찮다고 여겼다. 전 세계 40여 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부동산 가격, 생활비, 이민정책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진입 장벽이 낮을 순 없다. 어려운 문턱을 넘어선다고 해도 살면서 겪게 되는 그 나라의 기후나 지형적 특색을 마주하고는 후회가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이민 선배들은 적어도 일 년 정도는 그 나라에 머물면서 사계절을 경험해 보라는 충고를 건넨다.

 

대만이 좋다가도 이민은 힘들겠지 싶다. 낯선 곳에 정착을 한다는 건 내 마음가짐 하나로 극복할 성질이 아니다. 익숙지 않은 자연재해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현지인들조차도 오랜 시간의 수련이 필요한 문제이다. 확률 100% 지진을 겪고 나니 어느 순간 서울의 미세먼지와 혹한은 기꺼이 참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대만 사람들이 한겨울 한국에 방문해서도 같은 생각을 품지 않을까? ‘이 곳은 정착할 만한 곳이 못돼. 차라리 지진을 견디는 편이 낫겠어’라는 식으로.

 

며칠 전 만난 지인은 진지하게 이민을 생각하고 있었다. 추천해 줄 만한 도시가 있냐고 물었다. 이미 나라쯤은 정해 놓았을 텐데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곳을 보고 다녀온 사람이 추천해 준 나라니까 고려해 보겠다는 건지 그도 아니면 자신이 마음을 정한 도시와 겹쳐지기라도 해서 확증을 받고 싶은 건지 말이다. 가까이에는 대만 조금 거리가 있는 스페인,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야 하는 아르헨티나까지 마음을 품은 곳은 사실 여럿 있다. 그래도 가장 유력시됐던 대만을 포기하고 나니 이민 생각이 멀찌감치 달아났다.

 

이민을 접고 그럼 서울살이가 꽤 나쁘지 않다는 내 나름의 확증을 받아야 했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물었던 지인의 질문처럼 나도 서울이 좋은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국뽕이라고 폄하해도 어쩔 수 없다. 나를 설득하기 위한 객관적인 리스트 정도 하나쯤은 필요하니까.

 

‘밤 열 시 이후에 모든 시민들은 외출을 삼가합시다’ 라는 문구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서울은 안전한 도시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살인이나 강간 등의 강력범죄가 일상적으로 퍼져 있는 몇몇 나라에 비해 우리는 야간 산책이 자유로운 편이고 나 홀로 귀가에 ‘비교적’ 안전하다. 24시간 술과 담배 그리고 위급상황에서 약을 구할 수 있는 ‘편의점’의 존재도 새삼 고맙다. 일본과 동남아 몇 개국을 제외하면 서울은 각종 카드 할인과 신용카드의 소액 결제가 자유롭다. 이란, 네팔, 볼리비아. 이 세 나라 중 어디 한 군데를 가 봤다면 한국이 ‘인터넷’ 환경만큼은 세계 최강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느린 이 나라들을 제하고라도 비용과 속도 면에서 최강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밖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화장실, 새벽까지 배달이 가능한 야식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서울은 소비에 최적화된 도시, 편리에만 몰입된 도시일 뿐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빠르고 편리하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이 살기 좋은, 삶의 질과 연결된 것은 아니니까. 그럼 이민보다 서울을 택한 딱 한 가지의 이유로써 이건 어떨까? 뭐니 뭐니 해도 말이 통한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고 하니, 우리 모두가 목격한 역사적인 사건도 있지 않은가. 북쪽의 불친절 했던 이웃과 통역이 필요 없이도 말과 말이 마음으로 이어졌던 산책 말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그 문화 이야기 – 프랑스 편

$
0
0

01.jpg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높은 여행지, 파리의 거리 풍경은 여러 보이지 않는 측면에서 개인적인 삶의 풍경과는 다르다. ⓒ Shutterstock

 

 

가장 프랑스적인 삶 : 패션 그리고 보디랭귀지

 

프랑스인, 특히 파리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적어도 할리우드의 기준으로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피부가 좋지 않거나 치아가 고르지 않은 사람들도 제법 많다. 게다가 많은 프랑스 여성이 화장을 하지 않는데, 그래서인지 눈가가 피곤해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프랑스인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때문이다. 그들은 늘 몸을 꼿꼿이 편 자세를 유지한다. 그리고 자신의 겉모습이 전체적인 인격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배우들처럼 그들은 몸으로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를테면 ‘나는 똑똑하고 진실하고 잘 배운 사람이에요’라는 메시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프랑스인은 내적인 아름다움을 표출한다.

 

물론 어떤 파리지엥들은 살찌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해 용의주도하게 다이어트를 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데 그거야 뭐 나쁠 것 없다. 그 덕분에 아름답고 값비싼 옷을 입었을 때 한결 더 태가 날 테니까. 어떤 프랑스인은 그저 맵시 있는 청바지만으로 우아함과 세련됨을 표출한다. 그런데 자신의 보디랭귀지가 행사하는 이처럼 강력한 효과를 스스로 인식하는 프랑스인은 거의 없다. 그들은 적절한 몸가짐과 표현의 중요성을 어려서부터 배웠고 어디에서나 그런 태도가 드러날 뿐이다. 프랑스인에게 있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제2의 천성이다.

 

 

02.jpg

파리 오스만 거리 심장부에 위치한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루브르 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 수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방문지다. 1912년에 건설되어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네오 비잔틴 돔이 특히 유명하다. ⓒ Shutterstock

 

 

샤넬처럼 옷 입기

 

“프랑스인들은 자기만족감으로 가득하다.” 코코 샤넬의 말이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인, 특히 파리 사람들의 겉모습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실제로 파리에는 ‘공작 신드롬’ 같은 것이 존재한다. 남들에게 자신의 취향과 계급의식을 과시하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이다. 그래서 옷을 아무렇게 입고 꾸미지 않은 여행자들은 파리에서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겉모습에 대한 가치관을 떠나 어떤 장면에서 너무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부처럼 보이기를 원한다면 그곳 사람들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배움을 얻는 것이 좋다.

 

프랑스인들은 외출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샤넬 본인도 정장을 한 벌 마련하면 7~8년씩 입었다(드라이클리닝을 자주 할 수 없어서 향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20년 이상 입을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 “우아함은 태만의 반대”라고 그녀는 말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파리와 홍콩, 뉴욕에 이르기까지 패셔니스타가 많은 거리에서 샤넬 스타일의 검은 원피스와 고전적인 정장과 짧은 단발머리를 한 여성들을 볼 수 있다. 샤넬은 심지어 구릿빛으로 살을 태우는 것도 패션으로 승화시켰다.

 

파리 사람들은 옷을 잘 입기로 유명하지만 모두가 집에 커다란 옷장을 구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건 남자건 기본 복장 두세 벌씩이면 충분하다. 단, 하나하나가 최고 품질이어야 하고 몸에 완벽하게 맞아야 한다. 그런 옷을 입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자신감이 겉으로 드러난다. 여자들은 스카프와 보석류를 활용해 끝없이 독창적이고 참신하게 치장한다. 남자들은 셔츠 한 벌, 넥타이 하나로 세련된 감각을 과시한다. 파리는 여전히 격식을 차리는 편이어서 청바지나 운동화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직장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사람은 관광객과 젊은이들뿐이다. 프랑스 여자들은 파리에서 반바지를 입을 꿈도 꾸지 않지만 해변에서는 나체로 조용히 일광욕을 즐긴다.


프랑스인의 패션 감각과 관련해 한 가지 고무적인 점은 그것이 나이를 불문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감각은 덜 두드러진다. 스타일과 우아함은 원숙한 사람들의 몫이다. 샤넬은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몇 살이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풍길 수 있다. 우아함은 이미 자신의 미래를 손아귀에 넣은 사람들의 특권이다.”

 

 

03.jpg

파리 센 강에 있는 보행자 전용 다리 중 하나인 퐁데자르. 프랑스 도시들을 여행할 때는 그들처럼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 Shutterstock

 

 

비언어적 의사소통

 

패션은 일종의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이다. 패션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프랑스인은 이에 대해 예리한 시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패션뿐 아니라 다른 많은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것은 당신도 쉽게 익힐 수 있는 언어다.

 

눈 맞춤: 프랑스에서 눈을 맞추는 행위는 진지한 동등성의 선언이다. 누군가와 눈을 맞춘다는 것은 말하자면 대화를 청하는 것이며, 따라서 지나가는 행인에게는 너무 사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물론 길을 묻는다거나 특별히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예외다). 여기에 이중 잣대가 적용된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낯선 이성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본다면 그것은 좀 더 친밀하게 지내자는 제안이다. 남자는 끌리는 여자에게 눈길을 줄 ‘권리가 있다.’ 남자들은 종종 그렇게 하고 프랑스 여자들도 그것을 예상한다. 폴리 플랫은 『프랑스인 아니면 적?』이라는 책에서 이것을 ‘시선’(the Look)이라고 지칭했다. 프랑스에 온 여성들은 곧 그것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되 반응하지는 마라. 눈길을 돌리면서 미소를 지어도 안 된다.

 

악수: 프랑스인은 아는 사람 모두에게 키스를 하거나 악수를 한다. 악수는 프랑스에서 필수적인 인사법이다. 미국식으로 제법 오랫동안 진지하게 눈을 맞추며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짧게 눈인사를 하고 손을 잡았다 놓는 정도지만. 아이들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악수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니 프랑스에 가면 곧 악수에 익숙해질 것이고 가벼운 접촉과 눈 맞춤을 흉내 내게 될 것이다. 업무상으로나 사교적인 만남에서 악수를 할 상황이 생기면 무리 내의 누구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비록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서는 아침에도, 일과를 마친 뒤에도 모든 직원들과 악수를 한다.

 

 

04.jpg

고색창연한 루브르 궁전 안뜰에 들어선 유리 피라미드는 프랑스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삶과 태도의 양면성을 반영한다. “프랑스는 특유의 양극단을 갖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끝없이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 조나단 펜비, 2011년 3월 11일자 <파이낸셜 타임즈> ⓒ Shutterstock

 

 

미소 : 프랑스에서 통용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 중에서 외국인, 특히 미국인이 가장 실수하기 쉬운 것은 미소일 것이다. 미국인은 항상 미소 짓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는 그렇게 하면 친절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인은 미소를 신뢰하지 않는다. 딱히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 미소를 지으면 사람이 실없거나 위선적으로 보이는데 이 두 가지 다 프랑스인이 딱 질색하는 것들이다.

