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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그 문화 이야기 - 핀란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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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숲의 사람들’이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도 시골에 ‘뫼키’라고 부르는 여름 별장을 두고 대부분의 휴일을 이곳에 와서 조용하게 보내는 편이다. 물론 사우나는 꼭 있다. ⓒ Shutterstock

 

 

인구 500만이 만들어가는 행복의 나라, ‘진짜 일류’ 핀란드를 만나다

 

한 나라에 대한 첫인상은 평생 남는 법이다. 핀란드에 대한 나의 첫인상과 경험도 그렇다. 핀란드에 첫발을 디뎠을 때는 내가 이 나라와 이곳 사람들의 가치관을 이토록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핀란드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나의 시각과, 우리가 어떻게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어쩌면 여러분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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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란드에서 순록 사파리 여행의 종착지는 대개 이런 장소다. 여름에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겨울에는 그 반대인 ‘극야’를 체험할 수 있다. 신비한 오로라 현상도 1년에 200회는 볼 수 있다. ⓒ Shutterstock

 

 

모든 계절을 위한 땅

 

핀란드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두들 얘기는 들어봤지만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콕 짚어 가리킬 수 있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은 핀란드를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연관 지으며 “이 위쪽 어디쯤인데”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속하지 않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 이렇게 3국을 포함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핀란드는 간혹 발트3국 중 하나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발트3국은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지칭한다. 핀란드는 발트 해에 면하기는 했지만 국토 전체가 북위 60도 위쪽에 있으며 다른 이웃 국가들과도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런 고립이 핀란드라는 나라를 특징지었다. 핀란드인은 독특하다. 그들은 스칸디나비아 사람도 아니고 슬라브 민족도 아니다. 그들의 언어는 다른 유럽 언어들처럼 인도유럽 어족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또한 기후는 음산하고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사람들은 핀란드에 갈 때 뚜렷한 이유를 가지고 간다. 그곳이 여행 중 잠시 머물기에 편안한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결코 어딘가로 통하는 주요 길목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에 일본 사람들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가 다른 유럽 국가로 가는 도중에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장소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또한 요즘 유럽에서 러시아 내륙으로 가는 가장 빠른 운송로는 철도나 도로로 핀란드 남부를 통과하는 것이다. 국경을 한 번만 넘으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대단히 아름다운 경관을 지녔지만 이 나라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전통이 핀란드를 흥미롭게 만든다. 현대적인 모든 것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핀란드를 놀라운 곳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는 핀란드를 감당하기 힘든 곳으로 만든다. 또한 동서양에서 받은 영향이 헬싱키를 ‘북유럽의 이스탄불’로 만든다고도 말할 수 있다. 발트 해에 자리 잡은 수도 헬싱키는 유럽과 스칸디나비아와 러시아 문화가 흥미롭게 혼합되어 있다. 핀란드는 기본적으로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2개의 공식 언어를 사용한다. 그와 달리 핀란드 북쪽 라플란드 지역에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진 6500명의 사미족(라프족)이 살고 있다.


핀란드를 묘사할 때 내가 항상 사용하는 두 단어는 모순과 대조다. 바로 다음과 같은 상반된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ㆍ 6월과 7월에 여름 숲의 고요함을 방해하는 모기와 그 밖의 성가신 해충들
ㆍ시골의 절대적인 고요와 정적과 대조되는 도시의 밤 문화
ㆍ 한겨울 눈 덮인 숲의 경이로운 고요함과 대조를 이루는 한여름 긴 ‘백야’의 발광
ㆍ 현대 문물과 오랜 전통
ㆍ 겨울의 완전한 ‘화이트아웃’과 대비되는 파랗고 파란 봄 하늘
ㆍ 라플란드의 전통 대 대도시 헬싱키
ㆍ 특별한 개입 없이 잘 관리되고 있는 광대한 숲
ㆍ 철저히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질서 있게 관리되고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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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중앙역의 상징이 된 등불을 든 조각상. 철도뿐 아니라 많은 버스와 지하철도 연결되기 때문에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 ⓒ Shutterstock

 

 

세계 상위권


핀란드는 겨울이 길고 어둡고 추우며,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핀란드 사람들의 전반적인 행복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2015년 유엔 산하 자문기관인 ‘지속가능한 발전해법 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핀란드는 세계 6위를 기록했다(스위스가 1위, 덴마크 3위, 미국 15위, 프랑스 29위, 한국 47위, 중국 84위. 최하위는 토고로 158위였다). 2012년부터 매년 발표해온 이 보고서에서 핀란드는 항상 상위를 유지했다.

 

핀란드가 최고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이 행복만은 아니다. 핀란드는 시민 자유의 옹호자가 되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 면에서 핀란드는 당당히 세계 1위다. 다른 상위권 국가로는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 있다. 프랑스는 38위, 한국은 60위였다. 또한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국가의 시민들이 경험하는 자유의 정도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도 핀란드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며,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삶의 질 조사에서도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함께 세계 5위를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교육 강국’으로도 명성이 높은 핀란드는 OECD가 실시하는 독해력과 수학 및 과학 능력의 유럽 표준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항상 1위를 놓치지 않는다.

 

1999년과 2007년에 핀란드 청소년은 스웨덴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건강하다고 평가되었다. 또한 경제창의력 지수에서 1~2위를 다투며, GDP 대비 연구개발비 지출에서 미국을 한참 앞섰다. 특허출원 성공은 4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핀란드는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환경지속성지수(ESI)에서 다른 나라들을 가뿐히 물리치며 당당히 1위를 했을 뿐 아니라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서도 매년 최상위를 기록한다. 핀란드는 또한 동물 질병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채택해 EU 국가 중에서도 유일하게 ‘무질병’ 상태를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핀란드의 1인당 올림픽 메달 개수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인구가 500만 명에 불과한 나라가 달성했다. 놀랍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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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절을 맞아 핀란드식 할로윈 복장을 한 소녀. ⓒ Shutterstock

 

 

핀란드인

 

핀란드인을 만나는 것은 스트레스로 지친 영혼에 아주 도움이 된다. 특히 돈과 지위와 과시적인 최신 ‘머스트 해브’ 아이템에 집착하는 성과주의적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전반적으로 핀란드 사람들은 이런 지위와 관련된 것들에 집착하지도, 남들보다 한 발 앞서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가식이 없고 따뜻하며, 친절하지만 고독을 좋아한다. 그래서 언뜻 무뚝뚝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천성적으로 애정이 많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사귀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량이 넓은 편이지만, 뒷공론을 좋아하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감정적인 사람은 불신하고 경멸한다. 과하게 자신감이 넘치거나 자기 의견을 앞세우는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린다. 핀란드인은 결코 떠벌이거나 자랑하거나 과시하지 않으며 그런 외국인을 보면 뒷걸음친다. 이 땅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외국인들뿐이다.

 

핀란드인은 많은 면에서 개인의 탐욕을 멀리해왔다. 탐욕과 과도함은 문화적 금기이며 사회는 공익을 추구한다. 그들은 자존심(자립심의 측면에서)이 강하고 깊이 뿌리내린 전통적 가치관과 건강한 풍자의식을 갖고 있다.

 

핀란드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동일성’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들은 군중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옷차림도 비슷하다. 물론 핀란드 사람들은 이런 일반화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런 특징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그들은 개인의 성취를 크게 추켜세우지 않는다. 생일과 결혼은 회사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지만 직업적인 성취나 시험 합격, 수상 따위는 숨겨두는 편이다. 그들의 문화는 노골적인 선전을 배척한다. 개인의 성취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자랑이나 과시로 생각하고, 겸손을 미덕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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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여성은 남성과 완전히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 사진은 마치 자동차 수리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알토 공대 여학생들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오월제에 전공마다 색깔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 참여하는 것이 이 학교의 전통이다. ⓒ Shutterstock

 

 

핀란드인은 오랫동안 해방을 위해 투쟁했고 독립을 이루자마자 생존 투쟁을 계속해야 했다. 이 용감한 나라는 자유를 얻기 위해 여러 차례 싸웠다. 이런 역사가 모든 핀란드인을 과단성 있고 강인한 사람들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오랜 역경을 딛고 살아남기 위한 내재적 복원력을 갖고 있다. 이런 핀란드적 특징을 ‘시수(sisu)’라고 하는데, 이 말은 배짱과 강인함, 용기, 활력, 완고함 등을 포함한다. 패배가 분명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시수를 가진 핀란드인은 완전히 패배할 때까지 용감하게 싸울 것이며 그러고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시수는 말하자면 핀란드인 특유의 강인한 독립성을 뜻하며 여기에서 자립심과 냉철한 실용주의가 나왔다. 시수의 진정한 요지는 뭔가를 끝까지 해내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할 필요가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하며, 무엇이건 미완으로 남겨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이다.

 

핀란드인은 스스로를 스칸디나비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러시아인의 피가 일부 섞여 있을 가능성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핀란드의 전통은 두 문화 모두에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매우 현대적이고 기술 지향적이고 ‘서구적’ 관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이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고 있다.


이 글을 쓴 데보라 스왈로우(Deborah Swallow)는 문화간 의사소통 컨설턴트이자 강사로서 19개국을 넘나들며 민간ㆍ자원봉사ㆍ공공 부문(주로 해외 정부)에서 활동해왔다. 그녀는 전 세계 경영자들과 외교관을 대상으로 일하는데 ‘좋은 관리(Good Governance)’ 세미나를 준비해서 전달하고, 책임성과 투명성을 위한 체계를 개발하고, 기업을 상대로 세계화의 도전에 대한 연설을 한다. 1999년 업계 최고의 상인 영국 국가훈련상(UK National Training Award)을 수상했다. 그녀는 핀란드에 가게 된 것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책임 있는 기업 솔루션이 성공의 원동력임을 굳게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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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늑대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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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청소년은 누구인가요? 구체적으로 몇 살부터 몇 살까지인가요? 우리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 노인 같은 말을 일상적으로 씁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애매한 말이에요. 어린이는 몇 살까지인가요? 언제부터 성인인가요? 옛날에는 60살이 되면 오래 살았다고 잔치를 했지만, 이제는 70세가 되어도 ‘노인’이란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삶의 단계를 구분하기 위해 쓰는 말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청소년’이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모든 사람이 가능한 최고의 건강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에서는 청소년을 10-19세로 정의합니다. UN에서는 15-24세라고 정의하지요. 이런 정의는 한 나라 안에서도 다를 수 있습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어요. 우리나라의 「청소년기본법」에서는 청소년을 9세에서 24세까지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 민법, 소년법상 청소년은 19세 미만인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동복지법은 18세 미만, 근로기준법에서는 15-18세 미만, 형법에서는 14세 미만입니다. 혼란스럽지요?

 

청소년의 정의가 이렇게 다양한 것은 목표로 삼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을 목표로 하다 보니 생물학적인 요소, 즉 몸을 중시했습니다. ‘사춘기’에 초점을 맞춘 거지요. UN에서는 정책에 필요한 통계를 내기 위해 사회적인 요소를 중시했습니다. 의무교육이 끝나는 시점부터 직업을 얻어 독립하는 시점까지를 청소년으로 본 거죠. ‘부모에게 반쯤 의존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비슷한 경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의학에서는 어떻게 정의할까요? 보통 만 나이로 9세부터 24세까지를 청소년으로 봅니다. 「청소년기본법」에 맞춘 게 아니라 건강이란 측면에서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중고생들은 즉시 반발할 겁니다. ‘엥? 9살이면 초딩인데? 내가 그 올챙이들과 같다고? 그건 싫은데?’’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청소년기의 가장 큰 특징은 변화입니다. 여기서 변화란 두 가지입니다. 신체가 변하고, 사회 역할이 변합니다. 물론 사람은 일생 동안 변하지요. 하지만 존재하지 않던 사람이 태어나는 ‘출생’을 빼고는 청소년기만큼 많이 변하는 시기는 없습니다. 신체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지지요. 그래서 청소년기가 끝나면 어엿한 어른으로서 자기 몫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변하는 건 항상 아주 힘든 일입니다. 늑대인간 영화를 본 적이 있나요?(뱀파이어 영화도 괜찮아요.) 멀쩡한 사람이 보름달만 보면 늑대로 변하잖아요. 그때 그냥 뿅!하고 변하던가요? 아니지요.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린 채 몹시 떨다가 목을 움켜 잡고, 가슴을 쥐어뜯고, 옷을 찢고 난리를 치잖아요. 청소년이 딱 그런 형편에 처한 겁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채 눈을 반짝이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던 아이가 온몸에 털이 돋아나거나 가슴이 나오고,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하고, 술을 마시고, 월급을 받고, 자기 집을 얻어 살고, 사랑을 하고, 자식을 얻는다는 건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것만큼이나 큰 변화 아닌가요? 그 과정이 쉬울 리 없지요.

 

이렇게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그 유명한 사춘기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사춘기란 성적(性的)으로 성숙해져 후손을 만들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환경이 좋아지고, 영양 상태가 향상되면서 아이들이 점점 일찍 성숙해집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거죠. 여자라면 보통 9-11세, 남자는 이보다 늦어서 10-13세 정도에 사춘기가 시작됩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그 전과 전혀 다른 일들이 펼쳐집니다. 일단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2차 성징이라고 하지요. 여자는 가슴이 나오고, 피하지방이 늘어나면서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골반이 넓어집니다. 남자는 근육이 발달하고, 목소리가 낮아지고, 털이 돋아나지요. (늑대 맞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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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더 중요한 것은 뇌의 변화입니다. 생애 초반에 급격히 자란 이후 몇 년간 비교적 느리게 성숙하던 뇌에서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집니다. 뇌세포끼리 새로운 연결이 늘어나고, 별로 쓰지 않는 경로는 과감히 가지치기에 들어갑니다. 사실상 뇌는 사춘기 내내 혁명과 전쟁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감정과 정서는 모두 뇌에서 생기는 일입니다. 그러니 사춘기 청소년이 불안과 우울에 사로잡히고, 감정이 급격히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뇌가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기기도 쉽습니다. 한편 신체적 능력이 발달하고, 정신적 영역이 넓어지고, 이전에 비해 자율성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한계를 자꾸 시험해보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은 한참 뒤에 성숙합니다. 그래서 충동적인 성향이 늘어납니다. 사고를 당하거나, 일탈 행동을 저지르거나, 나쁜 습관이 들기 쉬운 거죠. 이 모든 일의 시작은 9-10세 정도입니다. 그러니 9세부터 청소년으로 생각하는 건 말이 되는 거지요.

 

‘음… 뭐, 좋아요, 9-10세부터 사춘기가 시작된다는 건 인정한다 칩시다. 그래도 18세, 심지어 20세가 넘은 사람을 청소년이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요? 군대도 갔다 왔는데…’ 그렇죠.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청소년과 구분해서 ‘젊은 성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 ‘청소년기’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달려있습니다. 누가 깃발을 들고 서 있다가 ‘자, 여기부터 청소년기고, 여기부터 성인이다’라고 말해주지는 않잖아요. 청소년기의 시작을 사춘기라고 했지요? 그럼 끝은 어딘가요? 그건 교육을 마치고, 직업을 갖고, 혼자 살아갈 능력을 갖추고, 배우자를 만나 부모가 되는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청소년기는 옛날보다 빨리 시작될뿐더러 더 늦게까지 지속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인류는 사춘기가 시작되면 평균 2년 후에 자식을 낳았다고 합니다. 청소년기가 2년에 불과했던 거죠.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 심지어 중학교만 나와 직업을 잡고, 어느 정도 안정되면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대학은 물론, 대학원에 가는 사람도 많죠. 직업을 갖고 가족을 꾸리는 연령도 갈수록 늦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기에 겪는 건강문제가 연장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사고, 위험한 성관계, 술 담배나 게임 중독, 컴퓨터와 휴대폰 과용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의 증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20대 중반까지 청소년이라고 묶어 생각하는 데는 또 한가지 매우 중요한 생물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15-16세가 되면 뇌발달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24-25세까지도 발달이 끝나지 않고 계속 변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보고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능력, 동료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능력, 행동의 결과를 생각해보고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 등이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러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심지어 결혼을 했다고 해도 20대 중반까지는 자신이 아직 변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존심 상할 필요는 없어요. 누구나 마찬가지니까요. 자신을 정확히 아는 건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도움이 됩니다. 자신을 정확히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곧 훌륭한 인간이 된다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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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먼지떨이가 있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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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cave.co.kr

 


총채로 청소를 한다는 말의 행간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먼지가 쌓일 틈 없이 자주 청소를 한다는 거고 둘째,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태도 대신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환경 보호를 실천한다는 점 셋째, 집 안 물건들에 애정이 있다는 뜻이다.

 

먼저, 먼지떨이는 기본적으로 먼지가 많이 쌓인 환경에서는 비합리적인 청소 도구이자 방식이다. 타조털이나 양모나, 극세사나 나일론이나 모두 정전기 방식을 사용한다고 마케팅을 하지만 품을 수 있는 먼지의 양은 솔직히 한정적이다. 주된 역할은 물건에서 먼지를 탈락시키는 것인데, 그 많은 먼지를 바닥이나 공기 중으로 날린다는 건 결국 일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합리한 청소 방식, 점차 도태되고 있는 청소 도구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먼지가 쌓일 틈 없이 자주 털어낸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짧은 시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청소를 할 수 있고, 물건의 표면 보호, 구석구석 낀 먼지를 털어내는 데 있어 여전히 매우 유용한 청소 도구다.

 

청소는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거다. 그런데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써가며 내 눈앞만 깨끗이 하겠다는 발상은 잠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최근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청소 인구가 늘어나면서 청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연예인의 일상을 전시하는 관찰형 예능도 이런 풍조에 분명 한몫을 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비즈니스맨들은 예전 주부들에겐 그저 집안일이거나 가장 일상적인 살림 행위를 쇼핑의 영역으로 바꿨다. 청소 도구는 이제 필수 혼수가 된 시대다. 인터넷에는 온갖 바이럴 광고가 넘쳐나고 맘카페 게시판을 보다보면 로봇청소기, 다이슨, 물걸레청소기 3종 세트는 무조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마치 슈팅게임을 할 때 총을 고르듯이 도구를 고르게 되고, 익숙해지면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게 부추긴다.

 

문제는 편리함 너머에 도사린 불편한 진실이다. 내 몸을 움직여 간단히 쓸고 닦아도 될 일에도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하길 권장하고 습관을 유도한다. 나뭇가지 하나 다듬고자 하는데 미네소타 럼버잭의 전기톱을 권하는 그런 형국이다. 그런데 총채는 탄소 배출이 아예 없고, 빗질처럼 힘이 들지 않으면서, 효율적이다. 완벽한 아날로그이자 올드스쿨이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취향인 슬로우 라이프에 걸맞다.

 

문명의 이기가 발전하면서 관련 마케팅은 청소라는 행위가 갖는 지위와 가치를 애써 외면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청소의 가치는 단지 ‘클린업’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집 안 곳곳에 놓인 물건들과 눈 맞춤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주목적은 분명 깨끗이 하기 위함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관심 갖기 어려운 집 안 구석구석과의 눈 맞춤이란 중요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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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thastewart.com


 

단순히 쓸고 닦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둘러보고 정비하고 누리는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알아서 청소를 해놓는 콘셉트의 로봇 청소기 예찬론자들과는 여전히 좁혀질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총채를 활용해 먼지 청소를 한다. 스탠드 갓, 거울, 책장, 접시 수납장은 물론이고, 책장과 찬넬 선반에 올려둔 플레이모빌과 레고에 쌓인 생활 먼지를 털어내는데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꾸준히 먼지를 털어주면 집 안에서 눌러 붙거나 손가락에 먼지가 묻어나는 불쾌한 상황을 맞이할 일이 없다. 시간이 많이 들거나 땀이 흐를 만한 일도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매일 대청소를 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그러니까 청소를 너무 하고 싶은데 시간상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할 때, 먼지 청소를 적극 추천한다. 바닥 청소와 하나의 묶음으로 프로그램을 짜면 청소를 시작하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분리해놓으면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 청소를 했다는 성취감을 누릴 수 있다.

 

먼지떨이, 즉 총채는 소재부터 제조사까지 매우 다양하다. 가격, 내구성, 퍼포먼스를 모두 고려해봐야겠지만 가능한 한번 살 때 저렴한 중국산 혹은 국산 제품보다는 인정받은 독일 레데커나 스웨덴의 스마트 사의 제품을 사길 권한다. 그 이유는 풍성함이나 깃털 자체의 질이 차이도 나고, 무엇보다 타조털이나 염소털 총채의 경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사용 횟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레데커의 경우 2년에서 3년 정도) 털이 숭텅숭텅 빠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는 게 더 청소거리를 만드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극세사나 나일론처럼 인공합성 물질로 만든 알록달록한 총채는 이런 문제에서 보다 자유롭긴 하지만 신당을 하거나 디스코 문화에 대한 별다른 추억이 없다면 쓰지 않는 편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레 전한다.

 

만약 총채를 갖추기로 마음먹었다면 핸들 사이즈가 기본 30센티미터 이상 되는 기본형 하나와 플레이모빌 정도의 작은 소품들을 구석구석 청소하기에 적당한 10센티미터 내외의 작은 사이즈 총채를 하나 더 함께 갖추길 권한다. 레데커의 제품 중에 ‘스킨 릴렉서’를 추천하는데, 피부 마사지나 신생아의 피부 자극용으로 개발된 모델로 타조털 중 가장 부드러운 가슴털로 만들어 가볍고 부들부들하다. 참고로 극세사 총채보다 타조털 핸드메이드 총채의 퍼포먼스가 결코 뛰어나진 않다. 다만 고풍스런 맛에 쓴다. 앞서 말했듯 청소는 단순히 해야 할 집안일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결국 일상 공간을 가꿔나기기 위함이니 청소하는 순간과 도구의 품격도 당연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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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자, 디지털 노마드의 도시 ‘치앙마이’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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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생일을 며칠 앞두고 태국 치앙마이로 떠났다. 짧은 여행 대신 해외 여러 지역에서 단기 체류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선 6주간의 실험을 시작한 것인데, 떠나기 전에 주위에 대고 제일 많이 한 말은 이거다.

 

에… 나는 20년을 꼬박 일했으며, 되게 고생했고 엄청나게 수고했으며, 치앙마이에 가서도 무작정 노는 게 아니라 뭔가 콘텐츠를 만들 것이며, 당연히 노트북이니 뭐니 잔뜩 챙겨가서 일을 할 것이며 어쩌고저쩌고….

 

남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구구절절이다. 결국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나 치앙마이 가서 좀 놀아야겠다’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놀러 가는 거 아냐, 정말이야 라는 변명. 아니, 내가 좀 놀겠다는데 그게 무슨 잘못입니까. 남 멱살 잡고 돈 달라고 한 적도 없고 말이죠.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 변명은 남에게 한 것 같지만 실은 나 자신에게 한 것이다. 정체불명의 죄책감 때문에 쭈뼛쭈뼛, 우물쭈물 내뱉는 변명.

 

어디 거창하게 먼 곳으로 긴 여행을 가는 게 아니어도 그렇다. 평일 낮에 일 대신 다른 걸 하려고 할 때마다 괜히 남의 눈치, 나의 눈치를 보며 변명한다. 대체 뭐가 그리 송구한지, 재미나게 놀면서도 재밌다는 티를 내면 욕먹을까 싶어 자체 검열하며 찌그러진다. 프리랜서로서, 1인 기업의 사장(겸 총무 겸 청소 담당)으로서 내 시간을 직접 조율해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바쁜 업무 사이 적절히 휴식을 취하는 건 꼭 필요한데도 그렇다. 왜 이리 쭈구리야?

 

치앙마이에 도착해 예약해둔 숙소에다 짐을 풀고, 집 안을 구석구석 살피며 점검한다. 어디 뭐 부족한 건 없는지 하나둘 메모해 근처 쇼핑몰로 장을 보러 간다. 화장솜과 면봉, 욕실 슬리퍼, 생수와 탄산수 등 사소하지만 필요한 것들을 잔뜩 사와 숙소 최적화 작업을 한다. 아, 치실도 사야지.

 

한동안 이곳이 내 집이구나 하며 착착 정리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싹 편해지고 기분도 확 좋아져야 하는데, 에엥? 오히려 불안함과 우울감이 사정없이 밀려든다. 이제부터 어떡하지? 뭘 해야 하지? 귀에서 심장 고동 소리가 쿵쿵 울린다. 아니, 어쩌긴 뭘 어쩌고 하긴 또 뭘 합니까. 그냥 즐기면 되잖아요. 태국씩이나 왔는데, 치앙마이씩이나 왔는데! 남들은 못가서 안달인데!!

 

하지만 남 일이라면 나도 그렇게 이야기하련만, 정작 스스로에겐 그 말을 해주질 못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어. 뭔가를 해내야 해. 재미난 콘텐츠를 뽑아야 해.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이 단기 체류의 가성비를 높여야 한다구! 그렇게 생각하니 6주가 갑자기 짧게 느껴진다. 헉, 남은 날짜가 겨우 이것뿐이야? 큰일 났어, 째깍째깍! 오늘 자고 나면 하루가 또 줄어드네! 째깍째깍! 당장 내일은 뭐 하지? 째깍째깍!

 

라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카톡 메시지로 전하며 한숨을 푹푹 쉬니 친구가 대답했다.

 

“네 인생에서 그 6주쯤 마음대로 쓴다고 큰일 나지 않아.”

 

그 말에 응? 하며 눈이 떠졌다. 저, 정말?

 

계산하기 편하게 한 달이라고 치자. 길기도 짧기도 한 시간이다. 어디 보자, 일 년이 열두 달이니 우리가 여든 살까지 산다고 치면 총 960달. 한 달이 960개나 있는 셈이다. 꽤 많은데? 이 중에서 하나쯤은 내 마음대로 써도 되겠는데? 주 단위로 계산해볼까? 일 년은 52주, 여든 살까지 산다면 4,160주. 대단한 숫자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중 하나쯤 쓱 뽑아서 마음대로 자유롭게 쓸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한다. 놀면서도 계속 그다음을 생각하고 걱정한다. 휴가 이후를 생각하느라 벌써 화가 나 있고(출근하기 싫어어!) 벌써 겁이 나 있다(카드값 어떡하지?). 대체 우리, 왜 이런 겁니까.

 

그래, 놀자 놀아. 드디어 마음을 굳혔지만 계속 안달복달이다. 어떻게 놀아야 제대로 놀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남의 평가에 여전히 연연한다. 더 알차게 시간을 보내야 해. 치앙마이 구석구석 샅샅이 훑으며 숨어 있는 곳을 다 가봐야 해. 그리고 리뷰도 남겨야 하고, 블로그와 SNS에도 사진을 오조 오억 장 올려야 해… 라며 마음이 바쁘다. 아, 정말 너무 바쁘다.

 

그동안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여행 중에도 항상 빡빡했다. 그래서 제한된 시간 내에 어떻게든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야 했고,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어야 했다. 인증샷도 물론 찍어야지. 패키지여행은 으레 “고객님들, 내일은 새벽 여섯 시에 로비에서 뵐게요”라는 인사로 시작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달려야 알찬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자유여행도 다르지 않은데, 인터넷을 박박 뒤져 정보를 닥닥 긁은 다음 유명한 장소와 맛집 리스트를 쭉 뽑아야 한다. 그리고 게임 퀘스트를 달성하듯 하나씩 지워간다. 시간이 없어, 계속 달려! 달리는 건 익숙하다. 어릴 적부터 채찍을 맞으며 달렸다. 학교에서도 달렸고 사회에서도 달렸다. 그래야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남의 인정을 받으니까.

 

그동안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2~3주 사이의 여행을 주로 다녔다. 모두 알찬 여행이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열심히 준비했고, 열심히 돌아다녔고, 돌아와선 또 엄청나게 열심히 정리해서 여행 경비 본전 뽑겠다는 각오로 콘텐츠를 뽑아냈다. 내가 생각해도 일을 참 잘했단 말이지(코를 쓱 비빈다).

 

하지만 그게 진짜 여행이었냐고, 휴가였냐고, 휴식이었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나의 여행은 빡셌어요, 이 한마디뿐이다. 그래. 지금 내가 넘치는 시간을 앞에 두고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어쩌면 너무 낯설어서야. 심지어 이런 시간이 처음이어서야.

 

치앙마이에서 나는 인생 최초의 여행을, 휴가를, 휴식을 즐기기로 했다. 막을 올렸고, 시동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예희입니다.
작년 딱 이맘때 채널예스에 <신예희의 프리랜서 생존기>를 연재했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새로운 칼럼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셀프 안식년을 선언하고 짐을 꾸려 치앙마이와 포르투, 마드리드를 거쳐 이스탄불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행이자 생활, 생활이자 여행을 하며 ‘혼자’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때로는 혼자라 한없이 자유롭고, 때로는 한없이 외롭습니다. 이 셀프 안식년을 거치며 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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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닫혔지만 새벽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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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아이가 돌을 지날 무렵부터 점심을 혼자 먹었다. 여의도의 점심엔 온갖 빌딩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서 식당이란 식당마다 좌르르 늘어선다. 나는 그 대열에 끼지 않고 일하던 그대로 앉아 책을 본다. 날이 좋으면 공원으로 간다. 사람들이 카페로 다 넘어갔을 즈음 식당에 간다. 자리도 많고 일하시는 분들도 여유가 있다. 국물은 넉넉하고 반찬 인심도 후하다. 붐비는 시간에 2인이나 4인 테이블을 혼자 차지해서 눈총 받을 필요 없다. 불과 40-50분이지만 내 시간을 가지고, 밥도 쫓기듯 먹지 않으니 좋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무리 빨라도 저녁 7시다. 씻고, 밥 먹고, 설거지 하고, 빨래 널거나 쓰레기라도 좀 내놓으면 금방 9시다. 아이와 블록놀이 하고 책 읽어주면 잘 시간이다. 이를 닦아주고 기저귀를 간 뒤 토끼 이불을 깔아준다. 불 끄고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 아이가 아내와 내 사이를 몇 차례 뒹굴면 잠이 내린다. 나는 늘 아이를 재우고 난 후에 읽을 책을 정해놓지만 실행된 적은 거의 없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내가 먼저 곯아떨어진다.

 

아이가 9시 전에 잠들던 돌 무렵까지, 밤은 아내와 나란히 누워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눈에 비친 서로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아이가 고구마 미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똥은 몇 번을 싸고 색깔은 어땠는지 그리고 세상의 떠들썩한 화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지 이야기했다.

 

각자 책 속으로 빠지기도 했다. 한 사람의 하품이 잦아질 때까지 책을 읽다 불을 껐다. 며칠 뒤엔 머리맡의 책을 서로 바꿔서 읽었다. 어느 날은 한참 남은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맛집이나 예쁜 까페를 찾거나 바다 건너 말 안 통하는 도시의 길을 익혔다. 그 도시에 내려앉은 밤과 밤이 걷힌 새벽의 이미지는 때로 꿈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우리의 밤이 우리를 회복시키고 길러냈다. 하지만 이제, 밤을 차지한 것은 다른 종류의 행복이다.

 

혼밥을 시작한 건 이런 연유에서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워 속삭이는 친밀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지만, 먼저 자리잡고 있던 행복과 공존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일상을 조정해 밤을 대신할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회사에선 혼밥을 시작했고, 아내와는 서로 개인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한 사람이 아이를 재우면 한 사람이 카페로 나갔다. 주말에도 조금씩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책을 읽거나 세상의 이슈에 대해 생각하거나 우리의 일상을 일기로 남긴다. 밀린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우리는 긴밀히 협력하며 일상을 조정해갔다.

 

덕분에 아이가 있어서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의 만족도는 높고, 아이와의 애착도 잘 형성된 것 같다. 아이와 있는 시간 그리고 우리 각자의 시간을 밀도 높게 보내다 보니 집안일에 구멍이 좀 나기는 한다. 한 번씩 몰아서 메울 정도의 구멍이니 별 문제는 아니다.

 

먼 미래를 위해 오늘의 근면을 실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도 나 자신을 보듬고 기르는 일에 소홀하고 싶진 않다. 짧은 시간들이라도 최대한 이어 붙여 바지런하게 활용하고 싶다.