 

입방귀 : 프랑스인이 입술을 내밀고 한 순간 입에서 공기를 불어내며 ‘푸’ 소리를 내는 경우, 이것은 상황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프랑스인이 무척 애용하는 표현이며, 말하자면 미소의 반대다.

 

더블키스 : 친구들끼리 만나거나 헤어질 때 양 볼에 키스를 하는 것은 정상적인 인사법이다. 이 경우에도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만날 때는, 설령 그 중에 모르는 사람이 끼어 있어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키스해야 한다. 그렇다고 겁먹을 것은 없다. 사업 관계의 사람들, 특히 남자들끼리는 이런 인사법을 쓰지 않는다. 이는 주로 여자들끼리, 혹은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그리고 같은 가족 내의 남자들끼리 하는 인사법이다. 아주 가까운 친지 외에는 얼굴을 접촉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블키스는 영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내 경우는 프랑스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 인사법이 점차 편안하게 느껴져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습관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기법만 잘 익힌다면 더블키스는,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는 재미난 작은 애정 표현이 될 수 있다. 우선 오른쪽 뺨끼리 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상대가 먼저 왼쪽 뺨을 댈 것처럼 보이면 그냥 왼쪽 뺨을 대줘야 한다. 안 그러면 자칫 입끼리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민망한 상황인가!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외국인은 민망함을 줄이기 위해 뺨에 직접 입술을 접촉하는 대신 그냥 허공에 키스하곤 한다. 어차피 해부학적 구조상 한 사람의 입술만 상대의 뺨에 닿을 수 있으니까, 상대가 원한다면 자신의 뺨에 입술을 대게 해주고 원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같은 방법을 이용하면 된다. 사실 프랑스인도 상당수가 ‘허공 키스’ 기법을 이용한다.

 

접촉의 거리 : 프랑스인은 육체적인 욕망에서가 아니라 우정을 표현하기 위해 신체적인 접촉을 한다. 물론 그런 접촉은 친구 사이로 국한된다. 그러나 파리의 혼잡한 장소에서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불가피한 신체 접촉이 생길 수 있다. 프랑스인은 이런 상황을 조용히 인내하도록 배웠으며 당신도 곧 그들처럼 하게 될 것이다. 다만 군중 속에 있을 때 소매치기는 주의해야 한다. 혹시 낯선 사람이 의도적으로 당신에게 접촉할 경우, ‘푸’하고 거칠게 입방귀를 뀌거나 그냥 그를 철저히 무시하고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최대한 빨리 그곳을 벗어나라.


이 글을 쓴 샐리 애덤슨 테일러(Sally Adamson Taylor)는 와인 관련 기자로 일하던 1985년에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전역을 돌며 『포도원장: 와인의 나라 자전거 여행』 을 썼다. 그로부터 5년 뒤 세계를 읽다 프랑스』 를 집필했는데, 파리에 있는 7층 건물 옥탑방 덕분에 꾸준히 관련 글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업 기자 생활에서 은퇴하고 버지니아에 있는 가족 농장과 요트에서 인생을 즐기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어린이 치아 관리 완전정복!

$
0
0

사진) 1_ 출처_ 충치예방연구회.png

그림 출처_ 충치예방연구회

 

 

중요한 건 음식의 산성이 아니다

 

어린이이게 가장 흔한 만성질환이 뭘까요? 보통 소아당뇨나 천식을 떠올립니다.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먹고 살기 어려운 나라에서는 영양부족, 살 만한 나라에서는 과체중과 비만이 당뇨나 천식을 압도합니다. 하지만 1위의 영예(?)는 단연 “충치”에게 돌아갑니다. 미국의 경우 2-5세 어린이의 23%, 6-8세 어린이의 56%가 충치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심각하다는 생각보다는 피식 웃게 됩니다. 넌센스 퀴즈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충치로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문제에 처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앓이로 한번이라도 고생해본 적이 있다면 건강한 치아의 소중함을 잘 알 것입니다. 오죽하면 “치아 건강이 오복(五福) 중 하나”란 말이 나올까요.

 

충치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충치란 예방 가능한 세균 감염성 질환”이라는 겁니다. 치아의 겉은 아주 법랑질(에나멜)이란 물질로 되어 있는데 주성분은 칼슘과 인입니다. 뼈와 같지요. 법랑질은 아주 단단하지만 산(acid)에 약합니다. pH 5.5 아래면 녹기 시작합니다. 산? 염산, 황산 같은 거? 누가 산을 마시나? 그렇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마시는 주스나 청량음료는 모두 상당히 산성이 강합니다. 예를 들면 사과 주스는 4.0, 오렌지 주스는 3.5, 사이다는 3.0, 콜라는 2.5 정도입니다. 외우기 쉽게 근사치를 적었습니다. pH가 낮을수록 산성이 강한 건 아시죠? 주스나 청량음료를 되도록 피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네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음식의 산성이 아닙니다. 산성으로만 따지면 토마토도 4.5, 귤은 4.0 정도 됩니다. 토마토나 귤을 먹는다고 이가 썩지는 않잖아요. 음식은 꿀꺽 삼키면 입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분간은 입안이 산성 상태가 되지만 그건 24시간 입속으로 분비되는 침이 해결합니다. 침은 입속을 중성으로 되돌릴 뿐 아니라, 산성으로 인해 치아에서 녹아 나간 법랑질을 잽싸게 보충합니다. 사실 법랑질은 하루 종일 녹아나가고 보충되기를 반복합니다. 전체적으로 녹아나가는 양이 많으면 이가 나빠지고, 보충되는 양이 충분하다면 건강한 이가 유지되는 거죠.

 

그렇다면 하루 종일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이가 썩을까요? 누구나 알 듯 정말 중요한 건 설탕입니다. “단 걸 먹고 나서 치카치카 안 하고 자면 밤새 세균맨이 이빨을 파 먹는단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잖아요. 맞아요. 우리 입 속에는 세균맨이 삽니다. 충치균은 설탕을 아주 좋아합니다. 설탕이 들어오면 옳다구나하고 당을 분해시켜 얇은 막을 만들고 그 속에서 번식합니다. 이 과정에서 산이 만들어집니다. 이 얇은 막이 쌓여 두꺼워지면 소위 ‘프라그’라는 게 생기지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봅시다. “충치란 예방 가능한 세균 감염성 질환”이라고 했지요? 세균성 질환이지만, 항생제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항생물질이 프라그를 파고 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바이오필름(biofilm)이라 하여 의학에서 핫한 분야 중 하나입니다. 설명이 기니까 패스!)하지만 예방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설탕을 피하고, 프라그가 생기기 전에 물로 입안을 헹구고, 하루에 두 번 규칙적으로 이를 닦고, 이가 녹아나가지 않게 보호하고, 정기적으로 치과 검진을 받는 것이 예방법입니다. 이런 기초 지식을 갖고 연령별로 치아를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 알아봅시다.

 

 

출처_ 충치예방연구회.png

그림 출처_ 충치예방연구회

 

 

월령별 치아 관리 노하우

 

출생 - 11개월까지   

이때 중요한 건 아이 입속에 충치균이 생기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겁니다. 갓난아기의 입속에는 충치균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옮는 걸까요? 예, 부모에게서 옮습니다. 따라서 엄마나 아빠가 이가 좋지 않다면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치과 검진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를 잘 닦고, 단 것을 피하는 등 구강위생을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자일리톨 검이나 사탕을 규칙적으로 이용하여 입속의 충치균을 줄이는 방법도 좋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식기나 수저, 컵, 칫솔 등을 같이 쓰지 않도록 합니다. 음식을 씹어서 아기에게 먹이거나, 아기가 빠는 젖꼭지에 어른의 침이 묻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젖병을 쓴다면 젖꼭지를 부드러운 비누와 물로 잘 닦아야 합니다. 아기에게 입을 맞추지 말라는 지침은 좀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른의 침이 아기 입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젖니가 나기 시작하면 당분을 먹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설탕이든 천연당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입맛은 어릴 때 결정됩니다. 이 시기에 단 것이나 짠 것이 맛들이면 평생 그런 음식을 좋아하게 됩니다. 고무 젖꼭지에 단 것을 묻히는 방법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유나 분유 속에도 당분이 있으므로 먹일 때는 꼭 안고 먹이고, 젖이나 젖병을 문 채 잠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정식으로 연구되지는 않았지만 젖이나 분유를 먹은 후 소량의 물을 먹이는 것은 좋은 전략입니다. 젖니를 부드러운 천이나 유아용 칫솔에 물을 묻혀 닦는 것도 좋습니다.

 

 

1세 이후  


대개 이때 또는 조금 더 일찍 양치를 시작하게 되지요. 불소가 중요합니다. 불소는 치아가 녹아 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법랑질을 보충하며, 충치균의 번식을 억제합니다. 불소가 들어간 치약을 쓰거나, 불소를 정기적으로(6개월마다) 도포하거나, 아예 수돗물에 소량을 섞어 공급하는 방법을 씁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중보건 차원에서 수돗물 불소화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불소가 대단히 유해한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로는 안전합니다. 수돗물 불소화를 시행한 국가나 지역에서는 강력한 충치 예방 효과가 나타났고, 보건상 문제가 된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불소가 포함된 치약을 삼키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불소증(fluorosis)이라고 하여 치아가 하얗게 변색되거나 심하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치약을 삼키는 일이 없지만 어린이들은 삼키기도 하기 때문에 2돌까지는 치약을 쓰지 말라고 권하는 나라도 있고, 소량을 쓰라고 권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현재 미국 소아과학회의 지침은 이렇습니다.

 

 

3세 미만


불소가 포함된 치약을 써서 하루 두 번(아침식사 후, 취침 전) 이를 닦되, 치약의 양은 쌀알 크기를 넘지 않는다. 이를 닦고 난 후 치약을 뱉거나, 입을 물로 헹구지 않는다.

 

 

3세 이상


불소가 포함된 치약을 써서 하루 두 번(아침식사 후, 취침 전) 이를 닦되, 치약의 양은 작은 강낭콩 크기를 넘지 않는다. 이를 닦고 난 후 치약을 뱉지만, 입을 물로 헹구지는 않는다.

 

어린이들은 보통 7-8세가 되어야 이를 제대로 닦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때까지는 어른이 돌봐주어야 합니다. 함께 이를 닦는 것이 가장 좋고,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이를 닦아 주면서 올바른 칫솔 사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말씀 드릴게요. 이를 닦을 때 힘을 주어 옆으로 북북 문질러 닦는 것은 매우 나쁜 버릇입니다. 치아의 씹는 면은 그렇게 닦아도 좋지만 앞이나 뒷면을 그렇게 닦으면 잇몸이 손상되어 결국 문제가 생깁니다. 이는 부드러운 칫솔을 써서 잇몸에서 이 끝 쪽으로 쓸어내듯 닦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일주일 정도면 익숙해집니다. 이 닦는 법만 바꿔도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닦는 법을 잘 설명한 동영상이 있어 링크합니다.


http://www.dentia.org/03_sub_2.html?ckattempt=1 (충치예방연구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배달음식 전성시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

$
0
0

아라비아핀란드 공식홈페이지4.jpg

           아라비아핀란드

 


요즘 배달 음식업계의 모토는 우리 시절의 군대 구호처럼 느껴진다. ‘안 되는 게 어딨어?’ 우리가 배달의 민족이라곤 하지만 지난 십 수 년 간 배달 음식으로 성장해온 건 중국집, 치킨, 피자 등 몇 가지 특성화 품종이었다. 그런데 IT기술의 발달과 가성비(요리를 하는 시간과 정성과 쇼핑과 보관과 음식물 쓰레기 발생 등을 비용으로 친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세상의 모든 음식을 현관에서 넘겨받는 시대가 됐다. 혼자서는 참을 도리밖에 없던 삼겹살 구이를 집에서 그것도 찌개와 함께 쌈 싸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우린 지금 살아가고 있다.

 

물론, 배달 음식이 권장할만한 식문화는 아니다. 대중적인 입맛을 내세우는 음식들이 갖는 과도한 염분 섭취와 같은 영양상의 문제나 포장용기와 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소비, 미세 플라스틱 및 비닐 남용과 같은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삶의 질을 고민하고 함께 사는 울타리를 소중히 여기는 북유럽 사람들이나, 윌리엄스버그와 포틀랜드, 일본의 힙스터들처럼 남다른 취향을 내세우는 사람들, ‘똑순이’ 주부처럼 살림에 의지와 자부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배달 음식을 배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배달 음식을 주로 먹으면서도 일상의 여유와 품격을 지키고 취향을 다질 길이 하나 있다. 제대로 된 식기에 어느 정도 가치 투자를 하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배달하거나 테이크아웃한 음식을 포장용기 채로 비닐만 대충 벗기고 그냥 먹곤 한다. 음식에 대한 예의도, 일상을 영위하는 삶의 자세 차원에서도 모두 불량스런 태도다. 오븐에서 몇 시간이나 정성들여 요리한 음식을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 그릇에 비닐 덕지덕지 붙은 상태로 내놓진 않지 않나? 맛있게 즐기고 싶은 만큼 배달 음식도 소중히 대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제대로 된 식기에 플레이팅해서 먹는 거다. 비록 손수 한 요리가 아니더라도, 알맞은 그릇에 예쁘게 옮겨 담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미각은 몇 배나 상승한다. 호프집에서 반조리 식품을 데워서 적당히 담아 내놓고 원가의 몇 배나 높은 가격을 받는 건 단순히 자릿세의 의미가 아니다.

 

회를 공수해오든, 튀김을 버무린 떡볶이를 사오든 알맞은 그릇을 꺼내고, 앞 접시와 수저를 사용해 덜어먹는 습관을 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단, 피자는 예외로 한다). 배달 음식을 그 용기 그대로 컴퓨터 책상에 깔아놓고,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로 떠 먹는 장면만큼 이 세상과 자신의 삶 모두를 방기하는 결정적인 순간 포착도 없다. 설거지도 핑계가 되지 못한다. 일상을 소중히 생각해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하루하루 매일같이 반복되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면, 귀찮음 정도는 고려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접시를 옮겨 담으면 포장용기에서 나오는 환경 호르몬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고, 일회용 수저를 쓰지 않는 건 배달음식을 시키면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 보호다.

 

그러니 자기만의 공간을 꾸렸다면, 심지어 주방이 없는 단칸방에 살더라도 식기와 커트러리 만큼은 꼭 갖추길 권한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고 해도 세라믹 재질의 파스타볼은 미니멀에 속하는 최소한의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만약 조금 더 마음을 열 의향이 있다면 대략 지름 23센티미터의 중간 크기 접시와 15센티미터의 디저트 접시 각각 2장씩도 갖추길 권한다. 회를 즐겨먹는다면 타원형 접시도 꼭 필요하겠다. 파스타 면기는 각종 볶음밥, 덮밥류에 대응할 수 있고, 유사시 라면이나 떡볶이, 통닭 그릇으로 동,서양식의 상관없이 대부분의 한 그릇 요리에 활용 가능하다. 디저트 접시는 앞 접시나 반찬 그릇 대용으로 쓸 수 있고, 식빵과 잼, 계란 요리를 얹으면 꽉 차는 중간 크기의 접시는 오므라이스, 팬케이크는 물론 손님이 왔을 때 내어놓을 과일 및 다과 접시로 전천후다. 대식가들에겐 좀 작다고 여길 수 있는데 덕분에 폭식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으니 좋게 생각하자.

 

 

이딸라 공식 홈페이지4.jpg

          이딸라

 

 

추천하는 제품은 이딸라(Iittala)의 떼마(Teema)라인과 아라비아 핀란드(Arabia Finland)의 24h 기본 라인이다. 유럽과 미국 FDA에 승인받은 친환경 재료로 만든 세라믹 제품군으로 오븐, 냉동,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모두 사용이 가능하며 설거지도 쉽고 내구성이 훌륭하다. 특히 테마 라인은 적은 공간에도 잘 수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은 절대로 튀지 않으면서 식탁의 품위를 높여준다. 실제로 이딸라는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을 아름다우면서 내구성이 좋은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불어 넣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배달음식의 품격 높이기에 제격이다.

 

그런데 이딸라와 아라비아라니, 너무 뻔해서 시시하단 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핀란드의 테이블웨어 브랜드인 이딸라는 1881년에, 아라비아는 1873년에 문을 열었다. 워낙에 역사도 깊고, 그간 배출한 걸작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빈티지 제품들은 전 세계 수집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이제는 취향이라 언급하기 애매할 정도로 너무 유명해졌다. 그런데 떼마나 24h 기본 라인은 유명 찻집이나 일본 영화에서 봄직한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빈티지 제품이나 희귀본이 아니다. 아무런 장식이나 기교가 들어가지 않은 가장 심플하고 모던한 일상적인 디자인으로, 스칸디나비아디자인센터 등에서 직구를 하거나 백화점, 인터넷 쇼핑 등으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군 중 하나다.

 

각진 떼마와 둥근 24h의 연결고리는 디자이너의 디자인 철학에 있다. 둘 다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디자인, 실생활에 유용한 일상성과 기능성을 가장 강조하고 있는 실용 라인이다. 핀란드 디자인이 다른 북유럽 브랜드와 구분되는 특징이 일상을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의식과, 모든 이를 위한 ‘평등한 접근’이란 출발 지점이라고 한다. 북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왕정 시대를 겪지 않은 역사적 배경 덕이다. 핀란드 디자인의 양심이라 불리는 카이 프랑크가 떼마 라인을 만든 이유도 누구나 일상에서 실제로 유용하게 쓰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테이블웨어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무광의 단순함이 매력인 24h를 만든 헤이키 오르블라는 카이 프랑크의 철학을 잇는 후계자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러니 비싸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일상을 윤택하게 해줄 도구로 그릇을 바라보자. 반세기도 훨씬 이전부터 일상의 중요성과 행복을 깨달은 인생 선배들의 지혜는 부지런히 옮겨 담을 필요가 있다. 생산기지를 태국으로 옮긴 후에는 세일도 자주하고 프로모션도 적잖게 진행된다. 긴 세월 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두 회사가 지금 핫트렉스에서도 절찬리 판매중인 핀란드의 가위 회사이자 대기업인 피스카스 그룹 산하에 속하면서(우리가 아는 수많은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테이블웨어 브랜드의 다수가 이 그룹 소속이다) 벌어진 변화다. 혹시나 북유럽 감성이 조금 지겹다면 영롱한 무채색이 매력적인 샌프란시스코산 히스 세라믹(Heath Ceramics)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다.

 

참고로, 커트러리는 수저, 양식기(스푼, 포크, 나이프), 디저트 포크와 스푼, 각각 2세트씩이 1인 가구의 기본 구성이다. 간혹 디저트 포크와 스푼을 선택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거인족 흉내도 아니고 케이크를 큼지막한 포크로 베어 먹고 머그잔에 거대한 밥숟가락이 들어가 있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으로도 당이 당길 정도로 아찔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견생 16년이면 인간이 된다

$
0
0

1.jpg  

                         어멈아 이 꽃은 냄새가 별로구나.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가 열릴 즈음 짱아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어느덧 내 나이 27살이 되었고, 짱아도 견생 16년 차에 접어들었다. ‘키운다’는 개념이 무색해진 지는 오래. ‘우리 가족이 짱아를 돌본다’에서 ‘네 발로 걷는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한다’를 지나 ‘짱아 발아귀에 우리가 있다’의 단계에 다다랐달까.


 

2.jpg

           짱아의 발아귀

 

 

이젠 그녀에게서 강한 인간의 기운이 느껴진다. 사람인 듯 사람 아닌 사람 같은 개와의 에피소드 몇 가지를 들려드리겠다.

 

 

# 인간의 표정을 짓는 개


짱아도 인형을 물고 아장아장 걸어와 놀아달라고 칭얼대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정반대의 상황. 내가 인형을 들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 짱아에게 놀자고 보채는 날이 늘고 있다. 그럼 짱아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굉장히 인형이 갖고 싶은 개 역을 연기해 보인다. 신이 난 내가 인형을 빼앗겨주면(?) 짱아는 도망가는 시늉을 한다. 열심히 뒤를 쫓은 내게 돌아오는 건 그녀의 찌푸려진 미간뿐. 짱아의 미간은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이제 됐냐.”

 

  

3.jpg

 

           4.jpg          

                           인형이 갖고 싶은 개를 연기 중이다.


 

# 효견, 네가 나보다 낫다


養志之孝 양지지효. 부모의 뜻을 받들어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효행. 나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짱아는 용변을 보는 중에도 해내고 있다면 믿으시겠는가.