 

현역 시내버스 기사인 허혁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를 하루 18시간 운전하며 썼다. 시간이 없어 “부리나케 써놓고 생활 속에서 퇴고했”다 한다. 일상의 노동에 대한 관찰이 세심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가 단단하며, 유머 섞인 글맛이 좋았다. ‘부리나케’ 보내는 시간을 쌓아서 나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다행히 요즘은 새벽에 깨는 루틴이 정착되었다. 6시쯤 집을 나서 회사 앞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출근 지문을 찍기까지 2시간 가까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가 잠든 새벽을 쌓아 어딘가로 조금씩 나아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아빠는 너로 인해 자랐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도 자랐다고 언젠가 말해줄 수 있길 소망한다. 밤은 닫혔지만, 새벽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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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다리는 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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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 앉아 있다. 머리를 잘라주던 여성이 머리카락의 잘라진 상태를 확인하느라 빗질을 하면서 묻는다. “이쪽이시죠?” 머리를 빗을 때의 평소 방향을 저렇게 묻기도 하는구나. 그 미용실에 세 번을 더 갔는데 그때마다 그녀가 묻는다. “이쪽이시죠?” 여러 번 나는 다른 쪽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걸 참는다. 미용실에서 나와 차가 안 다니는 길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그냥 건너려다가도 참는다.

 

평소 존경하는 신부님과 구례 화엄사엘 갔다. 예상하지 못한 밝음이 넘치는 화사한 봄날이었다. 그곳에서 여러 스님들과 함께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종교적으로 무엇도 따르지 않는 입장임에도 모든 것들이 넘치는 과분한 시간이어서 그랬을까. 벚꽃 아래로 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나는 나에게 가만히 물었다. “이쪽인가요? …어느 쪽입니까?”

 

선택해야 할 순간에, 막상 선택보다는 망설이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는 것이 사는 일의 속성이겠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망설이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무조건 선택하고 나서 후회할 때 후회하더라도 왠지 그것이 살면서 뭔가 밀고 나가는 기분이 들어서라고 해야 할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뭘 먹어야 할지 특별한 것을 먹어야 할지를 망설여야 하는 시점 앞에서 나는 어떻게든 정하는 일을 먼저 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뭐든 저지르고 마는 유형의 사람이 되겠다고 입장을 정했다 해서 나쁜 일만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이 길을 가야 하나, 저 길을 가야 하나. 이 길을 가면 금방 갈 거 같은데 이 길은 자신이 없다. 저 길을 가면 멀리 돌아서 가는 기분이 들지만 숙명처럼 그 지도를 따라야 할 때도 있다. 얼마 전 새 사무실에 손님들을 초대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근처 식당을 가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직접 요리를 하자니 사람 수가 많아 음식을 주문하기로 했다. 한 요리사가 제시한 두 가지의 메뉴 앞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런데 살짝 고민인 것이 나로선 그런 맞춤형 음식을 준비하는 자리가 처음이고, 나 혼자만 먹는 것이 아닌데다, 더군다나 그날의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도통 예상할 길이 없음인 거다. 이럴 땐 “알아서 해주세요.”가 정답인 것이 그 자리가 성공적이어야 얼마나 성공적이고 안 좋아봤자 얼마나 안 좋을까 하는 데 있는 것.

 

그냥저냥 만나는 사이도 있는데 한 사람만 감정의 비중이 과하다면 그 관계는 재미없는 쪽으로 흐른다. 그 사람은 꼼짝도 않는데 나만 열을 내고 화를 내면 내가 괴물이 된다. 그 사람은 나에게 1도 관심이 없는데 내가 그 사람을 1000을 사랑할 때도 나는 괴물이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반대 방향으로 나를 잡아끌어낼 수 있겠는가. 나는 오래전부터 쓰는 로션이 있는데 누군가 최고라며 다른 로션을 선물한다. 나는 집에서 자는 것보다는 바깥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데 이제는 그러지 말고 집에 정이 가게끔 하는 요소를 들이란다. 그렇다고 그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의식하지 않는 동안에도 우리는 선택한다. 둘 중의 하나. 선택을 하면서도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사실조차 의식 못하는 상태에 놓인다. 그전에도 그랬을까. 200년 전에 태어났더라도 이토록 선택해야 할 일들이 즐비했을까. 자잘한 것이든 커다란 것이든 선택은 행복에 관여한다. 행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는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은 ‘싸움’의 다른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둘 중의 하나. 혼자가 좋을까, 둘이서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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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 아닌 혼자 바에 가고, 혼자 극장에 가는 것. 혼자 여행을 하고 혼자의 시간을 독차지하는 것. 그 선택은 무엇으로 떠밀려서 하는 행동이 아니며 고통스러운 잠행도 아니다. 그렇게 혼자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순간에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싶어지고, 그 작은 마주침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잠깐 괜찮은 상태에 놓이는 것 역시도 예견된 선택일 테니.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누구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인가, 아닌가. 외로움을 견디는 사람인가, 외로우면 누굴 찾고 마는 사람인가. 뭘 잘 두는 사람인가, 뭘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늘 헤매는 사람인가. 닭발 같은 것을 먹을 때 비닐장갑을 왼손에 끼는 사람인가, 오른손에 끼는 사람인가.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하고 다녀도 괜찮은 사람인가, 금방이라도 죽을 듯 분해서 못 참는 사람인가. 얼굴에 나타나는 사람인가, 얼굴 안쪽에 숨기는 사람인가. 하지만 우린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되었다. 선택의 무수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을. 별 거 아닌 그렇고 그런 취향을 가진 ‘나’라는 사람을.

 

사랑이 그랬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사랑만 있는 줄 알았다. 사랑이란 건 히말라야만큼 크니까. 사랑이 나를 활활 살게 하니까. 사랑이 끝나고서야 사랑이 아닌 다른 게 있는 걸 알았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죽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푸드덕푸드덕 살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조각조각까지도 선택한다. 그때는 그랬을 리 없을 상황들을 이제는 꺼내보며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재배치한다. 나의 관점, 나의 고집으로 인해 별로 좋게 기억될 만한 사건이 아닌데도 시간이라는 망사를 통해 그때 일을 통과시켜 재편한다. 그렇게까지 안 좋은 기억일 리가 없다고 퉁치면서까지. 내가 편해지는 것이 되게끔 뭉쳐놓는 것, 그것도 기억이니까. 지나면 별 일 아닌 것이 된다. 지난 일들이 칙칙하고 아픈 일 투성이면 닥쳐올 날들도 칙칙하고 아픈 일 투성이일 거란 걸 모르지 않기에 알음알음 추억을 재배치하려는 것도 본능이 하는 일이다.

 

현실에서 캐낼 수 있는 어떤 것들은 조각조각만으로 힘이 된다. 일상 속에서 마음가짐 하나로 조작될 수 있는 선택지까지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힘의 재료로 쓰인다.

 

사랑할 때도 너의 등을 사랑하는 건 괜찮다. 너의 정면을 사랑하는 것보다 덜 눈부시고 덜 아프다. 비겁한 일이지만, 비겁하면 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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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은 언제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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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글을 쓰기 전에 한 가지. 요즘 ‘아들 성교육’이란 책이 인기입니다. 그 책에 “소변 참기 연습을 꾸준히 시키면 (성적) 욕구조절능력을 배우게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는 분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바로 책을 구해 읽어 보았습니다. 몇 권의 책처럼 유해한 내용으로 사람들을 호도하는 책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적은 원고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일찍부터 성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젠더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 등 좋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저자가 몸과 성(性)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것 같다는 점입니다.

 

소변 참기와 성적욕구조절을 연결시킨 것은 좀 심하게 황당합니다. 남근중심적 사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남자가 요도 길이가 길기 때문에 소변을 더 잘 참을 수 있다”는 말은 해부생리학을 조금만 알아도 잘못된 정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공식적인 정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1) 성적욕구와 소변 참는 건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2) 남자든 여자든 소변을 참으면 안 됩니다. 참을수록 조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조절을 못하게 됩니다. 성적욕구 얘기가 아니라 배뇨 얘깁니다. 제가 쓴 “오줌을 참으면 방광이 커질까?”(http://ch.yes24.com/Article/View/34318)라는 글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보다 중요한 내용입니다. 요즘은 너도나도 커피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요실금이 많거든요.

 

 

우리가 올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다른 데서 잘못 배운다

 

섹스는 거의 모든 문화에서 오랫동안 터부였습니다. 섹스에 관한 말이나 행동을 피하거나, 꺼리거나, 금지해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유교 문화권이라 훨씬 심했지요. 반드시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일은 그렇게 된 내력과 사정이 있으니까요. 성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다고 부모들을 비난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하니 누구나 얼떨떨하고 혼란스럽지요. 분명치 않은 상황 속에서 자녀를 보호하려다 보니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때로는 강요하듯 행동하는 겁니다. 확실한 건 옛날에는 그렇게도 잘 살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고, 성적 자극이 넘쳐납니다. 돈이 최고인 세상이 돼버린 탓에 청소년도 손만 뻗으면 성적 쾌락을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이건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옳은 걸까요, 그른 걸까요? 그런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대응하는 게 먼저입니다. 모든 게 개방되어 있는데 감추려고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위험이 높아집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섹스는 왜 그렇게 강력한 금기와 결합되었을까요? 섹스 자체가 아주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과 후손을 남기는 것입니다. 계속 살아가려면 뭔가를 먹어야 하고(식욕), 후손을 남기려면 섹스를 해야 합니다(성욕). 인간과 가축을 제외한 동물들에게 먹이를 구한다는 건 무척 어렵고 피곤한 일입니다. 하루 종일 그 일에만 골몰하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뭔가를 먹는 것보다 편안히 쉬거나 놀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편안히 쉬다가 굶어 죽겠지요. 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쉬고 싶은 욕구가 성욕보다 강하다면 후손이 태어날 일이 없을 테지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자연은 식욕과 성욕을 가장 강력한 욕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동물들은 식욕과 성욕을 채우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급하면 자식을 잡아먹고, 동료를 해칩니다. 터부, 즉 금기가 없다면 우리도 비슷할 겁니다. 그래서 아주 강력한 금기가 생긴 거지요.

 

문제는 금기가 너무 강력하다 보니 입에 올리기조차 불편해져 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기는 배꼽에서 나온다는 둥, 아빠 엄마가 손을 꼭 잡고 잤더니 네가 태어났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나온 거지요. 너무 오래 이렇게 살다 보니 결혼한 사람도 섹스와 관련된 지식이 부족한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어른도 지식이 부족한데 자녀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지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개방된 사회에서는 성적 자극이 넘쳐나 그렇지 않아도 강한 욕구를 부채질합니다. 그런데 지식이 부족하니 자기가 왜 이렇게 강한 욕구에 시달리는지, 어떻게 조절하고 해소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를 정확히 모릅니다.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거죠. 감추면 감출수록 위험은 높아집니다. 반면에 툭 터놓고 객관적인 사실을 가르치면, 즉 섹스를 터부가 아닌 지식과 결합시키면 위험이 낮아집니다. 자기가 성욕에 시달리는 게 정상적이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사실만 알아도 욕구를 조절하기가 훨씬 쉬워지거든요.

 

섹스를 터부가 아닌 지식과 결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균이 들어오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듯이, 터부가 생기기 전에 지식을 주입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교육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습니다. 초등 3-4학년만 돼도 이미 의식 속에 터부가 자리잡습니다. 그보다 일찍 몸교육, 즉 신체 구조의 차이,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자기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남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는 거지요. 초등학교 3~4학년에게 남녀 성기의 구조 차이와 그 결합을 통해 아기가 태어난다는 사실은 구역질나고, 당황스럽고, 불편할 수 있지만, 1학년이나 그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하나의 사실일 뿐입니다. 캐나다의 유명한 성교육자 샐리마 눈(Saleema Noon)은 일찍 성교육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첫째, 어릴수록 가르치기 쉽다. 아직 터부와 수치심이 마음 속에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가 올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다른 데서 잘못 배운다(인터넷, 야동, 광고 등)
셋째, 일찍 가르칠수록 자신의 몸을 지키고, 남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기 쉽다.

 

일찍 성교육을 시작하면 성적인 행위로 연결될 것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지요. 하지만 수많은 연구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습니다. WHO에서도 선언했듯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청소년은 성교 시작 연령이 늦어지고, 성적모험을 덜 추구하며, 올바른 피임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니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든다면 이미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적절한 때를 봐서 자녀와 성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세요. 아마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아주 어린 자녀라면 약간의 테크닉이 필요한데 책이나 인터넷에 좋은 정보들이 많으니 미리 조금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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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자, 혼자 꾸려가는 조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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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구시가의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테이블 위엔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와 큼직한 흰색의 파이가 놓여 있는데, 이 가게의 시그니처 디저트라는 코코넛 크림 파이다. 살짝 물컹거리는 듯하면서도 속은 단단하고 아삭한, 싱싱한 코코넛 과육을 큼직큼직하게 썰어서 듬뿍 넣고 위에는 뽀얀 머랭을 얹어 구웠다. 버터 냄새 물씬 풍기는 타르트 바닥까지 아주 맛있다. 이건 이 카페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건 아닌데, 치앙마이의 어지간한 디저트 전문점에선 으레 코코넛 파이, 코코넛 케이크를 자기네 시그니처라며 열렬히 권한다. 그만큼 싱싱한 코코넛 수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겠지. 아삭아삭한 이 질감, 하이고, 정말 끝내줘…

 

라고 생각하며 책은 읽는 둥 마는 둥, 코코넛 크림 파이를 마지막 한 입까지 싹싹 긁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창밖을 슬쩍 내다보니 밖은 슬슬 해가 지려는 모양이다. 태국 북부 지방이라 꽤 시원하긴 해도 한낮엔 역시 태국답게 덥긴 덥다. 뙤약볕 아래 돌아다니는 대신 마사지를 받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피서를 하다 지금처럼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슬슬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면 딱 좋다.

 

오늘은 어딜 갈까, 야시장에나 가볼까 하며 가방을 챙겨 일어서는데, 카페 문밖을 한 걸음 나서자마자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

 

“저기, 한국분이세요?”

 

네, 하고 돌아보니 뒤이어 빠른 자기소개가 이어진다. 이름과 나이 같은 인적 사항이 아니라 현재 상황 소개다. 어제 이 도시에 도착했고, 혼자 여행하는 건 난생처음이라는데 그 눈빛이 간절하다. 너무 간절해 보인다. 지금부터 뭐 하실 거예요, 어디 가실 예정이세요 하고 묻는데, 어디가 되었든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알겠습니다, 여인이여. 저와 함께 가시죠.

 

“저는 혼자서는 뭘 못 사겠더라고요. 좀 무서워서요.”

 

야시장으로 가는 길에 그녀가 말했다. 뭐가 무섭다는 것일까? 바가지를 쓸까 봐?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낯선 장소라서? 환율 계산이 복잡해서? 혹은 전부?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래도 시장에 도착해 물건 구경을 하기 시작하니 긴장이 풀리는지 표정이 밝아진다. 이 가게, 저 좌판, 구석구석 함께 돌아다니는 사이 어느새 알록달록한 태국 전통 무늬를 수놓은 지갑과 파우치, 실크 스카프와 귀걸이, 거기다 신발까지 야무지게 고른다.

 

처음엔 뭐 하나 살 때마다 “이거 괜찮을까요, 한국에서도 하고 다닐 수 있을까요?”라며 너무 화려하거나 과한 건 아닌지 연신 확인하길래 “그럼요,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하고 부추기니(질러요 질러!) 슬슬 흥이 나는 모양이다. 아예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방금 산 거로 갈아 신기까지 한다. 아마도 이게 당신의 본모습이 아닐까요, 조금 전까진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고요.

 

“오늘 정말 감사해요. 혼자서는 야시장에 못 갔을 거예요.”

 

헤어지면서도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아휴, 아니에요. 앞으로 여행 경험이 착착 쌓일 거고, 그럼 분명히 오늘보다 더 여유로워질 거에요. 웃으며 속으로 대답했다.