개에게는 간식, 산책 등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짧은 단어의 수준을 넘어 ‘가서 쉬 하고 와’ ‘작은 언니 좀 깨워’ 등과 같은 고차원적인 문장을 이해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짱아도 어느 새부턴가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고, 가족 중 특히 엄마가 짱아의 이런 면을 높게 샀다. 여느 날과 같이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가 기특해하는 눈빛을 쏘며 짱아에게 쉬를 권유했다. 그런데 짱아가 얼굴에 난감한 기색을 비치는 게 아닌가. 잠시 눈알을 굴리며 머뭇거리던 짱아는 이내 화장실에 주저앉아 오줌 누는 자세를 취했다. 혹 어디 아픈가 싶어 짱아를 살펴보러 다가갔는데... 거기서 나는 보고 말았다. 그녀가 앉았다 일어난 배변 패드에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은 것을.


개의 방광 사정이 어찌 매일 한결같겠는가. 자기 전에 방광이 텅 비어있는 날도 있을 테다. 그러나 효견 짱아는 방광 사정과 무관하게 부모의 뜻을 받들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오줌을 누지 않아 혹여 어머니가 실망하실까 염려하는 갸륵한 마음! 오줌 누는 시늉이라도 함으로써 부모의 근심을 덜어드리려는 지극한 효행! 이러니 엄마 입에서 “으이그 짱아 반만 닮아라.”라는 소리가 나오지.

 

 

5.jpg

            짱아의 잃어버린 동생을 찾았다.

 


# 이 집에서 나가려거든 날 밟고 가라


짱아는 누군가 외출하려는 낌새를 엄청 빠르게 알아차린다. 가령 아빠, 엄마, 나, 짱아 이렇게 네 사람이 집에 있다고 해보자. 짱아가 아빠 곁에서 놀고 있었는데, 아빠가 나갈 채비를 한다? 짱아는 아빠를 버리고 엄마에게로 간다. 짱아를 쓰다듬던 엄마가 머리를 감는다? 짱아는 엄마를 버리고 내게로 온다. 함께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던 내가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종전의 상황과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남은 사람이 없다. 그럼 짱아는 ‘날 밟고 가라’ 작전을 시행한다.


수업에 늦어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기려던 찰나. 아래와 같은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내가 백팩을 메려던 건 어떻게 알고 딱 그 가방을 깔고 앉다니! “이 집에서 나가려거든 날 밟고 가라”며 뒤통수로 시위하는 그녀에게 홀린 나는, 결국 수업을 째고 말았다.

 

 

6.jpg

            너의 외출을 불허한다.

 


# 도봉구의 판사견


부모와 자식은 살면서 소소하거나 격렬한 의견 충돌을 겪기 마련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엄마와 내가 다툴 때면 짱아는 골몰하는 자세로 소파에 앉아 우리 둘을 지켜보곤 한다. 휴전이든 파국이든 일단 싸움이 종결되어 각자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판사견 짱아의 심판이 시작된다. 짱아가 엄마 옆에 웅크리고 앉아 엄마를 위로한다면, 그날은 내가 잘못한 것이다. (거의 드물지만) 짱아가 내 무릎에 앉아 나를 위로한다면, 엄마가 심했던 날이다. 그렇게 생긴 우리 가족의 규칙 : 짱아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 것.


나는 짱아가 부럽다. 밥을 게걸스럽게 먹어도 귀엽고, 잠버릇이 고약해도 귀엽고, 심지어 똥을 싸도 귀여우니 말이다. 짱아 나이 열여섯. 사람으로 치면 여든이 넘었다. 아마 짱아는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아닐까?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어르신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리!
아 참, 이 원고는 마감 전에 짱아에게 첨삭을 받았다.

 

 

7.jpg

            짱아의 치명적인 옆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그 문화 이야기 - 터키 편

$
0
0

01.jpg

오스만 건축의 정점을 보여주는 쉴레이마니예 사원. 돔형 지붕, 타일 첨탑, 문양을 새겨 넣은 대리석 벽감 등 오스만 스타일의 고유한 건축미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표본이다. @Imagetoday

 

 

잘 알려지지 않은 터키 전통예술, 춤과 음악 이야기

 

터키는 북반구에서 적도와 북극의 딱 중간 지점이자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국토의 형태는 거의 직사각형이며 면적은 78만 3562평방킬로미터다. 국토의 대부분은 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일부는 유럽 대륙에 닿아 있다. 삼면이 바다(북쪽으로 흑해, 서쪽으로 에게 해, 남쪽으로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자그마치 일곱 나라(유럽 쪽으로 그리스와 불가리아, 아시아 쪽으로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와 접경했을 만큼 내륙 지역도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터키인들의 예술적 취향에는 그들의 선조가 지나온 모든 흔적, 즉 중앙아시아의 유산과 비잔틴 제국의 영향, 그리고 서방으로 이주한 후 받아들인 이슬람교의 영향이 혼재돼 있다. 여기에 19세기 말의 문학에서 볼 수 있듯 지난 200년간 유럽 세계에 편입하려는 노력과 서구 예술 사조를 따르려는 경향도 결합되었다. 구체적인 형식에 따라 비중은 다르지만 모든 예술에 이런 요소가 접목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예술양식인 춤을 통해 터키의 정신을 느껴보자.

 

터키의 춤


터키 하면 떠오르는 춤이 벨리댄스밖에 없다면 자, 놀랄 준비들 하시라! 일단 벨리댄스는 터키에서 유래한 춤도 중동에서 유래한 춤도 아닌 스페인 춤이며, 15세기 후반 스페인에서 터키로 이주했던 유대인을 통해 전파되었다. 신을 위해 춤춘다는 ‘소용돌이치는 탁발수도승’이라는 뜻의 ‘훨링 더비쉬’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세계에서 가장 큰 야회 디스코장이 에게 해 해안의 휴양지 보드룸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앙카라에 국립음악연극학교 소속의 발레 학교가 있으며 1947년에 제1기 학생들이 유명한 안무가이자 영국왕립발레단의 창시자인 니네트 드 발루아 여사의 지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렇듯 터키 땅에는 많은 춤이 존재하며 대부분 벨리댄스와는 거의 무관하다. 전통적으로 이슬람교는 음악과 춤을 금기시하지만 오늘날 터키 도시 지역에 가보면 춤과 노래의 측면에서 종교적으로 억압된 나라의 면모는 전혀 찾을 수 없다.

 

신성한 춤


지금의 터키로 이주하기 전 중앙아시아에 살던 시절에 터키인들은 춤을 초자연적 상태에 이르는 수단으로 여기는 샤머니즘을 믿었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이후, 이슬람교가 춤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춤의 전통을 이어갔고 다만 춤에 부여하는 의미만 달라졌다. 춤은 신성한 의미를 부여받아 신과 만나는 희열을 상징하는 움직임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다양한 탁발수도승 교단이 탄생하는데 그 중 하나가 메블레비 교단이다.


메블레비 탁발수도승 또는 소용돌이치는 탁발수도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13세기에 위대한 시인이자 신비주의자인 메블라나 젤라레딘 루미가 교단을 처음 설립했던 코니아에서 여전히 의식을 행하고 있다. 이들은 관광객과 관심 있는 터키인들을 위해 1년에 한 번 강당에서 공연을 펼친다. 그들이 춤추는 모습은 행성계와 비슷하다. 신과의 영적 사랑과 소통의 환희 속에서 신비주의적인 음악에 맞춰 몇 시간씩 궤도를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그렇게 돌면서 한쪽 팔은 위를 가리키는 반면 다른 한 팔은 아래를 가리킨다. 이는 한 손으로는 신에게 이르고 다른 손으로는 신에게 받은 사랑을 땅에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기다란 원뿔형 모자를 쓰고 하얀 예복을 입는다. 탁발수도승이 흰 예복 자락을 우아하게 휘날리며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02.jpg

춤을 사랑하는 터키인들은 그것을 종교의식으로까지 승화시켰다. 이슬람의 한 종파인 메블레비 교단은 하얀 예복에 원뿔형 모자를 쓰고 행성계 같은 궤도를 빙글빙글 돌면서 신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의식을 치른다. 1년에 한 번 코니아 지역의 메블라나 축제에서 ‘소용돌이치는 탁발수도승’의 춤을 볼 수 있다. @Imagetoday

 

 

포크댄스


과거에 춤에 대한 이슬람교의 금욕주의적 태도가 도시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지만 시골 부락민에게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고유한 민족적 특성과 함께 춤추는 문화를 유지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주된 이유는 부락들이 수 세기 동안 다른 세상과 단절돼 있어서 정통 이슬람교도들이 주도하는 도시 교육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출생과 할례, 결혼, 제대, 출옥 등과 같은 다양한 상황에서 거의 항상 혼자 춤추지 않고 집단으로 춤춘다. 또한 명절이나 축제, 세시풍속, 예식과 관련된 춤들도 있다.

 

부락들이 서로 고립되어 있는 탓에 딱히 전형적인 터키의 전통 춤이라고 말할 만한 것은 없으며 지역마다 다른 지역과는 다른 고유한 포크댄스가 존재한다. 터키 서부는 제이벡 단스(zeybek dansı)가 특징이다. 마치 땅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돌다가 한쪽 무릎을 땅에 살짝 대는 춤이다. 처음에는 팔을 옆구리 근처에 두었다가 나중에는 어깨 높이로 올리며 동시에 손가락을 튕긴다. 남자들만 추는 엄숙한 춤이기도 하다.


할라이 단스(Halay dansı)는 아나톨리아 남동부에서 추는 춤이다. 사람들이 일렬로, 또는 반원형으로 서서 서로의 손이나 어깨를 붙잡는다. 한 명이 지도자 역할을 맡아 스텝을 조절해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무리를 이끈다.

 

아나톨리아 중부에서 나온 춤 중에는 숟가락 춤이라고 하는 카쉬크 오유누(ka?ik oyunu)도 있다. 사람들이 나무 숟가락을 양 손에 두 개씩 쥐고 마치 스페인 사람들이 캐스터네츠를 연주하듯 숟가락을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낸다.

 

호론 단스(Horon dansı)는 터키 북부와 흑해 연안에서 유래한 춤이다. 이 춤은 빠르고 긴장된 움직임들과 마치 물에서 나오는 물고기처럼 전신을 부르르 떠는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이 지역 거주자들이 대부분 어부나 선원이기 때문에 참으로 적절한 동작이라 하겠다.

 

가장 낭만적인 포크댄스는 터키 남부의 차이다 츠라 단스(?ayda ?ıra dansı)다. ‘들판에서 불 밝히는 사람들의 춤’이라는 뜻을 가진 이 춤은 여자들만 추는 춤으로, 모두 쟁반 위의 촛불을 들고 춤을 춘다. 주로 결혼식 전날 신부의 집에서 신부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춘다.

 

 

03.jpg

터키의 전형적인 주택가 풍경. 좁은 골목길에 차도 다니고 손수레도 다니고 아이들도 길고양이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Imagetoday

 

 

터키의 음악


18세기의 여행가 아론 힐은 이렇게 썼다. “누구든 터키 땅을 여행하다 보면 반나절도 못 돼서 수염을 길게 기른 준엄한 이슬람교도가 커다란 참나무나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다리를 꼬고 앉아 단조로운 기타 가락을 튕기며 자기만족에 빠져 구슬픈 노래를 읊조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동안 그의 불쌍한 말은 좀 더 실질적인 만족을 찾아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다.”

 

그 구슬픈 노래를 누구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터키 음악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는 터키 민속음악이 자신이 아는 어떤 음악보다 풍요로운 음악이라고 밝혔다. 풍요롭지만 익명성 속에 묻혀있는 음악. 터키 음유시인들은 수세기 동안 길쭉한 손잡이가 달린 3현 악기 사즈(saz) 하나만 들고 이곳 저곳을 방랑하며 우연히 만난 관중 앞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노래를 불렀다.

 

음악의 종류


터키 고전 음악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지적이고 의식적인 음악의 유형으로, 주로 오스만 제국 시대에 궁전과 대도시에서 듣던 것이다. 당시 사용했던 악기 중에 우드(ud)라는 것이 있다. 십자군이 돌아갈 때 이 악기를 가져가면서 ‘루드’라고 불렀고 이것이 다시 루트가 되었다. 그러니까 루트는 ‘다이븐’이라고 불리는 소파 침대와 튤립, 체리, 앙고라 울과 아울러 터키의 유산인 것이다.

 

터키 젊은이들은 대부분 터키 대중음악을 듣는데, 분위기는 동양적이지만 템포와 사용하는 악기는 유럽적이다. 특히 여름에는 시장에서건 식당에서건 버스에서건 이스탄불의 여객선 안에서건, 테이프에 녹음된 중저음의 여자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겨울에는 젊은 운전자가 터키 대중음악을 쿵쿵 울리며 지나갈 때마다 도로 아스팔트가 진동한다.

 

 

04.jpg

타우루스 산맥 북쪽의 고원지대에 있는 카파도키아. ‘요정의 굴뚝’이라 불리는 기암괴석들과 함께 천연 동굴이 많아 과거에 기독교인들이 은신처이자 기도처로 즐겨 사용했다. 지금은 동굴 탐사 및 열기구 관광으로 인기 있는 여행 명소가 되었다. @Imagetoday

 

 

오스만 시절 친위보병 예니체리가 연주하던 메흐테르 음악은 과거의 영광을 기념하는 용도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수 수레에 장착한 대형 드럼을 포함해 66개의 악기로 구성된 메흐테르 군악대는 행진하는 터키군의 선두에서 사기를 북돋고 적군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한번은 영국에서 어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점심을 먹으며 동양 음악과 서양 음악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어리석은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국적을 알 수 없지만 편협하게 유럽적 관점만을 고집하던 한 학생이 터키 학생에게 말했다. “우리에겐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있어. 너희에겐 누가 있지?” 터키 학생은 상대 학생이 언급한 명망 있는 음악가들에 필적할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해 당황한 눈치였다. 아마도 그는 가장 훌륭한 터키 음악가는 익명의 음유시인이라는 사실과 터키 메흐테르 음악이 하이든의 <군대교향곡>과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과 <터키 바이올린 협주곡>, <후궁탈출>, 그리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 영향을 줄 만큼 훌륭한 음악이었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기억해내지 못한 것 같다.


이 글을 쓴 아른 바이락타롤루(Arın Bayraktaroglu)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강사와 조교수로 오랫동안 일했으며 1982년부터 지금까지 캠브리지 어학원 원장을 맡고 있다. 전문 분야는 민속방법론과 대화 분석으로, 학술지에 글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터키어 및 터키 문화에 관련한 저서를 여러 권 썼다. 영국인인 그녀는 지금도 터키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매년 상당한 시간을 터키에서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그 문화 이야기 - 이탈리아 편

$
0
0

01.jpg

피렌체 아르노 강 위에 있는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 폰테베키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아르노 강에서 유일하게 파괴하지 않고 남겨놓은 다리라고 한다. ⓒ Shutterstock

 

 

맛있는 이탈리아. 지역별로 알고 맛보기

 

이탈리아 음식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추운 겨울 뜨끈한 미네스트로네(minestrone. 파스타를 넣은 야채 스프의 일종) 한 그릇이나 파마산 치즈 향이 풍기는 볼로녜세 스파게티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파스타와 피자의 명성 덕분에 이탈리아인은 매일 마카로니와 송아지고기, 토마토, 올리브 오일을 먹고, 짚으로 감싼 피아스코 병의 키안티 와인만 마시며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탈리아 호텔업계도 굳이 이런 환상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다. 관광객이 몰려오는 식당에서는 오히려 그런 식사를 권장하기도 한다. 그 편이 더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세계적’이라고 알려진 이런 종류의 음식과 진짜 이탈리아 음식과의 관계는 ‘피진 이탈리아어’(중세 때 십자군과 상인들이 남부 프랑스어와 이탈리아를 섞어 지중해 연안에서 발달시킨 언어)와 단테의 언어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인들이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나폴리 등의 각 지역 요리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중국인들이 광둥어과 쓰촨어, 하카어와 대만어를 구분해 별개로 간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수세기에 걸쳐 이탈리아 각 지역과 도시에서 고유한 식문화가 발전했다. 미묘한 차이를 가진 이들 문화가 모여 이탈리아 맛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식습관과 재료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음식들은 모두 개성이 있다. 이를 두고 “프랑스인이 전문가처럼 요리하는 아마추어라면 이탈리아인은 아마추어처럼 요리하는 전문가들”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이탈리아의 미식가 엔리코 갈로치는 “프랑스에서 베어네이즈 소스를 주문하면 200개 식당에서 200번 똑같은 소스가 나온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볼로녜세 소스를 주문하면 200개 식당에서 서로 다른 200가지 맛의 라구(고기 소스)를 맛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이탈리아 문화의 일부이자 매력이다.

 

 

02.jpg

                                   피에몬테의 가정에서 흔히 만들어 먹는 핸드메이드 파스타의 일종인 뇨키. ⓒ Shutterstock

 

 

토리노 / 피에몬테 지역


프랑스와 국경을 사이에 둔 피에몬테 지역은 인접한 사부아 지역의 영향력이 요리에도 나타난다. 산악 지대에는 최근까지도 오븐이 없는 집이 많았으므로 주로 프라이팬을 이용하거나 끓이는 방식을 이용했다. 이런 이유로 바냐카우다(bagnacauda. ‘뜨거운 목욕’이라는 뜻)라고 하는, 말 그대로 열탕 요리가 탄생했다. 소스는 올리브 오일, 버터, 마늘, 다진 안초비, 얇게 저민 화이트 트뤼플 버섯으로 만든다. 개인용 화로에 소스가 담긴 작은 볼을 얹어두고 함께 나온 여러 가지 생야채를 찍어먹는 요리다.

 

아뇰로티(agnolotti. 라비올리의 일종으로, 납작한 반죽 안에 다진 송아지고기와 햄, 향신료로 속을 채운 파스타)는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파스타다. 닭고기 육수에 요리해 닭 간과 함께 내는 탈리아텔레 파스타도 그에 버금간다. 폴렌타(polenta. 옥수수 가루를 풀어 죽처럼 만든 수프)와 세몰리나 뇨키(파스타용 밀가루인 세몰리나로 만든 수제비 같은 파스타)도 많이 먹는데 모두 피에몬테에서 처음 유래된 요리라고 한다.

 

 

밀라노 / 롬바르디아 지역


롬바르디아 주에서는 거의 모든 요리에 버터를 사용하며 치즈가 주요 생산품 가운데 하나다. 고르곤졸라, 벨 파에세, 마스카르포네, 탈레조, 로비올라 치즈 등이 생산되며, 파마산 치즈도 정작 파르마 지역보다 롬바르디아에서 더 많은 양을 생산한다. 밀라노에는 세계 최고의 치즈 가게인 라 카사 델 포르마조(a Casa del Formaggio)가 있다. 100년 전부터 문을 연 이 가게는 수백 종의 다양한 치즈와 치즈 케이크 등을 팔고 있다. 밀라노는 음식에 관해서 늘 호사스러운 태도를 가져왔는데, 한때는 자기만의 빵이나 와인을 만드는 사람만 공무원으로 뽑는 규정을 둔 적도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음식에 대한 밀라노인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03.jpg

           탈리아텔레 파스타 면으로 만든 요리. ⓒ Shutterstock

 

 

볼로냐 / 에밀리아로마냐 지역


에밀리아로마냐는 인적인 드문 언덕 지대와 단 한 뼘의 땅도 그냥 놀리지 않는 조밀한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돼지와 밀, 과일과 야채, 심지어 생선의 고장이라 할 만큼 식재료가 풍부한 덕분에 이탈리아 미식의 중심지가 되었다. 파르마는 햄과 치즈로 유명하고, 모데나는 족발에 속을 채운 잠포네(ampone)와 체리, 복숭아, 마카롱 등이 유명하다. 라벤나는 해산물 요리로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도시는 볼로냐다. 파스타와 모르타델라(mortadella) 햄이 유명한데, 영국의 시인 겸 비평가였던 이디스 시트웰이 말했듯이 미국에서 볼로냐의 모르타델라를 본떠 만든 발로니 소시지는 그야말로 엉터리다. 볼로냐의 3대 파스타 별미는 루크레치아 보르자(르네상스 시대 교황의 폭압 정치와 성적 타락을 상징하는 인물로,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외동딸이자 체사레 보자르의 누이였다)의 금발을 기념해 만들었다는 탈리아텔레, 비너스의 배꼽처럼 생겼다는 토르텔리니, 그리고 로마인들이 라가눔(laganum)이라고 불렀던 라자냐다. 물론 볼로냐에는 더 많은 종류의 파스타가 있다. 한 요리 전문가는 600개 이상의 파스타 종류를 리스트로 만들기도 했다.