 

혼자 살아요, 혼자 일해요, 혼자 여행해요, 혼자 밥 먹어요. 무엇에든 익숙해지려면 일단 해보는 게 먼저고,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며, 시간과 노력도 꽤 들여야 한다. 내 시간을 혼자 보내는 일도 그렇다. 이런 삶의 형태가 맨 처음부터 몸에 착착 감기진 않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라,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기는 순간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았다. 학교든 학원이든 회사든 어떤 큰 덩어리의 일부가 되어 함께 굴러갔다. 그중에 스스로 자진해서 능동적으로 소속된 경우는 얼마나 될까? 성인이 되기 전에는 대부분 시키는 대로 따라야 했다.

 

자, 여기서 이만큼 오래 굴렀으니 다음엔 저기로 가라. 졸업장 하나 줄 테니 이거 들고 가. 수동적으로 이동되어 다시 어딘가에 소속된다. 나는 왜 여기에 온 것이며,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궁리해서 실행하는 대신 지시에 따라 살았다. 자, 저기 목표 보이지? 일단 저기까지 가서 저 별을 따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그 별은 좋은 대학교를 의미했다. 어렵사리 손에 넣어 대학교에 입학하니, 어라, 별의 이름이 어느새 바뀌었네. 뭐겠습니까, 취업이죠. 자, 취업했으니 그다음 별을 따볼까? 착착 승진해야지, 결혼도 해야지, 아이를 낳고 양육해야지. 하나가 뭐니? 둘은 낳아야지! 나름 열심히 구르고 달렸지만, 별은 여전히 저기 저 애매한 위치에서 사람 약 올리듯이 반짝거린다. 그런데 저거, 별이 맞긴 맞아?

 

그리고 단체라는 곳은, 어떤 이름이고 어떤 형태이든 소속감을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러분 모두 이걸 할 줄 알아야 하고, 이걸 먹을 줄 알아야 하며, 뭘 하든 함께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억지로 술을 먹이고, 회식 자리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급식을 남기지 못하게 압박하고, 때로는 이걸 다 먹기 전엔 집에 못 갈 줄 알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소속감 하면 단체복 아니겠냐며 똑같은 옷을 들이밀고는 몇 안 되는 사이즈 중에서 선택하라 강요한다. 사이즈가 잘 안 맞는다고? 옷은 죄가 없으니 네가 잘못했네. 살 좀 빼지? 아니 그 옆 사람은 또 왜 그렇게 말랐어? 살 좀 찌지? 사회생활의 꽃은 회식과 워크숍, 그리고 주말 등산이니 전원 참석해야 하고, 명절엔 모여야 맛이니 모두 한 집에 복작복작 끼어 앉아야 한다. 텔레비전 리모컨은 내가 쥘 테니 너는 과일 좀 가져와서 깎아봐라, 얼른.

 

나는 뭐 하나를 먹어도 내가 직접 고르고 싶다. 정해진 코스 요리도 좋지만, 메뉴를 쭉 읽어봐도 그다지 끌리지 않을 땐 첫 코스부터 디저트까지 내 손으로 조립하는 게 좋다. 내가 소속될 곳도, 내가 목표로 할 별도 내가 고르거나, 아예 직접 만드는 게 좋다. 너무 멋대로 사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더 엄격해지고 더 빡빡해진다. 혼자 일하고 혼자 산다고 해서 무작정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방임과 퇴폐향락, 왠지 싱글의 2대 인생 목표일 것 같지만 어휴, 그거 쉽지 않습니다.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늘 신예희 씨네 집에 가자! 예희 씨네 집에서 술 마시자! 밤새자!”라던가 “신예희 씨는 자유인이라 좋겠다, 다들 가정이 있는데 자기는 그런 거 없잖아!” 같은 말을 종종 듣지만, 그때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싶다. 제대로 오해하고 있구만.

 

나는 1인 가정의 매니저이자 프로듀서다. 이 조직 안에 구조가 존재하며 조직원(나)에게 최적화된 규칙이 있다.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있다. 그러니 이 조직은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하루 이틀하고 말 것 아니거든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이 다채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때, 성공과 실패의 기준도 다양해질 겁니다. 엄친아나 엄친딸 같은 말도 의미를 잃을 것입니다.’ - 김영하  『말하다』

 

이 문장에 깊이 동의한다. 그리고 가만히, 조용히 생각해본다. 나의 내면은 견고한지, 그저 견고하기만 한지, 아니면 견고하면서도 유연한지 생각한다.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건 아닌지, 온통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건 아닌지 생각한다. 외장재와 내장재에 방염과 방오가공이 제대로 되었는지 생각하고, 비상 탈출구를 제대로 갖추었는지 생각한다.

 

나 혼자 꾸려가는 1인 조직,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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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취향의 최전선, 머그컵과 유리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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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rochere-na.com

 


집안 살림 중 머그컵만큼 주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아이템도 없다. 요즘과 같은 계절에는 냉침한 차나 시원한 음료를 즐기는 잔이 이에 해당하겠다. 사실, 컵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적합한 물건이 아니다. 그보다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일상적이며 만족도가 높은 아이템에 가깝다. 여기서 우린 누가 보지 않는 상황에서의 선택과 향유가 진짜라는 것을 명심하자. 여행을 가거나 괜찮아 보이는 숍에 들렸을 때 컵을 만나면 쉽게 지나치지 못하곤 한다. 술이나 커피나 차에 대한 관심과 상관없이 잘 관리된 완벽한 한 잔은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순간에도 운치를 더해줄 별빛과 같음을 알기 때문이다.

 

TV를 볼 때도 구비된 컵이나 잔을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예전 <프렌즈>의 친구들이 커피나 시리얼을 담아먹던 커다란 만능 머그잔이 그랬고, 여성 코미디의 시대를 알린 <30Rock>을 볼 때도 내 관심은 티나 페이의 각본이나, 트레이시 모건과 주다 프리드랜더의 캐릭터, 알렉 볼드윈의 능청맞은 연기보다도 그가 분한 잭 도나기의 집무실에 놓인 크리스털 잔에 머물렀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홈바로 걸어가 능숙하게 위스키 한 잔을 꺼내 마시며 예의상 권하는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상황은 웃기게 돌아가고 있지만 뭔가 제대로 된 신사의 느낌을 잃지 않는 아이러니가 흥미로웠다. 이런 맥락의 뒤틀림과 불협화음에서 코미디가 싹트는 게 아닌가 싶다.

 

관련해 예전에 종영한 예능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꽃놀이패> 21회에서 조세호 등이 서장훈 씨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재력에 비해 소박하고 깔끔한 삶의 공간이나 결벽증에 가까운 접객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손님들에게 내온 컵이었다. 목 좀 추기자며 콜라와 함께 찬장을 뒤져서 내놓은 잔은 <판타스틱 듀오> 프로모션용 머그컵이었다. 한 손엔 콜라, 한 손에는 머그컵인데 심지어 판촉물이다. 스스로도 멋쩍었는지 혼자 사는 자신에게 최적화된 집이라 컵 세트 따위는 필요가 없다는 해명과 함께 목이 탔던지 페트병 주둥이에 입을 대고 콜라를 들이켰다. 그 프로그램은 썩 재미가 없었지만 이 장면은 꽤 인상 깊었다. 세상의 법칙은 깨고 비트는 데서 진보의 씨앗이 싹튼다지만 머그에 콜라를 담는다는 건 그 어떤 방식으로도 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없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컵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은 사실 정답이 없는 난제다. 컵의 세계처럼 선택의 여지가 방대하고 취향에 대한 민속지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아이템도 드물기 때문이다. 무민이나 키티 같은 캐릭터 상품을 고르든, 제대로 된 백자나 세라믹 도기를 쓰든 상관없지만, 컵은 어디까지나 일상의 물건이란 점 정도로 가이드를 하고 싶다. 혹자들은 집안 살림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려 애쓰곤 하는데 이건 자신의 꿈을 자식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는 타이거맘과 같은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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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andinaviandesigncenter.com

 

 

자신의 취향을 전시하며 사는 삶처럼 피곤한 일도 없다. 너무 비싼 물건을 고를 필요도, 아무도 모르는 공방의 특이한 제품을 써야 일상이 더욱 윤택해지고 특별해지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저 물 한 잔 마시더라도 언제나 변함없는 위안과 안정을 줄 수 있는지와 같은 일상성에 있다. 그러니 실용성이 너무 떨어지는 전위적인 제품이나 깨먹었을 때 심적 타격이 깊을 고가의 물건을 굳이 쓸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마시지 말고 머그와 유리잔 정도는 꼭 갖추고 계절과 음료의 성질에 따라 매치하며 살길 권고한다.

 

컵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은 묵직한 그립감과 질리지 않는 디자인, 그리고 튀지 않는 은은한 색상이다. 들었을 때 보온에 대한 믿음을 주는 묵직함이 느껴지고, 아랫입술과 윗입술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각도로 닿는 어느 정도 두께가 있는 머그를 선호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서 여간해선 질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아무런 특징적 디자인이나 무늬가 없는 이딸라의 띠마 시리즈와 아라비아핀란드 24h 시리즈의 세라믹 도기를 주로 쓴다. 가장 선호하는 사이즈는 350~400ml 정도다. 시리얼을 먹을 때나 프렌치프레스로 커피를 내렸을 땐 호가나스의 500ml짜리 머그컵을 꺼내 쓴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에도 아리따 등 좋은 제품들이 많지만 머그란 자고로 안락함이 생명이라고 믿기 때문에 익숙한 선택 사이에서 늘 맴돈다.

 

요즘 같이 시원한 음료를 주로 찾게 되는 계절에는 아무래도 머그보다 유리잔을 많이 쓴다. 달고 시원한 여름 음료는 홀짝이며 마시기엔 지나치게 매혹적이고, 요로결석 때문에라도 기본적으로 큰 사이즈의 롱드링크 잔이나 파인트 잔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콜라처럼 애용하는 음료는 주로 고블렛 잔에 마신다. 사실, 뜨거운 음료나 에이드 같은 여름 특선 음료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고블렛 잔을 쓴다. 고풍스런 전통과 현대적인 실용성이 가미된 형태는 편안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인체공학적인 그립과 묵직함은 언제나 음료를 마시는 행위에 특별한 기분을 더해준다. 물부터 콜라와 와인과 맥주까지 거의 대부분의 음료에 최적화 되어 있는 만능 도화지인데다 형태 자체에 기품과 역사가 깃들어 있어서 선호한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고블렛 잔에 마시면 일반적인 원통형 잔에 비해 향을 풍부하게 담아줄 것이란 믿음도 있다. 이런 게 미학의 아우라가 아닐까 싶긴 한데, 실제로 많은 맥주 전문가들이 에일을 마실 땐 고블렛을 추천한다. 크래프트 맥주 붐 속에 파인트 잔이 맥주의 짝꿍이 되었지만 실은 쌓아 보관하기와 설거지에 용이한 까닭에 업소에서 애정을 받는 것뿐 맥주와 파인트 잔 사이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없다.

 

고블렛은 프랑스의 유서 깊은 유리 공예회사 라로쉐La Rochere의 아르투아 라인을 주로 쓰고 에이드 같은 여름 음료는 마찬가지로 라로쉐 웨상 시리즈의 머그와 롱드링크 잔으로 즐기곤 한다. 역시나 묵직하고 두툼하다. 웨상 머그는 뜨거운 커피 마시는 용도로 나온 제품이라 따뜻한 음료에도 제법 어울린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머그든 유리잔이든 음료를 마실 땐 반드시 컵받침을 받친다는 거다. 코스터의 사용은 일상을 가꾸는 습관이자 문화로 들이도록 하자. 테이블의 컵 자국처럼 주인의 나태함을 상징하는 낙인도 없다. 종이, 나무, 면, 니트, 돌 등등 다양한 소재의 코스터를 시중에서 구할 수 있지만 가장 선호하는 건 무인양품이나 이케아에서도 구매 가능한 코르크 소재의 원형 코스터와 그라프 란츠graf lantz에서 독일산 메리노울 펠트로 만든 비어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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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구원할 댕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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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이와 호삼이라는 개와 함께 살고 있다. 호이는 5살 먹은 비글이고, 호삼이는 3살이 된 믹스견이다.

 

개를 집에 데려와 함께 사는 방법은 다양한데

 

1. 펫샵에서 내가 원하는 견종을 고른다.
2. 지인의 집에서 가정분양을 받는다
3. 동물 보호 단체를 통해 유기견을 데려온다.
4. 개를 줍는다. (응?)

 

등이 있다. 최근에는 “사지말고, 입양하세요”캠페인 문구를 통해 다행히 1번의 방법은 사라지고 있는 편이다. 호이와 호삼이는 2번과 4번의 케이스인데 호이는 가정분양, 호삼이는 개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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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삼이

 

 

호이와 호삼이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은 제주도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주해 온지 1년이 채 안됐을 때 개와 함께 살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지인에게서 가정 분양을 받았다. 10마리의 비글 꼬물이 중에 가장 예쁜 녀석으로 고르고 골라 육지로부터 데려온 녀석이 호이였다. “이제 제주도에서 행복한 삶을 살자!” 희망찬 미래만을 기대했는데 호이는 알고 보니 “무는 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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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이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물고, 뼈다귀를 찾는 것 같아 찾아주면 물고, 호이 영역에 들어가면 물고, 호이 혼자 두고 나가려고 하면 물었다. 개가 주인을 문다니…… 다른 개나 다른 사람을 무는 건 봤어도 주인을 무는 개는 주변에서 못 봤는데 내가 고르고 고른 개가 날 무는 개였다.

 

하지만 우리에겐 학습능력이 있다. 호이가 언제 무는지 면밀하게 관찰… 아니 몸으로 당하며 체득했고, 몸의 이상 있어 그런 건지, 타고난 성격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병원과 훈련소를 다닌 덕에 지금은 평화유지가 가능해졌다. 글로 쓰니 참 쉽지만 그 과정은 피로했고, 괴로웠고, 마음의 상처도 컸다.

 

그런 시간을 보내는 중에 호삼이가 우리 집에 왔다. 호삼이는 비가 내리는 날 비를 맞고 동네를 떠돌고 있는걸“어머! 너 누구니?” 하고선 함께 지내는 친구가 덥석 집으로 들고 들어왔다. 그렇다. 4번의 예를 든 개줍 케이스다.

 

“엄마 젖도 안 뗀 것 같은 작은 강아지라 주변에 새끼를 낳은 집이 있을 테니 오늘 밤만 재우고, 내일 엄마를 찾아주자” 했던 게 친구와 내가 엄마가 되어 3년째 같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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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와 다르게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 우리집으로 온 호삼이, 진돗개와 리트리버가 섞인 듯한 외모로 얼만큼 클지 예측이 되지 않는 믹스견인 호삼이는 내가 호이에게 바랐던 모든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주인을 향한 충성심, 5분을 떨어져 있다 만나도 반겨주는 애교, 개의 정석이 있다면 그건 바로 호삼이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앞에 말했듯 제주에 산다. 나는 무는 개 호이와 개줍이 호삼이와 함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제주의 자연 속을 산책한다.

 

개나 고양이에겐 인연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가 선택해 같이 살게 된 호이의 남다름과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우리와 살게 된 호삼이를 통해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를 키우고 싶은가? 주변을 둘러보라. 당신의 인생을 망칠…아니 구원할 댕댕이들은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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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자, 마흔 줄에 유튜브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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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흥에 겨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지만, 트위터고 인스타그램이고 모두 재미로 하는 SNS지만, 만약 독자가 한 명도 없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꿋꿋하게 계속할 수 있을까? 그래도 계속 신이 나고 흥이 날까?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럴 리가 없다. 나는 관심이 좋다. 관심을 원한다. 글을 썼으니 누구든 읽어줬으면 좋겠고, 그림과 사진을 올렸으니 좀 봐줬으면 좋겠다. 관심에 목마른 자는 구독자 수와 조회 수에, 리트윗과 댓글에 민감하다. 여기, 변방의 외로운 북소리를 들어주오.