 

 

04.jpg

해산물이 풍부한 베네치아에서는 파스타나 피자보다 생선과 쌀을 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 Shutterstock

 

 

베네치아 / 베네토 지역


베네치아는 밀라노와 마찬가지로 파스타보다 쌀을 더 좋아한다. 쌀과 생 완두콩으로 간단하게 만든 리시 에 비시(risi e bisi)는 베네토 지방의 가장 오래된 별미 가운데 하나다. 또 고기보다 해산물을 선호하는 베네치아에는 쌀과 생선을 재료로 한 요리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장어, 서대기, 생 안초비, 바닷가재, 새우, 홍합, 심지어 굴과 함께 쌀을 요리해서 낸다. 색이나 강한 비린내에 미리 식욕을 잃지만 않는다면 오징어 먹물로 지은 검정 쌀밥도 맛있는 요리다. 리소토는 소의 내장, 닭의 간, 개구리 다리, 메추라기 등으로도 만든다. 정육점에서 남은 고기로 만든 리소토 디 세콜리(risotto di secoli)는 전채요리로 먹는다.

 

 

제노바 / 리구리아 지역


리구리아에서는 이 지역의 따뜻한 햇살 아래 자라는 모든 재료를 음식에 이용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는 제노바의 선원들이 만든 것으로, 늘 신선한 음식을 그리워했던 그들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졌다. 페스토 소스에 들어가는 바질처럼 향이 좋은 허브와, 남은 재료들로 속을 채울 수 있는 라비올리를 많이 사용했다. 제노바 사람들은 페스토 소스를 예찬하며 온갖 재료들로 소를 넣은 요리를 좋아한다. 해산물이나 심지어 과일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도 찾아볼 수 있다. 내장으로 만든 스비라(sbirra)처럼 진한 수프와 이 지역 특유의 생선 스튜 부리다(burrida)처럼 걸쭉한 수프를 좋아한다. 리구리아의 질 좋은 올리브 오일 덕분에 고기는 대부분 기름에 튀기는 조리법을 사용한다.

 

 

피렌체 / 토스카나 지역


토스카나는 여러 가지 맛의 조화와 대조적 질감을 가진 소박한 요리들로 잘 알려져 있다. 열렬한 고기 애호가들이 사는 토스카나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피렌체 방식의 비프스테이크’라는 뜻)로, 키아나 계곡에서 자란 소고기를 약간의 기름과 후추를 곁들여 장작불에 구운 부드러운 티본스테이크다. 원래 ‘알라 피오렌티나’가 의미하는 피렌체 스타일은 보통 시금치가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여기에서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지므로 이름에 속아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페가텔리 알라 피오렌티나(fegatelli alla fiorentina)는 다진 돼지 간에 회향을 곁들인 요리다. 리소토는 닭 내장을 넣은 미트 소스로 요리하고 추파 디 파졸리(zuppa di fagioli. 하얀 콩 수프)는 양파, 마늘, 토마토 소스로 만드는데 모두 토스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나폴리 / 캄파냐 지역


캄파냐는 곧 나폴리 음식을 뜻하고, 나폴리 하면 토마토가 떠오른다. 로마 시대부터 나폴리에서는 마카로니나 피자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오래 전에는 속이 빈 원통형의 길쭉한 파스타 지티(ziti)를 빨랫감과 함께 풍차 날개에 널어서 말리곤 했다. 다 마른 파스타는 작은 조각으로 잘라서 알덴테(al dente), 즉 씹었을 때 적당하게 씹히는 정도로 익힌다. 어느 곳에서보다 씹는 맛이 살아 있는 이 파스타는 살짝 익힌 생 토마토를 곁들여 먹는다. 어쩌면 가장 오래된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는 피자가 맨 처음 만들어진 곳도 나폴리의 거리였다. 원래 피자는 토마토와 마늘처럼 간단한 토핑을 사용했다. 마리나라(marinara)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해산물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05.jpg

이탈리아에서 카페는 가족 또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먹고 마시고 카드 게임을 즐기기도 하는 등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 Shutterstock

 

 

로마 / 라치오 지역


미식가들은 로마의 요리가 곧 고대 에트루리아인의 요리라고 말한다. 토스카나 음식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 특색이다. 로마라는 도시의 열정과 세속성이 요리에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강한 맛으로 가득한 로마 음식은 기름지고 양도 많은 편이다. 쇠꼬챙이에 통째로 구운 새끼돼지 요리, 포르케타가 로마의 대표적인 음식인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심장, 내장, 꼬리, 고환 할 것 없이 정육점의 남은 고기들로 만드는 요리들도 역시 유명하다.


이 글을 쓴 레이먼드 플라워(Raymond Flower)는 영국 모들린 대학과 옥스퍼드를 졸업했고 30여 권의 책을 집필한 작가다. 한때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이자 카레이서, 자동차 제작자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이탈리아와 동남아시아를 오가며 살고 있다. 공저자인 알레산드로 팔라시(Alessandro Falassi)는 중세 때부터 키안티와 시에나에 거주한 유서 깊은 가문의 출신이다. 피렌체와 파리, 이후에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등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이탈리아와 미국을 오가며 인류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왜 청소년 건강에 신경 써야 할까

$
0
0

언스플래쉬1.jpg

            언스플래쉬

 


좀 오래 전 일입니다만 소아과와 내과 의사들이 서로 싸운 적이 있습니다. ‘청소년’을 어디서 봐야 하느냐는 문제였지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 제가 배운 바로 청소년은 소아과에서 봐야 했습니다. 소아과의 가장 큰 원칙은 ‘성장과 발달’입니다. 몸과 마음이 변하는 인간의 건강을 다룬다는 뜻입니다. 성장과 발달이 끝나지 않았다면 소아과에서 보는 것이 옳다는 거죠. 둘째, 어느 쪽이 옳든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의약분업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의사들은 속히 국민의 오해를 풀고, 우리 의료의 문제를 잘 설명하며 신뢰를 얻어 의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했습니다. 그런 때에 그런 문제로 시끄럽게 다투는 것은 진정한 뜻이 어디 있든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소아과는 이후 공식 명칭을 ‘소아청소년과’로 바꾸었습니다. 그럼 소아과가 이긴 걸까요? 글쎄요. 의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청소년은 아예 병원 자체를 잘 오지 않죠. 아픈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우연한 기회로 “청소년 의학”이란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정식 코스를 밟은 것은 아니고 독학이었지요. 그리고 제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청소년이란 존재, 이 독특한 시기가 개인과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 건강을 기회의 실현이란 차원에서 바라볼 때 드러나는 새로운 의미 같은 것들을 전혀 모른 채, 그저 피상적인 원칙에만 매달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다는 자각이 밀려왔습니다. 섹스, 미디어, 비만과 영양, 외모와 자기 정체성, 자기 계발, 술과 담배 등 물질 남용, 인터넷, 스마트폰, 게임 중독 등 청소년의 문제는 곧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청소년 건강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그런데 왜 청소년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할까요? 청소년은 이미 건강하지 않나요? 건강은 40세 정도 돼서 챙기는 것 아닌가요? 당연한 생각입니다. 심지어 의사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지요. 물론 일생 중 청소년기만큼 건강한 때는 없습니다. 몸매는 아름답고, 팔다리는 튼튼하며, 얼굴은 젊음의 빛을 발산합니다. 빨리 달리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무거운 것을 들 수도 있지요. 마구 먹어도 좀처럼 살이 찌지 않고, 며칠 밤을 새워도 푹 자고 일어나면 금방 멀쩡해집니다. 잘 아프지도 않지요. 세상에 청소년만 있다면 의사들은 모두 굶어 죽을 겁니다.

어른들은 어떤가요? 배도 나오고, 근육은 물렁물렁하고, 조금만 과로하면 병이 납니다. 이곳 저곳 쑤시고, 하는 일 없이 피곤하여 병원에 가보면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소릴 듣습니다. 허리 디스크로 잘 걷지도 못하고, 목이나 어깨가 아파서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심장병, 당뇨병, 고혈압, 암 같은 질병이 찾아 오면 평생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생로병사가 곧 고통의 바다라는 부처님 말씀을 실감하게 되지요.

 

그런데요, 청소년기의 건강한 상태와 중년, 노년의 질병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요? 옛날에는 감염병이 건강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불과 70 80년 전만 해도 인류의 평균수명이 40대였습니다. 그때는 청소년기에 고아가 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옛날 이야기에 보면 마음씨 나쁜 계모가 많이 나오지요? 심청도, 콩쥐팥쥐도, 백설공주도, 신데렐라도 다 계모 때문에 고생을 하잖아요. 얘네들 진짜 엄마는 어떻게 된 걸까요? 그때는 아기 낳다 죽는 일이 아주 흔했습니다. 주로 세균 감염이었지요. 아기를 낳는다는 건 여성으로서 목숨을 걸고 감행하는 대모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계모가 특별하다기보다는 일상적인 존재였던 겁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인류의 평균수명은 많은 국가에서 80세를 넘고도 계속 늘어납니다. 이제 감염병으로 죽는 사람은 많지 않죠. 심장병, 뇌졸중, 당뇨, 암 등이 큰 문제입니다. 이런 병은 대개 4, 50대 이후에 생깁니다. 하지만 그냥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병이 생길까요? 그렇지는 않지요. 흡연, 음주, 운동 부족, 오래 앉아 있는 습관, 식습관, 비만 등의 요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같이 생활습관에 관계된 것이라 “생활습관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생활습관이 언제 생기나요? 청소년기에 생깁니다. 청소년기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대개 평생을 피우게 됩니다. 단 것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즐기는 습관, 술을 마시는 습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생기면 좀처럼 바꾸기 어렵고 평생 갑니다. 희한하게도 나쁜 습관은 금방 생기는데, 좋은 습관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지요? 그러니 청소년기에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옆에서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언스플래쉬2.jpg

            언스플래쉬

 

 

청소년기에 건강 문제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에요. 성병이나 기타 생식계 질병처럼 다른 시기에도 발생하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청소년기에 특히 많이 생기는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질환은 청소년기에 가장 흔히 생기며,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청소년기에는 정서가 갑자기 크게 변하지만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아직 미숙합니다. 그래서 물질 남용이나 인터넷, 게임 등에 빠지기 쉽지요. 경험이 부족하고, 삶이 크게 어긋나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모험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잦습니다. 성적 모험으로 인한 질병과 자살, 폭행 등으로 인한 문제가 많이 생기지요. 청소년기는 기회의 시기입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부모가 된다든지, 심한 상해를 입는다든지, 중한 감염병에 걸린다든지, 중독과 의존성(약물, 의존성 물질, 게임)에 빠지면 이 기회를 너무 쉽게 잃어버립니다.