어느 날은 트위터에 무심코 올린 혼잣말이 수도 없이 리트윗 되어 마구 설렌다. 어머, 나 좀 떴나 봐! 하지만 밀물이 왔다가 썰물이 되어 사라지듯 잠깐의 관심도 곧 스르륵 소멸한다. 오랫동안 혼자 일해서일까? 혼자가 편해, 혼자가 최고야 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다. 온라인 한정이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가능한 한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셀프 안식년을 선언하면서 유튜브 채널도 동시에 개설했다. 앞으로는 이거라면서요? 유튜브의 시대라면서요? 나만 몰랐나 보다.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이 실로 다양한 아이템을 소재로 영상을 만들어 업로드 하고 있었다. 그럼 나도 할 테다! 야심 차게 유튜브 계정을 만들고(여기까지 하기도 쉽지 않았다) 사용법을 하나하나 배웠다. 소재는 역시 여행이지! 올 한해, 외국 여러 나라에서 지낼 거니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나올 것이다(라고 믿었다). 치앙마이에서 기지개를 켜고, 포르투와 마드리드를 누비고, 이스탄불까지 쫙 훑을 거니까 내 유튜브, 완전 끝내주겠군!

 

요렇게? 조렇게? 이 각도가 나을까, 저 각도가 나을까? 고심고심하며 핸드폰으로 치앙마이 동네 풍경의 영상을 찍고, 노트북 앞에 못 박힌 듯 앉아 끙끙대며 영상을 편집해 자막을 달았다. 나레이션까지 녹음해서 집어넣으니 이야, 그럴싸하다. 역시 내가 안 해서 그렇지, 일단 하기만 하면 어마어마하지. 유튜브에 등장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반응이 올 거야.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과연?

 

자신감은 소중하지만, 현실감이 떨어지는 건 곤란하다. 나는 나를 안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줘서 그런 거지, 일단 시켜만 주시면 진짜 잘한다니까요! 라고 부르짖으며 변변한 이력서도 포트폴리오도 준비하지 않고 맡겨만 달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대체 어느 누가, 뭘 믿고 중요한 일을 덥석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가족 말고는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많은 경우, 가족끼리 말아먹곤 하죠….

 

영상을 채 열 개도 업로드 하기 전에 벌써 지쳤다. 분명히 재미있긴 한데 힘들다. 촬영은 그렇다 쳐도 편집이 어려운데, 별로 길지도 않은 영상 하나 편집하느라 하루가 다 가곤 했다. 정성을 들인 영상의 조회 수는 끽해야 5회. 이거 해서 뭐해, 아무도 안보잖아. 물건이 워낙 좋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만 팔아도 곧 가지를 쳐서 영업왕이 될 줄 알았지만 택도 없는 생각이었다. 영업부 신입사원은 기가 죽었다. 유튜브 월드라는 곳은 매우 광대하며, 나는 요만한 모래알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둘까? 뭐, 내가 여기서 그만둔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텐데 상관없잖아?
 
그래도 아깝긴 하다. 이왕 시작한 거, 조금만 더 해보자며 어렵게 마음을 잡았다. 치앙마이에 오기 전, 나레이션 녹음용 소형 마이크를 선물하며 애인이 말했다.

 

“꾸준히 해봐라. 큰물에서 놀려면 수영 연습을 해놔야지.”

 

사람 일은 모른다며,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처럼 영상도 쌓고 쌓아놔야 기회가 왔을 때 여기 있소 하고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의 일을 했는데 영상 작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다. 재미로 시작한 것이지만 여기서 어떤 식으로 뻗어 나갈지 두고 봐야지.

 

나 진짜 괜찮은 놈이야 라는 말에 어머 그러시군요, 하며 덥석 사귈 수는 없다. 평소 행동과 말투는 어떤지, 소수자와 약자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 등등 일단 하는 거 봐서 판단해야죠. 상대방을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 위아래로 싹싹 훑어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배어 나온다. 어떤 미지의 기회 앞에서 우리도 그렇게 조용히 평가받는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판에서, 영상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나는 이제 초짜 신입이다. 미지의 세계에 갓 발을 들였으니 새로운 것을 하나씩 배우고 차곡차곡 쌓을 것이다. 그리고 이걸 통해 재미난 일을 하게 되길 바란다. 물을 만났을 때 그동안 연습해둔 호흡과 팔놀림, 발차기를 보여줄 것이다. 수천 수만 번 연습한 레이업 슛을 네트에 제대로 던져 넣을 것이다.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준비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615명이 되었다. 처음엔 10명 남짓, 그나마도 친한 친구들이 호의로 구독 버튼을 눌러준 것이다. 어느새 60배 이상으로 늘었다. 시간은 공평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똑같이 흘러간다. 뭐가 되었든 간에 일단 하면 남는다.

 

물론 좀 민망할 때도 있다. 하이고, 이 나이에 유튜브에 얼굴까지 공개하고서 이러고 있냐, 아무도 안 보는데 혼자 헛짓하는 거 아니냐, 주책이지. 이런 생각은 멀쩡하던 사람을 아주 쉽게 쭈그러트린다. 그럴 때면 가만히 생각한다. 나는 왜 이걸 시작했지? 유튜브만 그런 게 아냐. 나는 왜 계속 새로운 걸 하는 걸까? 답이 나온다. 그야, 재미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재미가 싹 사라졌을 때 그만두든 말든 해도 늦지 않겠네.

 

궁금한 게 있다는 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복 받은 일이다. 실행할 의지까지 있다면 최고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게 점점 사라진다. 단순히 한 살 더 먹어서가 아니라, 체력이 떨어지거나 돌봐야 할 사람이 생기는 등 여러 변수가 튀어나와서다. 실패를 겪으며 굳은살과 맷집이 생겼지만, 때론 그게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 더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순간도 온다. 앞으로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무엇인가에 끌린다면 그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당장 해야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처음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어느새 꽤 능숙하게 다룬다. 편집 속도도 몇 배로 빨라졌다. 변화가, 발전이 있다. 본업과 관계 있든 없든 꾸준히 하는 건 중요하다. 눈과 손, 귀와 입, 내 전부가 무뎌지지 않게 워밍업 하는 것이다. 몸을 풀어 놓아야 크고 작은 즐거움을 캐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셀프 안식년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진다. 여행이기도 하고, 체류이기도 하다. 일탈이기도 하고, 일상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과 영상을 찍어 편집할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즐길 것이다.

 

빡빡한 나, 예민한 나, 날이 바짝 서 있던 내가 어쩌면 좀 변할지도 모른다. 재미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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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도 자도 피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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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어릴 적에는 아침에 곧잘 일어나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아주 게을러진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5분만 더, 5분만 더…’ 하다가 학교에 늦는 일이 다반사에요. 주말이면 하는 일도 없이 새벽까지 잠을 안 자다 정오가 다 돼서야 일어나지요. 전문가들은 아이를 믿으라고 합니다. 잔소리 해봐야 역효과만 난다는 건 전문가 아니라도 아는 얘기지요. 하지만 다른 집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할 거라 생각하니 불안해집니다. 깨우기만 하고 모르는 척 하려고 했는데 부시시한 모습으로 나오는 아이를 보니 저절로 혀를 끌끌 차며 기어이 한마디 하고 맙니다. “아니, 학생이 이렇게 늦게 일어나 무슨 공부를 하누? 엄마아빠 때는 4당5락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요? 청소년 스스로도 맘이 편하지 않아요. 난 왜 이렇게 게으를까 자괴감이 들지요. 걱정할 거 없어요! 다른 친구들도 다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그렇듯 수면 패턴 역시 진화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골이나 산 속에 가본 적이 있나요? 해가 지면 칠흑처럼 깜깜해지는 곳, 손을 눈 앞에 대고 꼼지락거려도 보이지 않는 곳 말이에요.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살았을 겁니다. 일단 해가 지면 어두워서 뭘 할 수 없는 데다 위험하기도 했지요. 모든 활동을 해가 뜨고 지는 데 맞추는 것이 편하고 유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4시간 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이란 게 생겨났습니다. 자고 깨는 건 물론, 체온, 혈압, 맥박, 호르몬 분비 등이 대략 24시간 리듬에 맞춰 움직이지요. 몸속에 ‘생체시계’가 생긴 겁니다. 이런 리듬은 수많은 동물과 식물에서도 관찰됩니다. 태양의 위대한 힘이지요. 1억 5천만 km를 넘어 이런 열기를 보내는 위대함은 좀 야속합니다만…

 

24시간 주기 리듬은 뇌 속의 시교차 상핵이란 곳에서 조절됩니다. 말이 어렵죠? ‘시교차’만 이해하면 됩니다. 눈의 망막에 물체의 상(像)이 맺히면 그 신호는 시신경을 타고 뇌 뒤쪽에 있는 시각중추로 전달됩니다. 그런데 오른쪽과 왼쪽 시신경이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서로 엇갈려서 진행하지요. 엇갈리는 부분을 시신경 교차, 즉 시교차라고 합니다. 시교차 상핵이란 시교차 바로 위에 있는 구조란 뜻입니다. 이곳이 시신경 가까이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니지요. 아침에 해가 떠올라 빛이 눈에 들어오면 시교차 상핵이 활성화되어 우리 몸을 깨웁니다. 체온을 올리고,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을 분비시켜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지요. 계속 졸리면 안 되니까 졸음을 일으키는 호르몬을 억제시킵니다. 그 호르몬 이름이 멜라토닌입니다. 멜라토닌은 어두워질 때쯤 분비됩니다. 자연스럽게 잠들어 밤새 푹 잘 수 있는 건 멜라토닌 덕분이지요.

 

그런데 청소년은 늑대인간이라고 했지요? 모든 게 변합니다. 대략 10세쯤부터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집니다. 그래서 중고생은 11시 전에 잠들기 어렵습니다. 새벽 1-2시까지도 별로 졸리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청소년은 성장발달을 위해 하루 8-10시간은 자야 합니다. 그런데 아침에는 학교에 가야 하니 8시 전에는 일어나야 하잖아요. 결국 대부분의 청소년이 만성적인 수면부족 상태인 셈입니다. 일요일에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는 건 게으른 게 아니라 생리적으로 자연스런 현상이지요. 이런 사실이 알려지고 서양에서는 등교시간을 늦추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등교시간을 늦추면 성적이 올라가고, 학교폭력이 줄어든다는 연구도 계속 발표됩니다. 우리나라도 경기, 충북, 제주 등지에서 등교시간을 늦춘 바 있습니다.

 

잠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특히 뇌기능에 중요합니다. 잠은 창의력, 기억력, 주의력, 판단력, 문제해결능력, 계산능력 등 모든 인지기능은 물론 감정이나 기분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잠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기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지요. 신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자는 동안 성장호르몬이 많이 나와 키가 큰다는 사실은 다들 알지요? 뿐만 아니라 잠은 심장병, 당뇨병, 건강한 피부, 그리고 비만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2014년 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은 1만명의 청소년을 조사하여 하루 6시간 미만으로 자는 경우 비만이 될 가능성이 20% 높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심지어 청소년기에 잠이 부족하면 중년이나 노년기에 비만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래 인류의 수면시간은 꾸준히 줄었다고 하죠. 밝은 빛이 24시간 주기 리듬을 흩뜨리기 때문입니다. TV가 등장한 후에는 더 심각해졌고요. 요즘은 더더욱 심각합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때문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갖고 잠자리에 듭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좋아요가 몇 개나 달렸는지, 아이돌 그룹의 동영상이 올라오지는 않았는지, 친구에게 메시지 온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득달같이 답장을 하고 댓글을 달지요.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잠이 올 수가 없지요. 잠이 안 와서 스마트폰을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기 때문에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얘깁니다.

 

인공적인 빛이 생체시계를 자꾸 흩뜨린다고 했지만 빛은 파장에 따라 세분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에서는 파장이 짧은 청색광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청색광은 생체시계 교란 작용이 가장 강합니다. 디지털 기기가 늘어나는 것과 현대인의 수면문제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뒷받침해주는 증거지요. 그래서 청색광을 차단하는 갈색 렌즈를 초저녁부터 착용하면 잠을 잘 잘 수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더 쉬운 방법이 있어요. 스마트폰을 잠자리에 갖고 가지 않는 겁니다. 거실에 놓아 두거나 꺼 두면 됩니다.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때로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24시간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정신을 혹사시키는 일입니다. 또 하나, 늦게 자는 버릇이 들면 자꾸 야식을 먹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잠이 부족한데 자기 전에 뭔가를 먹으면 위와 장이 그걸 소화시키느라 밤새 일을 해야 합니다. 야식을 먹으면 살이 찌는 건 물론이고 위와 장에 좋지 않을뿐더러 숙면을 취하기도 어렵습니다. 잠을 많이 자기만 하면 키도 크고, 피부도 좋아지고, 살도 빠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공부도 더 잘하게 된다는데 망설일 필요가 있나요? 당장 오늘부터 스마트폰을 끄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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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자, 나만의 패턴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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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여행은 서툴렀다. 지금도 사소하거나 아찔한 실수를 잊을 만하면 저지르고 있지만, 그땐 정말 대단했다. 여권을 책상 위에 고이 놓아두고 당당하게 공항으로 향했으니 뭐, 더 말할 것도 없죠. 막 출근하려던 아버지가 내 급한 전화에 한숨을 푹푹 쉬며 김포공항(인천공항이 생기기 전의 이야기입니다)까지 가져다주지 않았다면, 첫 비행기고 첫 기내식이고 몽땅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 글 다 쓰고서 전화 드릴게요….

 

지금은 적어도 그때보단 좀 낫다. 여행 횟수가 늘어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패턴이 생겼다. 패턴은 일을 쉽게 만든다. 계절에 적합한 여행지를 고르고, 눈높이와 주머니 사정 사이의 적당한 선에서 항공권을 사고 숙소를 고른다. 하루에 얼마나 돈을 쓰게 될지를 가늠해 대략의 경비를 계산하면 제일 중요한 준비는 끝난 셈이다. 짐을 꾸릴 때는 우선순위에 따라 필요한 것, 없어도 그만인 것을 나눈다.

 

여행지에 도착한 후에도 나름의 효율적인 패턴에 따라 움직이는데, 첫날이나 둘째 날엔 워킹 투어에 참여해 동네 분위기를 파악한다. 그리고 전통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구경하고, 이 지역의 제철 재료와 주로 쓰는 향신료는 뭔지 알아본다. 음식을 좋아하니, 가능하다면 쿠킹 클래스에도 참여한다. 쇼핑은 여행 초반엔 잠시 몸을 사렸다가 일정이 절반쯤 지나갈 무렵 상큼한 기분으로 한 차례 하고, 막판에 숙제하듯 싹 몰아서 한 번 더 하는 식이다.

 

이런 패턴이 몸에 배니,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든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나에게 맞게 효율적으로 착착 움직이며 알찬 시간을 보낸다. 좋다. 편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재미도 흥미도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딜 가든 당황하지 않는다는 건, 어딜 가든 설레고 흥분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미지의 장소가 선물하는 당황스러운 짜릿함 대신 편안함과 안전함, 익숙함을 선택한 것이다. 나이를 먹은 만큼 현명해진 것일까? 아냐.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거야.

 

셀프 안식년을 부르짖으며 태국의 치앙마이로 휙 떠날 땐 일부러 아무것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거기에 뭐가 있고, 뭐가 유명한지, 뭘 꼭 먹어봐야 하는지 말 그대로 요만큼도 모른 채 무작정 와버렸다. 오랫동안 애써 쌓은 패턴을 내 손으로 툭 쳐서 와르르 무너트렸다. 막막하고 당황스러웠다. 이래도 되나? 날씨가 좋고 바람은 선선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나무 그늘에 앉아있어도 되나? 카페에서 책이나 읽고 있어도 되나?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냥 걸어도 되나? 여행이란 알차야 하는 건데, 돈 들여서 왔으니 최대한 가성비를 높여야 하는 거 아닌가? 나 지금, 시간 낭비 돈 낭비하는 거 아닌가?

 

시간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럴 땐 꽤 잘 듣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니 조금씩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래, 이건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사는 거야. 난 이 동네에 월셋집을 구해 이사 온 거야. 천천히, 주변엔 뭐가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쓰레기는 어디에 버려야 하며 분리수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탁소는 어디에 있고 편의점과 마트는 어느 지점이 제일 쏠쏠한지, 근처에 서점은 있는지 하나씩 하나씩. 우리들 몫까지 재미있게 지내라는 친구들의 응원도 큰 도움이 됐다.

 

기존의 패턴을 내려놓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앤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턴을 만들기로 했다. 새로운 여행과 생활의 패턴. 기존의 것에서 낡은 부분을 잘라내고 수정해 새로운 형태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치앙마이에서 한 코 두 코 뜨기 시작해 포르투에서도, 마드리드에서도, 이스탄불에서도 꾸준히 떠 나간다. 어느 도시에 가든, 처음 며칠간은 역시나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와, 여기가 어디지?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 그때마다 치앙마이의 경험이 나를 토닥여준다. 이거 해봤잖아. 겪어봤잖아. 당황스럽고 외롭지만, 이런 감정도 다 지나간다는 거 알잖아. 이럴 때 뭘 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지도 알잖아(단것을 먹겠다는 뜻입니다).

 

이럴 땐 배경음악도 꽤 중요한데, 느리고 구슬픈 음악은 듣는 사람의 마음마저 그렇게 만들기 쉽다(여기에 PMS가 겹치면 아주 바닥을 친다). 포르투에서 지낸 지도 어느새 한 달쯤 되었을 무렵, 언제나처럼 카페에 앉아 입 꾹 다물고 혼자 책을 읽고 있는데 열린 문 바로 앞에 첼로 연주자 3인조가 자리를 잡더니 제프 버클리의 <Hallelujah>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실로 묵직한 힘이 있다. 순식간에 마음이 스산해지고, 겸허해지며, 인생 뭐 있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나는 왜 포르투까지 왔을까, 대체 혼자서 뭘 하는 걸까, 외롭다… 앞 테이블도 옆 테이블도 다들 즐거워 보이는데 나는 외롭다.

 

첼로 3인조는 어느새 다음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찌잉 하는 첼로 소리에 화창한 초여름이지만 내 마음만은 겨울이 된 기분이야…라고 생각하며 한없이 축축 처지려는데, 카페 주인이 벌떡 일어나 문을 닫고 들어와선 루이스 폰시의 <Despacito>를 스피커가 터질 듯한 볼륨으로 틀어제꼈지 뭐겠습니까. 갑자기 기분이 확 좋아지면서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마구 흔들고 싶어지더만요. 사장님 여기 맥주 주세요.

 

제프 버클리도, 비발디도 잘못이 없다(물론 첼로 3인조도 마찬가지다). 그저 내가 음악의 영향을 잔뜩 받아 나도 모르게 자기 연민에 푹 빠진 것이다. 짜르르하고 싸르르한 감정에 취하는 것도 과하면 곤란하다. 이럴 땐 음악이든 뭐든 바꿔서 분위기를 환기하고, 맛있는 걸 먹으며, 내가 나를 응원하고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걸 배웠다. 이것 역시 새로이 습득한 패턴의 일부다. 자 또 시작이군, 지난번에도 겪은 그 혼란과 외로움과 울컥한 기분이 잊지도 않고 또 왔군, 하며 스스로 토닥토닥해준다. 불안하고 어두운 감정은 마치 PMS 같다. 때가 되면 오고, 다시 때가 되면 간다. 가능한 한 곱게 잘 보내주어야 한다.

 

나는 종종 허공을 향해 소리 내어 말한다. ‘어이구 그려요, 슬슬 외로울 때가 되었지요, 요맘때쯤 한번 울컥할 때가 되었어~ 그래도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오늘도 살살 잘 지내보자고~’라고 흥얼거리며, 넋두리하듯 남 얘기하듯 중얼거린다(반드시 혼자 있을 때 합시다). 그럼 어느새 흐흐 웃게 된다. 여행 중일 때든, 바쁘게 일할 때든, 번아웃 상태에서 회복 중일 때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살살 다독여 다스려야 한다. 잊지도 않고 또 오는 스트레스를 잘 구슬려 가며 삶을 꾸려 나가야 한다.

 

이게 가능해지려면 결국 마음의 기초체력과 유연성이 그만큼 받쳐줘야 한다. 하루 중 즐거운 일은 생각보다 적고, 그나마도 아주 짧게 후다닥 지나간다. 그 외엔 종일 무덤덤하거나 멍하거나 불안하거나 울적하다. 한마디로 잠깐 즐겁고 내내 칙칙하다. 특히 일이 잘 안 풀릴 땐 더한데, 잘나갈 땐 인생 참 짧게 느껴지지만 못 나갈 땐 하루가 더럽게 길다. 이 길고 칙칙한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마음의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만 두려움과 불안함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두렵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과 섹스할 엄두가 나지 않고, 탐나는 물건을 몽땅 사지 못하고, 해 질 무렵 낯선 골목 입구에서 망설이다 돌아 나오곤 한다. 한때는 그런 내가 답답하다고, 놀 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 두려움이라는 감정 덕분에 나는 성병에 걸리거나 파산하거나 살해당하거나 국제 미아가 될 일이 없었다. 

 

두려움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본능이다. 그러니 이 감정의 사용 방법을 익히고 사이 좋게 공존해야 한다. 두려움이 내 발목을 꽉 잡고 컨트롤하게 맡겨버리는 대신, 자동차의 브레이크 페달 역할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운전 중에 항상 발을 올려놓아야 할 곳은 엑셀이 아니라 브레이크 페달이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중에도 언제든 브레이크를 밟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안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 안의 경고등이 삐요삐요 울릴 때면 귀 기울여 들어본다. 단순히 낯설다는 이유로 머뭇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여기선 물러서는 것이 현명할지 생각한다. 두려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을 나에게 맞는 속도로 찾아간다.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건, 에어컨과 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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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nsis.pl

 

 

열돔 현상으로 인해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우기로 접어들고 있는 동남아 휴양지보다 훨씬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 까딱하면 한 달 이상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이번만큼은 오보이길 바란다. 잠 못 드는 열대야는 상대하기 꽤나 곤혹스러운 불청객이다. 이런 무더운 여름철에 홀로 살림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에어컨과 여름밤 분위기를 내어줄 그럴듯한 오디오 시스템이다. 이 정도 날씨를 홀로 이겨내기 위해선 물리적인 접근과 정서적 테라피가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환경 운동을 하는 중이 아니라면, 이제 에어컨은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필수 편의 가전이란 걸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캐리어가 없었다면 지금 지구상의 몇몇 대도시들은 여전히 19세기에 머물고 있을 것이고, 중동 오일 달러 스웩은 볼품없었을 것이다. 아미쉬가 아니면서 에어컨을 들이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내 집도 아닌데 에어컨 구입과 설치에 비용을 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 뭔가 거대한 것을 들인다는 심적 부담감, 투철한 절약 정신이 체화된 가정교육. 나도 한때는 그랬다. 허나 몸집 작은 1인 가구의 몇 안 되는 미덕 중 하나가 ‘쓸건 쓰고 사는 태도’다.

 

그래서 설치를 고려한다면 기본형 벽걸이 에어컨을 추천한다. 전력 소비도 예상보다 많지 않을뿐더러 공간 차지도 덜 하고, 바람이 너무 강하지 않은데다 신기술과 잔기술이 없어서 저렴하다. 설치와 이전 시 드는 비용을 투명하게 제안해서 견적 비교를 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까지 생겨나면서 설치비용의 표준화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작년에 전기요금 누진세도 어느 정도는 완화됐다. 전격 가동 중이라면 사용 후 20여분 정도는 송풍이나 청정 모드로 에어컨을 말리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또한 오피스텔이나 원룸에 빌트인 된 에어컨을 청소하지 않고 그냥 쓰는 사람들을 간혹 본 적이 있는데,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필터를 빼서 베이킹 소다로 청소하고 에어컨 전용 스프레이 등을 내부에 분사해 주기적으로 청소하길 권고한다. 관련 방법은 인터넷에 매우 자세히 나와 있다.

 

방 안 온도를 낮췄으면 이제 내면의 온도를 낮출 차례다. 에어컨만 튼다고 축 쳐진 몸과 마음이 뽀송해지는 건 아니다. 숨통이 트일 뿐, 하루 종일 짓누르고 있는 더위는 쉽게 가시진 않는다. 그런 밤에 TV와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시원한 음료를 곁들이면서 여름밤에 어울리는 청량한 음악을 듣길 추천한다. 에어컨 아래 음악은 보리수 아래의 명상처럼 내면의 평온과 마주할 수 있는 현대인의 참선과 같다. 괜히 여름만 되면 주말 오전부터 온 동네 스타벅스가 미어터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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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먀하뮤직

 

 

사실, 여름밤만큼 음악이 잘 어울리는 계절도 없다. 느리고 가벼운 템포에 훵키하면서도 청량한 리듬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휴양지의 선배드나 가제보에 누워 있는 듯한 여유를 선사한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와 해가 거듭할수록 뜨고 있는 트로피컬 하우스의 전 세계적인 인기 사이의 상관관계는 분명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단 장르나 리듬의 문제만이 아니다. 여름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오래전 사둔 CD를 꺼내 튼다거나 작은 핀 조명 아래서 턴테이블에 올릴 판을 고르는 일종의 디깅(digging)은 왠지 모를 로망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요즘 시대에 이런 저장매체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다는 것 자체가 미련한 처사라는 지적도 있지만 세상을 항상 효율만 따지고 살 수는 없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주는 위안, 과거의 한 순간을 다시 꺼내보고 마주하는 일상에 특별함을 가져다주는 행위는 아무리 아무것도 하기 싫고 축 처지는 여름밤에도 기꺼이 방 안을 밀양 얼음골로 변화시키는 정서적 동굴이 되어준다.

 

그래서 자기만의 작은 공간을 갖춘 사람이라면 집 안 한구석을 내어, 과거의 유물로도 만족도 높은 음질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음향 시스템을 갖춰놓길 추천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컴포넌트를 신혼살림의 필수품처럼 여겼던 것을 복원하자는 거다. 일본 힙스터처럼 카세트데크나 붐박스를 다시 집으로 들이자는 것까진 아니지만 CD 플레이어가 달린 올인원(박스만한 크기에 앰프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기능을 집약해 놓은 미니오디오) 정도가 한 가지 대안이 되겠다. 추천하는 제품은 온쿄 CR-N775D, 에어릭스 듀엣, 캠브리지오디오의 one, 보스 사운드터치 시리즈, 조금 더 공간을 근사한 공간을 꾸미고 싶다면 미니컴포넌트의 향수가 짙게 베인 야마하 MCR-N670 제품을 추천한다.

 

나의 경우 영국 캠브리지오디오사의 구형 one 모델을 와피데일 스피커에 물려 10년 이상 사용하고 있는데, 그 다음은 아무래도 온쿄 제품을 쓸 것 같다. 스피커는 와피데일, KEF, 쿼드, 클립쉬, 야마하 수준에서 가장 저렴한 북쉘브 스피커라도 물리면 작은 공간에서 나름 훌륭한 음악을 누릴 수 있다. (보스나 에어릭스는 스피커까지 포함된 올인원) 혹은 이마저도 어렵다 싶으면 무인양품 제품이라도 쓰길 권한다.

 

사실 음향과 선택의 다양성 측면에서 CDP가 달린 올인원, 일명 CD 리시버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테이프, CD, LP와 같은 저장 매체 대신 디지털로, 이제는 대부분 무선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빅뱅이 일어나면서 오디오는 더 이상 아날로그의 감성만을 쫓는 기기라기보다 무선네트워크에 강한 디지털 기기로 세월에 보조를 맞춰나가고 있다. 초고가 하이엔드 업체를 제외한 오디오 업계는 이런 추이를 따라 ‘PC파이’의 시대를 거쳐 와이파이, 브루투스 스트리밍과 파일 재생에 최적화된 ‘네트워크 오디오’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그렇게 진일보를 거듭하던 중 최근에 들어서야 기존 아날로그 재생기능을 병행하려는 회귀의 경향이 살짝 나타나는 중이다. 아무래도 플라스틱과 종이 인쇄 냄새를 맡으며 CD를 케이스에서 꺼내 트레이 위에 살짝 올리고 재생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이제 제의적 지위를 갖췄다고 본다.

 

오디오만큼 취향의 차이와 투여 비용의 격차가 큰 분야도 없다. 위의 선택지는 그간 컴퓨터 스피커나 20만원 상당의 브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대신 보다 제대로 된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 안내다. 그러나 이 정도만 갖춰도 일전에 브로콜리 너마저가 짚었던 것처럼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는 최상의 음질을 아낌없이 누릴 수 있다. 여름밤, 에어컨 바람을 타고 추억이 깃든 음악이 방 안을 채운다면 요금 고지서가 날아오기 전까지 열대야 걱정과 짜증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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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자, 영감과 휴식이 필요한 순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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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손이 근질거릴 때가 있다. 뭐가 되었든 그림을 그리고 싶고, 어떤 글이라도 쓰고 싶다. 영감이 온 것이다. 기승전결을 갖춘 구체적인 형태가 아닌 가느다란 실마리거나, 평평한 표면 위에 살짝 튀어나온 작은 흔적 같을 때가 많다. 작고 연약해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그게 그렇게 귀하다. 발견하자마자 아이구 오셨어요, 놓치지 않을 거예요 하고 홱 당겨본다. 재수 좋으면 거기서 뭐가 나오기도 한다.

 

한 번 쑥 당겨서 큼직하고 거창한 월척을 잡는 일은 무척 드무니, 보통은 그 실마리와 흔적에서부터 시작해 떠오르는 대로 이리저리 메모하거나 손 가는 대로 일단 뭐든 그려본다. 나는 주로 카카오톡을 이용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기록한다. 가방에 넣고 다니는 작은 스케치북과 펜도 잘 써먹는다. 모두 유용하고 고마운 도구다. 이런 것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영감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말았을까? 스케치북을 펼치고 붓펜을 꺼낸다. 처음부터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같은 걸 슥슥 그릴 수는 없으니, 일단 백지에 점이라도 찍고 선이라도 그어본다. 백지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백지는 나든 혹은 누구든, 어서 무엇이든지 그려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그게 내가 되어야지.

 

열심히 쓰고 그렸지만, 때론 어째 죽도 밥도 아닌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때도 있다. 뭐 어떻습니까. 죽도 맛있고 밥도 맛있지만, 중간 단계도 나름 괜찮습니다. 김가루 좀 뿌리고 참기름도 살짝 둘러서 매콤 달달하게 무친 꼬들꼬들한 오이지를 곁들여 한입 먹으면… 라고 쓰다 보니 내가 지금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다. 하여튼, 일단 뭐가 되었든 간에 자유롭게 휘갈겨보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우담바라 수준으로 귀하다는 영감이 온 순간에 내가 그 손을 잡지 못한다면? 너무 바빠서 영감의 부름을 받아들일 짬이 없다면? 마치 공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행사장에 왔지만 한 손은 가방을, 다른 손은 장바구니를, 옆구리엔 책을 잔뜩 끼고 있어 아이스크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같다. 아이스크림이야 다음에 또 먹으면 되지만 영감은 영영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여유가, 여백이 필요하다. 더 길고 더 잦은 휴식을 누려야 한다.

 

다양한 장소를 찾아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나에게 휴식이란 이런 것이다. 의무와 부담을 내려놓고 자연스레 오감을 동원해 눈앞의 새로운 즐거움을 받아들인다. 한껏 느끼고 즐기는 사이, 어느 순간 손이 근질거리며 뭔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몸을 충분히 불려 놓으면 때가 술술 밀리듯이, 창작의 영감이 둥실둥실 떠오를 것이다. 그동안 퍼다 쓰기만 하느라 어느새 바닥이 드러났던 내 속이 다시 찰랑거리며 넉넉히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마음의 기초체력이 탄탄히 쌓여,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설렌다. 좋다. 휴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니, 오늘은 쉬겠노라 선언한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자체 월차를 쓸 자격이 있다. 내가 사장이니 내 마음이다(물론 부하직원은 없습니다). 맛있는 것도 먹어본 사람이 더 잘 먹고,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더 잘 논다. 오랫동안 일, 일, 일만 하느라 제대로 휴식을 취해본 경험이 없어 요령도 부족하다. 그래도 의식적으로 자체 반차와 월차를 주기적으로 사용하며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더 긴 휴식이 필요했고, 텅 빈 속을 제대로 꽉꽉 채우고 싶었다. 나의 아버지처럼 실컷 책을 읽고도 싶었다. 열흘에 한 번 꼴로 부모님 집에 놀러 가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거의 항상 거실 소파에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길게 누워 책을 읽고 있다. 최근엔 더 크고 더 편해 보이는 새 소파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도서관의 대출 한도까지 책을 빌려와 소파에 누워 꿀떡꿀떡 삼키듯이 그걸 다 읽고, 반납하러 가선 다시 새로운 책을 빌려온다. “어이구, 좋으시겠어요!”라고 웃으니 “부럽냐? 너도 해!”라고 남 얘기하듯 말씀하신다. 아니 이 아저씨가… 너무하시네….