 

청소년기는 이중적 시기입니다. 모든 것이 형성되면서 어른으로 발돋움하는 멋진 시기인 동시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불편하고 어쩔 줄 모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몸과 마음, 독립성을 가지고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부담스럽고 두렵습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결정되지요. 일생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토대가 이때 결정됩니다. 어떻게 보면 투자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시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청소년에게 투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시기의 건강과 교육과 고용 기회에 투자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안정과 행복을 증진시킬뿐더러 국가의 번영과도 직결됩니다.

 

청소년 의학을 공부한 후 저는 소아과나 내과에 이 문제를 맡길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학과라는 독립된 전문분야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는 요원한 일입니다. 앞서 말했듯 청소년은 병원을 찾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현행 제도에서는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모두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기를 맞아 보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과거의 생각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바라봐야 합니다. 청소년기의 건강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문자 그대로 ‘미래의 희망’이 이들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사회를 완전히 새롭고 행복한 곳으로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살림과 인테리어의 절충선, 빨래 건조대

$
0
0

decorpad.jpeg

 

 

우리는 만족스런 일상을 위해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런데 인테리어 잡지나 라이프스타일 전문가들이 절대로 하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살림살이와 이웃의 존재다. 사진 속에는 예쁘고 멋진 공간이 수도 없이 많이 펼쳐지지만 그 속에 살림이나 이웃의 흔적이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어떤 라이프스타일 콘텐츠에서도 아이들이 장난 치고 있는 장면 외엔 살림살이를 꺼내놓고 있다거나 이웃과의 험한 꼴을 봤다는 이야기를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정리를 잘하고 청소를 잘하는 것과 별개로 사람이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널 부러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빨래 건조대, 옷가지, 싱크대의 물기, 설거지 건조대에 쌓인 그릇, 욕실 수건, 온갖 세제와 청소 용품 등이 그런 것들인데, 아무리 리모델링을 하고 집을 꾸며도 이런 게 나오는 순간 모든 게 리셋이다. 당연히, 잡지 같은 데선 살림의 흔적이 싹 정리된 멀끔한 모습만 보여준다. 뻔한 연출인 것을 이제는 알 때가 됐지만 나처럼 갓 체크인한 호텔 방과 같이 정돈된 일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미장센을 보면서 매번 혹한다.

 

공간이 넓어서 드레스룸이나 건조기를 보유한 세탁실이 따로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럼에도 습기와 통풍을 생각했을 때 모든 걸 눈앞에서 사라지게 어딘가 처박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옷감이나 그릇의 소재를 불문하고 무조건 건조기에 맡길 수도 없는 형편이 현실이다. 그래서 무섭게 발전 중인 라이프스타일 분야가 바로 수납인데, 문제는 아무리 누군가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고 해도 완벽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육아나 웨딩업계처럼 늘 새로운 이야기와 콘셉트가 끊임없이 돌고 돌 뿐이다. 이게 살림의 본질이다.

 

이웃의 존재는 일상의 평온을 침해하는 더 큰 차원의 문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웃은 다정한 온기보다 평온한 일상에 심각한 위해를 지속적으로 가할 수 있는 불안 요소일 확률이 높은 게 현실이다. 고를 수도, 바꿀 수도 없이 철저하게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우리처럼 층간 소음이 심각해도 괜찮은 건축법이 통용되는 데다 공동체 의식이 희박한 사회에서 나쁜 이웃을 만날 확률은 세스 로건이 당한 경우보다 훨씬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삶의 지혜가 부족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시행착오를 겪는 나는, 몇 해 전 모두가 꺼리는 낡은 구옥 빌라를 이리저리 고쳐서 나만의 일상 공간을 마련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리모델링, 셀프인테리어 등이 쿨한 문화로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현실과 잡지의 가장 큰 차이는 사진 한 방 찍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그 공간에 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진짜 라이프스타일은 인테리어의 완성, 그 후에 완성되었다. 좁은 공간은 삶의 흔적을 감추기 턱없이 부족했고, 동네에서 그 건물만이 유독 방치된(값이 싼) 이유도 그다지 멀리 있지 않았다.

 

 

organized-home.png

 

 

공동건물에 살면서 내부만 고친다고 안락한 일상이 보장될 리가 만무하다. 겨울이 지나자 실내 흡연이 일본보다 관대하다는 걸 알게 됐고, 종량제가 시행된 지 30년째를 바라보지만 쓰레기 배출은 맨하튼의 주민들과 다를 바 없이 자유분방했다. 현관문 밖의 모든 시설물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그래서 처음엔 성산동에서도 과거 베를린처럼 스쾃(squat) 운동이 펼쳐지는 줄 알았다. 지금은 여러 난관을 거치고 반상회를 조직해 서로간의 반목과 불신을 그나마 누그러뜨리고, 보수 공사를 마무리하고 환경 미관에 대한 합의를 어느 정도 이뤘다. 여기까지 오는 데 2년이 걸렸다.

 

이런 터프한 현실에서 평온한 일상과 현실 살림의 조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아이템과 출구전략이 있다. 앞서 언급한 반상회와 같은 커뮤니티는 의외로 오지랖에 대한 불편함보다 나만의 평온한 일상을 지킬 수 있는 방어체제가 된다. 물론 많은 노력과 인내와 때로는 불심도 필요하다. 따라서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에 맞게 더 작은 단위의 노력으로 현실과 이상의 절충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중 가장 간결하고 실용적인 솔루션이 바로 예쁜 빨래 건조대의 구입이다. 인테리어를 망치는 첫 번째 주범이 널어놓은 빨래고 두 번째가 육아관련 용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생필품 마트에서 파는 플라스틱과 가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빨래 건조대는 실용성은 좋지만 심미적인 가치까지 따지면 가성비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라이프스타일 전문 매장이나 디자이너들이 한 차원 높아진 소재와 디자인으로 만든 빨래 건조대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이 나무로 만든 빨래 건조대들이다. 사실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쓰던 가장 고전적인 빨래 건조대인데 다시금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어디 치워놓지 않더라도 집 안 소품으로 보이는 데 큰 무리가 없고, 무엇보다 나무 소재가 주는 안온함과 여유가 거실에다 빨래를 널어놓았을 시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한 축 처진 분위기를 잡아준다. 그래서 요즘 일상 용품의 메카인 일본 도쿄에 가보면 나카메구로나 아오야마 같은 훌륭한 동네의 생활용품점, 라이프스타일 쇼윈도에서 심심찮게 멋진 빨래 건조대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회사들과 목수들이 빨래 건조대 사업에 본격 뛰어들고 있어서 최저가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오픈마켓에서도 드넓게 펼쳐진 새로운 빨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공간이 너무나 부족한 원룸 같은 경우는 일명 자바라 스타일의 빨래 건조대를 활용하면 심미적인 가치와 효율적 수납의 묘를 극대화할 수 있다. 다만, 구조 상 이불 빨래나 니트 소재 등 무거운 빨래를 많이 걸어 놓기엔 아쉬운 점이 있으니 이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옷은 우리를 즐겁고 멋지게 만들지만 집 안에서만큼은 여유롭고 세련된 일상 풍경을 해치는 대표적인 짐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집 안의 모든 옷걸이를 한 가지 디자인과 소재로 통일한다.(실제 나무면 가장 좋다) 세탁소 옷걸이와 비닐 커버가 옷방에 걸려 있는 게 최악이다. 유사시를 대비해 두어 개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세탁소에 벗겨두고 오는 게 물자 절약을 위해서나 일상의 행복을 위해서나 두루두루 훌륭해지는 생활의 팁이다. 물론, 최선의 방안은 모든 방 안에 드레스룸이 딸린 집을 구하는 거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그 문화 이야기 - 인도 편

$
0
0

01.jpg

           갠지스 강가에 위치한 바라나시는 3천 년 동안 존재해 왔으며 힌두교 성지로 여겨진다. ⓒ Shutterstock

 

 

12억 인구를 연결 짓는 범인도적 세계관

 

인도의 사원 입구에는 거지들이 많다. 그들은 가혹한 뙤약볕 아래서 시체처럼 가만히 인내하며 안뜰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길게 줄지어 앉아 있다. 다양한 신들의 석상이 장님과 불구자와 기형인과 삭발한 과부와 사프란 색 예복을 두른 고행자들을 흔들림 없는 평온한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어둡고 시원한 내실로 들어가려면, 우선 앞 다투어 내미는 수많은 손들을 거쳐 가야 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비단 옷을 입은 우아한 인도 여인들은 숭배를 하기 전에 침착하게 동전 몇 푼을 대충 나눠준다. 이런 고통과 부당함과 고행을 눈앞에서 보고도 누구 하나 감정을 표현하는 이가 없다. 이런 장면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은 두 번 충격을 받는다. 그 비참함으로 인해 한 번, 그에 대한 무심함에 한 번. 이러한 평정심은 과연 무엇일까? 냉담함인가, 무감각인가, 아니면 극기심인가? 이런 광경 앞에서 울컥하거나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 비인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02.jpg

            바라나시에서 매일 해질녘에 펼쳐지는 불의 제식 장면. ⓒ Shutterstock

 

 

카르마(업보)


이런 평정심에 철학적 토대가 있다면 그것은 카르마의 교리에서 찾을 수 있다. 카르마(karma) ‘행동’과 ‘행동의 결과’를 뜻하며 그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카르마는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사람들 의식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모든 작용에는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이 철학적 차원에서 반박불가의 진리인 것처럼, 카르마 역시 도덕적인 차원에서 반박불가의 진리로 간주된다.