 

나도 책을 실컷 읽고 싶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실컷 하고 싶었다. 그런 시간을 한껏 누리고 싶었다. 오랫동안 참으로 많은 여행을 참으로 바쁘게 다녔으니, 이젠 느긋한 체류를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왔네. 좋아, 해보는 거야. 그런데 언제? 그야, 모든 게 다 준비되었을 때 떠나야겠지? 계획을 들으신 아버지가 의견을 내놓았다.

 

“일이 한참 잘될 때는 섣불리 가지 말고, 어느 순간 기세가 꺾인다는 느낌이 들 때 가라.”

 

오, 뭔가 그럴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남의 상승세와 하락세는 눈에 잘 보이지만 정작 내가 나를 파악하는 건 참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인가? 에이, 아직은 아니지? 지금인가? 설마, 벌써? 망설이고 또 망설였고,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런데 그 대화 이후 일 년, 이 년, 삼 년쯤 지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적절한 시기, 최상의 때 같은 건 영영 오지 않겠구나. 그렇다면 답이 나왔네. 내가 가고 싶을 때 가야겠네.

 

그렇게 지금 나는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돌며 체류 중이다. 준비 과정은 말처럼 매끄럽고 쉽지만은 않았지만 어쨌든 해냈다. 어느 날은(바로 오늘 같은 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어느 날은 이래도 되나 싶게 침대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처절하게 뒹군다. 어느 날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어느 날은 내 그림을 그린다. 돈이 썩어나고 시간이 흘러넘쳐서가 아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뒤로 할 것은 뒤로 하고 떠났다. 나만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그에 따라 결정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너무 바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공부도 일도 쉼 없이 달렸고, 나 즐겁자고 시작한 취미마저 경쟁심으로 불타올라 참으로 열심히 했다. 여행도 극기 훈련하듯,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수천 장씩 찍고 온갖 음식을 와구와구 먹었다. 그래야 제대로 한 것 같았다. 몸과 마음에 배인 습관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휴식하면서도 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자, 이만큼 쉬었으니 효과가 있겠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대단한 효과가 날까?

 

이거야 원, 진통제도 소화제도 아니고, 휴식에서마저 가성비를 찾으려 든다니 슬프다. 40년 넘게 그렇게 살았으니 거기서 벗어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긴 휴식의 사이사이, 괜히 불안해지고 불편해지는 마음을 살살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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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통하는 상태에 나를 놓아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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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작가의 신작  한때 소중했던 것들』  을 편집하면서 잠시 책상의 모든 진행을 멈추었다. 원고 속에 등장하는 영화 <파이란>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가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나서였다. 아주 오래전 최민식 배우를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일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최민식 배우는 <파이란>의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극 속에서 몇 달을 살았던 배역으로부터 도무지 헤어나오질 못한다며 연거푸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많은 역할을 해봤지만 정말이지 너무 너무 아프네요.”

 

그전에도 (물론 그후로도) 그는 수많은 배역 속에서 거의 모든 역할을 열심히 살았고 또 지켜왔을 것이지만 동시에 아, 어쩌면 배우는 이런 삶을 사는 인간적인 위치의 사람일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성큼 가까워졌던 기억. 그의 그런 입장을 헤아리는 동안. 그리고 내 머리가 축축하게 무거워지는 사이. 그가 눈물을 흘렸다. 그것도 몸을 구부려 꽤 많은 양의 눈물을 쏟았다. 배우에게서 한 사람의 꺼풀이 벗겨진 상태를 목격할 때 우리는 그에게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삶에 나는 반대한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사는 삶 보다 훨씬 더 쉽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훌훌 털어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그에게,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오기조차 힘겨운 스스로를 어떻게든 껴안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경의가 일었다. 그래, 굳이 헤치고 나올 필요 없는 고통도 있다. 그는 정작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 모습은 단단히, 자신의 삶을 지켜내는 자체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녀를 안 지 얼마나 됐을 때였을까. L은 독자로 만난 사이였다.

 

“이병률이 글을 쓰는 것은 뭐 때문일까요?”


나는 얼른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글을 쓰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그 글을 읽어주는 건요?”


역시 더 어려운 대답이었다. 다시 L이 말했다.

 

“그건 자기를 지키고 있어서예요. 자기를 어디로든 보내지 않고 묵묵히, 굳건히 자기를 지키고 있어서예요. 그걸 신이 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거구요.”

 

그래서 내가 물었다.


“자기를 지키는 일은 어려운 일인가요?”


쉬운 물음 같기도 했으며 물음 같지도 같았지만 나는 어쨌든 물었다. 어쩌면 내가 쓰는 글을 절대 좋아하지 않기에 나는 물었는지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아닌가요. 어떤 것에 의해 우리는 자신을 잃어요. 하늘이 정해준 적당한 범위가 있는데 그걸 자꾸 벗어나려고 하고…… 우린 어쩌면 자신을 망치는 일이 더 쉬울지도 몰라요.”


내가 숙연해진 것은 그 말이 당연한 말이어서가 아니라. CT 촬영을 해서라도 내가 정영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를 지키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내 머리 위에 늘 나를 지켜주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을 거라는 걸. 하지만 아직, 내 머리 위에 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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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식물을 기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식물을 좋아해서겠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어려워서다. (좋아하는데 어렵다는 말, 어려운데도 좋아한다는 말은 우리를 바짝 정신 들게 한다.)

 

어떻게 혼자일 수 있겠는가. 어떻게 혼자 산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돌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식물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겠지만 식물에게 내가 말을 걸면 되니까.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그들은 한번 태어난 세상에서 영원히 죽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내 세계에 식물을 들여놓듯 나에게 늘 적당한 위험 요소를 선물하면서 ‘나’를 살고 싶다.

 

세상 모든 생명은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목숨을 부지할 것이다. 그러면서 죽을 때 어떤 식으로든 소리를 남길 것이다. 그것이 찍 소리이든, 장기 밖으로 뿜어내는 뿡 하는 소리일지라도. 내가 들을 수만 있다면 세상과의 이별 앞에서 내 몸에서 새어나오는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일지 듣고만 싶다. 허튼소리이거나 누군가로 향한 맺힌 소리이거나,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뒤돌아보며 애처로이 앓는 소리나 내지는 않겠지.

 

언젠가부터 나는 내 호를 ‘부채’로 정했다. 아무도 나를 그렇게 불러줄 이는 없겠으나 나에게 끊임없이 부채질하면서 살고 싶은 이유. 대단하거나 장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이 소소한 동력일 것이므로. 그리고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묻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이가 나타나 손을 내민다면 불씨 하나 건네며 부채질을 해주면서 살기로 정했음이다. 내가 나에게 부채질을 하지 않고 어떻게 혼자일 수 있겠는가. 내가 남에게 그것조차 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면 나 사는 자리에 어떻게 빛이 비치겠나.

 

이쯤에서 ‘자신을 지키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오만 가지도 넘는 질료 가운데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기로 :

 

1. 어떤 식으로의 안간힘
2.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행로를 택하기
3. 자신을 허위로 포장하지 않는 것
4. 남들이 만들어놓은 상황에 휘둘리거나 함몰되지 않기
5. 눈치 보지 않되 눈치 있기
6. 희미하게 시작된 삶을 분명하게 하기
7. 상처에 잠식당하지 말고 배지로 만들어 당당히 모자에 달기 ……

 

더 열거하지 않아도 이쯤에서 결론은 난다. 그것은 무척이나, 꽤 어렵다는 것.


(아…… 이 글을 쓰는 기간 중에 만난 친구는 나더러 당장 정자은행에 가보란다. 건강하고 젊을 때 얼른 그것을 보관해두란다. 아, 이것은 무슨 생식과 생성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보존하라는 지시인가. 네이버에 물으니 채취비용이 20만원이란다. 보관료는 따로. 그런데 왜 액체를……)

 

나는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그 말은, 참, 사람을 그 말의 노예로 만든다. 대신 내 안에서 핵분열하는 행복의 세포만 믿기로 한다. 그러니 굳이 행복을 위해 애써 하게 되는 일련의 피로한 행위들도 다 그만두자고 주문을 건다.

 

그러니 나는 내 삶이 한 가지 단어로 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따르는 삶 또한 나에게 한 가지 색깔을 강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바람이 통하는 상태에 나를 놓아두려 한다. 당신도 그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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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운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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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졌지만 내가 좌우할 순 없는 일들이 있다. 회사생활도 그렇다. 회사는 말이 아닌 숫자로 지시한다. 내 이름 옆에 매출 목표를 기록해둔다. 나는 1년에 몇 백 억 단위의 책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목표의 달성 여부는 나의 노력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도서 판매는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드라마에 소개된 책이 화제가 되거나, 유명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거나, 대통령의 인기가 어마어마하면 관련 도서의 매출이 올라간다. ‘페미니즘’ 같은 담론의 부상이나 ‘1인 가구의 증가’ 같은 사회상의 변화도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런 변화를 재빨리 읽고 관련 도서를 기획하는 출판사 역할이 크다. 출판사에서 새로운 책을 계속 내지 않으면 서점에 새로운 매출이 있을 수 없다.

 

서점 담당자는 더 많은 매출을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변화가 도서 구매로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재고를 잘 갖추고 출간 소식을 널리 알리고 맞춤한 굿즈를 기획한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보조하는 입장이고, 매출목표 달성은 상당 부분 다른 요인에 좌우된다. 목표는 내 것이지만 목표를 달성할 수단은 내 손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런 것 같다. 모든 부모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목표와 책임을 부여 받지만, 실제로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부모가 온전히 좌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성장과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그에 맞게 적절히 개입해 아이를 '올바른 인간'으로 길러낸다는 생각은 사실상 판타지다.

 

만 26개월인 딸은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닌다. 사회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올려주시는 사진 속 아이가 반갑고 사랑스럽고 가끔은 낯설다. 처음 어린이집에 감기약을 보내며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약을 먹을 때마다 난리통이었기 때문이다. 버둥대는 아이의 팔다리를 결박하듯 붙잡고 겨우 벌린 입에 약을 흘려 넣는다. 엄마 아빠와도 잘 먹지 않는 약을 과연 선생님과 잘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우려가 무색하게 웬걸. 어린이집에선 약도 꽤 잘 먹는다고 한다.

 

집에서 쓰거나 본 적 없는 말과 행동도 급속도로 늘었다. 늘 어지럽히기만 하던 딸이 무려 정리를 하고, 엄마가 아픈 날은 두 손 모아 예쁘게 기도도 한다. 반면 아빠에게 “하지 마! 만지지 마!” 명령조로 큰소리치는 경우도 생겼다. 아내와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그사이를 비집고 와 외친다. “이야기하지 마!!” 엄마 아빠가 수비해야 할 범위가 빠르게 늘어간다.

 

‘거부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것은 물론 아이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 의사를 보다 사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은 부모에게 주어진 기본 역할이다. 하지만 아이가 그런 말을 꽤나 강한 어조로 하게 된 맥락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지며 훈육을 해야 할 지 고민이 된다. 아이에게 엄하게도 말해보고, 조곤조곤 설명도 해보고, 행동을 제지하기도 하지만 그 각각의 대처가 아이의 마음에 어떤 무늬를 그리는지는 부모라고 해서 알 수가 없다. 결국 아이도 아주 가까운 “타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타인의 삶을 계획표대로 인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정규 교육과정이 있어도, 심지어 대한민국처럼 붕어빵 찍어내기 같은 교육과정이 있어도,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으로 자란다. 부모가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어마어마하고, 그 의미를 축소함으로써 스스로의 책임을 가볍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동시에 부모라고 해서 아이를 목표와 계획대로 인도할 수단이나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면, 부모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제 27개월 차인 초보 부모가 답을 쥐고 있을 리 없다. 다만 육아라는 긴 여정에서 아이의 현재와 아이가 다다라야 할 모습 사이의 거리를 계속 재기보다는,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선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아이와 긴 소통을 해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좋은 육아가 될 수 있다 믿는다면 너무 낙관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머리 속에 선연히 떠오르는 어떤 문장을 지금의 나는 믿어보게 된다. 아이가 잠든 새벽에, 이 문장을 오래 매만지고 있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건 우리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영혼에 어떤 문장이 쓰여지느냐는 것이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260쪽


 

 

소설가의 일김연수 저 | 문학동네
신년 독서 계획과 짧은 여행, 크고 작은 만남과 인상 깊게 본 영화와 자전거를 도둑맞은 이야기까지, 사소하고도 다양한 일상들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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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사람을 위한 초간단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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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지난 글에 수면과 스마트폰에 대해 썼습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스마트폰과 게임에 대해 걱정이 많죠. 주로 이런 것들에 “중독”이 되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입니다. 그런데 “중독”이 정확히 뭔가요? 안 그런 분야가 있을까 싶지만 중독 현상에 대해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지식이 쌓입니다. 분명한 것은 중독은 술이나 담배든, 마약이든, 스마트폰이나 게임이든 모두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란 겁니다. 그래서 뇌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을 갖고 있으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뇌는 상당히 복잡한 장기지만 최대한 간단하게 알아봅시다.

 

뇌는 무슨 일을 하나요? 생각하고, 판단하고, 계산하고, 기억하고, 상상하지요. ‘머리가 좋다’라든지 ‘머리를 써라!’는 표현은 이렇게 고차원적인 사고기능이 뇌에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감각이나 운동도 뇌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실바람이 불어 오는 것은 모두 뇌에서 알아차리는 겁니다. 기막힌 슛을 날려 공을 골인시키거나, 그냥 서 있기도 힘든 빙판에서 높이 뛰어올라 멋진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는 것도 다리가 아니라 뇌입니다. 사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고,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도 모두 뇌에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 몸 자체가 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주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닙니다.

 

뇌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할까요?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뇌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기가 막히게 복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한 개의 신경세포, 즉 뇌세포에서 출발합니다. 신경세포를 뉴런(neuron)이라고 하는데, 뇌 속에는 약 1천억 개의 뉴런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뉴런 자체가 무슨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뇌의 기능은 뉴런과 뉴런 사이의 연결에서 나옵니다. 배가 고프다는 걸 느끼고, 라면을 먹을지 떡볶이를 먹을지 결정하고, 음식이 너무 뜨겁다고 판단하여후후 불고, 입으로 가져가 씹어 삼키고, 음식값을 계산하고, 시계를 보고, 약속에 늦었다는 걸 깨닫고, 급히 가방을 집어 들고, 약속 장소까지 뛰어가는 것이 모두 정해진 뉴런들이 정해진 순서로 연결되어야 가능합니다.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는 곳을 시냅스(synapse)라고 합니다. 뇌 속에 있는 시냅스는 수조 개에 이릅니다. 뉴런 한 개가 동시에 수천 개의 다른 뉴런과 시냅스를 통해 신호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머리 속에 슈퍼컴퓨터를 한 대씩 가지고 다니는 셈입니다. 그림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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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는 크게 대뇌, 소뇌, 변연계, 뇌간 등 4부분으로 나눕니다. 그림에서 중뇌, 뇌교, 연수를 합쳐 뇌간이라고 하고, 시상, 시상하부, 편도체, 해마를 합쳐 변연계라고 합니다.

 

뇌간은 생명을 유지합니다. 즉 의식이 깨어있게 해주고 호흡 및 심박동, 혈압을 유지합니다. 대뇌나 소뇌는 어느 정도 손상되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뇌간의 심한 손상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대뇌나 소뇌의 기능은 마비되었으나 뇌간의 기능은 남아 호흡과 심박동이 유지되는 경우를 ‘식물인간’, 뇌간마저 손상되어 인공호흡기를 떼면 곧 죽는 경우를 ‘뇌사(腦死)’라고 합니다. 한편, 소뇌는 움직임, 자세, 몸의 균형을 조절해줍니다.