카르마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은 결과를 낳기 마련이며 그 결과가 영원히 우리를 쫓아다닌다. 카르마의 필연적인 귀결은 환생이다. 전생에서의 행동이 이생의 운명을 결정하고, 마찬가지로 이생에서의 행동이 미래의 환생에 영향을 미친다. 힌두교도는 여기에 화살의 비유를 이용한다. 이미 쏘아버린 화살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은 과거의 행동에서 발생한 카르마, 즉 업보이며 그냥 그대로 놔둬야 한다. 신들조차 실제로 행해진 행동의 결과를 바꾸어놓을 수는 없다. 그 반면에 과녁을 향해 겨누어졌으나 아직 시위를 당기지 않은 화살(현재의 행동)과 아직 화살 집에 있는 화살(과거의 행동으로 축적된 공과)의 경우는 궁수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카르마는 2000년이 넘도록 힌두교 사상을 지배해 왔다. 그것이 일종의 변명이건, 아니면 우주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이건, 카르마는 인도인들이 어떤 상황에 직면해서도 어깨를 으쓱하며 “그게 다 내 업보지 뭐”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최악의 불행도 그것이 응당하다고 생각해 수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벌어지면 언뜻 부당해 보이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우리가 과거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저 운명이나 신의 변덕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희생양만은 아닌 것이, 이생에서의 선행이 내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카스트


인도의 세습적인 계급제인 카스트 제도는 카르마를 철학적 정당화의 근거로 삼는다. 카스트는 산스크리트어로 색을 뜻하는 ‘바르나(varna)’다. 그것은 처음에 인도를 침략한 피부가 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리아인들이 인더스 계곡의 검은 피부 토착민들과 동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카스트는 중세 시대 영국의 길드와 오늘날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것과 동일한 역할을 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노동자들을 불공정한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고 각 공동체의 지식을 보존하는 것이다. 도공의 딸이 도공과 결혼한다면, 그녀는 흙을 어디서 구하고 어떻게 가공하는지, 가마에는 어떤 나무를 넣어야 하는지 등을 이미 다 알 것이다. 만일 그녀가 대장장이와 결혼한다면 그런 지식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소독약과 항생제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시체를 실어다 버리고 짐승 가죽을 가공하는 등의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해야 할 실용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런 ‘불가촉천민’ 카스트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면역력이 생겼고, 다른 카스트는 순전히 건강상의 이유로 그들을 피했다는 학설도 존재한다.

 

카스트가 세습되기 시작하자 함께 음식을 먹거나 결혼하는 것에 대한 금기도 등장했다. 또한 직업과 상호의존성을 관계의 바탕으로 하는 ‘자티스(jatis)’라는 하위 카스트들의 거대한 망도 등장했다. 개인은 이런 망에 갇혀 카스트의 사다리를 오를 수 없지만, 집단으로서 하위 카스트는 시대가 변하면서 일의 성격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함에 따라 새로운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인도에 새로 정착하는 인종 집단은 별도의 하위 카스트가 되어 더 큰 카스트 구조 속에 동화된다.

 

수백 개의 자티스 또는 카스트 집단은 순결의 척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며, 브라만은 제일 위쪽, 불가촉천민은 바닥에 속한다. 불과 1세대 전까지만 해도 어느 지역의 불가촉천민은 그림자만 닿아도 오염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자신들이 근처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종을 달고 다녔다. 그들은 마을 밖에 살았고 별도의 우물에서 물을 썼으며 인간의 분뇨와 동물 시체를 치우는 것 같은 불결한 일을 했다.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이 비참함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처럼 카스트를 부정하는 종교로 개종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교 집단들도 위계적 등급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카스트 제도는 계속 살아남았다.

 

1950년 인도 헌법은 그때까지 카스트 제도가 누렸던 법에 준하는 지위를 부정하고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하도록 만들었다. 1인 1표 원칙은 ‘카스트주의’, 다시 말해 카스트에 입각한 정치세력화로 이어졌고 피지배층 사람들은 기나긴 카스트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그 갈등을 이용해 이로움을 얻을 수단을 갖게 되었다. 시골에서는 여전히 카스트 규칙을 어기면 죽임까지 당할 수 있지만 도시 지역에서는 카스트의 중요성이 훨씬 덜하다. 이제는 버스나 공장, 식당에서 옆자리에 누가 앉건 통제할 방법이 없어졌다. 또한 정부 일자리와 대학 입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낮은 카스트 사람에게 할당하는 정부의 ‘차별 철폐 조처’로 인해 신분의 상향 이동이 촉진되면서 카스트 제도는 더욱 흔들리고 있다.

 

 

03.jpg

            인도를 상징하는 건축물, 타지마할을 관람하는 관광객들. ⓒ Shutterstock

 

 

다르마


다르마(dharma)를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어렵지만 ‘자연법칙’이나 ‘보편적 정의’ 또는 ‘본분’ 정도가 가장 적절한 번역일 것이다. 행성들도 자신들의 다르마를 따른다. 스바-다르마는 우리의 ‘양심’과 같은 개인의 도덕규범이다. 특정한 맥락에서 다르마는 ‘타고난 위치와 인생의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다르마는 카스트에 따라 개인별로 다르며, 나이와 상황에 따라서도 변한다. 성직자에게 올바른 행동이 직공에게도 올바른 것은 아니다. 고대에는 일종의 역차별로 범죄에 대한 형벌이 카스트에 따라 정해졌다. 브라만 계급의 도둑은 낮은 카스트의 도둑보다 여덟 배에 해당하는 벌을 받았다.

 

카르마와 다르마는 단지 고대의 철학적 개념에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지극히 세속적인 행동들을 설명할 때도 자유롭게 이용된다. 정치인들은 항상 자신의 주장을 한 차원 높게 격상시키기 위해 그 용어를 이용한다. 또한 많은 영화 줄거리가 과거 카르마의 결과로 인한 우연의 일치에 의존하며, 영화 속 영웅들은 다르마를 완수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행동한다. 다르마는 많은 인도인들이 우주의 섭리라고 인식하는 방식이다.

 

 

04.jpg

인도에는 물이 귀한 지역이 많다. 사막의 도시 자이살메르에서는 동네마다 우물을 파놓고 식수 문제를 해결한다. ⓒ Shutterstock

 

 

죽음에 대한 생각


힌두교의 세계관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으로 통하는 문일 뿐이며, 천국도 지옥도 없이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과정만이 존재한다. 내세의 보상이나 형벌 같은 것은 없으며, 무한하게 거듭되는 삶을 통해 가차 없는 카르마의 법칙이 펼쳐질 뿐이다. 이러한 사슬을 깨는 방법은 모크샤(moksha) 즉 해탈 또는 열반에 도달하는 것뿐이다. 힌두교도는 해탈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독단적이지 않다. 사람과 성격에 따라 다른 길을 따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요가와 명상을 행하고, 어떤 이들은 찬송과 의식을 통해 크리슈나 같은 신을 개인적으로 숭배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선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카르마 요가’라고 하는 일종의 자선 활동을 택할 수도 있다.

 

평범한 인도인들 역시 죽음을 해방으로 본다. 다음 번 가장무도회에 참석하기 전에, 영혼이 육신의 가면과 옷을 잠시 벗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긍정적인 사건이다. 죽음을 일컫는 단어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마디(Samadhi)는 최고의 정신적 경지에 오르는 것을 말하고, 모크샤(moksha)는 해방을 의미하며, 샨티(shanti)는 평화를, 카이발야(kaivalya)는 완전한 평정을, 파라마파다(paramapada)는 궁극적인 장소를 뜻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개인의 의무 중 하나다.


이 글을 쓴 기탄잘리 콜라나드(Gitanjali Kolanad)는 1954년에 태어나 인도와 캐나다에서 성장했으며 미국, 싱가포르, 독일 등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30년 이상 북미와 유럽, 아시아의 주요 도시에서 인도 전통 춤인 바라타나티암을 공연하고 가르쳐왔다. 그녀는 여행객으로서, 그리고 자원봉사자로서 인도 전역을 두루 여행했다. 언론인과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둔 그녀는 현재 토론토와 첸나이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매일 해낸다

$
0
0

0013.jpg

 

 

추운 겨울밤이었다. 집 밖에서 길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검은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언젠가의 이별이 무서웠고, 책임감은 무거웠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일찍 떠나보내는 것은 슬프지만 함께 살며 나누는 행복이 얼마나 커요. 언젠가 이별이 두려워서 시작도 하지 않는다면 아쉽지 않겠어요?”

 

고민 끝에 우리는 고양이의 가족이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까맣고 부숭부숭한 털이 먼지뭉치를 닮아서 이름은 ‘박먼지’가 되었다.

 

 

0006.jpg


 

생애 처음으로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불안했다. 영양부족으로 작고 연약한 먼지가 혹여 나의 실수로 잘못될까 겁이 났다. 다른 고양이에 비해 경계심이 많은 먼지는 하루 종일 책장 구석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위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먼지도 조금씩 다가왔다. 용기를 내어 무릎 위로 뛰어오르거나, 골골거리며 내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새벽 내내 심하게 울고, 피가 날 때까지 나를 물고 할퀴곤 했다. 혼을 내면 오히려 화를 내며 숨어버렸다. 그런 날은 이불에 오줌을 쌌다. 선반 위 물건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아래로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화분과 그릇은 남아나지를 않았다. 얄미운 마음에 소리를 치다가도, 어딘가 아프기라도 하면 걱정과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양이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매일 사료와 간식을 챙기고, 화장실은 물론 방바닥도 치워야 한다. 즐거운 놀이를 개발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니, 미리미리 돈도 모아둬야 한다.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캣스크래처(cat scratcher)와 캣그라스(Cat Grass) 준비도 잊으면 안 된다. 오랜 시간 집을 비우면 매우 신경 쓰이고 걱정 된다.

 

 

0014.jpg


 

아기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것뿐인데 나의 생활은 고양이를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매일 해낸다. 그것도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이상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다. 먼지와 살면서부터 세상의 온갖 고양이들이 눈에 밟힌다. 집에 찾아오는 길고양이들은 먼지의 친구이거나 가족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밥과 물을 챙기고, 상자 집을 만들어주는 건 내 일이 되었다. 유기 동물들의 실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동물의 권리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양이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동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가 내 삶에 들어왔을 뿐인데, 작은 변화로부터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0015.jpg


 

먼지는 나의 첫 고양이다. 먼지에게 나는 처음 만난 사람이다. 우리는 닮기도 했지만, 대체로 많이 다르다. 서로 다른 생명끼리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맞추는 과정이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먼지와 처음 만난 이후 그와 함께 나누는 경험이 소중했다. 우리 사이에 쌓이는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그림일기를 쓰고 그렸다. 하루하루 우리가 나누는 경험을 일기에 적고 보니 그 안에는 먼지와 내가 있고, 우리가 겪은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 담겼다. 그 글과 기록은 내 개인의 기록에서 벗어나 『내 고양이 박먼지』 라는 책으로 다시 또 변화했다. 우리의 성장과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먼지와 나의 그림일기도 현재진행형이다.




 

 

내 고양이 박먼지박정은 저 | 혜화1117
일상을 통해 이질적인 생명의 만남은 키우고 키워주는, 일방적인 보호와 피보호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존재와 특성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나아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Viewing all 2148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script src="https://jsc.adskeeper.com/r/s/rssing.com.1596347.js" async> </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