 

중독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변연계가 중요합니다. 변연계는 사랑, 질투, 분노, 행복, 흥분, 공포, 기쁨, 욕망 등 온갖 감정을 느끼는 곳이기에 ‘감정의 뇌’라고 하지요. 주로 어떤 행동이나 경험을 했을 때 기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기억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까요? ‘기분이 좋다’는 것도 뇌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뇌에서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 부위를 쾌락중추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자극은 예상보다 기분이 더 많이 좋은 경우가 있어요. 뇌는 이런 자극을 특별히 소중하게 생각하여 따로 잘 기억해둡니다. 여기 관련된 부위를 보상중추라고 합니다. 보상중추를 자극하는 것은 도파민(dopamine)이란 물질입니다.

 

저는 콜라를 처음 마셨던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차가운 병에 맺힌 물방울, 병마개를 땄을 때 나던 경쾌한 뻥! 소리, 컵에 따를 때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다 꺼지던 수많은 기포들, 한 모금 마셨을 때 달콤하고 시원하고 알싸하고 짜릿하게 입안과 목구멍을 자극하던 희한한 맛… 뭔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순간 뇌 속에서는 도파민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을 겁니다. 그리고 보상중추에게 “야! 이건 대단하다. 아주 중요한 거니까 잘 기억해 둬야 해!”라고 말했을 테지요. 그 뒤로는 콜라병만 봐도, TV 광고에서 병마개 따는 소리만 나도,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콜라 생각이 납니다. 그때마다 도파민이 보상중추를 자극한 거지요.

 

한때는 도파민이 쾌락중추를 자극하여 기분을 좋게 해준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파민은 일부 쾌락에도 관여하지만 주 역할은 보상중추를 자극하여 갈망을 일으킵니다. 어떤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제공하는 거지요. 배고프면 음식을 먹고, 섹스를 하여 자손을 낳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친목을 다지는 등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도파민과 보상중추의 작용에 의해 그런 일을 하면 기분이 좋다고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 행동을 학습하게 되는 거죠. 쾌락중추와 보상중추는 모두 변연계에 있습니다. 그러니 변연계는 감정을 통해 생존에 꼭 필요한 행동을 학습시키는 곳이라고 정리해둡시다.

 

대뇌는 언어, 추상적 사고, 시각과 청각, 문제해결, 기억, 주의집중 등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대뇌가 발달한 덕에 생긴 거지요. 주목할 것은 대뇌의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이라는 부위입니다. 이곳은 주어진 정보를 종합하여 판단을 내리고 일을 계획하는 곳입니다. 변연계에서 강한 감정을 바탕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겠다는 충동이 들 때 상황을 파악하고, 위험을 평가하고,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예측하여 그 행동을 할지 말지 결정합니다. 그래서 전전두엽 피질을 ‘뇌의 최고경영자(CEO)’라고 합니다.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최종 판단을 내린다는 거죠. 한마디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전전두엽 피질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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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자, 비혼과 비출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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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부터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내 짝이다 싶은 인물이 곁에 있어서가 아니라(그런 자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입니다) ‘너도 슬슬 결혼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서 듣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 당시 이미 작업실을 운영하며 혼자 일한 지 6~7년은 된 상태. 혼자 내 공간을 가꾸고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을 온몸으로 충분히 겪은 상태라 독립에 대한 환상 따위는 애저녁에 분리수거한 지 오래다. 현실은 빡세다고요. 하여간 결혼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 어디 한번, 결혼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단 커피 한잔 맛있게 만들어놓고 컴퓨터 앞에 각 잡고 앉아서 시작해보았는데요.

 

결혼 후에도 내 작업실을 운영하려면 결국 집 두 채를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인데, 양쪽 집 관리에 시간과 체력을 충분히 쓸 수 있을까? 비용 면에서 오히려 적자는 아닐까? 논의 끝에 부부가 사는 집 일부를, 방이든 거실 한쪽이든 간에 작업 공간으로 사용할 경우 일에 방해가 되는 요인을 얼마나 빠르게 제거할 수 있을까? 만약 방해 요인이 배우자의 가족과 친구 등 내 손으로 제거하기 어려운 관계일 경우, 배우자는 그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담 마크할 수 있을까(어서 데리고 나가라는 소리죠)? 집에서 노브라로 수면 바지를 걸치고 있지만 엄연히 근무한다는 것을, 당신과 나는 맞벌이 부부라는 것을 배우자는 과연 얼마나 제대로 받아들일 것이며, 배우자의 가족은 또 어떠할까?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이것(설거지, 청소, 식사준비, 안부 전화…)도 안 하니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만 꼽아봐도 벌써 까마득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다.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그때는 정말 어떨까? 자유롭게 경쟁하고 공존하는 듯하던 여성 창작자와 남성 창작자 사이에 갑작스레 차이가 생기는 건 대략 이때쯤이다. 그림이든 글이든 음악이든, 남성 창작자들은 이 시기에 작업실을 마련했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집에선 아무래도 아이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 작은 공간을 구했다는 것인데, 그렇군요. 그럼 여성 창작자인 당신의 배우자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러고도 결혼을 꿈꾸라니 이거야 원, 미래가 너무 뻔하잖아요. 20대 후반의 나는 그렇게 마음을 살포시 접었다.

 

그래,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 이걸로 됐어. 하지만 꿋꿋하게,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비혼 여성은 결혼도 미루고 일에 올인했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기혼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가정(자녀가 없을 경우 아이도 추가)을 포기하고 일에 올인했다는 식이다. 칭찬인지 비난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비혼이든 기혼이든, 남성이 이런 소리를 듣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너무 바쁘니 여자가 챙겨줘야 한다는 소리를 듣지. 올림픽처럼 큰 대회에서 훌륭한 성과를 획득한 여성에겐 스포츠인으로서 얻은 성취 대신 외모, 연애, 결혼 계획 등 엉뚱한 질문이 쏟아진다. 한참 좋은 나이에 운동만 하느라 여성으로서의 삶을 희생했다는 식이다. 은퇴를 앞둔 경우엔 이제 평범한 여성(아내, 어머니)으로 돌아간다고들 한다. 남성 스포츠인에게도 이런 말을 가져다 붙이던가? 대체 여성이 꼭 지켜야 할, 소중한 여성의 삶이란 뭘까? 연애, 결혼, 임신과 출산 등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두고 깊이 고민하는 여성에게 어째서 너무 재지 말라고, 눈 딱 감고 하라고 말할까? 깊이 생각할 틈을 갖지 못하도록, 대충 빨리 후다닥 정하라는 의도는 아닐까? 제대로 알고 나면 거부할까 봐?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자신을 스스로 돌볼 줄 아는, 생활을 꾸릴 줄 아는 사람이 좋겠다. 몸을 항상 깨끗하게 씻었으면 좋겠고, 입었던 옷은 착착 모아 세탁기에 넣고,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적절히 사용하며, 상하기 쉬운 옷은 세탁 망에 넣거나 손빨래를 했으면 좋겠다. 빨래가 끝나면 탈탈 털어 잘 말려 개켜 정해진 자리에 넣었으면 좋겠다. 양말을 벗을 땐 또아리처럼 돌돌 말리지 않도록 잘 폈으면 좋겠다. 직접 세탁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직접 해 먹든 사 먹든, 끼니에 대해 고민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용한 식기를 잘 씻어 물기를 말린 후 찬장에 착착 정리했으면 좋겠다. 음식물 쓰레기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재활용 쓰레기는 분리수거함에 집어넣었으면 좋겠고 일반 쓰레기 봉지 주둥이는 꽉 묶어서 내다 버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잠깐만요, 아직 멀었어요. 아직 5퍼센트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당연하고 별 것 아닌 소망을 두고 대단히 큰 소망이라고들 한다. 한국에서 이런 남성을 바라다니 욕심도 많단다.

 

좀 더 써볼까?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식품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그런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꼭 술을 마셔야 한다면 주사를 부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길에 침을 뱉지 않으며, 역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 사람이 좋다. 종종 술담배에 찌든 남성을 두고 ‘사람은 참 좋아, 얼른 짝을 만나야 와이프가 챙겨줄 텐데 안쓰럽지 뭐야’라는 이야기를 하는 작자들이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기본적인 자기관리도 못하는 사람은 누구도 만나선 안 된다. 대체 누구에게 무슨 폐를 끼치려는 수작인가? ‘사람은 참 좋다’는 표현도 이상하다. 사람은 다 좋다.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걸로 다른 단점을 모두 덮을 순 없다.

 

여성은 한 손에 빗자루를, 다른 손에 행주를 쥐고 태어나지 않았다. 만약 어떤 여성이 자신과 주변을 깔끔하고 건강하게 관리한다면, 그건 하나부터 열까지 후천적으로 습득한 능력이다. 배우고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지 않다면, 혹은 거기에 쓸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전문가에게 정식으로 의뢰하고 적절한 급여를 지급하시라.

 

줄줄이 딸린 동생을 돌보느라 혼기를 놓쳤다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 시집을 못 갔다지, 부모님 병간호하느라 그 나이까지 혼자라지. 비혼 여성에겐 으레 이런 사연이 있을 거라 어림짐작하던 시대는 갔다. 한국 사회는 여성을 겁준다. 늦으면 안 된다고, 어서 막차라도 타라며 윽박지른다. 재지 말고 빨리 시집가야지, 안 그럼 늦어. 몇 살이라구? 아휴, 아기부터 가져야겠네. 안 그럼 노산이야. 애가 하나야? 얼른 둘째 낳아. 그래야 늦기 전에 학교 보내고 시집 장가 보내지.

 

하지만 그렇게 다그치는 사람들은 정작 비혼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훈수를 둔다니, 이상하죠. 써보지도 않은 물건의 리뷰를 정성스레 작성하는 것만큼이나 이상하다.

 

이쯤에서 40대 비혼 여성인 내 의견을 말하겠다. 삶에서 결혼, 그리고 별책부록인 출산과 양육을 겪지 않으니 여유가 생겼다. 자유로워졌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기회를 만났다. 무엇을 시작하든 무엇에 도전하든 늦은 게 별로 없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살면서 반드시, 당연히,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없다. 진지하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정말 없다. 법을 준수하며 성실히 살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결혼하든 하지 않든, 모두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다. 어느 길로 가든, 갔다가 돌아오든, 혹은 삽을 들어 새로운 길을 파든, 내 의지로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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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행복을 위한 궁극의 프라이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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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mensweekly.com

 

 

취향은 사실 환경이 만드는 거다. 자기 자신만 진실을 모르는 <트루먼쇼>의 짐 캐리와 같달까. 아무리 주체적인 취향을 갖고 있다 자부해도 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산업이든 힙스터 문화에서든 당대 유행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난히 자신의 감도가 좋다고 생각하거나 ‘취향’ 어쩌고를 앞세우며 사는 삶은 근본적으로 고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멋은 그렇게 마주한 취향을 얼마만큼 체화할 수 있는가 정도이며, 이를 인정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주방 용품의 유행은 이런 ‘취향관’에 적합한 사례다. 드부이에에서 샐러드마스터까지 맘카페에 특정 브랜드의 프라이팬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건 제이미 올리버를 비롯한 해외 스타 셰프들의 쿡방이 우리나라 TV에 본격적으로 상륙하면서부터다. 여기에 쿡방의 저변이 확대되고, 환경호르몬을 발산하는 프라이팬 코팅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무쇠 팬이 가진 친환경 슬로우 라이프 코드가 각광받으며 어떤 프라이팬을 쓰는가는 재력과 문화적 취향뿐 아니라 사회적 의식과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기호로 유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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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룸바이홈키친

 

 

돌이켜보면 전부다 몰랐으면 더 좋았을 이야기다. 스텐에서 무쇠로 그리고 다시 스텐(그사이 세라믹도 다녀갔다)으로 돌고 도는 맘카페의 조류에 함께 올라탄 방랑과 모험의 여정 끝에 남은 건 하부 찬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높게 들어찬 프라이팬 산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들려주는 이야기는 취향을 앞세우거나 유행하는 새로운 경향을 몸소 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의 대화가 아니라 혼자 사는 단출한 살림에 어울리는 궁극의 일상 프라이팬에 대한 조언이다.

 

스텐과 무쇠 팬이 나쁠 리가 없다. 둘 다 반영구적이며 열전도에 있어 유리하고, 불소수지 걱정은 접어둬도 되니 자녀가 있는 주부들에게 꼭 필요한 필수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실상 요리를 망치고 멀리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한다. 스텐 팬인 경우 처음 사면 식초나 베이킹 소다를 넣고 끓인 다음 올리브유 등으로 닦는 세척 과정을 해야 하고, 무쇠 팬은 몇 차례나 기름을 먹이는 시즈닝을 작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낮은 불에서 불 조절을 해가며 조리해야 눌러 붙지 않는다. 스웨덴에선 무조건 무쇠 팬을 쓴다고 해서 끈기를 갖고 다양한 제품에 도전해봤지만, 요리 전엔 꽤나 긴 예열시간을 가져야 하고 사용 후에는 바로바로 물로만 씻어서 말리고 기름칠 하는 작업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어서 북유럽 라이프와는 등을 지게 됐다. 다들 길만 잘들이면 된다고는 하나 길들이기가 텍사스 로데오만큼 만만치 않아서 계란 하나 굽는 데도 많은 정성이 필요하고 너무 무겁다. 안 그래도 불 앞에 서기 꺼려지는 무더위에 도저히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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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바이재팬

 

 

뜨거웠던 도전의 역사 끝에 일상성을 찾아 안착한 팬이 일명 ‘엑스칼리버 후라이팬’이라 부르는 업소용 팬이다. 이와츄, 샐러드마스터, 휘슬러, 드부이에, 터크 등등을 찬장 속으로 밀어낸 실전에 특화된 전천후 프라이팬이다. 참고로 이 제품을 검색할 땐 ‘후라이팬’이라고 쳐야 한다는 걸 명심하자. 사실 엑스칼리버는 제품명이 아니다. 미국 위드포스사의 특허 코팅법의 명칭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코팅 팬에 비해 10배 이상의 긴 수명과 강력한 코팅력을 자랑한다. 권장하진 않지만 식용유 없이 계란을 구워도 전혀 눌러 붙지 않고 써니사이드업이 나올 정도며, 이 팬만 있음 누구나 럭비공 모양의 오믈렛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가벼워서 핸들링하기도 좋은데, 과거 공효진이 <파스타>에서 동전을 넣고 팬 돌리기 연습을 하던 바로 그 팬이다.

 

하부는 통3중 알루미늄 구조이고, 윗면은 예의 엑스칼리버 코팅을 깔아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용해야 하는 업소에 제격인 만큼 내구성이 뛰어나다. 게다가 4.8센티미터 정도의 깊이가 있어서 스테이크 등의 굽기부터 파스타 같은 볶음요리나 국물 자작한 전골류까지 전천후로 활용할 수 있다. 가장 매력적인 건 가격이다. 웬만하면 1~3만 원 대 사이에서 인터넷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엑스칼리버 팬은 어느 한 회사의 제품명이 아니다. 같은 이름과 디자인으로 국산부터 중국산까지 다양한 회사에서 비슷한 가격대의 다양한 제품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국내 주방용품업체가 제작한 물건이 좋고, 경험상, 바닥에 킹센스, 도일(DOIL), EXCALIBUR-PAN 등이 각인되어 있다면 마음 놓고 집으면 된다.

 

그간 엑스칼리버 팬의 최대 단점이 인덕션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최근에 혼용 가능한 제품이 킹센스, 알텐바흐 등에서 나왔다. 혹시나 외향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면, 표면을 가공해 무쇠 팬의 단점을 대거 보완한 일본 암바이(ambai)사의 제품들이 훌륭한 대안이다. 실사용 예는 <효리네 민박2>를 참고하자. 마지막으로 코팅 팬은 기름이나 수분 없이 가능한 절대로 예열하지 않는 게 좋다. 많이들 걱정하는 불소수지가 배출되기 때문인데 수분을 함유한 음식을 함께 가열하면 사실상 팬에서 불소수지가 분해될 정도로 온도가 치솟지 않아 대부분의 위험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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